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국민학교 4학년인 10살까지 고향인 공주에서 살았었습니다.
언제든가 평소 보기드물게 의좋으셨던 부모님께서 무슨 일인가로 크게 다투신 후 울어머님께선 아직 어리던 제 남동생 둘만 데리고 예산에 있는 외갓댁으로 가셨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윗동네 백부님댁으로 가 식사 해결을 했었지요.
낮에 큰 길까지 꽤 떨어진 길을 혼자 걸어 가 큰 길가에 불룩 솟아나 있던 흔히 말무덤이라 부르는 곳에 혼자 앉아 예산 쪽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외롭게 앉아있을라 치면 지금 춘천 살고 있는 사촌언니가 찿아와 머리에 꿀밤을 먹이며 자기를 귀찮게 한다고 구박받곤 하던 일까지도 그립고 그리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울톡수방 가족님들 추억 풀어내기 즐기는 주말 어떠실까요. ^^*
첫댓글 아마도 어머님이
아버지 식사 걱정에
수피 방장님을 두고
가신 듯 합니다.
아들 두 명은
데리고 가고,
어머님도 성격이
결단성이 있으신 분이시네요~~
정의감과 길이 아니면 안 가는 그런 분이신 거 같아요~~
저의 어머님께서는 결단력 뛰어난 신여성이셨지요.
포시즌님 첫번 째 댓글 감사드립니다. ^^*
얼마나 화가 나셨길래요.?
딸을두고 아들만 델꼬 가셨을까?
아마 수피님이 야물었던거 같아요
저는 추억은 하교후
스케치북 끼고 산등성이에서 구름맛 그렸어요~^^ㅎ
저와 동생들과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납니다
큰남동생과는 5살 차이가 나고 막내남동생과는 9살 차이가 납니다. ^^*
그시절은 남성위주 사상이 심할때 였는데 어머님은
단호하셔서 신여성 이십니다
그래도 어린마음에 어머님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 이지요
네 맞아요
그랬었었지요.
더구나 오래 떨어져 있던 기억이 별로 없었기에 말이지요. ^^*
그시절 수피님도
어리기는 매 한가지였는데,
수피님만 두고
동생들만 데리고
친정에 가신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요..
제가 다 눈물이 날려고 합니다..
그런데
엄마는 얼마만에
집으로 오셨나요?
그게 얼마 만에 오셨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
유년기의 추억들
가장 많았던
시절이지요
국민학교 시절에는
대부분이
가난하였기에
어려웠던 기억들이
가득합니다
이제는
살만하니깐
세월이 얼마남지가
않았네요
아쉽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하여 지금 현재 즐기며 사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저는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
유년 시절
부모님 다툼으로
어머니가 얼마나 그리웠으면
혼자서 멀리 있는
말무덤에서 예산 쪽을 바라보며
외로운 시간을 보내셨는지
제 마음이 아립니다.
지나고 보면
모두가 그리운 추억이겠지만
수피 언니도 아픈 추억이 있으셨네요^^
지금 되돌아 보니 무지개처럼 모두 다 그리움으로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