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텃밭은 검정비닐과 잡초방지매트 덕분에 뽑아낼 풀은 그리 많지 않다. 아무런 대책없이 그냥 둔 곳에는 풀이 숲을 이루고 있다. 풀 맬 엄두를 못내 뽑는 흉내만 낸다. 남해에 귀농한 초딩 친구는 자기 밭에 잡초가 이리도 많은데 내 밭의 상태가 심히 염려된다는 문자를 보내주기도 했다. 걱정해주는 친구가 있어 좋다.
땡볕에 나가서 일하면 큰일난다는 쏟아지는 안전 문자 협박에 낮에는 나가지도 못하고 저녁 해질 무렵에 나간다. 그런데 한낮에 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기에게 헌혈하는 것이 정도가 넘친다. 시골모기는 군복천도 뚫는다.
우거진 풀숲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저런 풀 베어 소 먹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옛날 생각 말이다. 그런데 소가 없다. 이웃집에도 없다. 예전엔 집집마다 소 한두 마리를 키웠다. 아이들 대학 등록금 혼사 준비 등 목돈 들어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소는 가축 이상이었다. 사람밥보다 소밥을 먼저 챙기고 겨울에는 여물을 삶아 따뜻하게 주었다. 대보름에는 소한테도 오곡밥을 주고 힘든 농사철에 기운이 없으면 살아있는 낙지를 먹이는 것도 보았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막걸리와 낙지를 먹이면 소가 금방 기운을 차린다고 하였다. 소는 초식동물인데 그런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구루마에 많은 짐을 실었을 때 소 주인은 구루마에서 내려 걸었다. 생각이 난다. 어딘가 갔다 오면서 나는 구루마 위에 타고 할아버진 소꼬삐를 쥐고 걸었다. 어린 손자가 자갈길을 타박타박 걷는 게 안스러워 그랬을 것이다.
돌아가실 때까지 내게 꾸중 한번 안 하셨던 우리 할아버지. 내가 우리 할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은 "할바", 할머닌 "할마"였다. 친구들이 이상하다고 웃었지만 다 커서 어른이 되어도 돌아가실 때까지 "할바" "할마"로 불렀다. 그립고 보고 싶다.
하나 밖에 없는 내 손녀가 나를 부를 때 아기 때 부르던 "할비"라 한다. 제 부모가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할아버지라고 시켜도 계속 할비라 부르고 말도 존댓말 안 하고 반말할 거라고 한다. 꼭 그리 하고 싶단다. 나도 존댓말보다 반말이, 할아버지보다 할비라 불리는 게 더 좋다. 이야기가 또 옆길로 샌다.
옥수수대 고구마 줄기 콩깍지 등 농후 사료는 소가 잘 먹었는데 소가 없으니 밭에서 말려 다 태운다. 함부로 태우다 걸리면 큰일 나기 때문에 몰래 살짝 태운다. 빠짝 말리면 연기도 안 나고 잘 탄다.
통장하는 동네 형한데 왜 소를 키우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개정된 축산법인가 뭔가 하는 법 때문에 예전처럼 농가에서 소 한두 마리를 키울 수가 없다고 한다. 분뇨 처리 냄새 방지 등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잡초 이야기하다 소 이야기로 빠졌네.ㅎ 검정 비닐 위에 동그런 구멍을 뚫어 작물을 심는다. 미리 구멍이 나있는 것도 있어 편리하게 활용한다. 진짜 농부들은 그 비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늘을 뽑아낸 그 동그란 자리에 참깨를 심어 가꾸고 옥수수 대를 쳐내고 메주콩을 심는다. '간헐적 농부'인 나는 그 심는 시기를 놓쳐 그냥 비워두기 일쑤다. 동그란 그 자리에 농작물 대신 풀이 자란다. 거름 덕분에 풀의 자태가 참 좋다. 친구가 놀린다고 "니 풀을 키우나" 한다. ㅎㅎ
아, 간헐적 농부?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가끔 농사짓는 흉내를 내는 농부인 자신을 '간헐적 농부'라 했다. 그 말이 마음에 들어나도 나도 초보농부 가짜농부 이런 말 대신 '간헐적 농부'라 하기로 했다. 어째 딱 어울리지 않나?
장마 기간에 무섭게 자라던 풀도 무더운 여름 땡볕에 맥을 못 춘다. 이런 풀들을 제거하면 풀과의 전쟁은 고비를 넘긴다. 그 기세 좋던 바랭이도 더 이상 번지지 않고 잡아당기면 뜯어져 나온다. 내년 여름까지는 바랭이 걱정 안 해도 된다. 강아지풀도 마찬가지다. 명아주 동방삭이 이런 풀은 제거하기 아주 쉽다. 쉽게 뽑힌다. 커버린 명아주는 베어버리면 된다. 은근슬쩍 번지는 환삼덩굴 이 친구는 마음에 안 든다. 이름에 삼이 들어 약재로 이용된다고 하는데 한번도 이용해 본 적은 없다. 잔 가시가 줄기에도 잎에도 있어 피부를 스치면 따갑다. 약을 발라도 며칠 간 쓰리다.
어쨌든 이 8월에 잡초와의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전쟁이 마무리 된다. 가을까지는 소규모 전투가 있을 뿐이다. 기온이 내려가면 풀들도 내년 봄 전투 준비를 한다.
곧 거름 내고 땅 일구어 가을 농사 준비해야 한다. 무더위가 동남아 어느 지역 같아서 걱정이다. 김장배추 시금치 파 갓 겨울초 마늘 등 대충 이런 작물을 심을 예정이다. 배추는 나눠 먹게 좀 넉넉하게 심고 지난해 맛나게 먹었던 풋마늘도 좀 늘려야겠다. 9월에는 손녀가 고구마 캐러 온다는데 벌써 가슴이 뛴다.
잠자리가 보인다. 그것도 떼를 지어 날아다닌다. 붉은 색이 보이니 고추잠자리다. 가을이 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