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행 하셨습니까? ♤
박 상 인
“추행”이라니? 이 무슨 해괴망측(駭怪罔測)한 망발인가? 하지만 잠시 진정하시고 우선 우리나라 서민들의 인사말을 살펴보자. “밥 먹었느냐?”는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이 남긴 상흔이고. “밤새 안녕?”은 일제강점기 혹은 해방 전후와 6. 25를 거치면서 혼탁한 이념과 사상의 틈바구니 속에 민초들의 수난이나, 호환(虎患) 등등의 산짐승들의 피해가 모두 어두운 밤사이에 일어난 결과 생긴 인사말이다. 봄철에는 “이앙(移秧=모내기)했느냐”를 묻고, 물론 가을에는 “가을걷이 했느냐?”가 농사짓는 사람들이 주된 인사이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이면 반 농사라는“짐장(김장) 담궜느냐?”가, 한 발로 밟아 U자 모양의 굵은 철사가 무수히 거꾸로 박힌 둥근 원통을 톱니바퀴로 돌려 여기에다 볏단의 이삭을 대어 이삭을 터는 기계, 소위 족답탈곡기(足踏脫穀機)로 타작을 한 볏짚으로 솜씨 좋게 이엉이며 용마름을 엮어 지붕에 새 옷을 입히는 지붕가리 즉 “개초(蓋草. 改草)했느냐?”도 개절에 따르는 인사말이다. 그 아름다운 곡선, 황금색 초가지붕은 70년대 새마을 물결에 밀려 자취 감춘지 오래전이나 지금 몇몇 국가지정 민속마을에서만 이벤트로 지붕갈기 행사를 하고 있다. 새 볏짚으로 지붕을 두툼하게 덮어야 추운 겨울을 따스하게 나고 다음해 장마철에도 빗물이 새지 않게 또는 서늘하게 나게 된다. 물론 새해 인사는 “과세 편히 하셨습니까.” 이다. 그리고 이런 인사말 중에는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분명 “추행 하셨습니까?” 도 있었다.
추행이란 무엇일까? 세상이 어지럽고 법은 비례하여 그물코를 더 좁혀가는 시대이다. ‘추행’, 바로 국어사전에도 명시된 더러울 추(醜)자로 시작되는 지저분한 행동, 앞에 성(性)자가 따라붙는 말을 연상할 수도 있다. 지금 내가 이 글 머리에 묻는 추행은 가래나무 추(楸)자에 갈 행(行)으로 표기하는 그런 추행(楸行)이다.
우리는 옛날부터 조상님들 무덤가에 소나무. 잣나무 등의 상록침엽수들은 물론 몇몇 낙엽 활엽수도 함께 심었다는 기록이 나온다.(정조 실록-정조22년.4. 25 조) 즉 조상 산소 언저리에 도래송이라는 소나무만 심은 게 아니라 키 쭉쭉 건강하게 잘 자라는 가래나무도 심어서 돌아가신 조상의 덕을 추모했던 것이다. 그래서 자연 조상 산소 자리에는 가래나무가 많았다. 실제로 수원화성 융건릉 주위에서 확인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조상의 선산을 가래나무 아래 즉 추하(楸下) 하고 그 선산을 찾는 일, 찾아 돌보는 일을 추행(楸行) 한다고 했다. 이 추행하는 시기와 목적은 이른 봄 한식 청명 때 성묘 가토하는 일 이며, 가을 추석 전후하여 여름 장마와 홍수에 산소의 훼손을 점검하고 그사이 무성히 자란 잔디를 깍고 잡초와 덩굴이 자란 것을 제거 하는 소위 벌초 하는 것도 넓은 뜻에서 추행이다. 음력 7월, 지금이 바야흐로 벌초 추행 하는 달이다. “추행 하셨습니까?” 지금은 사전에도 겨우 남았을 어휘이지만 아주 절묘한 표현이다.
이 가래나무를 나타내는 한자말에는 추(楸) 외에 재(梓) 등이 더 있다. 이 가래나무 재(梓)자는 우리와도 인연이 있다. 중국에서 죽은 황제 무덤을 만들 때 쓰는 관을 바로 재궁(梓宮)이라 하는데 바로 가래나무로 만든 관이란 뜻이다. 물론 세자의 관은 재실(梓室)이라 한다. 우리나라는 왕의 주검에 관으로 쓸만한 가래나무가 흔하지 않은 터라 지름이 큰 소나무 그 중에서도 나무을 켜면 속살이 누렇게 보이는 소위 황장목(黃腸木)이란 소나무 관을 임금님 관으로 썼으나 이름만은 여전히 재궁이라 했다. 목재로서 가래나무는 지금도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월너트(Walnut)라고 하여 티크(Teak), 마호가니(Mahogany), 자단(Rose wood) 등과 함께 최고급 가구제로 친다.
가래나무를 말할 때 그 형제쯤으로 가까운 호두나무를 뺄 수가 없다. 호두나무는 원산지가 중국 티베트 지방이란 설도 있고 혹은 2 천 여 년 전 한 무제 때 지금 이란 이라크 등지 중앙아시아 파견 갔던 장건(張騫) 이란 사람이 가져와 중국에 전파했다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부터 약 700여 년 전 고려 말 충숙왕 때 을사오적같이 나라를 원나라에게 넘기려 시도 했던 역신 유청신(柳淸臣)이란 자가 천안 부근 광덕사와 자기 집에 심은 것이 그 시초이란 기록이 있다. 열매가 오량캐 나라 (胡)에서 온 복숭아(桃) 닮았기에 호도(胡桃), 호두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가래 열매는 추자(楸子)라고 한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