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통에 빠진 귀신
溫鄕 이 정 희
"섣달 그믐밤에 잠을 자면 다음날 머리가 하얗게 센단다."
꼬맹이는 착하게도 그 말을 듣고 난 뒤부터 매년 뜬 눈으로 날밤을 새웠다.
그렇게 날밤을 새운 덕에 시간은 바람을 타고 흐르고 또 흘러서 어느 듯 꼬맹이는 바라고 바라던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조물주는 사물을 세상에 내보낼 때 이름 없는 것은 내보내지 않는다고 하였다.
하물며 가방에 있어서랴.
하지만 꼬맹이는 이름 있는 가방을 알지 못했다.
명품(名品)이 달리 명품일까? 이름이 붙으면 죄다 명품이 되겠지만,
이름은 고사하고 가방 비슷하게 생긴 가방은 구경도 못해본 아이였다.
대신 꼬맹이는 비까번쩍한 멋을 풍기는 명품을 하나 받았다.
그것도 ‘보자기’라는 명품(名品)을 가진, 정말로 이름 그대로 명품이었다.
이름이 ‘보자기’인 명품을 선물로 받았던 것이다.
그것의 소재는 가볍고 부드러운, 그리고 질긴 나일론으로 만든 푸른빛이 감도는 보자기였다.
푸른색은 꿈의 색, 희망의 색이라 했다.
입학하는 학생에게 그만한 의미의 멋진 선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색의 의미와 출발의 동기가 완벽하게 부합이 되니 말이다.
꼬맹이는 하늘보다 더 예쁜 이 보자기에 지식과 지혜가 담긴 교과서를 고이 모시고,
다른 아이들은 허리에 그냥 질끈 동여매고 가는데,
아이는 어깨로부터 허리까지 사선으로 보자기를 매어 한껏 멋을 부려 보았다.
와글와글 버글버글, 수업 종이 울리기 전까지 교실은 언어와 행동들의 자유분방으로 공기 중의 먼지까지
내려와 구경할 만큼 교실 안이 시끄러웠다.
- 화장실 몇 번째 칸, 거기는 절대로 들어가지 마라.-
- 붉은 피를 입에 문 귀신이 살고 있다.-
- 거기에서 오줌을 누면 피를 줄줄 흘리는 귀신이 피 묻은 손으로 잡아당긴다 .-
아이들은 무서운 귀신 이야기에 가슴이 콩닥거리면서도 두 귀들을 쫑긋 세우며 들었다.
꼬맹이는 그 말을 듣고 호기심으로 가슴이 콩닥거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쉬는 시간에 거기를 꼭 가보리라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가슴에 손을 얹어 보았다.
아직도 콩닥콩닥 심장은 살아서 숨 쉬고 있음을 들려주었다.
화장실은 수세식이 아닌 구시, 통시라고 불렸던 우리의 전통 화장실인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넓은 구덩이에 칸을 치고 구멍마다 나무 널빤지를 11자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환상적이도록 아슬아슬한 발판이었다.
일을 보다가 자못 발을 삐거덕하면 똥통으로 그대로 퐁당 빠질 것이 분명하였다.
발판 밑의 세상은 가늠하게 어려운 세상이었다.
줄을 서서 차례가 되면 똥 향기가 넘치는 나만의 우주에 앉아서,
고뇌와 인내에 찬 시간을 보내야 했다.
꿈틀거리는 존재,
똥 속에서 수많은 구더기들이 해탈의 빌미를 찾고자 애쓰는 장면들이 꼬맹이에게는 철학의 시간이었다.
붉은 귀신이 산다는 가장 가까운 칸에 앉아 꼬맹이는 눈을 동글동글 굴려보았다.
지푸라기, 신문지 조각, 낙엽 등등...
똥통 속의 황하(黃河)는 인공섬도 갖추어 놓았다.
"귀신은 어느 곳에 살고 있을까?"
두려운 호기심으로 전해오는 화장실 귀신의 전설,
꼬맹이는 똥통에 살고 있는 귀신을 찾으려고 기(氣)를 모았다.
하얀 구름 사이로 천둥이 치고 마른벼락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어서 안개는 향기를 쫓아 산을 타고 있었다.
누른 강물을 따라 흘러 온, 무명베 한 조각!
불그스레한 물이 든 낡은 무명베 한 조각이 떠 있었다.
입에 붉은 피를 머금고 히히히 장난스런 손을 휘저으며 겁에 질린 꼬맹이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꼬맹이의 겁에 질린 비명은 바깥으로 새어 나오지 않고,
작은 가슴 속으로 꼭꼭 숨어들어서 두려운 비밀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똥통에는 붉은 귀신이 유유자적하게 무명베를 타고 빨간 꿈을 꾸며 살고 있었다.
첫댓글 ㅎㅎ 제가 초등학교 막 들어 갈 때도 화장실 귀신과 전설은 늘 소변을 참게 했어요. ㅎㅎ ^^*
제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때 우리 동네에 처음으로 건물내에 수세식 화장실을 시범으로 지은 학교가 생겨 났지요. 그 학교 때문에 매일 1시간씩 걸어 등교 하던 학교를 10분이면 갈 수 있었고, 더이상 화장실이 공포가 아닌 곳이 되었더랬지요. 서울시 교육청에서 시범으로 지었다는 우리 학교를 시작으로 계속 건물 내에 화장실이 짓더니, 이제는 우리나라가 화장실 하면 휴지 없는 곳 없고, 음악도 나오고, 깔끔하기도 하고, 우리집에도 없는 조화까지 장식 되어 있으니 똥통의 붉은 귀신도 이젠 저 외딴 시골 어딘가에서 이를 갈고 있겠지요?
으으으으으...구신 출몰이다!!! ㅎㅎㅎ
요즘 화장실 귀신은 세련되었어요.
머리칼도 다양하게...ㅋㅋ
그러나 귀신이라면 단연 '똥통 귀신'이 폼이 나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