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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학교에서 바로 미술학원으로 가기로 정했다. 신났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나도 뭔가 가치있는 일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밖에서 뭘 안 사먹으면 집에서는 더 많이 먹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하철 자판기에서 뭔가 뽑고 싶었다. 고민 끝에 가나초콜릿을 뽑았다. 그걸 당당하게 적었다. 옆에서 어떤 아저씨가 보는 것 같았다. ‘뭐요? 부럽수? 그럼 댁도 하나 사먹으슈.’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지하철에 타서도 마음껏 먹었다. ‘그래, 나 예의없다. 그런데 그거 아나? 이런 데서도 당당하게 먹을 줄 알아야 집에 혼자 숨어서 안 먹는다는 거,’ 뒤에 가방 뒤지는 느낌같은게 낫다. 뭐, 가방에 든 것은 이 노트가 거의 전부였다. 그리고 월래 우리나라는 남의 가방 뒤지는 걸 더 불쌍하게 여긴다. 그런데 내가 쪼꼴릿을 먹고 있어서 남들이 불쌍치않게 여길것도 같았다. 의문스러웠으나, 그냥 무사햇다. “저런 놈은 도둑맞아도 싸”라는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어떤 역에서 사람이 바뀌고 문이 닫혔다. 그런데 여자들이 초콜릿 어쩌구저쩌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흉 보나 싶어 그냥 돌아보진 않고 초콜릿 다 먹었다. 갑자기 이야기의 대상이 되어서 그랬는지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그런데 그 자책한 방향을 돌아보니까 나를 흉본게 아니었다. 그쪽도 초콜렛을 먹고있었다, 내흉본건 아니고 나한 관심있었다보다. 그냥 그렇다고 말 걸린 죽기보다 힘드니까그냥 무시했다. 목이 말랐다. 지금도 목마르다 그런데 그냥 쓰련다. 내가 목마른건 예수가 목마른 것 고 같은 이유일 수도 있더...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한참 걸어가야 한다. 갑자기 역에서 파리바게뜨로 들어가고 싶었다. 글어갔다가, 분위기가 너무 싸해서 다시 나와따. 고급스러웟다. 그리고 어떤 허름한 복장의 아저씨가 밤을 구웠는데 맛밌어보여서 샀다. 밤만 사면 섭했다. 목말랐다. 역시 커피다. 먹으면 십장이 미칠듯이 띤다. 대인공포를 심화시키는 기다. 요즘은 싸구려 커피는 안좋다길래 비싼 컾이를 마신다. 그 커피는 남미나 동남아에서 농부들이 땀흘려 고생하고, 그걸 무역업자나 한국회사들이 운반해와 공장에서 대량으로 간을 맞추고, 다시 방부제를 넣던 뭐하건 안석게 만들고, 혹시나 모르니까 진공포장으로 하고 트럭으로 운송해와 거기 냉장실에 들어앉아있다. 그 힘든 곹옹을 떠올리며 악마가 되어보는것이엇다. 그런데 악마가 디기는 쉽지가 않았다. 자주 안 마시던 커피를 오늘은 700ml정도 마셨다. 가슴에 통이 오고 다리에 피가 몰리고 난리였다. 손에 커피 흘리고 그러면서 나는 이탤리언이라 했다. 멋진이탈리언. 전라디언 바바리언...하
어쨌든 이게 다 내 미적인 감수성을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제 내 취미가 될 미술을 한다고 생각하니 주위 시선도 하나도 신경쓰이지 않아따. 한 손엔 커피들고 한 손엔 밤 들고 계속 가고 잇었다. 커피와 군밤 구월 이십오일 지는 낙엽은 아니고 이제 막 물들으려 한다. 역시 건조하고 가을 황사라더니 웬지 봄같은 분위기도. 나른핟아. 이제 와서 화실에 가서 대생하고 있을 생각을 하니, 굼만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서예 화랑’ 이라는 간판이 있어따. 만약 그 화랑에 서예만 있었다면 나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웬 그림이 떡하니 걸려있다. 들어가봤다. 내가 자주 다니던 곳이라 여태까지 왜 눈뜨고 그곳을 못봤는지 모르겟다 생각했다. 가보니까 노인 한분이 작은 붓을 들고 작은 글시를 새기고 계셨다. 우선 한 자를 쓰시고 계시는 걸 보고 다 스시길 기다렷다가 안녀하세요 인사했다. 그런데 그분은 귀가 어두신지 그저 글씨만 스시는 것이었다. 또 한자스시길 기다렸다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모르시는 것 같앗다. 또 한자 쓰시길 기다리다 못참고 인사해따.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 머릿속에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이 분 무슨 대단한 분도 아닌데 왜 이런담? 못 들으신 건가? 더 크게 해야되나? 미치겄네... 가만있어봐 지금 네 번 시도했응께 한 번만 더해보자. 크게‘”안녕하세요.!!!“겨우 나를 보신다. 나는 동야화 배우러 왔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그림 감상하려고요? 저기 있습니다.“ 하면서 벽과 창문에 걸린 그림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자꾸 동문서답이 오간 뒤에 그분, 드디어 일어서서 서랍을 뒤지더니 담배 한 갑이 보였다. 물론 나도 빈 커피와 군밤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피시려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보청기여따. 내가 뭐라고 하든 일방적으로 설며하셨다. 동양화 배우고 싶다니까 아예 무시하셧다. 나는 그분이 서예바께 할 줄 모르고 그렇기 때뭄네 동양화얘기는 아예 하지도 않는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서예에 관해 수다를 떠는구나 생각했다. 그분은 거의 장사를 하는거롤밖에 보이지 않아따. 그래서 대충 얘기를 들어드리고 건물을 나왔다. 역시 서양미술화실을 그냥 가는게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도다시 길을 가다가 이번엔 민속공예라고 써있는 간판을 보았다. 이것도 한 번 가보는게 좋겠다 싶었다. 보니까 비어있엇다. 길을 계속 가다가 정말 그냥 서양미술을 할지 아니면 서예라도 동양미술을 해볼지 고민했다. 그런데 왠지 서예가 재미있을 것 같다. 발걸음을 멈추고 잠깐 ’쟀다’. 역시 내가 하고시픈 것은 서양밋술은 아니었다. 우선 집에가서 쉬는게 좋을듯 싶었다. 어쨌든 다시 ‘서예 화랑’ 간판이 있는 곳을 갔다. 아마도 서예를 하고 싶었다. 두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예의상 우선 집에 돌아갔다가 다시 찾아뵙는 것과 그냥 바로 가는것. 두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이왕 할거면 오늘부터 배우는 게 좋지 않겠나 시펑따. 그냥 거침없이 들억아다. 거침없이. 나답게. 들어가서 정말 ”열정“이 뚝뚝 묻어나게끔 (협상)을 해따. ”지금 배워볼래?“ ”예!“ ”진짜 지금부터 배워볼래?“ ”예!“ 그래서 배웠다. 화장실은 원래 처음올때 들를까 생각했으나, 아무리 인심이 있어도 처음와서 화장실부터 가는건 결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들어가서 수업도 받기저네 화장실부터 가느 모습을 보이기도 싫었다. 그래도 결국 화장실부터 다녀오게 디어따. 내 직접적이고 단순하고 화끈한 성격탓에 너무 오줌이 급하자 그냥 그러기로 한 것이다. 우선 용변을 해결하고 원래 간다고 했던 화실에 연락해봤다. 결석하니까 안 간다고 연라카는것은 당연한거다. 안 받았다. 서예 배우는데 정신없을까봐 전화기; 껐다. 나중에 연락하려고 생각했다.
정말 모든 배움이 그렇듯 처음은 굉장히 조마조마했다. 원래 기초는 다지고 왔아야되는데 나는 완전히 초보자니까 처음부터 가르쳐주신다고 했다. 수업방식이 참 특이했다. 딴데서는 잃게 안가르친단다. 우선 일자로 가로획을 긋고, 그다음 한 글짜식 가르쳐 주어따. 내끗는다는 말과 내리끗는다는 말이 경상도 사투리라 그런지 햇갈렸다. 그러지 않고 느낌으로 그냥 알아들었다. 다행이다. 마음이 통해서. 이분과 마음이 안 통해서 매우 고생했다. 계속 마음을 못열고 긴장하고있었던 것이다. 특히 나에게 상처만 주는 아빠가치 대하셔끼 때문에 아빠의 인간상이 투사디어서 마음열기 어려웠던 것 같다. 이 분은 따뜻했다. 성함을 여쭤봐도 그냥 글씨만 쓰라고 하셔따. 그리고 종이와 붓을 그냥 빌려주셔다. 그리 글씨 잘 쓰면 사군자 치는 법도 가르쳐주신다고 했다. 그제서야 이분으로부터 동양화 하고 싶다는 내 얘기에 침묵으로 일관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 있은 셈이었다. 동양화를 하기 위한 기초과정으로써 서예가 있구나 시퍼따. 뭔가 대단하신 분 가타따. 그런척 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말이다. 우선 대단한 것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그분은 애정이 넘쳐나는 것 같았다.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을 썼다. 물론 아주 개판이었지만, 하면서 조금씩 늘어가겠지... 사왔던 밤 때문에 신경이 거슬리기도 했지만 우선 고통을 인내하고라도 서예를 배우려 열망해따. 맘이 열리고 붓잡는 것이 소네 익을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아나따. 거기에 커피에 취해있어서 제정신도 아니었다. 이건 카타르시스라고 생각했다. 동양식 미수를 고집하면서 서양식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다니... 모순이었다. 그건 그렇고 밖에서 백인의 목소리가 efflf 때마다 띠꺼웠지만 이해하려거 노력했다. 내가 배긴목소리 들릴때마다 불편해하니까 그 대선배님도 불편해하셔따. 난 생각했따. ‘그래, 우리 미술하면서 백인 눈치는 왜 보나? 백인이 싫다 정말.’ 서양화실에 전화하는건 아예 포기해따. 왜 전화해야하는가. 이렇게 재밌는데. 그러케 하고 갈 때가 디니까 초면인데 돈도 칠으지 않고 그냥왔다. 내가 그곳에 다시 갈 거를 당연히 예상하고 있겠지. 지베는 그냥 2km정도 산길을 걸어왔는대, 뭐 이정도면 그래도 걸을많한 거리다. 솔직히 그 화랑에서 느낀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지금 그 화랑에서 나온지 7시간 정도 지났다. 애초에 기록해봤자 그 느낌이 안 살아날거라고 생각해 기록하지 않으려 했으나, 등업도 어느정도 생각되고, 내 방법을 환우님과 공유하고 싶어서 기록을 한 것이다. 그러고 집에 오는데 여중생들이 길을 가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날 돌아봤다. 그리고 “누구 닮았다.” 하는 얘기가 들렸다. 내가 그쪽을 봤다. 내가 그들을 앞질러갔다. 나는 뭐가뭔지 하나도 몰라따. 그냥 어렴풋이 내 얘기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갑자기 말 “걸어볼까?”하는 얘기가 들렸다. 당황해서 더 빨리 걸었다. 글고 그 다음 들린 말이 충격이었다. “그래봤자 장애인이네.” 뭐, 그런 식으로 어떻게 보면 말시키기가 힘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뭐 그래도 그렇게나 빨리 걷어차버리는 것이었을까? 그 말 때문에 종일 생각날 때마다 힘들어따. 왜 사람들은 외모만 보고 내 내면의 고통은 상관도 안하는지... 내가 실제로 대공환자라는 사실을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래도 멋있다고만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힘들게 집에 가고 있는데, 앞에가는 사람이 왠지 욕할 것 같았다. 부부같았다. 그 중 남자가 심상치 않았다. 욕을 할 것 같아따. 그래서 포기했다가, 생각난 것이, 그 사람들 앞으로만 안 가면 뒤따라가는 내가 욕먹을 가능성이 더 낮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그 남자가 개울물구경하는 척 하면서 멈춰스는 것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앞서갔다. 꽤 거리가 멀어지자, 역시 그 남자가 욕을 하면서 뒤따라왔다. 마주 욕할 수도 없고, 가서 때리자니 내가 밀릴 것 같고 완전 참았다. 못이길 거 차라리 평정심이라도 유지했다. 다행히 다른 길로 접어들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 사람을 마구 패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리고 내가 마음약해서 그렇게 못하는 거라고 인정했다. 그러니까 편했다. 집에 와서 우선 마음을 기록하려고 해쓰나, 너무 귀찮고, 책이라도 읽어야지 싶어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너무 피곤해서 잤는데, 꼭 내가 소멸해서 우주와 합쳐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저녁 굶을 각오까지는 안 서서 그 안좋은 몸상태로도 ‘저녁은 먹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누운 상태로 저녁 먹겠다는 생각에서 마음이 추호도 흔들리지 않으니까 계속 마음의 뜻이 모이면서 마치 불교적인, 우주와 합일하는 경험을 햇다. 그리고 몸을 부르르 떨고 지랄을 하다 보니 몸이 괜찮아진 것 같아서 일어났는데, 오히려 그 무아지경이 실제였고, 마치 꿈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받았다. 느낌이 안좋았다. 일어나서 제일 먼저 고기부터 찾았다. 고기 구워달라고 했다. 엄마가 내가 무아지경에 들어간 걸 아셨는지, 밥도 안해놓으셨다. 그래도 빨리 밥달라고 했다. 엄마가 밥준비하는 동안 우린 대화를 나눴다. 나는 무아지경에 들어갔다 나온 티를 팍팍 냈다. 엄마가 내가 무아지경에 들어갓다 나온 것을 짐작하셨을지 모르겠다. 엄마가 옛날에 외국갔다온 가수들이 혀 굴려서 말하던 게 실제론 바보같은 짓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뭐 자랑이냐고. 나는 그냥 느낌대로 생각대로 횡설수설 해버렸다. 세계에서 제일 좋은 말이 한국어고 두 번째로 좋은 말이 일본어라고. 내가 무아지경 한 번 들어갔다 나왔다고 얼마나 거만했는지 이제 알겠다... 계속해서 내 동생은 중국어도 하고 인도어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론 그렇지 않다. 그리고 엄마가 고기가 아닌 생선요리를 하자, 왜 그걸 끓이냐고 물어보았다. 빨리 꼬기 꾸어달라고 했다. 밥이 너무 뜨거워서 밥 먹다가 속이 상했다. 그래서 바로 입안에 든걸 뱉고, 가려고 하다가 엄마 남은것좀 드시라고 했다. 안 드신다길래 그러면 내가 먹는다고 했다. 엄마가 “뜨거우니까 좀 식은담에 먹어.”라고 하셨다. 밥맛 떨어지게... 그러잖아도 뜨거워서 속이 상한 것이었는데. 나는 계속 먹었다. 여전히 무아지경 후의 긴장은 한 채였다. 그러고 엄마랑 아빠랑 통화했는데 아빠는 밥을 먹고 오신다고 하셨다. 왠지 그러실 것 같았다. 그러고 나니까 이상하게 긴장이 풀렸다. 밥을 먹다가 갑자기 뱉고 시퍼 손에 뱉었다가, 어차피 거의 다 먹었으니까 도로 먹고 밥을 마저 다 먹었다. 포도만은 안 먹고 바로 방에 가려고 했다가도, 몸상태가 과일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포도를 먹게 되었다. 그랬더니 마지막 송이는 상해 있었다. 조짐이 안좋았다. 엄마가 내가 어렸을때 휴양지에서 찍은 비디오 보라고 하셨다. 현재 취미활동이 책읽기 하나인 상황에서 동양미술도 시작했겠다, 이제 게임하고 TV 많이 보면 성인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그건 좀 싫었다.. 이건 왠지 아빠가 돈 잘 버는 덕택에 공짜로 너무 많은 걸 얻는 것 같았다. 겨우 게임하는 데 드는 전기세 다 낼 수 있고, 화랑에서 서예 배우는 데 드는 돈 다 낼 수 있다는 이유로 성인이 되는 건 말도 안됐다. 그게 성인이 되는 가장 쉬운 길이라고 당시에는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된다. 아무 댓가도 없이 겨우 돈많아서 게임하고 그림도 그리며 그것도 온전히 즐기며 살 수는 없었다. 이렇듯이 집에 돈이 많은 걸 이용하려고 하지는 않고, 오히려 아끼려고만 하고, 정신장애가 있고 남들보다 살아남기 훨씬 힘든 상황에서 이런 여유를 부린다는 것은 본심이 아닐까봐 두렵다. 사실 게임을 하는 건 그중에서 좋지않은 감정을 걸러내는 것 도 있다. 그래서 엄마한테 그 비디오 안 본다고 했다. TV나 게임, 특히 게임에 탐닉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엄마가 군대 면제받으려면 몇 킬로 되어야하냐고 말을 꺼내셨다. 또 내 몸무게 적다고 많이먹으라고 하시는 소리였다. 나는 그냥 이렇게 말했다. “내 몸무게는 53킬로고, 53킬로는 내 몸무게예요. 팔목을 잡으면 두 손가락 끝이 닿고, 손으로 팔을 잡으면 팔목까지 잡히고, 키는 170인데 몸무게는 60키로도 안되고,” 그러다가 다른 것은 안 떠올랐다. 그러자 엄마가 말을 끊고 뭐라고 하셨는데, 내가 그래서 무슨 할말이 있냐고 하니까 할 말은 없고, 다만 내 몸무게를 줄여서 군대 면제받는 방법은 없나 궁금하다고 하셨다. 결국 나는 말랐다는 얘기였다. 난 이런 얘기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은 하지만, 하도 이런 소리를 많이 듣다보니, 이게 나한테 자기암시 비슷하게 되어서, 요즘 먹는 걸 잘 주체 못한다. 내가 진짜 말랐는지 살쪘는진 모른다. 내가 말랐다는 얘기도 많이 듣고, 살많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사람들이 운동하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아무래도 내가 근육이 없는 것이지 살이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조금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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