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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려 토론방 스크랩 몽골을 두 번 격파하다! - 고려 영웅 김윤후
라이센스 추천 0 조회 1,097 07.09.20 23:34 댓글 2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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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9.20 23:52

    첫댓글 저도 봤습니다. 사실 부끄럽지만 이 방송이 나가기 전 까지 김윤후 장군에 대해서는 몰랐습니다. 몽골과의 항전 이라는 대목에서는 항상 삼별초만 기억을 하고 있었던 지라.. ^^ 그런데 위의 항전을 묘사한 그림에서 백성들의 복장이 조선시대 복장 닌가요?

  • 07.09.20 23:57

    몽골군 전선사령관을 최초로 죽인 나라!! 고려~~... 그렇기 때문에 몽골은 고려를 다른나라보다 더 핏박하였죠.

  • 08.09.06 00:45

    핍박

  • 07.09.21 00:25

    1차 침입 때의 귀주성 전투는 왜 빠진 걸까요???(지휘관이 다르긴 하지만 이 전투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 07.09.21 01:08

    가져갑니다. 좋은 자료 감사해요.

  • 07.09.21 01:48

    고려가 8차례나 몽골과의 싸움을 어떻게해서든지 생존했기 때문에 그 치열한 저항이 나중에 강화조약에서 몽골의 대칸이 너무나 기뻐할정도라는걸 상기했을때 고려군의 전력이 어느정도였는지를 보여줄수 있다 봅니다. 최소한.. 몽골항전에서 몽골에 대한 피해는 몇몇 침공의 경우 최소화 할수 있었는데 안한 멍청한 최씨정권이 기가막히더군요.. 고려 정규군만 제대로 활약했어도 그 몇몇경우의 피해조차 최소화할수 있었는데 말이죠..

  • 07.09.21 04:07

    그러나 생존의 댓가 치고는 그 댓가는 너무 비참했죠^^ 저는 대몽골전쟁을 2차까지만 하고 최씨정권이 강화를 했으면 어떠했을가 싶네요. 총사령관까지 죽여버렸으니 몽골도 분하긴 하겠지만 우리가 스스로 머리를 숙였다면.... 함부로 하지 못했을텐데요... 차라리 태자라도 보내서 고개를 숙이고.. 인질 및 과다한 공물은 거절했다면? 고려말기가 그렇게 비참하지는 않았겠죠.

  • 08.05.24 00:13

    왠지 궁금한게 무신 정권이면 말 그대로 무신들, 군의 수뇌부들 아닌가요? 근데 왜 이렇게 맥없이 무너지는 지......

  • 08.05.24 08:34

    스스로 머리를 숙이는 자에게 왜 더관대하게 대한다고 생각하죠? 과다한 공물을 요구할것이고 거절하면 전쟁이죠 과다한 공물을 받치면 그다음은 더큰 요구를 할수 있지 않을까요? 고려가 몽골에 무릎을 꿇다니 이것보다 비참한게 어디있는가요

  • 07.09.21 11:31

    몽골이 고려침공에 동원한 군사의 수는 초반을 제외하면 만명을 넘지 않았고, 침공목적도 정복보다는 고려를 지속적으로 괴롭혀서 항복을 받으려는 것에 있었죠... 어쩌면 고려정부가 강화도에서 무관심하게 노는 걸 보고 몽골정부에서는 이것들이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며 즐겼을지도 모르죠..-_-; 정부의 생존을 위해 백성들의 목숨을 희생양으로 쓸만큼 고려정부가 가치있는것이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 07.09.22 02:22

    분명히 고려의 뛰어난 장군들을 칭송해야 마땅하지만.. 그 이전에 그저 견제용으로 보낸 소수의 군대에 고려의 전 국토가 완전히 박살났다는 사실은 결코 자랑스러워 할 만한 부분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무신정권만 안일어났다면 고려는 그런 견제용 군대쯤이야 충분히 최전선에서 막아냈을거라고 봅니다.

  • 07.09.22 13:53

    제 생각이지만 만약에 최씨 무신정권이 강화도 안에서만 있지 않고 자신들의 우수한 사병집단들을 잘썼으면 고려의 대몽항쟁의 구도가 어떻게 ?을지가 궁금하네요

  • 08.05.23 22:03

    이거 한국사전 몇화에요?

  • 08.05.24 07:04

    위에 나온 김윤후의 영정(표준영정 같네요) 말입니다. 꼭 '관복' 을 입은 모습이어야 할까요? 승려 김윤후가 관직생활을 대단하게 한 것 같지도 않고, 우리가 그를 기리는 공적도 '관료' 로서의 공적도 아닌데 왜 관복을 입은 모습이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저것도 일종의 관 우월사상의 반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08.05.24 07:12

    짧은 생각입니다만, 김윤후가 충주에서 방어전을 승리한 이유는.... 수동적인 '백성'과 '노비' 를 일시적으로나마 '시민' 으로 재조직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백성이나 노비에게 전쟁은 '어르신들의 이야기' 일 뿐, 적에게 적극적으로 항전해야 할 이유가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짜피 없이 살거나 자유롭지 못하다면, 지배자가 누가 되든 그들에게 특별히 더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 반면, 고대적 의미의 시민, 즉 '자유' 와 '재산' 을 가진 존재는 지켜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전쟁이 벌어질 경우 최소한 자기 근거지의 '방어전' 에 있어서는 매우 적극적으로 나설

  • 08.05.24 07:16

    유인이 있습니다. 일찌기 마키아밸리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전쟁에서 간파한 것처럼 방어전에서는 도망치거나 항복해도 그만인 용병보다 지킬 게 많은 시민군이 더 잘 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 김윤후의 경우, 투항을 원하는 여론이 높아질 때 소와 말(재산)을 분배하고, 또 노비문서를 소각하여 빈농과 노비를 일시적으로 자유와 재산을 가진 존재로 만들고, 그로 인해 그들에게 '너희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 라는 일종의 고대적 시민의식을 잠시나마 심어 준 것인지도 모릅니다. 전쟁에서 질 경우, 네가 지금 얻은 재산과 너의 자유는 적에 의해 다시 박탈당할 것이다... 라는 두려움을 갖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면, 그리고 그

  • 08.05.24 07:16

    두려움을 '시민으로서 외적에 대한 저항' 으로 결집할 수 있었다면, 그의승리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던 셈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상 짧은 생각이었습니다. ^^

  • 08.05.24 10:48

    그래도 그런 일을 한 사람이 김윤후니까 주목을 하는 거겠죠.... ㅎㅎ

  • 작성자 08.06.22 18:33

    이거 옛날에 올린건데 왜 요즘 글이랑 섞여서 올라왔는지..ㅡㅡ;ㅋ

  • 08.07.12 10:40

    정말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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