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자주 다니는 치과에 스케일링을 하러 갔다가 치과의사로부터 주의를 들은 적이 있다. 늘 그렇듯이 치과의사가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따를 것을 주장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칫솔 질을 잇몸을 스치면서 한 방향으로 할 것(위에서 아래로 또는 아래서 위로). 둘째는 이쑤시개를 사용하지 말고 치간
칫솔을 꼭 사용 할 것. 이번에도
치료를 마치고 치과의사로부터 “내 말을 귀담아 듣고 꼭 실천 해 달라”는
부탁 성 경고를 받았다.
고대로마신화에서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의 능력을 잘
나타내는 상징 있다. 오른손에는
풍요의 뿔을 뜻하는 코르누코피아(Cornucopia)를 들고 왼손에는 배의 방향타를 쥐고 있다. 행운의 여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날
지는 모르지만 포르투나는 만나는 사람에게 행운의 방향을 가르쳐 주면서 축복 한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하지만 포르투나를 만난 사람이 포르투나의 말을 경청하지 않을 경우 포르투나의
축복은 오직 뜨거운 입김에 불과하여 여신을 만난 당사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될 것이 뻔하다.
지초북행(至楚北行)은 남쪽에
있는 초나라로 간다면서 한사코 북쪽으로 간다는 뜻으로 목적과 행동이 상반 되는 것 또는 나아가는 방향이 틀린 것의 비유로 쓰인다. 이 이야기는 전한(前漢)시대 학자 유향(劉向)이 쓴 전국책(戰國策)에
나온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계릉(季陵)이라는 사람이
태행산(太行山)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다. 그는 북쪽으로 수레를 몰면서 “나는 초(楚)나라로 갑니다”라고
했다. 계릉이 “당신은 초나라로 간다고 하면서 왜 북쪽으로 갑니까?”하고 묻자 “나의 말은 좋은 말 입니다”라고 했다. 계릉이 “말이 비록 훌륭하다 하더라도 초나라로 가는 길은 그 길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그는 “많이 가 보았습니다”라고 했다. 다시 계릉이 “ 많이 가보았을
지라도 초나라 가는 길이 아닙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나의
말 몰이 꾼은 뛰어 납니다”라고 했다.
대신(大臣) 계릉(季陵)이 위나라 혜왕(惠王)이 조(趙)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을 공격 하려 할 때 왕의 정복 사업이 천하의
인심을 얻기는커녕 반대로 인심과 점점 멀어질 것이라고 왕에게 비유로 말하며 일깨운 이야기가 지초북행(至楚北行)의 핵심이다.
지초북행(至楚北行)의 이야기
속에서 남쪽에 있는 초나라로 간다면서 그릇된 신념을 가지고 한사코 북쪽으로 가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대신(大臣) 계릉이 아니고 설령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가 나타나 바른길을 제시 했다 하더라도 결과는 달라 지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귀는 입과 눈과 달라서 자신의 의지대로 열고 닫을 수 없다. 하지만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한자 “들을
聽”자를 뜯어 보면 그 안에 一心이 위아래로 이웃하고 있다.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영어의 관용적인 표현인 “keep one’s ear to the ground(땅바닥에 귀를 붙이다)”는
“시대의 동향과 사건에 정통하다”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 표현이 나온 배경을 알기 위해 수렵시대
먹이 감을 찾기 위한 사냥 작전의 중요성을 상상해보자.
두말할 것도 없이 원시수렵시대에 있어 사냥감을 찾는 일은 부족의 생명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땅바닥에 귀를 바짝 붙여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예민한 청각을 동원하여 사냥감의 동향을 파악하고 추적하는 것이 원시 부족 리더의 신성한 의무였다. 먹이 감을 사육하는 요즘 같은 근대 자유민주사회에도 리더의 역할은 땅바닥에
귀를 붙여 시중의 바닥 민심을 파악하는 일이 제일 중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비록 그 대상은 달라 졌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빼놓을 수 없는 리더의
자질이 경청이라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아버지는 가족의 말을, 환자는 의사의 말을, 목회자는 평신도의 말을, 선배는 후배의 말을, 사장은 사원의 말을, 기업은 고객의 말을, 정당은 당원의 말을, 공동체의 우두머리는 공동체구성원의 말을, leader는 follower의 말을, 대통령은 국민의 말을 귀담아 들여야 한다. 나의 경우 금년 들어 치과 의사의 말을 경청하여 식사 후 잇몸을 맛 사지
하는 식으로 위에서 아래로 또는 아래에서 위로, 오직 한 방향으로 양치 질을 하고 있다. 그리고 치주염을 예방하기 위해 식사 후
이쑤시개를 쓰지 않고 치간 칫솔을 사용하고 있다.
치괴의사 말을 잘 듣고 치주질환을 예방 하는 길이 나를 위한 치(齒)테크 (일종의 재(財)테크)의 길이 아닌가 싶다. 이미 입안에 그랜저 몇 대 분의 돈 덩어리를 투자하신 분들이라도 치과의사의
주의를 경청하면 치료한 치아의 보존 연한을 늘려 투자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정에서는 일생을 함께한 남편이 아내의 말을 또는 아내가 남편의 말을 잘 듣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남편이나 아내가 사기꾼들의 농간에 현혹될 경우에 대비하여 노후 안전 장치로 주택의 등기를
부부 공동명의로 하여 부동산 처분을 할 경우 반드시 배우자가 알도록 견제와 균형장치를 미리 해놓았다는 말을 지인으로부터 들었다. 이를 두고 부부간 불신의 징조라고 비난
할 사람도 있겠지만 대화와 경청이 부족한 수직적인 가족문화 속에서 살아 온 부부에게는 천려일실(千慮一失)의 위험을 담보할 가장 좋은 안전장치가 아닌가 싶다.
경청(傾聽)은 글자 그대로
귀를 기울여 들음을 의미한다. 경청을
하기 위해서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취지에 초점을 맞추어 주의력을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마치 사진 예술가가 피사체의 가장 좋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렌즈의
초점을 미세 조정하며 노력 하듯. 영어단어 hearing이 감각적인 소리의 기계적인 인식작용이라면 listening은
“hearing을 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주의력을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의
시사 만화가였던 프랭크 타이거(Frank Tyger, 1929-2011)는 이렇게 말했다. Hearing is one of the
body’s five senses. But listening is an
art. (듣는 것은 신체 오관(五官)의 일부
(기능)이다. 그러나 경청하는 것은 예술이다.)
아무리 경청이 예술이라고 하지만 입만 열면 고장 난 레코드 판 같이 목청을 돋우어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듣는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사람은 경청 대상이 될 수 없다. 상대방을 존경하고 상대방의 관점에서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 상대방의 공감을 얻기 위해 그리고 상황과 경우에 맞는 적절한 말을 할 때 만 경청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편향된
개인이나 집단 또는 어떤 결사(結社)의 과장되거나 왜곡된
선전이나 선동 또는 극단적인 주의 주장은 듣는 사람에게 경청이나 공감을 강요하는 행위로 비칠 수 있으므로 일상대화에서 의식적으로 삼가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싶다.
나의 둔한 필재로는 도저히 그려 낼 수 없는 경청의 중요성을 아름다운 시어로 호소한 정현종시인의 시 “경청”을 음미 해보시기 바랍니다. “귀가
막히면” “기가 막힌다”는 언어의 유포니(euphony)가 읽는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스며들어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경청
정현종***
불행의 대부분은
경청을 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비극의 대부분은
경청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아, 오늘날처럼
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
대통령이든 신(神)이든
어른이든 애이든
아저씨든 아줌마든
무슨소리에든지 간에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 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
모든 귀가 막혀 있어
우리의 행성은 캄캄하고
기가 막혀
죽어가고 있는 듯,
그게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제 이를 닦는 소리라고 하더라도.
그걸 경청할 때
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
한 고요 속에
세계는 행여나
한 송이 꽃 필 듯.
출처: 정현종 시집 “견딜 수 없네”중에서
***정현종(1939-)소설가, 시인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 역임.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작가상, 만해 문학작가상, 아산문학작가상등 수상.
제가 이 칼럼을 쓸 때 제 친구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때 맞춰 알려온 신년 화두 소.화.제. (소통하고 화합하는
것이 제일 좋다)를 홍보하오니 공감하시는 분들은 신년 모임에 건배 사로 많이 애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