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볼 수 있는 도시의 거리다. 은행이나 음식점, 술집, 카페가 늘어서 있는 거리를 거의 자동적으로 사람들은 걸어간다. 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다르다. “소울키친을 지나 커피빈을 지나 카페B를 지나 그 긴 코로 눈을 비비고 있는 파란 코끼리를 지나 주민 센터를 지나”다가 문득 자신이 파란 코끼리를 보았다는 생각에 가던 길을 되돌려 코끼리에게 돌아온다. 번화한 거리에 나열되어 있는 상호명들 속에서 코끼리는 무엇인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거울이나 유리에 반사된 그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고 어떤 회사의 로고나 스티커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그 앞에 멈추어 선 것이다. 표지와 로고로 가득한 무표정한 거리에서 이 잠깐의 정지는 의아하다. 그 자신도 예기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시 가던 길을 간다. “파란 코끼리가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를 멈추게 하는 파란 코끼리의 순간은 이렇게 거리의 평등한 무의미 속으로 멀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