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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시대 졸려운고양이
로맨스가 필요해2012
(들으면서 내려와주세요)
윤석현과 나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다.
다섯 살때 우리 집 2층으로 이사 온 윤석현을
난 친오빠라 생각했다.
언제부터 서로를 여자와 남자로
느끼기 시작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18살에는 이미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체, 다 옛날 이야기다.
다섯 번을 사귀고 다섯 번을 헤어졌는데
완전히 끝이난 건 3년 전이다.
지금 우리는 완벽한 남남.
그냥 옆집 남자, 옆집 여자다.
나이 서른 셋.
지나간 남자에게 연연할 시간이 없다.
세상엔 남자는 많고 나는 아직 충분히 매력있다.
물론, 새로운 연애의 출발선이
결혼정보회사의 회원권이라는 게
쪼오금 걸리기는 하지만...
뭐 어때?
그 많은 남자들과 입을 맞추고도
왜 내가 혼자있는지 깨달았다.
내가....이 남자를 가장 사랑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는 이 남자와 첫키스를 했다.
이 남자와의 키스가 너무 강렬해서
다른 남자들과의 키스는 다 잊어버렸나보다.
입 밖으로 그 말을 뱉어낸 후,
나는 바로 후회했다.
미안하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이러지 말라고, 달래주기를 바랐다.
그 날이 우리가 처음 헤어진 날이다.
그가 바빠서 화가난 게 아니었다.
4시간을 기다려서 화가난 게 아니었다.
첫키스를 한 지 1000일이 된 거
그런것 쯤 나한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죽어도 지가 잘못했다는 말은 안했다!
보고싶었다는 말도 안했다!
몰인정하고, 매정한 자식....
윤석현과의 오랜 연애가 나에게 준 결론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안될 인연은 안되고
아무리 도망을 가도 결국 만날 인연은 만난다는 것.
나는 오늘, 내 운명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하나도 안 부끄럽다.
나는 이제 부끄러워하는 게 부끄러운 나이.
부끄러워하는 것이 애교로 통하던 나이는 지났다.
삼만년 전에....
그런 와중에 내 인생에 대한 불만은 더욱 깊어졌다
모든 연인들이 꼴보기 싫어졌다!
여자의 욕망이 남자의 욕망보다 약하다는 말은
말짱거짓이다.
처절한 나의 개인적 경험담이다.
하....여자 역시 정신적 사랑 못지않게
육체적 사랑도 갈망한다.
가장 멀리, 낯선 사람으로 존재하는 이 남자는
종종 이렇게 누구보다 아니 다른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이
가깝게 다가온다.
이 남자의 이런 점이 나는 좋다.
다섯 번이나 헤어지면서도 다섯 번을 다시 만난 건,
이 남자의 이런 점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서른이 넘으면 자기 자신을 안다.
자신의 어떤 모습이 남자를 매혹시키는지 안다.
그리고, 한 사람을 오래 만나다보면
상대방의 마음도 내 마음과 같이 아는 순간이 있다.
지금 저 남자....
이 순간의 내가 사랑스러울 것이다.
틀림없다.
캐치볼은 이기는 사람도 지는 사람도 없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지금 이 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
그것 뿐이다.
내가 캐치볼을 좋아하는 이유는
끝나고나서 잊어버릴 수 있다는 점.
내 게임이 어땠나 분석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섹스가 캐치볼과 다른 점은
끝난 후가,
조금....많이, 까탈스럽다는 것이다.
내가 가려고 하는 곳,
나는 윤석현과 함께 어디로 가기를 원하는 것일까?
가끔, 내 마음인데도 내가 모를 때가 있다.
난 도대체 뭘 원하는 거지?
3년 전, 그는 분명히 밝혔다.
"나는 결혼같은 거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데?
너도 그런 줄 알았어 난"
그 생각이 지금은 달라졌을까?
이렇게 우리의 관계는 정리되었다.
정신적 사랑없이 잠만 자는 관계.
평범하지 않은 윤석현과
나의 여섯번째 연애가 시작된 것이다.
저러고 문 걸어두면 기본이 2박 3일이다.
저 버릇 때문에 두 번째 이별이 왔었다.
막차가 떠날 때까지 윤석현은 안왔다.
그때는 그게 나를 사랑하지 않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냥 이 닫힌 문이 동굴이고,
그는 어두컴컴한 동굴로 들어가 겨울잠을 자고있는
한 마리의 곰일 뿐임을 안다.
그때의 나는 순수하고 아름다웠지만,
다시 돌아가고싶지는 않다.
지금 알고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조금 다른 연애를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윤석현은 이틀만에 동굴을 나왔다.
여전히 이 남자는 나한테 기대지 않는다.
지금은 그것이 상처가 되지 않았다.
우린....잠만 자는 사이니까.
이런 관계도 연애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지고 싶은 건,
그의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라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졌다.
그 갈망을 나는 상상으로 채웠다.
..
사랑받고 싶었다.
하지만, 구걸하고싶지는 않았다.
나는 속마음을 감추는데 익숙한 사람은 아니지만
자꾸 깊어지는 진심은
농담의 뒤편에 감추었다.
내가 원하는 건, 뜨거움이 아니라 애틋함이다.
나에게 필요한 건 윤석현과의 섹스가 아니라
로맨스였다.
난 아직도 윤석현을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 진심은 말하지 않겠다.
윤석현이 먼저 다가올 때까지
절대로 내가 먼저 다가서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이런 남자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재촉하지않는 남자,
다시 되묻지않는 남자,
헤어지자고 말해도 한 번 붙잡지도 않았던 남자,
원래 그런 남자였다.
몰랐던 게 아니다.
내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밀어내는 남자라는 걸
몰랐던 게 아닌데...
내 마음은, 자꾸 그에게 더 다가가고 있었다.
잠만 자는 관계로 지내자고 먼저 선을 그은 것은 나다.
다시 그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사랑하기 시작했다고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질투를 드러낼 자격도 없다.
그 입맞춤이 좋았다.
첫키스보다 좋았다.
사랑한다는 말보다도 좋았다.
좋아한다고 말하고 말았다.
고백 이후, 모든 것이 어색해졌다.
무심한듯 행동하지만
내 모든 감각의 촉은 그를 향해 열려있고,
그도 그렇게 보였다.
아직 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하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내 마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그와 나의 일곱번째 연애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의 재경이 나였다면,
나는 또 착각했을 것이다.
그의 모든 행동들이 나를 사랑해서 비롯된 것이라고.
그 날 아침,
키보드를 치며 노래를 부른 게
지희였어도 마찬가지였을까?
도서관에서 잠든 게 내가 아니라 재경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까?
그 순간, 꼭 내가 아니었다고 해도....
윤석현에게는 내가 아닌 누구라도 상관없었을까?
내 고백에 대해 아직 대답이 없는 건,
역시 거절일까? 정말 거절일까?
나는 그에게 전혀 특별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혼자 이러는 건 바보짓이다!
윤석현에게 확인해야한다.
사랑인지, 아닌지....
나는 귀신같이 60초를 헤아릴 수 있다.
포인트는 1초를 둘로 나누어서 세는 것.
음악을 시작하며 메트로놈과 친해졌다.
속도를 60에 놓고 1연음, 2연음, 4연음, 8연음,
3연음, 6연음을 차례로 연습했다.
3연음을 제외하고는 한 박을 둘로 나누어 세는 것이 요령이다.
35초, 숨이 가빠진다.
37초...38초, 39초, 40초.
윤석현은 아직 대답이 없다.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다.
내가 원했던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고해서
그를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말해버렸고, 또 말할 것이다.
"나쁜 새끼...."
사랑받고싶다고, 사랑해달라고 말할 수 없어서
나는 그렇게 말해버렸다.
이제야, 그의 진심을 알았다.
나는 내 마음을 생각했다.
내 마음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
내 가슴한테 묻고 또 물었다.
그가 미웠다, 서운했다, 서러웠다, 상처받았다.
그러나 그 모든 마음의 끝에는 하나의 답이 남아있었다.
나는 아직도, 윤석현을 사랑하고 있다.
열매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마, 곧 알게될 것이다.
내가 열매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지켜내려고하는 그것을.
그때가 오면 난, 저 아이를 어떻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 이랬다.
한 사람이 아프면 나머지 한 사람도 같이 아팠다.
그럴 때마다 우린 치킨스프를 끓여 함께 먹었다.
좋아하고 사랑한만큼,
딱 그만큼 미움과 증오도 깊어졌다.
여기서 끝내야하는 연애라면 산산조각을 내는 편이 낫다.
열매는 알고있었다.
내가 지키려고 하는 것이 겨우 이만큼의 공간이라는 것을.
그러나 열매는 모른다.
이 동그라미 안에서 내가 지키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열매는 끝까지 몰라야한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 뿐이다.
모든 30대는 알고있다.
나이 서른이 넘어도 인생은 별로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을.
인생에는 특별히 나쁜 일도, 특별히 좋은 일도 없다.
지금 좋은 일이 나중까지 좋으리란 보장이 없고,
지금은 나쁜 일이지만
결국에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다 괜찮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인생이다.
엄마가 돌아가시던 열여덟에 나는 이미 혼자였으니까.
인생에도 신호등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멈춰, 위험해, 안전해, 조심해,
오른쪽으로 가, 왼쪽으로 가,
그대로 쭉 가도 좋아.
그렇게 누군가 미리미리 말해줬으면 좋겠다.
마음이라는 건, 육체의 어디에 붙어있을까?
어디에 붙은 건지 몰라서
마음이 아플 때는 속수무책 끙끙 앓고있는 수밖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가고싶지가 않다.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여자가 있다.
헤어질 때 뒤돌아보는 여자와
뒤돌아보지 않는 여자.
..
나는....뒤를 돌아보는 여자다.
연애가 끝나면 알게된다.
두 사람 중 누가 더 많이 사랑했고,
누가 더 작게 사랑했는지.
헤어지고 난 후에 먼저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더 작게 사랑했던 사람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나는 다정하게 웃었다.
연애의 시작은 언제부터일까?
100일째라든가, 1000일째라든가
그런 날짜들은 도대체 언제를 시작으로 헤아리는 것일까?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은 날부터 시작하는 것일까?
아니면....처음 입을 맞춘 날부터 시작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일상적이지 않는 어떤 순간,
내 가슴이 섬세하게 흔들렸다면
그때부터 연애가 시작된 것일까?
어쨌든, 나와 신지훈은 연애를 시작했다.
이 연애에 사랑은 없었지만,
웃음은 있었다.
그러나 벼락을 맞는 것 같은 짜릿함이 없다.
이 연애, 이대로 괜찮을까?
여자는 등에도 눈이 있다.
아니, 여자는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본다.
지금 내가 보고있는 것이 상상이든 현실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난 괜찮았다.
그 영상이 나를 아프게하지 않았다.
윤석현에게 이런 마음이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한편, 말할 수 없이 쓸쓸해졌다.
그렇게 나를 애태우던 사랑이 이렇게 변하다니,
영원히 뜨거울 것 같은 그 사랑이
이렇게 차갑게 식어버리다니....
그 사랑이 이렇게 변했다.
그것이 나를 너무 아프게했다.
시간이 더 흐르면,
오늘 이렇게 아픈 마음도 잊게 될까?
겨우 이런 것이 사랑일까?
내가 믿고, 소망하고, 사랑하는 것들이 이렇게 연약하다니...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쓸쓸해졌다.
연인관계가 끝이 나도
우리는 한 번도 서로의 인생에서 빠진 적은 없었다.
그것이 내겐, 위안이 되었다.
윤석현의 등을 보는 순간,
가슴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윤석현도 그랬던 것 같다.
결혼문제로 날마다 싸우던 시기였다.
서로가 지겨웠고,
죽이도록 미웠는데도 헤어지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는,
헤어질 핑계를 찾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유치장 안이었다.
결혼이 하고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남들처럼 자연스럽고 평범한 삶을 나도 원했다.
다만....
질투란, 자신감이란 없는 짓이다!
배짱이라고는 없는 짓.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하는 천하의 못난 짓이다.
그런 못난 짓을, 내가 왜 해?
"다시 한 번 기회를 줄게, 니 진심을 알았으니까
난 이제 하나도 불안하지 않아"
"주열매."
"우리가 이대로 헤어져서 남남이 되는 게 좋을지,
아니면 싸우고 또 싸우고 싸우더라도
진짜 사랑을 함께 찾는 게 좋을지 한 번 생각해봐.
나는 우리가 맨날 싸우고 또 싸우더라도
....너하고 함께 찾기로 마음 먹었어"
"....."
"진짜 사랑을 찾을 거야."
".....넌 항상 끝이 아니야,
여기가 끝이다 싶으면 또 다시 가."
"어, 나는 끝까지 가는 사람이야.
그래서 네가 싫어해도 할 수 없어 그게 나니까.
나는 너하고 끝까지 가야겠어.
그게 어디든."
그 말을....조금쯤은 믿었다.
열매라면 그럴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리고....그런 열매라면, 나도 조금쯤은,
기댈 수 있을거라고도....생각했다.
..
거짓말쟁이...!
이런 산책이 내 인생의 처음은 아니다.
십여년 전, 윤석현과도 이런 날이 있었다.
신지훈도 이런 산책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도,
나와 똑같이 지나간 연애를 떠올리고 있을지 모른다.
모든 현재진행형의 연애는 과거의 연애와 묘하게 겹쳐진다.
..
영악하게도,
서른 셋의 여자는 이전의 연애를 모방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 남자의 키스도
지나간 연애에서 학습된 것일지도 모른다.
밉다.
미웠다.
너무 미워서 달려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저 꼴을 봐야했다.
지난 시간, 열매는 나로 인해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마음이 아픈 것은,
아주 공평한 일이라 생각한다.
나의 이성은 그걸 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종종 기억의 문을 두드린다.
함께하는 현재와
함께 꿈꾸는 미래로도 부족해
서로가 없던 지난 날의 기억까지
함께 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자서전을 꺼내어
함께 읽기 시작했다.
모든 자서전이 그렇듯이 때때로 과거는 미화된다.
예민한 부분은 알아서 생략하거나
조심스럽게 피해가기도한다.
..
내 자서전의 주요 등장인물은....
당연히 윤석현이다.
어릴 때 이야기를 하면,
윤석현 이야기를 뺄 수가 없다.
들을 때마다 좋기만한 음악은 없다.
어제까지 좋았던 음악도
기분에 따라 오늘은 싫어질 수도 있다.
음악뿐만 아니라,
어떤 것을 변하지 않고 영원히 좋아한다는 게
가능하긴 할까?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열매를 잃지 않으려면,
절대로 내 진심을 들켜서는 안된다는 것을.
결국 나는 진심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간직할 수 있었다.
내가 잃은 건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는 분명 열매를 잃을 것이고,
그 고통은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예감이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지는 사실은
지금 열매를 되찾지 못하면
영원히 되찾지 못할것이고,
나는 그것을 영원히 후회하게 될거라는 예감이었다.
희생이란 단어는
내가 한 번도 열매에게 기대한 적이 없는 단어였다.
내가 알기로 희생이란 단어는
열매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잘 봐.
윤석현, 나한테 남은 건 이것 뿐이야."
해서는 안될 말이었다.
윤석현과 만나고 헤어지며
수많은 독설을 홧김에 쏟아부었지만,
지금은 홧김이 아니다.
충분히 생각하고 한 말이다.
이 남자를....완전히 끊어내기 위해서.
그에게 기회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줘야 했다.
그게, 그에게 보여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친절이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깨닫는 것은,
아름다운 연애보다
아름다운 이별이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선재경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한때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재경도
지금은 가해자가 되었다고 느꼈다.
모든 관계는 돌고 돈다.
상황에 따라, 위치에 따라, 상대에 따라.
우리는 그렇게 기꺼이 악역을 맡기도 하고
선한 배역을 맡기도 한다.
그는 왜 왔을까?
열매가 보고싶어서 왔다.
그 마음, 참을 수가 없어서.
왜 아무 말도 안하고....
그대로 돌아갔을까?
보고싶었다는 말,
보고싶다는 말.....
열매가 간절히 원했던 그 순간에는,
한 번도 못했던 말을,
이젠....열매가 받아주지 않아서 못하게 된 것이다.
인생에서 어려운 수수께끼를 만났을 때,
우리는 두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하나는, 그 수수께끼를 풀어보려 애쓰는 것이고
하나는, 조용히 포기하는 것이다.
나는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내게는 윤석현의 마음은
지나가는 시간 내내 수수께끼였고,
나는 거기서 한가지 답을 이미 찾았다.
신지훈이라는 남자.
고통스러울 때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을 혼자 견뎌내고,
결정하는 강한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동경했다.
일평생 나를 떠나지 않을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는 것을,
언제나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알아야할 것들을 알고싶은 그 순간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
모든 것을 알았다.
이제야....앞뒤가 맞는다.
..
언제나 그의 진심을 알고싶었지만,
이제서야 분명해진다.
그 연애에서, 더 많이 사랑한 쪽은
윤석현이다.
웃는 얼굴이....
그의 진심이었다.
열매가 나를 원했을 때는 내가 그녀를 밀어내야했고,
그녀가 떠났을 때야 소중함을 알았다.
내가 그녀를 간절히 원했을 땐,
열매는....내 곁에 있어주지 않았다.
그것이 잘된 일이라고 느끼는 지금,
그녀는 돌아왔다.
언제나, 우리는, 어긋난다.
어쩌면 영원히....어긋날지도.
나는 자주 기현이에게 갔다.
살아있을 때보다 더 자주.
더 이상 울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기현이가 살아있을 때보다 더 애틋해졌다.
가슴이 이렇게 아픈데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렇게 견딜 수 있는 것은,
열매가, 곁에 와있었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나는 한 뼘 쯤 순해졌고,
오빠는 한 뼘 쯤 다정해진 그런 날들.
우리는 서로 사랑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음으로써
그 평화를, 조심스럽게 유지할 수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지금 이대로 행복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런 날들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열매를 가장 사랑했던 순간은
내 것도 아니고 다른 남자의 것도 아니었던 순간이었다.
지금처럼.
나에게 미래에 대한 어떤 약속도 강요하지 않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지도 않는 그런 순간.
그냥 주열매로,
내 곁에 있는, 그런 순간.
나 자신보다, 내 마음보다 그가 소중하다는 것.
나는 너무 뒤늦게 깨달은 것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는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를 오해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거리가 존재하는 것일까
사랑한다고 해서 전부 이해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해서 이해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이해하고 싶어도" 가 닿지 못하는 마음과
"이해받고 싶은데" 가 닿지 못한 수많은 마음들은
어디에서 떠도는 것일까..
그 순간, 우리는 함께 깨달았다.
'사랑한다.' 의 반댓말은 미워한다도,
싫어한다도 아니라는 것을.
'사랑한다.' 의 명백한 반댓말은,
'사랑했었다.' 라는 과거형이라는 것을.
그것이 우리를 함께 아프게했다.
결국 난, 열매에게 단 한 번도
'사랑해'라는 말을 스스로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난 다시 혼자 남았다.
어떻게 다시 살아야할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내 인생을 결정해주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시키는대로, 누군가가 떠미는대로.
어디론가 떠밀려 단순하게 살고싶다.
무언가를 선택해야한다면,
그건 내가 결정해야하고
그리고 그 결정은 오로지 내 행복을 위해서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진심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내야한다.
돈으로 사준 자전거를 버릴 수 있지만
지훈씨가 나한테 준 마음은 잊을 수가 없다
영원히 잊히지도 않을 것 같다
나는 지훈씨를 어떻게 놓아야 할지 몰라서....
그냥 울어버렸다
지금 우리는 울고있지만,
이 눈물은 분명 머지않아 마를 것이고
어쩌면 우리는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이라는 꿈을 꾸고
사소한 일로 다투고 헤어지다보면
이 미치겠는 청춘도 끝장이 날 것이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빨리 늙어버렸으면 했다.
그래서 내 심장도 같이 늙어
이 모든 아픔에 무심해지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자주 열매를 생각했다.
생각하면 그리워지고 그리워지면 아팠다.
잊으려고 애를 쓰면 더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난 차라리 그리움에 내 마음을 맡겨버리기로 했다.
나는 열매를 사랑했었다.
부끄러워 볼이 빨개지던 너를 사랑했다.
작은 우산 속에서 하지 못했던 말들을
쉴 새 없이 하는 너를 사랑했다.
동그란 두 눈을 가진 너를 사랑했다.
나를 웃게 만드는 너를 사랑했다.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너를 사랑했다.
내 이름을 부르던 너를 사랑했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너를 사랑했다.
상처받고 아프면서도 나를 끝까지 놓지 않으려던,
너를 사랑했다.
허술한 점이 많은 너를 사랑했다.
흘겨보는 표정이 귀여운 너를 사랑했다.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했던 너를 사랑했다.
내가 힘들 때마다 곁에 있으려 애쓰던 너를 사랑했다.
나는, 너를 사랑했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한 번도 내게 와주지 않았다.
만약, 그리운 것이 내게 온다면
그건 현실이 아닐 것이다.
로맨스는 사랑한다는 말로 시작된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알 수 있는 사이가 되어도
말할 것이다.
오히려 소리 내어 더 자주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데 충분함이란 없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혼자서 울타리 안에 갇혀 울고 웃던 시간들은 지나고,
넓고 견고해진 울타리 안에는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언젠가 또 아무도 없는 울타리에 혼자 갇혀
힘들어하는 시간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언제나 울타리의 문만 열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길을 헤매다가
내 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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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로필 안봤는데 이거보니까 보고싶어진다ㅠㅡㅜ
아 이때 분위기 아직두 생생..ㅠ_ㅠ
열매의 짝은 판떼기였어야 해...
열매가 행복하길ㅠㅠ
내 인생드라마 ㅠ
진짜리얼 인생드라마....... 잘봣어유.....
갈망을 상상으로 채웠다… 나레이션 주옥 같다ㅜㅜ
윤석현...!그 똥그라미 안에서!! 넌 영원히 혼자야...!!!!!!
열매야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