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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 납북 다구치씨 가족과 만나
★*…KAL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진실위)가 2006년 4월 4일 일본인 `하기와라 료`로부터 입수해 2006년 8월 1일 공개한 1972년 11월 평양 남북조절위원회 당시의 ‘진짜’ 김현희 화동 사진(오른쪽 사진 ③번). 사진의 ⑥번은 1988년 안기부 수사결과 발표 당시 김현희라고 주장했던 인물이었지만 이번 진실위 조사 결과 ‘가짜’임이 드러났다. 사진 제공 국정원 진실위
2009년 3월 11일 부산 벡스코(BEXCO) 기자회견장.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조작설'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김현희(47)씨의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배어 나왔다.
22년 전인 1987년 115명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에 대해 "진범이 바로 나이니 제발 믿어달라"고 다시 공개석상에서 설명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회한도 서려 있는 듯했다. 내내 조용하던 목소리도 이때만큼은 높아졌다. 김씨는 "일부에서 아직까지 (KAL기 폭파는 안기부의 자작극이며 '북한 공작원 김현희'는 가짜라는) 의혹을 제기하는데 20년 지난 사건을 아직도 누가 한지 모른다는 것이 안타깝다. KAL기 사건은 북한의 테러"라고 강조해 말했다.
검은색 바지정장 차림에 짧은 머리를 한 김씨는 다소 야윈 모습이었다. 김씨의 이날 공개 기자회견은 근 19년 만이다. 1987년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1990년 특별사면을 받은 뒤 이듬해 기자회견을 가졌고, 이후 간간이 언론에 등장했지만 공개된 석상에는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 KAL기 폭파범 김현희씨(오른쪽)가 11일 일본인 납북자로 북한에서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다구치 야에코씨의 아들을 만나 울고 있다. 아들의 얼굴에서 생사 여부를 알 수 없는 엄마 다구치씨의 모습이 보여 감정이 북받쳤나 보다. 아래 왼쪽은 1988년 12월 검찰에 출두할 당시인 20대의 김씨 사진이고, 아래 오른쪽은 11일 기자회견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다.
김씨는 지난 몇 년간의 근황을 설명하며 "피난생활"이라는 표현을 썼다. "(1997년) 결혼하고 나서 사회와는 거리를 둔 채 (KAL기 사건) 유가족 아픔을 헤아리며 조용히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지난 정부에서 '그런 일'이 있어서…. 현 정부가 지난 정부에서 있었던 일을 조사하고 있다고 하니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란 김씨가 노무현 정부 시절 겪었던 일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김씨는 최근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에게 보낸 편지 등을 통해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국정원 등의 친북좌파세력이 방송을 동원해 KAL기 폭파 조작설을 퍼뜨리기 위해 나를 방송에 출연시켜 'KAL기 폭파를 북한 김정일이 지시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고백을 하도록 강압했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러나 김씨는 "그때 있었던 일을 이 자리에서 다 설명하기는 그렇고…"라며 말을 최대한 아꼈다.
김현희는 최근 발매된 월간조선 2월호에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KAL기 폭파 사건이 조작됐다는 주장이 집중적으로 제기된 것은 친북 좌파들이 배후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말하면서,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도) 김일성·김정일 북한 정권 추종주의자들"이라고 말했다.
김현희는 특히 김 전 대통령을 겨냥, "지난 1987년에 대통령이 안 된 걸로 (당시 김영삼 후보와 단일화 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지 않고) 왜 나를 탓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뒤에 대통령이 된 뒤 남한이 피해를 입은 사건인데 (북한으로부터) 사과를 받아야지, 보상도 못 받고 기본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87년 대선 직전에 발생한 KAL기 폭파 사건이 노태우 당시 여당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면서 김대중 야당 후보가 낙선한 것 아니냐는 시각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 조갑제닷컴에 공개된 KAL기 폭파 테러범 김현희 씨가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에게 전달한 편지 원본(위).11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컨벤션센터에서 북한이 납치한 일본인 다구치 씨 가족과 면담을 갖고 기자회견을 하는 김현희 씨.(아래)
★*…1987년 11월 27일 북한공작원 김현희 씨가 미얀마 근해 상공에서 폭파한 대한항공기의 잔해와 승객들의 유품이 1990년 5월 22일 김포공항을 통해 도착한 모습.
▲ 대한항공 858기 폭파후 체포돼 1987년 12월 15일 김포공항에서 압송되는 김현희.
▲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의 범인인 김현희(47)씨가 11일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씨 가족과 공개적으로 만났다. 김씨는 이날 오전 11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BEXCO)에서 다구치씨의 장남 이즈카 고이치로(飯塚耕一郞·32)씨, 오빠인 일본인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 이즈카 시게오(飯塚繁雄·70)씨와 만났다. 이는 다구치씨가 납치된 지 31년만, KAL기 폭파사건이 발생한 지 22년 만이다.
▲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의 범인인 김현희(47)씨는 11일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사건 조작의혹에 대해 “KAL기 폭파 사건은 북한의 테러이며, 나는 더이상 가짜가 아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오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BEXCO)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씨의 장남 이즈카 고이치로(飯塚耕一郞·32)씨, 오빠인 일본인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 이즈카 시게오(飯塚繁雄·70)씨와 면담을 가진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직까지 유가족 일부가 조작의혹을 하는데 20년 지난 사건을 아직도 누가 했는지 모른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씨가 일본인 납북 피해자이자 김현희씨의 일본어 선생으로 알려진 다구치 야에코씨의 가족과 11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만났다. (조선일보 2009.03.12 07:09 기타 자료 재편집)
(김현희는 1987년 10월 “남조선 비행기를 제끼라(없애라)”는 북한상부의 지령을 받고,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꼭두각시였으며, 이 시대의 비극이다) (동족에게 테러를 가해 집단살해한 집단은 적대행위를 중지하지 않는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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