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정사 경내 입구쪽의 표지석
대한불교열반종(大韓佛敎열반宗)
연화산와우정사(蓮華山臥牛精舍)
와우정사 본채
서울에서 남쪽으로 48Km(차편으로 약50분소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와우정사’는 교통이 편리할 뿐 아
니라 주변의 경관 또한 아름다운 곳이다.
용인의 연화산(해발304m)주변에는 에버랜드(용인자연농원)와 용인리조트(스키장), 한국민속촌이 자리
잡고 있는등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도시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곳 용인에 있는 우리국민의 호국정신에 성지인 ‘臥牛精舍’는 우리 민족의 염원인 남북평화통일을 기원
하기 위하여 실향민인 金海根 삼장법사가 창건한 사찰이며 현재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이곳은 송광사, 통도사, 해인사, 불국사, 봉정사와 함께 한국 6대사찰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절이다.
현재 불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대웅전도 없다. 그러나 계획대로 불사가 완성되면 대단히 웅장한 가람
이 될 것이라는 감을 느끼게 한다.
불두(佛頭)
불두란 부처님 두상으로 지금은 임시로 돌 위에 모셔져 있으나
장차 108m의 대형부처님으로 봉안될 것이라고 한다.
불두의 높이는 10m이다.
연못에 비친 부처님/불두 앞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는데 물이 맑아 날씨가 좋은 날은 물에 비친 부처님
과 상하 대칭을 이루고 있다.
연못 둘레에는 수 많은 입상부처가 연못능 향해 서 있다.
열반종 본사/건물 1층 왼쪽에는 종무사무소와 印度, 미얀마, 스리랑카, 중국, 태국 등 세계 30여개국에
서 모셔온 수 많은 불상이 있고, 오른쪽에는 선방이 있다. 2층에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스님들이 기거하며 정성을 드리는 곳이다.
열반종을 창종하신 보덕성사 상
대한불교열반종은 지금으로부터 1400여년전 고구려시대(서기 623~650년경)에 보덕성사께서 창종한 종단이다. 신라시대에 고승이신 원효대사, 의상대사, 경흥대사, 대현대사께서도 대한불교 열반종의 종조이신 보덕화상에게 수학하신바 있는 우리나라의 최초의 종단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5개의 종단이 있었는데 보덕성사의 열반종, 자장율사의 율종, 원효대사의 법성종, 의상대사의 화엄종, 진표율사의 법상종 등 5개의 종단이 있었다.
그후 9개의 산에서 참선을 하는 스님이 계시였으며 이를 구산선문이라고 하는데 고려시대에 와서 대각국사께서 천태종을 창종하고 보우대사가 조계종을 창종하였으며 고려시대 말엽에는 12개의 종단이 있었다.
그러나 조선조시대에와서 태종에 의하여 7개의 종단으로 축소되였으나 대표적인 종단으로서 열반종은 지속되였다. 세종시대에 종단의 이름을 모두 없애도록 하여서 종단 이름이 없는 [조선불교선교양종]이라고 부르도록 하였다. 그러므로서 종명이 없는 종단으로서 이어져왔다.
이때부터 종단이 강제로 탄압에 의해 없어지고 선종과 교종으로 부르다가 1910년 일제가 침략하였으며 더욱 탄압을 받아서 종단이 없는 시대가 계속이어지고 6.25전쟁이후 불교계의 분쟁으로서 1962년 2월 14일 통합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이 창종되였으며, 1970년에 한국불교 태고종과 그후 여러종단의 창종으로 이어졌으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승에 증명으로 1970년 9월1일에 해암해곡삼장법사님에 의하여 대한불교열반종은 조선조이후 다시 중흥을 하게 되었다.
본채 앞에 서 있는 달마대사 상
통일의 탑,
이 탑을 쌓은 돌 가운데는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각국의 큰스님이 불교성지 네팔 룸비니 동산, 인도 부다가야 마하보디 사원, 쿠시나가라 부처님 열반성지에서 가져온 성석도 있고 전국의 불자들이 가족수대로 가져와 쌓은 돌들도 있다. 대한민국 국회 정각회 회원 불교성지 순례단 일행이 부처님 성지에서 가져온 것도 있고, 한국방송공사 특파원이 민족의 영산 백두와 한라에서 가져와 얹은 돌도 있다.
평화를 사랑하는 각계 각층의 정성과 실향민의 한이 맺힌 돌과 성불을 기원하는 불자의 동참, 전국 고
승 대덕스님의 동참으로 여기 호국의 징표로 세워진 통일의 탑으로 모두 8개가 있다. 와불이 있는 열반
전을 향해 오르는 길 왼쪽에 있다.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길
현재 대웅전 건물은 서 있지 않다. 건물울 세운다음에는 커다란 부처님을 안으로 모시고 들어 갈 수 없
기 때문에 먼저 장육존상5존불(丈六尊像五尊佛)을 세웠다. 지반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전북 익산에서
35톤짜리 화강암 10개를 갖다 10년동안 다져 수평을 잡은 후 봉안하엿다. 그 결과 올해부터는 대웅전 건
축이 가능하게 되었다.
황동 8만근으로 10년 세월동안 조성된 장육존상5존불(丈六尊像五尊佛)이 위엄과 함께 대자대비한 모습
으로 봉안되어 있다. "장육"이란 16자를 의미하니 약 5m가 되며 좌상인 경우는 그 절반이 된다.
통일의 종/종각은 장육존상5존불(丈六尊像五尊佛) 오른쪽에 있다.
오른쪽 측면에서 바라 본 종각
"통일의 종"은 서울 올림픽 때 타종하여 전세계에 한국의 전통소리로 울려퍼진 유명한 종으로 신라의
호국가람인 황룡사의 종과 같이 조성된 국내 최대의 황금범종이다.
대웅전 쪽에서 바라 본 반가사유상
측면에서 바라 본 미륵불반가사유상
신라의 화랑도가 추구한 “미륵보살님”을 청동으로 조성해 놓은 “미륵보살반가사유상”, 통일의 탑 오른
쪽 높은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반가사유상은 보는 이의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열반전을 향헤 오르는 계단길
오른쪽의 반가사유상, 왼쪽의 통일의 탑을 끼고 계속 오르다 보면 열반전에 이르는 돌계단이 나온다.
사천왕상
계단길 맨 위 양쪽에는 사천왕상이 서있고, 계단 뒤쪽 왼편에 열반전 석굴이 보인다.
오른쪽에 있는 사천왕상
왼쪽에 있는 사천왕상
열반전/현재는 토굴 속에 있으며 아름답고 장엄하게 세우려는 계획을 세우고 불자들의 공덕과 성원을
바라고 있다.
臥牛精舍에는 누워계신 석가모니불상 印度에서 직접 가져온 香나무로 하나의 붙임새도 없이 다듬어 조
각한 해탈의 부처님인「臥佛像, 涅槃像으로 “英國기네스북에 기록된 세계최대의 목불상” 이다.
열반전 앞 사천왕상 쪽에서 바라본 삼성각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등에서 들여온 "釋迦牟尼佛眞身舍利"를 봉안하고 있으며 上座部의 팔리어 大藏經과 싼스크리트어 藏經등도 봉안되어 있어 僧侶와 함께 佛敎의 三寶가 다 봉안되어 있다.
삼성각과 정성들여 쌓아 놓은 석탑들
팔상도/ 오백나한동산을 향해 오르는 길 옆 벽에 그려놓았다.
팔상도/부처님의 탄생으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아름답게 잘 그려 놓았다.
뒤에 대각전과 일직선상에 모셔 놓은 부처님
이곳의 부처님은 불두(불두)와 같이 작은 돌을 정성스럽게 쌓은 위에 모셔 놓은 것이 특징이다.
현재 한창 조성 중에 있는 500 나한 동산(중앙 뒷부분)
현재 한창 조성 중에 있는 500 나한 동산(왼쪽부분)
가까이서 본 나한상/ 중국에서 조각하여 들여왔다고 함.
경내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대각전
대각전 현판
대각전 내에는 세계최대이며 유일한 석가모니불고행상(釋迦牟尼佛苦行像)이 봉안되어 있는데 이 부처
님의 높이는 5m이다.
대각전 앞 현관과 천장 벽화
대각전 현관에 세워놓은 코리리상, 대각전를 받치고 있는 4개의 기둥은 모두 코끼리다리 모형을 하고
있다.
[찾아가는길]
도로안내 : 영동 고속도로 용인인터체인지 →45번국도 용인시내 방면4.3㎞(우회전)
→42번국도→이천방면(우회전) →용인송담대학방면 57번 지방도(편도1차로)
→9㎞ →와우정사
현지교통 : 용인에서 시내버스(원삼행) 이용. 수시로 운행. 사찰앞에서 하차.(15분 소요)
우리랜드쪽으로 직진
와우정사 입구 돌에 새겨 놓은 안내판
와우정사를 가는 길은 용인에서 시작된다. 서울서 용인까지는 경부 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한
다. 용인IC를 벗어나면 45번 국도를 만나게 되는데, 왼쪽은 에버랜드 가는길, 오른쪽은 용인과 포곡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45번 국도를 타고 용인방향으로 4.3Km를 남하하면 용인시가지, 용인4거리에서 200m 정도를 남진하면 고
가도로 밑에서 사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이천쪽으로 좌회전하면 용인 시외버스터미널이다. 다
시 200m를 더 가면 또 한번 사거리를 만난다.
이곳에서 백암과 원삼으로 향하는 57번 지방도라고 쓰인 표지판을 따라 우회전하면 와우정사 가는 길이
다.
이곳에서 와우정사로 가는 편도1차로의 9km 구간은 교량이 거의 없어 한적함 그 자체이다. 여기서 8.5Km를 달리면 곱든고개가 시작된다. 가파른 고개를 올라가다보면 고개중턱에 왼쪽으로 와우정사로 빠지는 안내판이 보인다. 와우정사에 이르는 진입로는 400여 미터이다.
-세부 약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