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찾는 여정 : 불암산 학도암 마애불
1. 최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한국의 마애불』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여행작가 최복일이 전국을 답사하면서 기록한 마애불에 대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책의 내용은 마애불 중에서도 일부를 골라 역사와 미학적, 지리적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마애불에 대한 설명 뿐 아니라 전국에 숨겨져 있는 마애불을 모두 정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애불의 소재지, 접근의 난이도, 가장 보기 좋은 시간 등을 비롯하여 핵심적인 정보를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평소에 내가 구하고 싶던 자료였다. 전국에는 약 200개 정도의 마애불이 산재하여 있다고 한다. 새로운 자료로 얻었으니 마애불이 있는 장소를 찾아 떠나야겠다. ‘역답사’, ‘도시답사’와 함께 ‘돌을 찾는 여정’의 소중한 자료를 획득한 것이다.
2. 첫 번째 마애불 답사로 불암산 학도암 마애불을 찾기로 했다. 위치는 노원구 중계동에서 올라가는 불암산 코스에 자리잡고 있다. 나에게 마애불 답사는 단지 ‘마애불’만을 보러가는 것이 아니다. 마애불을 계기로 그 곳에 이르는 주변 지역까지 같이 답사하면서 지리적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곳곳을 알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번 코스는 하계역에서 출발하기고 했다. 역안내자에게 물어 방향을 찾고 약 40분 정도 걸어 학도암에 도착했다. 자연스럽게 하계, 중계, 상계동 지역을 보면서 걷게 되었다. 익숙한 서울의 지명이지만 직접적으로 방문했던 적은 없는 곳이다. 과거 산동네의 대표적인 지역이었던 이 곳은 올림픽 개최에 따른 서울 개발로 인해 급격하게 변모하였다. 그렇게 변화된 이곳은 아파트가 점령한 전형적인 서울의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3. 학도암은 ‘서울둘레길’ 불암산 코스 중간에 있었다. 이 곳에 마애불이 있다는 정보는 몇 년전 서울둘레길을 걸을 때는 몰랐던 정보였다. 둘레길에는 학도암은 안내되어있지만 그곳에 마애불이 있다는 표식은 없다. 멋진 문화유산을 좀더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자세가 없는 것이 아쉽다. 둘레길에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약 5분 정도 걸으면 암자 입구에 쉽게 보기 어려운 돌의 흔적이 나타난다. 바위에 새긴 ‘마애비석’이다. 이런 형태의 돌조각은 처음 본 듯하다. 돌에 새겨진 비석의 명문은 이곳의 역사를 알려준다. 바위에 새겨진 문자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있는 분위기를 준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을 영원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싶은 여망이 담겨있는 것이다. 오래전에 폐사되었다고 전해지지만, 마애비석의 기록은 조선 후기의 흔적을 보여준다. 마애불과 마애비석은 특히 고종의 비였던 명성황후와 관련되어 있다.
4. 학도암은 암자라기보다는 상당히 규모가 커서 보통의 절처럼 보인다. 대웅전과 삼성각, 약사전 등 사찰의 기본적 건물을 모두 갖고 있었다. 대웅전 뒤쪽 거대한 바위돌에 새겨진 ‘마애불’은 웅장한 규모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애불의 모습보다 그것이 새겨진 ‘돌’의 거대함이 먼저 다가온다. 고종때 민비의 주도로 만들어졌다는 마애불이 새겨진 최상의 바위돌이 오랜 시간 비워져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신기했다. 이렇게 멋지고 압도적인 바위의 형상은 쉽게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애불은 고종과 결혼한 민비 ‘민자영’의 염원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고종과 결혼했지만 다른 여자와 가까웠던 고종의 마음을 돌리려는 시도로 만들어진 마애불은 당시 최고의 기술진이 동원되었다. 그래서인지 마애불의 선과 면의 처리는 세련되고 균형잡혀 있었다. 엄숙하고 진지한 마애불의 표정 또한 깊은 산속에서 발견하는 소박한 마애불과는 다른 권위적인 얼굴이었다. 그러한 진중함이 보통의 마애불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과는 다른 색깔을 만들어내었다. 그럼에도 계단에서 바라보는 마애불의 모습은 힘찼고 강인해보였다.
5. 마애불 주변 의자에 앉아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산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언제나 특별한 여유와 시원함을 선사한다. 서울이면서도 쉽게 발걸음을 하지 않았던 불암산에 왔다. 불암산 안내에 정상 부근에 작은 규모의 ‘산성’이 있다고 한다. 새롭게 방문할 장소를 또다시 찾았다. 움직이고 방문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만나는 과정이다. ‘새로움’은 특별하지 않을지라도 그 자체로 설렘을 준다. 일상의 진부함을 이겨내기 위해서도 끊임없이 흘러야한다. 그 속에서 우연하게 멋진 경험을 한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상관없다. 움직인다는 그 자체가 삶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어떤 팝송의 제목처럼, <Life is Live>
첫댓글 -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을 영원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싶은 여망!
- 움직인다는 그 자체가 삶의 핵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