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조금씩 풀리면서 추운날 술먹고 길바닥에 누워 잠들어 운명을 달리하는 비극을 면하고자 한동안 동면에 빠진 주당들이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할때가 됐다. 그동안 단백질도 많이 빠져나갔을테고 혈중 알콜농도가 정상인에 근접해가며 불안함을 느끼는 웬수같은 친구들에게 맛있는 육회 한접시와 소주 한잔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약국이 많다는 종로 5가의 골목길로 접어들어 제법 걸어올라가야 하는 백제 정육점. 백제 정육점은 육회로 유명한 곳이다. 하루에 소 한마리가 이집에서 살해된다고 할 정도로 손님이 많다고 하는데, 처음 찾아갈때는 설마 이런 깊숙한 곳까지 사람들이 올까 싶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것이 종로 5가라는 곳은 OO약국 들이 모여있는 곳 아니던가.
백제 정육점 내부의 모습은 이렇다. 사람으로 빼곡하게 차있는 테이블과 정신없이 시끄러운 분위기. 낮술부터 시작한듯한 아저씨들의 발그레한 볼이 유난히 더 빛나보이는 형광등 조명과 시장판 같은 소란스러움이 들어오는 사람을 반긴다. 사람들은 많지만 '나름대로', '자율적인' 금연 시스템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지.
하지만 그렇게 실내에 앉을 수 있다면 축복받은 축에 속하는 편. 날씨가 조금 풀리면 백제정육점 건물 좌우로 간이 테이블이 깔리고 그나마도 쉽게 자리를 차지하기 어렵다. 가로등 밑이라면 운이 좋은편. 어두컴컴한 구석자리에 앉게되면 눈으로 보는 즐거움은 없다.
그만큼 맛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필자가 좋아하는 그람정산. 그리고 육회 500 그람에 22,000원 이라는 매력적인 가격은 주문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일부 고기를 구워먹는 럭셔리한 그룹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육회를 주문한다. 미안한 말 한마디를 전하자면, 최근에 가격이 올랐다는 것. 기억하기로는 육회 500그람은 이제 25,000원 이다.
생간과 천엽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최상급의 선도를 자랑하는 간천엽을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백제정육점에서 간천엽을 먹은날, 바로 전날 먹었던 생간이 얼마나 썩어있었는지 통탄할 지경이었다. 다만 한근(600그람) 단위로 시키는 것에 겁을 집어먹는 것이 문제.
백제정육점의 육회는 약간 얼어있는 고기와 아끼지 않고 듬뿍 넣은 배, 고소한 참기름이 잘 조화된 최고의 술안주다. 라인업이 괜찮다면 육회 한접시에 소주 4-5병 정도는 깔끔하게 처리해 줄 수 있는 정도다. 부페 식당에서 먹었던 미지근하고 맛없는 육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신선함과 쫀득하게 씹히는 식감은 친구들과 술 마실일이 생길때 마다 이집을 찾게 만들었다.
얼마전에도 친구가 전화를 했다.
"종로에서 보자"
너무나 당연한 듯 모든 친구들은 당연하게 종로 5가를 약속장소로 알고 있었다.
▶ 찾아가는 길
종로 5가 역 4번출구로 나와 한블럭 정도 걸어가면 왼편으로 백수약국과 백제약국 사이의 길이 나온다. 바로 좌회전 해서 조금 더 올라가면 백제갈비를 지나 노란 간판의 백제 정육점이 보인다.
▶ 전화번호
02)762-7491
▶ 알아두면 좋은 얘기들
백제정육점으로 올라가는 길에 백제 갈비를 지나쳐오게 된다. 이곳에서도 육회를 파는데, 양쪽 모두를 먹어본 느낌은 자웅을 가리기 힘들다는 것. 다른점이 있다면 백제갈비에서는 간천엽을 먹기가 어렵다는 점 정도다. 조금 조용한 분위기를 원하다면 백제갈비를 추천해본다.
백제정육점의 메뉴들은 양이 많은 편이다. 단 둘이서 먹기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이럴땐 반만 시켜보자. 육회 반, 간천엽 반 주문이 가능하다. 하지만 무슨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간혹 간천엽 반은 실패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유흥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종로 5가, 2차 장소는 의외로 가까이 있다. 바로 코앞에 있는 광장시장의 포장마차 사이로 뛰어들어도 좋고 코앞에 있는 곱창집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