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봉석 기자 = 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지지 의사를 피력했다.
지관 총무원장은 3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불교생명윤리 정립을 위한 공개 심포지엄'에서 치사를 하면서 "부처님은 아픈 사람에게 자신의 팔이든 뭐든 다 내주라고 하셨다"면서 "황 교수 논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면 불교는 죽은 존재"라고 강조했다.
또 불교계 언론인 법보신문에 따르면 1일 열린 '생명나눔의 날' 행사에 참석한 지관 총무원장은 "불교적 교리에 입각해 황우석 박사를 지지해야 하고, 황 박사의 연구성과를 경전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장 전 총무원장이 열반 전인 6월 황 교수를 격려 방문하고 최근 불교계 단체들이 황 교수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가운데 지관 총무원장의 이번 발언은 불교계가 위기에 빠진 황 교수의 '구원투수'로 나서는데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강화도 전등사 신자인 황 교수는 지난해 조계종이 제정한 '자랑스런 불자상'을 수상했으며, 칩거 중인 최근에는 서울 시내 모 사찰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불교와 인연이 깊다.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와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주최로 열린 이날 심포지엄에서 지관 총무원장은 예정된 시간을 넘기자 "5분만 더 얘기하겠다"고 자청하면서 황 교수와 그의 연구에 대한 불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나섰다.
지관 총무원장은 "황 교수가 왜 연구를 하고 있느냐.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하는 것"이라며 "황 교수의 연구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지금 만약 자신의 한쪽 팔이 없다면 반대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관 총무원장은 이어 "법망경이라는 경전에 따르면 부처님은 배고프고, 헐벗고, 병든 세 가지 고통 가운데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아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서 "아픈 자들을 구하기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연구한다면 아무 것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말했다.
나아가 황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하는 대신 성체줄기세포 연구 지원에 나서고 있는 특정 종교의 움직임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부처님이 자기 몸까지 보시하신 판에 성체줄기세포는 되고 배아줄기세포는 안된다는 것이 말이 되는냐"고 반문하고는 "엄연히 동양과 서양의 윤리가 다른데 기독교는 서양윤리를 그대로 들여와 우리 나라에 적용하려 하고있다"고 말했다.
지관 총무원장은 "대승적 입장에서는 땅덩어리도 무생물도 허공도 중생도 모두 부처님의 몸이자 곧 생명이 있는 것"이라며 "배아줄기세포만 생명이라는 그들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관 총무원장은 황 교수의 난자 취득과정상 윤리 논란을 의식한 듯 "불교의 자비 사상에 입각해 본인이 남에게 주어야되지 돈을 주고 사거나 남에게 희생을 강요하면 안된다"고 덧붙였다.
지관 총무원장은 "생명에 관한 연구는 법적, 윤리적, 불교교리적 뒷받침 하에서 이뤄져야한다"며 "그러므로 아직 초보적인 단계인 불교교리를 더욱 발전시켜야하며, 오늘 심포지엄이 그 출발점"이라며 말을 끝맺었다.
약 200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이날 심포지엄은 불교생명윤리정립연구위원회 소속 13명의 연구원들이 지난 2년여 동안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고 대중적인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로, 불교의 세계관, 인간관, 생명관, 윤리관 등의 총론과 생명조작, 사형, 안락사, 뇌사, 장기이식, 낙태 등의 각론에 대한 연구내용이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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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20) 차와 시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20) 차와 시
<서울신문 2005/12/5/월/기획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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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내렸다. 하얀 차꽃을 뿌리듯 대지에 살짝 몸을 올린 눈들이 마냥 한가롭기만 하다. 천둥처럼 섞어치던 바람도 어느새 깊은 잠에 들어가고 온 산은 그냥 적막에 빠져 있다. 너무도 자비로운 평화의 침묵이다. 평화는 내면의 침묵에서부터 시작된다. 침묵은 산란한 마음속에서 살아가는 일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한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삶의 눈을 뜨게 된다. 자비로운 평화와 침묵은 일상의 나를 보고 그속에서 냉철한 지혜의 길이 어디에 있음을 알게 한다. 그것이 바로 차의 마음이요 차의 길이다. 얼마 전 한 차인이 일지암에 찾아왔다. 그 차인은 오랫동안 지리산 화개에서 차 살림살이를 하고 있는 차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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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로부터 한국의 이름난 차인(茶人)들은 자신을 깨우치는 인격형성의 매개체로 차(茶)를 보았으며 이같은 마음을 담아 많은 시를 남겼다. 사진은 산중턱에서 내려다본 송광사 모습. 이곳에서 기거했던 다송자 스님은 80여편의 차시를 통해 담백한 차 생활을 전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신라시대 화랑들이 차를 달여 마시며 호연지기를 다지던 강릉 한송정.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 |
한잔의 차를 마시다 말고 깊은 한숨을 쉰 그는 나에게 물었다.“스님 현재 우리나라 차소비의 주류가 어디에 있는 줄 아십니까?” 현재 우리나라 차 소비의 70%는 이른바 대기업이 일상음료로 생산하는 ‘티백’녹차이다. 그리고 나머지 25% 정도는 두물차인 세작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가장 상품의 차라고 말하고 그 차를 마셔야 제대로 된 차를 마시는 것 같은 ‘우전’의 시장가치는 5% 내외다. 차에 대한 소비자의 시각이 많이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우전’은 현재 우리나라 차 시장에서 가장 앞선 브랜드요, 상징성 있는 차 상품으로 차인들뿐만 아니라 일반대중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이른바 최상품의 차로 불리는 ‘우전’을 우리 차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삼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인식이다. 그것은 향후 중국차 시장과의 경쟁에서 우리 차가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이나 여지가 무척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전이란 말은 곡우 전후로 딴 찻잎을 말한다. 여기에서 우전이란 찻잎이 충분히 제다할 수 있을 만큼 자란 시기란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같은 뜻이 와전돼 무조건 곡우 전후로 찻잎을 따야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차상품으로 인식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차를 제다할 수 있을 만큼 자라는 것은 매년 그 기후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어떨 때는 곡우 전에 충분히 자란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너무 어려 비비기도 어려운 상태도 있다. 그러나 차를 제다하는 차인들은 이같은 것을 무시하고 곡우 전후에 차를 억지로 생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경우 찻잎을 따기도 어렵고 차를 제다하기도 어렵다.
또 한 가지 있다. 바로 중국차와의 경쟁력이다. 향후 차 시장이 개방되면 중국차는 그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물밀듯이 한국 차시장을 공략할 것이다. 중국에서 햇차는 우리보다 훨씬 앞선 청명 전에도 생산이 된다. 또한 사계절 내내 햇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곳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전으로 대표되는 우리 차시장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나는 차인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절기에 따른 것이 아니라 차 생산자가 차밭에서 처음 딴 것을 첫물차 두물차 세물차로 나누어 생산하는 것이 매우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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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의선사 | |
앞서 언급했지만 차의 본성은 고요하고 사색적이고 이지적이다. 찻잔속에 찻잎이 퍼지며 연두색 색깔을 토해내면 그속에는 우주의 순환을 보는 듯한 정신적 심의(心意)가 싹튼다. 그런 점에서 차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키우는 날개와 같은 것이다.
한 잔의 차속에, 한 잎의 찻잎 속에 삶과 죽음의 문제, 심(心)과 색(色)의 문제 등 보다 근원적인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마력이 깃들어 있다. 차인들은 차를 통해 만난 내적 깨달음을 시로 표현한다. 진정한 차인은 차를 통해 자신을 깨우쳐 인격의 완전함을 지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는 차의 마음이요, 노래인 것이다.
옛 차인들은 한 잔의 차를 마시면서 그 마음을 그대로 노래했다. 초의 추사 다산 등 우리나라의 차인들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의 차인들 역시 차의 마음을 시를 통해 마음껏 노래한 것이다. 그같은 노래들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과거의 차를 알 수 있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남기고 있다.
먼저 신라·고려 시대의 차는 곧 잊혀진 우리 차에 대한 복원기록 같은 것이다. 마치 기록할 때처럼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한다. 고려시대 문신이었던 김극기의 ‘한송정을 돌아보며’라는 시는 좋은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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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약용 | | “외로운 정자가 바다를 임해 봉래산 같으니/지경이 깨끗하여 먼지 하나 용납 않는다/길에 가득한 흰 모래는 자욱마다 눈인데/솔바람 소리는 구슬 패물을 흔드는 듯하다/여기가 네 신선이 유람하던 곳/지금에도 남은 자취 참으로 기이하여라/주대는 기울어 풀속에 잠겼고/다조는 나뒹굴어 이끼 끼었다/양쪽 언덕 해당화는 헛되이/누굴 위해 지며 누굴 위해 피는가/내가 지금 경치를 찾아 그윽한 흥취대로/종일토록 술잔을 기울이네/앉아서 심기가 고요하며 물(物)을 모두 잊었으니/갈매기들이 사람 곁에 날아 내리네”
김극기는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오던 길에 신라시대 화랑들이 호연지기를 기르며 차를 달여 마셨던 한송정에 들르게 된다. 그리고 묘련사의 석지조를 발견하게 된다. 김극기는 옛 차인들이 유적들을 돌아보며 그 회한을 읊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차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차시들은 충담사, 김지장 스님, 이규보 등 대문장가들의 시선집에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는 이 차시들을 읽으며 당시 차인들의 멋과 풍취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차시의 정수는 바로 차의 마음을 담은 것들이다. 먼저 대각국사 의천의 차시다.
“북쪽 동산에서 새로 만든 차를/동쪽 숲에 사는 스님에게 보냈도다/한가로이 차 달일 날 미리 알고/찬 얼음 깨고 샘줄기를 찾는다”
겨우내 차를 그리워했던 차인의 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차시다. 대각국사는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 먼 남쪽에서 한 차인이 보낸 햇차를 선물받는다. 그 기쁨을 대각국사는 미처 녹지 않은 땅을 일궈 물을 찾는 심정으로 햇차를 기다린 심정을 한 편의 시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 희종때 스님인 진정국사의 차시도 눈여겨볼 만하다.
“귀한 차는 몽정산의 차 맛을 이었고/샘물은 혜산천에서 길어 온 것 같구나/졸음을 쓸어내고 정신을 맑게 하니/손님을 대하여 다시 여유가 있네/단이슬이 땀구멍에서 솟아나고/공산의 운제상인이/차 자리를 마련했다고 함에/시원한 바람이 겨드랑이를 식혀주네/어찌 영약을 구해서 마셔야만/불그레한 얼굴로 지낼 수 있다 하겠는가”
고려시대 지배계층인 귀족과 스님들은 중국의 명차로 알려진 몽정산의 몽정차를 마셨다는 것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육유가 최고의 물로 인증한 혜산천의 물을 상징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그 당시 육우의 다경을 비롯한 중국의 다서들이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많은 다인들에게 읽혀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차인 가족으로 알려진 혜거도인 홍현주가의 차시도 볼만하다. 초의 스님의 ‘동다송´을 오늘에 있게 한 주인공인 혜거도인 홍현주가는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 자식들 모두가 차를 즐긴 당대 최고의 세력자 집안이었다. 그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차를 마시며 지은 차시가 있다.
“비 갠 뒤 갓 돋은 달 밝으니/흐르는 그림자 성긴 발에 어리네/먼 데서 오신 손님은 흥도 많으셔/맑은 빛은 모두 싫어하지 않는구나/허공이 밝으니 하늘은 넓고 넓어/이슬이 내려 옷을 적시네/누각은 허공속에 걸렸는데/산봉우리에 달이 걸렸네/구름으로 들어가면 구름 밖은 고요한데/별들은 나무 사이에 걸렸네/밤을 재촉하여 등을 걸었는데/바람이 읊조리니 호각소리가 짧아지도다/…차는 익어 시정에 젖어드니/거문고 맑은 소리 고운 손에 울린다/참으로 다정하고 즐거운 마음을/가도 가도 버릴 수 없네/머리 들어보니 은하수는 기우는데/이 기쁨 달님에게 물어본다”
먼저 아버지인 족수 거사 홍인모가 운을 뗀 후 그의 어머니인 영수합 서씨, 두 형과 여동생 유한당 홍씨, 그리고 홍현주가 돌아가면서 쓴 연시다. 한가족이 달빛을 풍광삼아 차를 즐기는 향취를 그대로 드러내는 아름다운 차시인 것이다. 차시 가운데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당대 최고의 천재시인 설잠 김시습이다. 설잠 김시습은 앞서 밝혔듯이 직접 차를 가꾸고 제다했던 차인이었다. 그가 차를 마시며 지은 연시 한토막을 소개해 본다.
“밤에 듣는 소리는 패옥 같은데/새벽에 물 길으면 빛이 옥 같네/절아이 산차를 달이려/달이 담긴 찬 샘물 길어오누나/새벽해 떠오를 때 금빛 전각 빛나고/차 김 날리는 곳 서린 용이 날개치네/절이 오래되어 솔은 천길이나 자랐고/산 깊어 달이 한 무더기라”
매월당 김시습은 차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차의 마음을 담은 많은 차시들을 남겼다. 매월당은 이시에서 새벽에 물을 길어 돌솥에 끓이는 소리를 마치 아름다운 패옥 같다고 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달이 담긴 샘물 그리고 천길이나 자란 소나무속에 달과 함께 마시는 차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절절히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 다인의 차시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바로 송광사의 다송자 스님이다.“뜰 아래는 차 샘이요, 뜰 위에는 정자 있어/집의 문 넓고 멀어 남쪽바다 눌렀구나/거울속 빛과 소리 천년을 숨어 있고/그림속 강산은 점점이 푸르다/백척난간에 바람이 머무는데/한 잔 뇌소차에 꿈을 깨는구나/책상 앞에 앉아 창랑곡을 떠올리니/물 맑으면 갓끈 씻고 물 흐리면 발 씻으리” 다송자 스님은 근대 차인으로서는 보기드물게 80여편에 이르는 빼어난 차시를 남겨 우리의 마음을 청량하게 한다. 비우고 비워 마침내 허공에 다다른 담백한 차생활을 전해주고 있다.
차는 곧 시며 선이다. 그것은 차를 통해 우리는 내적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심의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깊은 산사에서, 활발한 도심에서 살며 차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차의 효용성이랄 수 있다.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노래하는 즐거움 또한 이 시대 차인들이 회복해야 할 정신사인 것이다.
일지암 암주
■ 효당 최범술과 차의 길 “육신을 가볍고 쾌하고 부드럽게 하는 것”
웰빙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웰빙이란 글자 그대로 인간의 삶을 자연친화적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마치 값비싼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것으로 환치하는 ‘우’를 범하며 살고 있다. 웰빙이란 앞서 전제했지만 인간의 삶을 자연과 함께 자연스럽게 호흡하며 살게 하는 것이다. 그속에는 삶의 순리와 역리를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존재하며 평범하면서도 편안하게 호흡할 수 있는 삶의 리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의 차 은사인 효당 최범술 스님은 ‘차(茶)의 길’을 이렇게 설파하셨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시는 차에도 법도가 있다.’는 것이다. 효당 스님은 차를 끓이기 위해 불을 피우고 물을 재우고 법제된 찻잎을 넣어 차를 우려내는 것 하나하나에 그에 따르는 모든 행위가 갖추어져 있는 것을 ‘차를 통하여 생활하는 것’이라고 했다. 효당 스님은 “우리 인간 사회생활 그 어느 것이 그렇지 않음이 없겠으나 모든 인간사회의 복잡다단한 사회생활을 이와 같은 기호 속에서 가볍고 쾌하고 편안하고 부드럽게 조화된 상태에서 등장시켜 고요한 속에서 차생활을 해온 것이다.
이같은 차생활은 차나 무순이나 잎으로 법제된 차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겠으나 위에서 말한 찻잎이 그러한 모든 요소에 적합하다 하겠다. 그러기에 선인들은 차를 인간생활상의 기호면에 등장시켜 그것이 지니는 맛과 멋을 통하여 인간답게 생활해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차란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고 인간문화생활의 생활까지 통틀어서 ‘차생활’이라는 말로 범칭하게 되고 이와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을 차인이라고 부른다.”고 말한다. 효당 스님은 여기에서 차의 맛을 문제삼는다.
“차맛을 자세히 음미하면 쓰고 짜고 떫고 시고 단 여러 가지의 맛들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이는 우리 인간들의 일상 생활속에서 있을 수 있는 갖가지 맛을 보면서 살아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동고동감(同苦同甘)한다는 표현처럼, 맛의 말로써 나타내니 모든 인간 사회생활 그곳에서 한껏 묘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리라.”로 정의하고 있다.
차뿐만 아니라 이 세상 많은 것들이 자세히 음미하면 모든 오감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차는 다른 것들보다 더욱더 명징하게 오감을 전해준다. 효당 스님은 함께 고통받고 함께 기쁨을 느낀다는 ‘동고동감’을 통해 차와 인간삶의 절묘한 조화가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다. 우리의 삶이란 곧 번뇌고 환희인 것이다. 번뇌와 환희의 찰나지간 바뀜이 우리의 그날 그날 삶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효당 스님은 차인의 진정한 길은 그같은 동고동감 속에서도 늘 고요하고 평화스럽게 자신을 온 우주와 함께 호흡하라고 권한다. 육신을 가볍고 쾌하고 부드럽게 하는 길이 바로 다도의 길인 것이다.
다도의 길은 또 고인물이 흐르는 물로 말미암아 맑은 여울로 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차 한잔에 한 생각을 모으고 그 모두 어진 생각으로 온 우주와 합일이 되고 그 합일된 바탕 속에서 자신의 내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을 얻는 것이다. 다도의 길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효당 스님은 매일매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권한다.
“우리 인간이란 매우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다. 제일 가깝고 쉽고 평범한 큰길이 있음을 잊은 채 멀고 어렵고 까다로운 샛길을 찾는다. 발걸음을 멈춰 다시 한번 돌아보자.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어느 길인가를. 그리고 차와 선이 있는 길이라면 우리 선인들의 슬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걸어가자.” |
사랑이란 수행이죠
사랑이란 수행이죠
<한국경제 2005/12/5/월/문화TVA34면>
성전 스님 '지금 후회없이…' 출간
"사랑이란 수행자에게 낯선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이란 말보다 아름다운 말은 없다. 헌신과 바침의 기쁨이 이 속에는 있다. 그래서 사랑은 수행이기도 하다. 사랑이 없다면 무엇을 일러 수행이라 할 수 있고,삶이라 할 수 있겠는가."
환한 웃음이 인상적이어서 '미소 스님'으로 불리는 성전 스님(45)의 '사랑론'이다. 그는 신간 '지금 후회없이 사랑하라'(도솔)에서 '사랑은 가장 아름다운 수행의 언어며 가장 빛나는 삶의 언어"라며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인생을 여한 없이 살려면 지금 후회없이 사랑하라는 것. 지난 봄부터 불교방송에서 '행복한 미소'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말미에 낭송했던 이야기를 엮었다. 사랑,행복,마음,지혜,수행 등에 관한 경전 구절과 스님의 글이 수채화처럼 실려있다.
'수천의 생을 반복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드물다. 그러니 지금 후회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입보리행론)
스님은 이런 경전의 말씀과 함께 "조건이 없어야 진짜 사랑"이라며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그 행복한 씨앗 하나 마음에 품고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서원한다.
또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를 사랑하지만 자기를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는 대승장엄경론을 소개하며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에도 이해와 양보와 헌신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갈등과 집착,무망으로 치닫는 마음의 불을 끄지 않으면 사랑의 길은 사라지기 때문에 사랑에는 언제나 수행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성전 스님은 월간 '해인'과 '선우도량' 편집장 출신. 지난해 가을 에세이집 '행복하게 미소 짓는 법'(도솔)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오는 10일(오후 4시 불교방송 3층 법당)과 17일(오후 2시,강남교보문고)에는 독자 사인회를 갖는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톈진 최??' 청전 스님 티베트 최고경전 람림 5년만에 완역
'톈진 최??' 청전 스님 티베트 최고경전 람림 5년만에 완역
<한겨레 2005/12/3/토/문화학술15면><한국일보 2005/12/3/토/사람들24면><동아일보 2005/12/3/토/투데이28면>
톈진 최??. 그가 인도 히말라야로 떠난 지 18년 만에 ‘티베트불교 최고의 고전’을 고국에 전하러 왔다. ‘(불)법을 지킨다’는 뜻의 톈진 최?뼈? 달라이 라마가 청전 스님(52)에게 준 법명이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머물고 있는 청전 스님은 2일 티베트 수행의 결정판인 람림을 1천 쪽의 한국어판으로 완역해 ‘깨달음에 이르는 길’(지영사 펴냄)이란 이름으로 내놓았다. 람림은 16세기 인물로, 달라이라마가 속한 겔룩파의 시조인 총카파가 쓴 저서다. 문수보살의 화현으로 일컬어지는 총카파는 앉은 채로 열반에 들어 좌선 자세의 등신불이 중국 문화혁명으로 파괴될 때까지 티베트에서 보존되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달라이 라마는 이 책에 쓴 ‘추천의 글’에서 “한국 비구 텐진 최?뼈? 박식한 티베트 승려들의 도움을 받아 낸 이 책이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만들고 우리를 가치 있고 복 받은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강점은 초발심에서부터 완전한 깨달음을 중득해 보살의 서원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분명하게 제시했다는 점이다. 청전 스님은 달라이 라마에게 3차례에 걸쳐 람림 설법을 듣고 난 뒤 이 책이야말로 한국 불교에 가장 필요한 책이라고 여기고 번역을 결심해 5년 만에 결실을 보았다.
애초 신부가 되려고 가톨릭대학교에 재학하던 청전 스님은 전남 순천 송광사를 찾았다가 방장 구산 스님(1901~1983)으로부터 “넌 전생에 천축국(인도) 고행승이었다”는 말을 듣고 그 전생이 화두가 돼 77년에 출가했다. 10년 동안 전국의 선방을 돌며 수행 정진했으나 ‘생사의 의심’을 끊지 못한 그는 진정한 스승을 찾아 동남아시아를 거쳐 인도를 순례하던 중 달라이 라마를 만나 준비한 15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 중엔 “저는 간혹 여자에 대한 유혹을 견디기 어려워 잠 못 이루는 때가 있는데, 존자님(달라이 라마)께서도 그런 유혹에 힘든 때가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달라이 라마는 “나 또한 그렇습니다. 당신과 같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을 따르는 비구이기 때문에 부처님에게 빌고, 그의 말씀을 따르며 그런 유혹을 이겨나가는 것입니다”고 답했다.
청전 스님은 진솔한 달라이 라마의 답을 듣는 순간 그가 ‘포장되거나 가공된 스승이 아님’을 확신하고, 그를 스승으로 받아들여 지금껏 정진해왔다. 히말라야의 다람살라에서 컴퓨터도 전화도 없이 ‘가난’하게 사는 그는 매년 약을 싸들고 히말라야 오지의 노인들에게 치료제와 영양제, 안경 등을 나눠주러 자비의 여행을 다닌다.
그는 몇 년 만에 한 번씩 나올 때마다 세속화하는 종교인들의 모습에 “(건물이) 더 커지고, (재산이) 더 많아지면 힘은 더 세질지 모르지만, 진리와 평화는 나올 수 없다”며 “자기 안의 분노를 다스리지 않고선 어떤 재물도 그 사람을 평화롭게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지인들이 챙겨준 약봉지들을 들고 6일 다시 히말라야 오지로 향한다.
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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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달라이라마의 제자 청전 스님
<연합뉴스 2005/12/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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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의 제자 청전 스님 18년 동안 달라이 라마를 스승으로 모시고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히말라야 다람살라에서 수행해온 청전(淸典) 스님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람림'(지영사 펴냄)을 곧 국내 최초로 완역해 출간한다.//문화부 기사 참조/문화/ 2005.12.2. (서울=연합뉴스) | |
티베트불교의 정수 '람림' 첫 완역
(서울=연합뉴스) 이봉석 기자 = "티베트불교도 한국이나 중국과 마찬가지로 보리심과 공성(空性)의 터득을 중심으로 하는 대승불교의 한 갈래입니다."
18년 동안 달라이 라마를 스승으로 모시고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히말라야 다람살라에서 수행해온 청전(淸典ㆍ53ㆍ티베트 법명 텐진 최??<법을 지킨다는 뜻>) 스님이 20여일 간의 일정으로 최근 귀국했다.
달라이라마는 전세계적으로 많은 재가 제자가 있지만, 달라이라마 밑에서 직접 티베트 밀교를 수행하는 한국 승려는 청전 스님이 유일하다.
스님은 티베트 정통파 불교의 개혁자로 일컬어지는 총카파(1357-1419) 스님이 지은 '깨달음에 이르는 길-람림'(지영사 펴냄ㆍ1천8쪽ㆍ4만3천원)을 곧 국내 최초로 완역해 출간한다.
티베트어인 '람림'은 길(수행법)을 뜻하는 '람'과 단계라는 뜻인 '림'의 합성어. 람림은 수행법 또는 법맥의 뜻 뿐 아니라 수행법을 단계별로 적은 책의 형식을 지칭하기도 한다.
책은 주로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 등에서 뽑은 부처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한국어판 발간은 중국어판, 영어판에 이어 세계에서는 세번째.
2일 서울 길상사에서 법문을 하기 앞서 스님을 만났다.
"달라이라마 스님의 법문을 세번째로 들었을 때 완역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달라이라마께서는 람림을 교재로 자주 법문하십니다. 초심자와 수행자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문판은 15명의 학자가 15년 동안 매달려 완역했다. 하지만 스님은 거의 혼자서 약 5년 동안 매달린 끝에 결실을 봤다.
책은 '여기에 부처님의 모든 말씀이 총괄돼있다'로 시작해 '이것이 열반의 길이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해탈에 이르는 6가지 덕목(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가운데 선정바라밀과 지혜바라밀을 얻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교학이나 선의 어느 한쪽으로만 치중해 생기는 불균형, 맹목적으로 화두만을 참구하는데서 발생하는 폐단 등 한국불교가 처한 문제들을 치유하는데 책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스님은 말한다.
1977년 송광사로 출가한 스님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있다. 가톨릭 신부가 되려고 가톨릭신학대학에 재학 중 우연히 보게된 '선가귀감'(선승들의 어록을 모아놓은 책)에서 본 선(禪)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 전남 순천 송광사를 찾았다가 '아니 전생에 천축국 스님이 어째서 엉뚱한 옷을 입고 날 찾아 왔는고'라는 당시 방장 구산(1901-1983) 스님의 말을 듣고 출가를 결심한 것이다.
오랫동안 인도에 머무르면서도 하루 한 끼는 손수 된장국을 끓여 한국식 식사를 하고있다는 스님은 가끔 한국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 한국의 수행자들이 너무 풍요롭게 산다는 것이다. 스님은 자신은 그 흔한 컴퓨터 한 대 가지고 있지않고, 1년 전쯤 송광사가 마련해준 전화도 불편해 없앨까 고민 중이라고 한다.
"종교는 가난해야하고, 돈이 없어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성직자들은 누구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민중보다 더 많이 가진 성직자가 어떻게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스님은 달라이라마가 12-16일 다람살라에서 여는 한국인을 위한 법회를 돕기 위해 6일 출국할 예정이다.
[우리 산하를 다시 걷다]9. 하늘재의 문화경관을 위하여 ②
[우리 산하를 다시 걷다]9. 하늘재의 문화경관을 위하여 ②
<경향신문 2005/12/5/월/기획24면>
‘큰 바위 얼굴’의 석상이 하늘재 길섶에 버려져 있었다. 이 석상을 내가 처음 보게 된 것이 1982년 8월 하순의 일이다. 신경림 시인을 따라 남한강 일대를 훑어 다니다가 충주 미륵리를 찾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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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 현실의 미륵불상 미륵리 미륵사지 석상. ‘미륵하생 용화세상’ 을 회원하는 미륵석상은 고려 중·후기에 흔히 ‘여인상’ 으로 조영된다. <사진작가 황헌만> <사진 오른쪽> 상상의 미륵불상 그래픽으로 재현한 미륵불상. 하늘재 깊섶에 있는 ‘미륵불 두상’ 을 가상으로 합성시켜 보았다. |
건축가 김수근이 발행하던 ‘공간’이라는 잡지에서 ‘미륵사지 미륵불 특집’을 내기도 했지만 워낙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이었다. 미륵사지는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곳에 꽁꽁 숨어 있던 중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고집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못난이 석상’이려니 여기기만 하였다. ‘미륵사지 석불’의 시제품(試製品)으로 만들었다가 제대로 조형되지 못한 것이라 판단하여 ‘미완의 두상(頭像)’으로 방치해둔 것이리라 추측했을 따름이다. 그러면서 고려 불교 미술양식의 이채(異彩)에 사로잡히고 아울러 송계계곡 일대가 ‘옛길의 문화회랑지대’를 이루고 있음을 유난스레 살피게 했다.
#미륵 불두상의 ‘고난의 행진’
1980년대로부터 역사기행, 문화기행, 인물기행을 기획하는 모임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88년 2월 나는 ‘남한강 문화유적 탐방 투어’의 한 모임에 합류했는데 이런 의견을 내었다.
고려 개국시대에 청주(서원지역)와 충주(중원지역)의 호족세력은 상반되는 태도를 보이는데 무슨 까닭일까. 충주 호족세력의 ‘왕건 후원’과 관련되는 사연을 숨겨놓고 있는 듯한 석조 입상과 함께 ‘못난이 미륵 두상’도 있다. ‘역사 추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당도해 보니 이게 웬일인가. 사진작가 황헌만이 ‘문제의 사진’을 잡지 화보에 게재하여 세인들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 그때 일어났다(‘사진㉮’ 참조).
‘미완의 미륵 두상’은 길섶에 버려져 있는 정도가 아니라 거꾸로 처박혀 있었다. 역사유물에 대한 ‘문맹(文盲)’이 빚어낸 해프닝이었다. 잡지 보도 직후 거꾸로 처박힌 모습은 ‘시정’되기는 하였다. 그러나 제대로 세워놓은 것은 아니고 ‘처박아두기만 하는 모습’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사진㉯’이다. 그런데 이 사진에서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두상’의 앞쪽으로 보이는 세 가닥 선을 새겨놓은 ‘받침돌’의 모습이다.
현존하는 미륵사지 ‘석불’은 6개의 화강암을 쌓아올려 조성한 것인데, 머리 위의 덮개(보개)-얼굴부분-목과 어깨부분-몸체 등이 각기 별도의 석물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에 보이는 ‘받침돌’은 실상 3도를 새긴 목과 천의(天衣)를 걸친 어깨의 통견 부분 석물이었다. 89년 1월에 촬영된 ‘사진㉰’와 90년대 초에 찍은 ‘사진㉱’는 불두상을 다시 이리저리 옮겨놓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무엇보다도 목과 어깨 부분의 석물이 이미 사라져버렸음을 유의하여 살피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미완성 미륵의 세상 나들이
‘뉴 밀레니엄’이라 하여 떠들썩하던 2000년의 가을철, 나는 으악 소리를 지르게 되는 일을 만났다. 추석 연휴를 지나보낸 9월14일 하늘재 숲길을 찾았는데 ‘미완성 불두상’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만 것이다. 즉각 국립공원관리소에 ‘도난신고’를 하였는데 다음은 이로부터 내가 확인하게 된 사실이다.
국립공원은 이 도난사건을 2주일 후인 9월28일에 가서야 충주시 문화관광실에 알렸다. 이에 문화재청에 보고가 올라가고 충주경찰서에 수사 요청을 하게 되었다. ‘현대불교’ 잡지가 도난사건을 취재하여 짤막하게 보도했다. 산속 깊숙이 위치한 ‘비지정 석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지만 지자체나 문화재청, 관할경찰서에 보다 성의 있는 관리감독을 요청할 계획이라는 것이 관련 당사자들의 답변이었다는 것.
2003년 봄철인데 이것이 웬일인가. 하늘재 숲길에 ‘미완성 불두상’이 의젓하게 되돌아 와 있었다. 경위인즉, 이 석상을 대형 트럭으로 반출해서 경기 여주의 어떤 농가 창고에 처박아두었던 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범죄자는 줄곧 ‘판매’를 물색해오던 중이었다. ‘국토사랑’의 어느 청년의 고발로 들통이 나서 ‘범인’은 불구속 입건되었는데, 다만 석상을 하늘재 숲길로 되돌아오게 하는 모든 비용을 부담시키게 하였다는 것이다.
불두상은 이렇게 ‘예토 세상 순례’를 무사히 마쳐 귀환될 수 있었으나 무성의하게 방치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번에 하늘재에 찾아가니 또다시 변화가 생겼다. 좌대를 조성하여 ‘불두상’을 정중하게 모셔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충주시 향토유적 제9호’라는 ‘주민등록’까지 받고 있었다. ‘높이는 138㎝이고 최대 넓이는 118㎝인 대형 화강암 불두’라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해설판까지 설치되었다.
‘문화회랑’을 이루는 하늘재 일원에서 ‘문화경관’의 미륵 불두상이 왜 중요한가. 우리는 ‘문화 이벤트’를 꾸미기로 하였다. ‘미륵리 석불’의 두상을 ‘미완의 석상’의 모습으로 바꾸어 ‘사이버 합성사진’을 여기에 제시한다. ‘미완성 미륵의 꿈’을 가상의 버튜얼 풍경으로나마 구현해보고 싶다. ‘하늘재 미륵정토세상’을 희원해 보고자 한다.
〈박태순/소설가〉
[문화 오디세이]사실보다 주장이 먼저 문화재는 말이 없건만
[문화 오디세이]사실보다 주장이 먼저 문화재는 말이 없건만
<동아일보 2005/12/5/월/문화A22면>
새로 문을 연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기를 끄는 문화재 가운데 하나는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삼국시대 7세기 전반·사진)이다.
최근 이 반가사유상의 영문 설명문을 놓고 논란이 있었다. 논란을 초래한 대목은 ‘This statue has remarkable similarities with a wooden statue at the Koryuji in Kyoto, Japan’(이 불상은 일본 교토·京都에 있는 고류 사·廣隆寺 목조 반가사유상과 놀랍도록 흡사하다)란 문구다. 일부 관람객이 “한국의 불상이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외국인들이 오해할 수 있다”면서 박물관 측에 정정을 요구했다.
관람객들은 “고류 사 반가사유상은 한국에서 만든 것인데 이렇게 설명을 해 놓는 건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박물관 측은 “객관적인 사실을 소개했을 뿐”이라고 해명하다가 영문 설명을 수정했다. 박물관 측의 영문 표기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었던 것과 별개로 이번 논란에서 주목되는 점은 ‘일본 고대 문화는 한국 문화의 부산물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우리 국민의 ‘절대적 믿음’이다.
사실 많은 사람이 고류 사 반가사유상이 삼국시대 때 한국에서 넘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의 국보 83호 반가사유상과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반도 제작설을 뒷받침할 근거는 아직 부족한 게 현실이다. 우선 한반도 제작설의 근거를 보자.
첫 번째 근거는 고류 사 반가사유상의 재료가 한반도에는 많지만 일본에는 별로 없는 적송(赤松)이라는 점. 두 번째는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스이코(推古) 31년(623년)’ 부분에 나오는 ‘신라의 사신이 불상과 금탑 등을 갖고 왔으며 그 가운데 불상은 하테데라(秦寺·고류 사의 다른 이름)에 안치했다’는 내용. 여기서 말하는 불상이 바로 고류 사 반가사유상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만으로는, 가능성은 높지만 객관적인 물증이라고 하기에 부족하다. 적송은 일본에도 있으며, ‘일본서기’에 나오는 불상이 지금의 고류 사 반가사유상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일본인이 한국의 반가사유상을 모방해 고류 사 반가사유상을 만들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언제 어떻게 모방해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불명확한 상태다. 일본 학계에서도 한반도 제작설, 일본 제작설이 맞서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넘어갔을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그건 여전히 심증일 뿐이다.
일본 나라(奈良) 현에 있는 호류(法隆) 사 백제관음상을 백제 것으로 보는 시각은 근거가 더 희박하다. 백제관음상의 얼굴을 보면, 한국에 남아있는 백제 불상의 얼굴과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중국의 불상과 더 가깝다. 이 관음상에 백제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17세기에 이르러서였다. 그런데도 언제부터인지 백제 불상으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이다.
객관적 사실보다 희망 섞인 믿음을 앞세우려는 정서는 어찌보면 인지상정이다. 또한 넓은 의미의 민족주의로 볼 수도 있다.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고구려 역사를 빼앗으려 하고 일본이 독도를 침탈해 가려 하는 상황에서 민족주의적 시각은 중요하다. 그러나 문화재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있어 객관적인 사실도 중요하다.
문화재는 말이 없다. 그래서 더더욱 과도한 추정이나 주관적인 판단은 자제되어야 한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토요일 아침에] 추기경께 드리는 ‘생명공학’ 편지
[토요일 아침에] 추기경께 드리는 ‘생명공학’ 편지
<서울신문 2005/12/3/토/오피니언22면>
원철 스님 조계종포교원 신도국장 |
추기경님께 올립니다.
혹시 1997년 11월19일을 기억하시는지요. 가톨릭 인천교구에서 131년 만에 한국국민들에게 1886년 병인양요에 대하여 참회한 그 일 말입니다.
병인박해 때는 프랑스 주교 2명과 신부 7명을 포함한 수많은 조선인 신자가 종교적 이유로 처형되자 7척의 프랑스 극동함대에 탑승한 리델신부와 최선일 최인서 심순녀 등 조선인 신자들은 물길 안내인과 통역관으로 함대를 이끌었습니다. 이는 종교박해를 이유로 제국주의 세력을 끌어들여 강화도민과 우리민족에게 큰 고통과 상처를 안겨준 불행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보다 100년 전쯤에는 황사영이라는 천주교도가 서양의 배 수백척과 군대 5만∼6만명을 조선에 보내어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도록 조정을 굴복케 하는 방안을 적어놓은 글을 담은 흰비단 원본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최근의 ‘배아출기세포 사태’를 지켜보면서 모두가 황우석 박사님의 입만 쳐다보고 있을 때 저는 가톨릭의 입만 열심히 지켜 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련의 발언들 속에서 왜 8년 전의 그 인천교구 참회사건의 과거사가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동방무례지국(東方無禮之國)’에 근본주의자와 윤리주의자를 포함한 도덕군자 율법학자가 이렇게도 많이 살고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인류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황 박사님의 연구업적을 종교적 원리주의 입장만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는 뭔가 2% 부족함을 느낍니다. 더욱이 교구장님이 나서고 그것도 모자라 추기경님까지 우려를 하시고, 어느 신부님은 세계배아줄기세포허브연구소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고 ‘오버’를 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종교이념에 충실하다는 성체줄기세포연구에는 100억원을 교단에서 지원한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역사적 안목으로도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려는 여유와 노력도 병행해야 할 시점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가톨릭은 1970∼80년대 어두운 시절 ‘민주화’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현재 400만명의 정예신도와 함께 그 속에 수많은 엘리트와 여론주도층을 귀의케 하여 매우 영향력있는 큰 교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대해지면 오만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때부터 내 목소리만 마냥 커져 갑니다.
신라 고려 때는 왕과 문무백관 그리고 모든 백성이 불교신자였습니다. 국사나 왕사의 말 한마디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가 영원한 불국토임을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교단 구성원은 모두가 거만해져 갔습니다. 하지만 그 과보는 금방 나타납니다. 조선이 개국되면서 승려는 서울출입조차 할 수 없게 되었고 최하층의 신분으로 그 빚을 몇백년 동안 열심히 갚아야 했습니다. 오만은 대중의 등돌림으로 이어지는 것이 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대중이란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는 유동성의 존재임을 뼈저리게 알게 된 것이 우리종단의 과거사입니다. 힘이 있을 때도 그 힘을 아껴야 함을 종교역사는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앞으로 종교적 신념과 대중적 정서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의 추기경 한 분도 버거울진대 만약 두 분이 나오신다면 국가적인 경사이긴 하겠지만, 우리도 마냥 박수만 치고 있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혹 ‘3인의 독립군’MBC 피디수첩의 군자금(광고료)까지 누구처럼 걱정하실까봐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 일련의 사태로 한국사회에 동서·남북·계층갈등 위에 설상가상으로 종교갈등까지 한겹 더 보태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또 100년 후, 영문도 모른 채 후배신부님들이 또다시 ‘참회록’을 읽어야 하는 결과를 빚게 되는 건 아닌지 미래수도자들에게도 세심한 배려를 아울러 부탁드립니다.
한국에서 21세기를 함께 살아가는 7080세대 수행자가 대통같은 좁은 소견머리이긴 하지만 작금의 지나친 줄기세포 시시비비에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어 큰어른께 감히 한 말씀 올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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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미꾸라지 생명도 소중하다
[삶과문화] 미꾸라지 생명도 소중하다
<중앙일보 2005/12/3/토/오피니언30면>
사위가 도무지 몸을 가누지 못한다는 딸의 전화를 받은 장모가 사위를 위해 추어탕을 끓여 주기로 했다. 불교신자인 장모는 시장에서 사 온 미꾸라지를 아파트 베란다에 놓고 "부처님, 사위가 몸이 허약해 어쩔 수 없이 미꾸라지의 생명을 해합니다. 용서해 주이소. 미꾸라지야, 죽은 뒤 더 좋은 몸을 받거라, 미안하데이"하고 추어탕을 끓였다는 이야기였다. 장모가 베란다에서 미꾸라지를 앞에 놓고 행했을 광경은 상상만 해도 박장대소감이지만, 한편으로 생명 존중에 대한 우리 선조의 깊은 지혜와 삶의 윤리가 잘 드러나 있다.
우리는 매일 다른 생명을 먹고 산다. 육식이든 채식이든 생명을 취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삶을 지속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다른 생명을 취하더라도 불필요한 살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로 신라의 화랑오계에 나오는 살생유택의 정신이며, 이는 우리 선조가 인간을 넘어 모든 생물의 생명을 소중히 여긴 기본 정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어떻게 생명을 취급하고 있는가. 현대병 중 대부분이 과잉 영양섭취가 원인인데도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는 이유로, 새로운 맛이라는 이유로, 몸에 좋다는 이유로 나만 좋으면 다른 생명이야 상관할 바 없다는 식이다. 심지어 사람들의 미각을 즐겁게 하기 위해 결국 '공장식 농장'이 만들어지고, 동물들이 광우병과 조류독감 때문에 다량 살생되는 것에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있다.
동물 해방을 선도한 피터 싱어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채식하는 것이 그다지 쉽지 않은 이유는 고기를 먹고자 하는 순간의 욕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오랫동안 동물을 오직 도구로만 간주하면서 길든 육식 습관 때문이다.' 그렇다. 진정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을 경시하고 늘 먹던 습관 때문에 죽어가는 생명에 대해 무감각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우리 식습관이 바뀐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선조가 일구어 온 '생명은 그 자체로 존엄하다'는 생명중심적 사고를 버리고 서양식 인간중심적 사고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른 생명보다 우월하고, 따라서 다른 생물은 단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고로 인해 우리는 다른 생명을 함부로 취급하면서도 전혀 미안한 마음이 없다. 이런 사고가 더 나아가 이제 인간 생명에도 위협이 될 만큼 지구 전체를 오염시키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평소 습관 하나도 제어하지 못하면서 생명윤리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신의 행위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죽어 가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생명윤리의 시작이 돼야 한다.
우리의 생명윤리는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다른 생명에 경외심을 가진 우리 선조의 윤리가 바탕이 돼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윤리를 바탕으로 지금 세계를 선도하는 생명공학의 생명윤리를 정립해야 한다. 우리의 윤리를 강조해야 하니 서양의 윤리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지구에 다양한 생명이 공존하듯이 사고 또한 다양하기 때문에 인정하고 함께하는 것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게 있다. 이제 우리는 서양식 잣대가 아니라 우리 잣대로 생명공학의 윤리를 세워 보편적인 윤리로 자리 잡게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미물인 미꾸라지의 생명도 소중하게 여긴 선조의 삶의 윤리를 되살려 지구에 생존하는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생명윤리여야 한다.
소 운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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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가슴이 훈훈한 지혜의 글 모음
[책마을]가슴이 훈훈한 지혜의 글 모음
<경향신문 2005/12/3/토/책마을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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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사 일기
성우스님 엮음|오후에
지혜가 가득 담긴 짧은 글과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따뜻한 그림이 하나로 버무려진 작은 책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현대인들이 잠시 쉬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시조 시인으로 등단한 성우스님(대구 팔공산 파계사 회주 겸 불교TV 회장)이 보석처럼 빛나는 글귀 81편을 뽑아내 엮었다.
짧고 간명하지만 늘 곁에 놓고 두고두고 되새김질할 만한 글귀들이다. 불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인 용정운씨는 그림 작업을 통해 글과 그림의 조화로운 맛을 더 낸다. 글귀들의 출처는 불경은 물론 스님들, 사상가와 작가 등 동서고금에 이른다. |
60개 키워드로 여는 동양철학 '21세기의 동양철학'
60개 키워드로 여는 동양철학 '21세기의 동양철학'
<한국일보 2005/12/3/토/책과세상19면>
불교·유가·도가·법가 등 망라 용어·개념 소개
생태 등 현실문제 진단… 동양학 입문서
이동철 등 엮음 / 을유문화사 발행ㆍ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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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 노자 / 주자 |
대승불교를 믿는 동아시아지역에서 ‘반야심경’은 불교 사상의 정수를 요약한 중요한 경전이다. 이 경전에 담긴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은 ‘현상세계가 공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론의 관점은 물론, ‘사물을 볼 때 차별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 존재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실천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존재 앞에 높인 죽음과 치열’하게 만나 사상을 형성해 간 장자의 ‘물화’(物化)는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여 그 이치를 즐기고, 또 초연하는 것이다.
삶에 기뻐하지도,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말고 그것들을 담담히 자연의 이법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죽음에 구속 당하는 일이 없다.’ 의학의 발달에 따라 고령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뇌사나 식물인간, 안락사 등의 문제가 부닥칠 때 장자의 생사관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동양학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과시용으로 동양철학서를 뒤적이던 사람이 다수였지만, 지금의 동양학 연구는 매우 현실적이다.
생명윤리, 환경파괴, 생명복제 등 기술문명의 발달과 함께 생겨난 갖은 사회윤리적 딜레마들의 해법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럴싸한 답을 굳이 동양학에서만 찾을 수 있는 건 물론 아니겠으나, 동양학을 배우면서 매우 새로운(실은 우리가 잊고 있던) 시각에 새삼 눈 뜨는 것은 사실이다.
60가지 키워드로 동양철학의 중요한 주제들과 우리 사회의 쟁점들을 연관지어 설명한 ‘21세기의 동양철학’은 이런 동양학 공부를 위한 실용적인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제1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에서는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동양철학의 주요 개념과 용어를 살폈고, 제2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서는 현재 쟁점인 사상과 문화를 동양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공’에서 시작해 ‘기’(氣) ‘리’(理) ‘명’(名) ‘무위’(無爲) ‘선’(善) ‘심’(心) ‘인’(仁) ‘중용’(中庸) ‘자연’(自然) ‘윤회’(輪廻) 등의 어원과 중요한 출전, 대표적 용례, 시대별 의미 전개, 학파별 의미 차이가 드러나고, ‘개혁’ ‘공동체’ ‘다원주의’ ‘동아시아’ ‘디지털’ ‘생명윤리’ ‘생태’ ‘소통’ ‘인간복제’ ‘자유’ ‘죽음’ ‘테크놀로지’ ‘지식인’ 등 움직이는 개념들이 현재의 맥락에서 설명된다.
체제는 대동소이하나 키워드 60개를 해당 학자들이 모두 따로 썼기 때문에 글 맛은 제 각각이다. 그 가운데서도 ‘도’(道)를 설명하는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글은 별나게 재미있다. 노장과 유가, 법가, 또 사마천을 거론하며 ‘도’의 의미를 짚어본 뒤 그는 ‘지금 어느 도를 쓸 것인가’고 묻고는 답한다.
‘유학에서는 인격의 이상은 살리되 변화된 시대의 지식과 사회관계를 고려하고, 법가는 제도와 규율에 대한 현실감각을 살리되, 공공의 선과 시민들의 복리라는 최종 목적을 잊지 않도록 하고, 노장에게서는 인간존재의 우주적 의미에 대한 심원한 통찰을 배우되, 그것을 사회정치적 공간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한 교수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고, 천만 영원하지 않고 임시적, 선택적’이라고 설파한다.
최진석(서강대) 신정근(성균관대) 교수와 함께 이 책을 엮은 이동철 용인대 교수는 “사회 여러 분야에서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동양철학의 기본적인 용어, 개념, 쟁점과 분야에 대한 공동의 이해와 언어가 성립되었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것 같다”며 “21세기의 한국이라는 관점에서 동양철학을 살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을유문화사가 창사 60주년을 기념해서 낸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정진석 대주교, 성체줄기세포 연구해야
정진석 대주교, 성체줄기세포 연구해야
<연합뉴스 2005/12/4/일><경향신문 2005/12/5/월/정치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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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존중 위한 `생명팔찌' 생명존중 가치를 확산시키기 위해 4일 낮 명동성당에서 열린 생명미사에서 정진석 대주교와 김수환 추기경, 주한 교황대사 에밀 폴 체릭 대주교, 연예인 이소은씨(왼쪽부터) 등이 생명팔찌를 손목에 착용해 보이고 있다. /성연재/사회/문화/2005.12.4(서울=연합뉴스) | |
4일 명동성당 '생명 미사'서 거듭 강조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정진석 대주교는 4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생명 미사'에서 성체줄기세포 연구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생명의 날'로 지정한 4일 정오 서울대교구 소속 215개 성당과 전국의 성당에서 일제히 열린 이날 생명 미사에서 정 대주교는 "배아줄기세포가 아닌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사 후 열린 '생명의 날' 기념행사에서 참석한 신자들에게 성체줄기세포와 배아줄기세포의 차이에 대해 설명한 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법적인 규제가 돼 있지 않다"며 "이러한 환경에서 황우석 교수의 연구 업적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대주교가 교구장으로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지난 10월 100억원을 투입해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하는 생명위원회를 출범시킨 바 있다.
한편 이날 미사에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강영훈 전 총리, 김수환 추기경 등이 참석했다.
전국 성당 4일 일제히 '생명미사'
전국 성당 4일 일제히 '생명미사'
<중앙일보 2005/12/3/토/문화27면>
천주교, '생명의 날' 행사
천주교는 4일을 '생명의 날'로 정하고 이 날 정오 생명존중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생명미사'를 전국의 성당에서 일제히 올린다.
명동성당 미사는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대주교가 집전한다. 각국 어린이를 위한 영어미사와 영어강론도 준비했다.
또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축복서한 발표와 교황대사의 축사도 있다. 영화배우 안성기.아나운서 강수정.탤런트 임현식.양미경.가수 이소은.뮤지컬 배우 최정원씨 등은 홍보대사로 위촉될 예정이다. 미사는 모금운동 출발과 함께 모든 참석자들이 생명팔찌를 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명동성당 마당에는 생명홍보관을 설치해 그동안 천주교계가 펼쳐온 생명존중운동 관련 자료와 동영상을 전시한다. 이 날 오후 7시 서울 혜화동 동성고 강당에서 진행될 '생명의 밤'은 젊은 세대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공연 자리다. 가수 휘성.장우혁.조성모.서지영.코요테.JK김동욱.이소은.바비킴 등이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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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교회·영락교회 나란히 환갑 잔치
경동교회·영락교회 나란히 환갑 잔치
<중앙일보 2005/12/3/토/문화27면>
개신교 성장 이끈 양대 산맥 … 3 ~ 4일 기념행사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박종화 담임목사)와 서울 저동 영락교회(이철신 담임목사)가 3~4일 나란히 창립 60돌 잔치를 봉헌한다. 전자는 기독교장로회, 후자는 예수교장로회(통합)의 장자교회. 각각 사회참여적 진보 신학과 보수적 복음 신학을 대변하며 개신교의 성장을 이끌었다.
경동교회는 1945년 12월 2일 조향록.강원룡 목사가 '선한 사마리아 사람 형제단'(선린형제단)을 조직해 전도관을 세우고 첫 예배를 올리면서 출발했다. 군부통치 시절 민주화 운동의 한 거점이었으며 특히 기독교 토착화에도 애썼다. 개신교회로서는 처음으로 1974년부터 추수감사절을 민족 명절인 추석에 지켜온 것이 대표적 예다. 지금도 외국인노동자 무료치료센터 등을 운영하며 소외된 사람들을 보호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경동교회는 3일 오후 5시 홈커밍 데이 행사를 갖고 이날 저녁 교회의 역사를 담은 연극'여기 거룩한 곳'을 선보인다. 4일에는 기념예배 후 오후 7시 30분부터 성가대가 하이든의'천지창조'음악회를 공연한다.
영락교회는 1945년 12월 21일 고 한경직 목사와 교인 27명이 모여 '베다니 전도 교회'라는 이름으로 첫 예배를 드렸다. 한반도 분단 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교세를 넓혔다. 특히 초창기부터 전도대를 조직해 학원 선교, 군 선교에 힘쓰고 이웃 사랑에 바탕한 교회 개척에 앞장섰다.
영락교회는 3일 오후 7시 베다니 홀에서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찬양대가 함께 하는 '성가 대합창제'를 연다. 부평감리교회의 예루살렘 성가대,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미가엘 성가대, 자양교회의 시온 찬양대, 지구촌교회의 주 은혜 찬양대 그리고 영락교회의 시온 찬양대가 감사의 노래를 올린다.
4일 예배에서는 초청 원로목사들인 정진경(신촌성결), 김선도(광림), 림인식(노량진), 김준곤(CCC총재), 박종순(총신)목사의 설교를 듣는다.
이헌익 문화담당기자 <lee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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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인물] 교황 베네딕토 16세
[올해의 인물]<3> 교황 베네딕토 16세
<서울신문 2005/12/5/월/국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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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2000년 묵은 상한 음식이 아니다.”(8월14일 바티칸 라디오와의 인터뷰)
지난 4월 새 교황으로 취임한 베네딕토 16세가 현대인들의 마음속에 신앙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 8월 중순 독일 쾰른에서 열린 가톨릭 세계청년대회에 참석,80만 가톨릭 신자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첫 해외방문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유대교 지도자들과 만나 종교간 대화의 계기도 열었다.
●중국·베트남과 관계개선 추진
불편한 관계였던 중국·베트남 등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는가 하면 2007년 브라질 방문 결정 등 남미지역의 교세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또 이스라엘과 터키의 초청 수락 검토 등 본격적인 가톨릭 외교를 위한 대외행보에도 시동을 걸고 있다.
26년 동안 재임한 강한 카리스마의 전임자 요한 바오로 2세의 공백을 매끄럽게 메우면서 새 교황으로서의 이미지와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전임 요한 바오로 2세 재위 때 ‘부교황’ ‘바오로 3세’ 등으로 불릴 정도의 실세였던 만큼 오랜 2인자로서 쌓아온 경륜을 교황에 오르자마자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그의 보수적 입장은 교회 내부에서조차 논란거리다. 시대에 따른 변화를 가져오는 데 과연 적합한지에 대한 시비다.
그는 전임 교황의 보수노선을 따르면서 해방신학, 낙태, 피임, 동성애, 인간 복제, 여성 사제 서품, 사제 결혼, 개신교와의 공동 예배, 줄기세포 연구 등에 반대하고 있다.
상대주의, 종교 다원주의에도 경계감을 표시하고 있다. 신임 교황을 뽑기 위한 지난 4월18일 콘클라베(추기경 비밀회의) 직전 신앙교리성 수장 신분으로 미사를 집전하면서 그는 “우리는 어떤 것도 확실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개인의 자아와 욕망을 최상의 목표로 삼는 상대주의의 독재를 향해 가고 있다.”며 세속주의와 상대주의를 질타했다.
4월19일 그가 교황으로 선출됐을 때 교계 진보진영에선 “바티칸의 기존 정책과 방침을 재확인해 주는 것이며 많은 사람들을 계속 교회로부터 등지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과도기적 교황이란 분석도
이처럼 그의 과제는 시대 변화와 교계내 진보주의자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낼 것이냐에 있다. 생명공학 발전에 따른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입장 정리도 현안이다.
추기경 시절의 완고하고 독단적인 인상을 어떻게 포용적인 교황의 모습으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느냐도 과제다.
그러나 78세의 ‘고령’에 새 교황으로 선출된 그는 26년 동안 장기집권한 전임자와 달리 단기간 재임하는 ‘과도기적 교황’이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그 자신도 교황 선출 직후 나이를 감안한 듯 “짧은 기간 동안 평화의 사도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각종 현안을 둘러싸고 분열상을 보이고 있는 가톨릭 교회의 진정한 통합을 과연 이끌어낼 수 있을지, 그리고 21세기에 걸맞은 가톨릭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새해 그의 행보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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