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요1서 1;5)는 말씀이 ‘어둠도 어둠이 아니고, 빛도 어둠도 구별이 없다’(시139;12참조)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하느님의 사랑은 악함도 선함도, 빛도 어둠도, 옳음도 그릇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마5;45참조). 단지 나의 견해, 가치판단의 기준, 잦대, 신념이 경계를 긋고 옳고 그르고, 선하고 악하다고 판단할 뿐이다. 하느님은 경계가 없고, 어둠마저도 빛으로 선용하신다.
복음에서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마20;22)는 말씀은 청하는 것이 마시게 될 잔이다. 같은 것이지만, 표면, 드러난 것이 다르다. 나는 나의 진면목, 하느님의 영광과 성품을 회복하는 것이 청하는 것인데, 그 청하는 것은 곧 나 없음, 비움, 즉 나의 견해, 판단기준, 잦대, 신념 등이 소멸되는 자리가 영광과 성품을 회복자리가 된다. 이는 나의 죽
음이요, 나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고난이요, 마셔야하는 쓴 잔이다.
나의 본질, 본래의 나로 돌아가기 위해 내가 쌓아올린 바벨탑, 성전, 잦대, 견해를 허물어야 한다. 자아가 살아 있는 한, 참 내가 될 수 없다. 참 내가 됨, 곧 하느님의 성품과 영광을 회복하는 자리는 나 없음, 無, 空의 자리- 곧 한 처음(창1;2참조)이어야 한다. 그동안 나를 살게 했고, 지탱해온 나의 가치관, 신념, 옳고 그름, 선함과 악함의 경계가 무너져야 한다. 그 무너짐이 죽음의 쓴잔을 마심이다.
가장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의 이면에는 가장 낮아져서 모든 이들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낮아짐이 높아짐이고, 높아짐이 낮아짐이요, 나없음이 참 나로 회복되는 자리다.(빌2;5-11참조)
오직 영광에 이르게 위해선 반드시 고난을 받아야 한다(눅24;26참조). 나의 경계, 견해가 무너지는 죽음을 거쳐야, 참 내가 됨, 곧 하느님의 성품과 영광을 회복된다.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의 이면에 섬김의 마음이 있다. 둘은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