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성주(星州)는 경상북도 남서쪽에 위치하며 6가야연합국의 하나인 성산가야국(星山伽倻國)의 영토였다. 6세기 무렵 신라의 세력권에 들게 되어 벽진군(碧珍郡) 또는 본피현(本彼縣)이라 하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신안현(新安縣)으로 개칭하여 성산군(星山郡)에 속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경산부(京山府)로 승격하였다가 980년(경종 6)에 광평군(廣平郡)으로 강등하여 개칭되었다. 995년(성종 14) 대주(岱州)로 바뀌어 도단련사(都團練使)를 두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다시 경산부로 환원되었다. 1295년(충렬왕 21)에 와서는 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를 두어 성주목(星州牧)으로 승격하였으나, 1310년(충선왕 2) 다시 경산부로 강등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성주목으로 승격되었다가 이후 1616년(광해군 9)에는 신안군으로, 1631년(인조 1)에는 신안현으로 개칭되어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성주군이 되었고, 1896년에는 경상북도 성주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관할면이 성주·벽진면 등 9개면으로 폐합되었고, 1979년에 성주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성씨의 역사
성주여씨(星州呂氏) 시조 여어매(呂御梅)는 여어(呂御)라고도 하는데, 중국 내주(萊州)사람으로 황소(黃巢)의 난을 피해 877년(헌강왕 7) 신라에 들어왔다. 고려 때 전서(典書)로 지내고 성산(星山)에 대대로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뒤 성산과 함양(咸陽)으로 분관되었으나, 중간에 보판(譜板)을 잃어버려 그 세차(世次)를 확인할 수 없었다. 따라서 고려 말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오른 여양유(呂良裕)를 중시조로 하여 후손들이 세거지인 성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주요 세거지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해평동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성주여씨는 3,395가구 총 11,012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