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음정고분군
일월 둘째 토요일이다. 소한 이후 며칠째 근년에 드문 한파가 덮쳐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코로나에다 한파까지 겹쳐 몸이 더 움츠려진다. 아침나절 몇 줄 원고를 남기고 점심을 해결하고 바람을 쐬러 나섰다. 집에서부터 걷기 가능한 산행은 용추계곡으로 들어야하는데 코스를 무리하게 잡을 수 없어 산책을 나서기로 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맞은편 아파트단지를 지났다.
용남초등학교 앞에서 용지호수로 향했다. 호숫가 산책로에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호수 수면은 투명한 얼음이 얼어 바닥이 훤히 드러났다. 넓은 수면 전체가 빙판이 된 것을 보기는 드믄 경우였다. 호수 둘레를 걷다가 성산 아트홀로 건너갔다. 연말연시이면 공연이나 전시회가 열린다는 현수막이 내걸릴 만한데 코로나 여파로 아무런 행사가 없는지 안내판이 썰렁하게 비어 있었다.
시청광장으로 나가니 도청으로 이어지는 중앙대로 길목에 최윤덕 장상 동상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조선 세종 때 대마도를 정벌한 무장인데 이어 북방 여진족을 쫓아내고 4군을 개척 국경선을 확정했다. 정령공은 본관이 통천으로 창원 북면 내곡 송촌 태생인데 조선의 남북을 오르내리며 활약한 무인으로 영의정까지 지냈다. 그는 사후 북면 갈전리 사리실 부모 묘역 앞에 묻혔다.
시청광장을 돌아 상남동으로 건너갔다. 창원 상남동 유흥가는 한때 전국에서 명성이 자자할 정도였다. 원자력 발전 산업 주추를 놓는 두산중공업과 조선 관련 협력업체 쇠퇴와 맞물려 상남동 유흥가는 쇠락의 길로 접어든지 오래다. 상가 중심지 상남동 상설시장이 있는데 닷새마다 4일과 9일 오일장 장터가 선다. 마침 오일장이 서는 9일이라 장터 구경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상남동 오일장은 인근 백화점과 대형 할인매장 위세에 눌러 장터 활기가 예전 같지 않았다. 무척 추운 날씨에 코로나 감염 우려로 상인들은 제자리를 지켜도 손님 왕래는 그리 붐비지 않은 듯했다. 나는 장터를 먼발치로 빙글 둘러보고 상남동 지석묘 앞을 지났다. 상가 빌딩 사이 옛날 옛적 고인돌 하나가 덩그렇게 선사유적으로 보존되어 있었다. 곁의 교차로는 고인돌사거리였다.
상남동에서 외동초등학교를 거쳐 창원남중학교 앞으로 가 가음정고분군 안내표지판을 따라 산으로 올랐다. 소나무 숲속 진양 강 씨 무덤은 여러 기로 문중 묘역이었다. 그런데 그곳 일대도 시내 근린공원 조성 사업으로 유연고 무연고 가리지 않고 모두 이장 대상이라는 팻말이 꽂혀 있었다. 창원 도심에서 사화공원과 대상공원에 이어 가음정공원까지 모두 재장비를 하는 모양이다.
가음정공원은 내가 사는 생활권과 달라 처음 가 본 곳이었다. 창원대로를 달리던 차창 밖으로 쳐다보인 곳이라 언젠가 한 번 찾고 싶었다. 소나무 숲이 끝나자 사유지인지 매실나무와 단감나무가 심겨진 산언덕이 나왔다. 언덕 위에는 전망대가 세워져 있었다. 전망대에서 남향 비탈로 내려가니 근래 들어선 단독주택 단지가 나왔다. 볕바르고 전망이 탁 트여 주택지로 알맞았다.
창원 시내는 군데군데 특화된 공원이 많은데 주택지 앞에는 또 다른 공원이 잘 꾸며져 있었다. 장미공원과 멀지 않았는데 ‘기업사랑공원’이라 명명되어 있었다. 빗돌에는 창원 공단에 들어선 각 기업체 이름과 로고가 새겨져 있고 조경수들이 심겨져 있었다. 근처 낮고 낡은 아파트는 재건축이 되어 높이가 치솟았다. 산등선을 맞대고 이름을 들어본 초등학교와 여고 건물이 보였다.
산언덕을 넘으니 상남도서관이 나왔다. 시청에서 운영하는 여러 도서관 가운데 하나다. 신월동을 거쳐 아까 지나친 시청광장을 돌아 용지호수로 갔다. 호숫가를 돌아 양지바른 곳으로 가니 얼음이 얼지 않은 곳에 쇠물닭 여러 마리가 오글거렸다. 비둘기처럼 산책객이 던져주는 과자부스러기를 받아먹고 있었다. 철새들이 먹이가 부족해선지 사람을 봐도 놀라지 않음이 신기했다. 21.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