갑작스런 빗발에 근처 밭두렁가에 뛰어들어가
토란 잎 꺾어 우산을 했다
날벌레 몇 마리 들어온다
천장에 달팽이가 붙어 있다
그랬었구나 어딜 가는 중인지는 몰라도 내가 대신 걸어주마
토란 잎 우산을 빙그르 돌리며 간다.
-『불교신문/문태준의 詩 이야기』2023.08.28. -
여름날에는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만날 때가 있다. 어느 구름 속에 빗방울의 물주머니가 들어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계절이 여름이다. 후드득 후드득 듣는 소나기를 만난 시인은 토란 밭에 들어가 우산을 하나 빌려온다. 푸른 토란 잎 우산을 받쳐 든다. 펼쳐진 토란 잎 우산 안쪽으로 날벌레들도 비를 피해 들어오고, 또 토란 잎 우산의 천장에는 달팽이가 붙어살고 있다. 시인은 날벌레들과 달팽이와 동행을 해서 길을 간다. 기분도 썩 좋아서 우산을 빙글빙글 돌리며 걸어간다. 참 싱그러운 풍경이다. 유머도 있어서 웃음이 절로 나게 한다.
나는 언젠가 신현정 시인의 시에 대해 “명랑하고, 천진하고, 또 부럽기까지 한 장난기도 섞이어 있다. 순응과 긍정과 운치와 웃음과 신명과 상승은 그의 시 특유의 소유이다”라고 쓴 적이 있는데, 이 시도 이러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