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산에 왔다! 보성 오봉산이야!
2013년 1월 25일
쇠똥구리
득량남초교 입구에서 버스를 내렸다.
옆에 ‘朝陽조양마을 해평 3구’이라 새긴 큰 조형석도 눈에 들어온다. 득량만의 바다위로 들어오는 아침 햇볕을 제일 처음 맞이하는 마을이라선가?
어제 산에 같이 가자했으나 같이 할 수 없었던 친구가
‘마을 뒷산 같이 따뜻한 산이야. 잘 다녀와’ 하는 말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가볍게 다녀오리라 생각하고 온 산이다. 산의 높이도 324m라 하고,...
그런데 그 예상이 잘못되었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바다를 막아 논으로 만든 득량만 해평들에서 바로 산에 오르기 때문에 초입부터 가파른 비알이다. 어렸을 땐 이런 비탈을 비알이라 불렀었다.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 몸이 후끈해지고 머리에서부터 땀이 난다. TV에서 추워진다고 호들갑을 떨기에 얇지만 내의를 입었더니 더 그렇다.
조금 오르니 왼쪽으로는 가파른 절벽이고 그 바로 아래 해평들이 보인다. 바다를 막아 만든 논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지금은 보리가 자라고 있어 겨을이지만 조금 푸르스레하다. 저 멀리 산 밑의 집들과 어울려 아주 평화롭고 또 풍요롭게 보인다.
이 넓은 들에서 많은 식량을 얻을 수 있어서 득량得糧이라 했다고 우리 산행대장이 귀띔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득량만의 모습은 작은 섬들과 아침 햇빛과 어울려 그 멋스러움을 한껏 뽐낸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스러울 수가?!’
흠뻑 취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겹겹이 산이다. 그 밑의 저수지 하나는 깊은 산 속의 호수처럼 맑은 청록의 빛을 띠고 있어 신비롭고 아름답다.
어느 누가 어떤 기원을 담아 쌓았을까?
능선 작은 바위봉우리 위에 정성들여 쌓은 돌탑이 많이 서 있다. 그 돌탑들이 봉우리뿐만 아니라 비알에도 또 곳곳에 있어야 할 곳엔 빠지지 않고 서 있다.
그 정성스러움에 취해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갑자기 전화에서 어제 그 친구가 지금 어디냐고 묻는다.
‘나, 지금 산에 왔다! 보성 오봉산이야!’
이 말은 나도 모르게 기쁨에 차서 낼 수 있는 최고의 감탄사인 셈이다. 이 오봉산에 오길 참 잘했다.
바위로 이루어진 능선 길을 따라 조금 걷다 옆을 보니 하늘을 쪼고 있는 형상의 비위가 보인다. 하늘로 나르려다 뜻을 이루지 못 하였나?
조새바위란다.
조새바위 옆에는 운동기구도 설치해 놓았다. 조금 덜 어울리는 것 같지만 회전판 위에서서 허리를 돌리는 여유를 부리는 일행도 있다.
‘정신없이 앞사람의 궁둥이만 보고 따라가지만 말고 두루 산을 구경하면서 여유 있게 뒤에 떨어진 일행도 살피면서 가라고 설치한 것 같다’는 회장님 말씀에 ‘아, 그렇구나!’ 했다.
가파른 오르막길엔 움직이는(?) 사다리도 있다. 조금은 위험하게 보이지만 조심스럽게 올랐다.
‘회장님! 이 움직이는 사다리는 무엇을 뜻하지요?’ 라 물으면
‘아, 그것도 몰라?’
‘자칫 넘어질 수 있으니 안전을 살펴 조심스럽게 오르라는 뜻이지?! 쯧쯧!!!’
하실 것 같다.
아침을 빨리 먹어서인가? 벌써 배가 고프다.
10시 조금 못되어서 오르기 시작했는데 지금 몇시나 되었지?
칼바위에 가서 점심 먹으면 되겠다고 하면서 옆 친구 초콜렛을 하나씩 건넨다.
‘그대여, 시의원에 나오면 찍어줄 껴!’ 누군가 그러고는 호탕하게 웃는다.
돌탑봉우리를 또 넘으니 칼바위가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큰 바위봉우리 하나가 갈라진 듯, 갈라진 바위 면이 아주 칼로 자른 듯 날카로워서 붙인 이름인가보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입을 벌리고 있는 두꺼비를 더 닮았다. 참 크기도 하다. 그 바로 아래에는 큰 바위조각들이 떨어져 쌓여 자연스럽게 굴도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오봉산 정상을 향했다.
‘오봉산 정상’이라 쓰인 정상석을 안고 사진을 찍고, 사방을 둘러보니 참으로 아름다웠다. 특히 산에서 보는 득량만의 바다 풍경, 그 너머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고흥 팔영산 등이 어울려 이곳이야말로 진정 선경이랄 만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려오는 길,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백바위(2.5km)로 가는 길은 나중에 가기로 하고 용추폭포를 향해 내려갔다. 폭포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래에 폭포가 있는 듯하여 바로 내려가는데 백바위에서 내려오는 길과 백바위 2.7km라는 이정표와 만났다.
한 줄기로 내려오다가 앞에 버티고 앉은 바위에 부딪혀 여러 갈래로 퍼져 내려오는 용추폭포의 모습이 산과 어울린다. 아주 멋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2시 조금 넘은 시각, 산행대장의 안내로 버스를 타고 강골마을로 향했다. 강골마을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조금전 오봉산을 오르는 능선에서 왼쪽으로 저 멀리 평화롭게 내려다 보였던 산 밑의 마을 중 하나가 이 강골마을이었단다.
북쪽과 서쪽으로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한 이곳, 앞으로는 넓은 해평들이 펼쳐지고 또 멀리 오봉산도 보인다.
강골마을은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로 이용욱 가옥 이금재 가옥 등 3채의 한옥과 열화정悅話亭이라는 정자가 있어 역사적·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란다. 열화정을 보면서는 자연을 그대로 이용한 담양의 소쇄원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 앞의 이용옥 가옥에 사는 한 후손의 안내로 이들을 자세히 둘러볼 수 있었다. 돌아 나오는 길, 어느 초가집에선 조청을 포장하고 있었다. 아주 예쁜 여인네가!
간척지에서 생산되는 쌀눈이 섞인 쌀을 이용하여 만든 강골 쌀눈 조청과 강골 쌀눈 엿이 아주 유명하단다. 엿은 어디서 만드는지 보이질 않는다. 손이 많이 가서 지금은 만들지 않을까? 자세히 여쭈어볼 걸 그랬다.
한 달여 만의 등산이 아주 즐겁고 보람 있게 끝나게 됨을 감사한다.
※ 뉴스
2012년 11월 29일
고즈넉한 옛 건물에 다양한 근·현대 생활상을 간직한 전남 보성군(군수 정종해) 득량면 오봉4리 강골마을이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제5호 기록사랑마을’로 지정되어 행사를 가지다.
보성군과 국가기록원 간 ‘기록문화 확산 및 활성화를 위한 국가기록정보 공동 활용 교류 협약식’이다.
기록사랑마을운영위원회에서 수집ㆍ발굴한 이용욱 가옥의 1900년대 전・후반 소작증과 소작대장 등 고문서, 증조부 감찰기록, 이식래 가옥과 아치실댁의 각종 영수증, 농사일기, 고 이중재 의원 생가의 선거 기록물 등 생활기구와 농기구 500여점을 전시ㆍ보관하고 있다.
정종해 보성군수는 "강골마을이 기록 사랑 마을로 지정되어 지금보다 더 잘 알려지고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와 전통이 공존하는 마을로 가꾸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경국 국가기록원장은 "이번 기록사랑마을 지정은 전라남도와 보성 지역의 중요 기록물을 지속적으로 보존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기록물에 대한 보존 처리 및 지원을 해 나가므로 지역 기록문화의 창달에 앞장서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국가기록원은 민간 기록물의 관리 기반을
2008년 제1호 기록사랑마을로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동8리 함백역,
2009년 제2호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파주마을,
2010년 제3호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마을,
2012년 제4호 경상북도 포항시 기북면 덕동마을이 기록사랑마을로 선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보성 강골마을의 ‘기록사랑마을’ 지정은 호남지역에서 처음이다.
뿐만 아니라 중요 민속자료 제162호인 ‘열화정’과 이금재씨 가옥(제157호), 이용욱 가옥(제159호), 이식래 가옥(제160호) 등 고즈넉한 엣 건물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