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늘 깨닫고 있지만 딴 데 쳐다봐…번뇌를 보물로 여기죠”
정영재2024. 5. 11. 00:02
금강스님에게 듣는 부처님오신날 의미
서울 조계사 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안에 부처님오신날 연등제작 경연대회 입상작을 전시해 놨다. 그 앞에서 금강스님이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손가락 하트를 해 달라고 하자 스님은 “우리는 사진 찍을 때 손가락 하트 대신 연꽃을 상징하는 손 모양을 만듭니다”라며 웃었다. 김상선 기자
불기 2568년 부처님오신날(5월 15일)을 일주일 앞둔 9일, 서울 견지동 조계사는 말 그대로 야단법석(野壇法席)이었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색색의 연등이 걸렸고, 부처님오신날 행사와 연등행렬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야외에서 크게 베푸는 설법의 자리’와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떠들썩하고 부산스럽게 구는 것’을 의미하는 야단법석은 불교 용어다. 이처럼 무심코 쓰는 말에도, 우리네 삶의 곳곳에도 불교는 스며들어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불교가 앞으로 경건함, 진지함뿐 아니라 청년들에게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선(禪) 명상 프로그램’을 올해 본격 개발해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불교계에서 템플스테이와 선 명상을 가장 먼저 도입하고, 지금도 열정적으로 보급하고 있는 주역이 금강스님이다. 쇠락한 천년고찰 미황사를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로 살려낸 스님은 참선수행-참사람의 향기, 산사음악회, 괘불제(掛佛祭)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2021년 미황사 주지 소임을 끝내고 현재는 중앙승가대 교수, 조계종 교육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한 참선마을(경기도 안성), 원명선원(제주)에서 일반인을 위한 참선수행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조계사 경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금강스님을 만나 이 시대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들었다.
Q : 7박8일 집중 참선 프로그램인 ‘참사람의 향기’를 지금도 하고 계신가요.
A : “안성 참선마을에서 월 1회 진행합니다. 인원은 20명으로 제한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제가 한 사람당 30분씩 개인 면담을 하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을 모시지 못합니다. 요즘은 퇴직한 뒤 앞으로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는 분들이 많이 찾습니다.”
안성·제주서 일반인 대상 참선수행 진행
금강스님이 미황사 주지로 재직할 당시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참선 체험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Q : 프로그램은 묵언 수행이 기본이라면서요.
A : “초보자가 수행을 하려면 게으름과 싫증이 올라와서 쉽지 않습니다. 함께하는 도반(道伴)이 있으면 큰 힘이 되지요. 그런데 함께 있으면 자기를 표현하려고 하고 나를 알아달라는 몸짓을 하게 됩니다. 내면으로 마음이 향해야 자기 공부를 할 수 있는데 또다시 밖으로 향한단 말이죠. 묵언을 하면 함께 있지만 혼자 있는 셈이니까 자신을 보는 내적인 힘이 만들어집니다. 3일째 정도 되면 자신의 문제가 또렷해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때 면담을 하면 제 방을 나오면서부터 얼굴 표정이 바뀐다고 합니다. 문제가 풀어지는 시점이죠. 그전에는 고민만 하다가 그 뒤부터는 수행하는 모드로 바뀌게 됩니다.”
Q :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한 시대지만 사람들은 빈곤을 느끼고,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습니다.
A : “다들 그래요. 일은 어렵지 않은데 관계가 어렵다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데, 내 경험·지식·정보의 틀 안에서 상대를 보고 판단한단 말이죠. 아버지는 이래야 돼, 교사는 이래야 돼, 선임은 이래야 돼. 심지어 저를 만나도 기대치에 못 미친다며 실망하고 상처받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무한한 변화 가능성이 있는 존재란 말이죠. 내 틀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보면 한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됩니다.”
Q :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A : “나 한 사람이 있으려면 아버지, 어머니가 있어야 했죠. 이분들이 굴곡 심한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아남았습니까. 또 그분들이 있으려면 그 위에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있어야 했죠. 그분들은 더 엄혹한 시대를 살아냈어요. 그 중 한 명만 빠져도 ‘나’라는 존재는 없는 겁니다. 그러니 생물학적으로만 보더라도 한 존재는 얼마나 귀하고 신비로운 겁니까. 햇살 한 줌 비치는 것도, 빗방울 하나 떨어지는 것도 생각해 보면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죠. 그걸 깨닫게 되면 무한히 감사하게 되고, 순간순간 기쁘게 살 수 있어요.”
스님은 조선시대 서산대사의 직계 제자인 소요대사의 시를 소개했다.
箇箇面前明月白 (개개면전명월백)
人人脚下淸風吹 (인인각하청풍취)
打破鏡來無影跡 (타파경래무영적)
一聲啼鳥上花枝 (일성제조상화지)
개개의 얼굴이 밝은 달처럼 환하고
사람마다 발 아래 맑은 바람 불고 있네.
거울마저 깨뜨리니 흔적조차 없어라.
한소리 새 울음에 가지 위에 꽃이 피네.
스님은 이 시에 대해 “선(禪)을 통해 자신을 신뢰하고, 근본 마음 상태로 되돌아가면 어느 곳에서 어떠한 대상을 만나도 비교하는 마음, 추측과 상상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됩니다”라고 풀어줬다.
거울 속에 있는 모습은 내가 기대하는 상대방의 모습이다. 그걸 깨뜨리면 내가 만나는 사람의 발 아래 불고 있는 맑은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사람마다 정성스럽게 노력하는 걸 볼 줄 알고 기대하는 바를 다 깨버리면, 만나는 사람을 꽃피우게 할 수 있다는 거다.
Q : 중앙승가대 교수로서 학인 스님들한테 어떤 공부를 강조하시나요.
A : “다른 사람을 고통에서 해방시키려는 자비심을 갖도록 가르칩니다. 출가를 하면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은 빼고 김 행자, 이 행자라고 부릅니다. 사미계를 받으면 이름도 없어지고 법명만 부르죠. 개인이 없어지고 개인을 뛰어넘으면 세상 모든 것과 다 연결된 존재가 됩니다.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히면 온 신경이 그리로 가는 것처럼 세상에 아픈 곳이 있으면 마음이 그리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가서 도울 수 있으려면 수행을 해야 합니다. ‘깨달음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내가 깨달아야 되겠구나’ 하는 원력(願力)을 세우라고 합니다.”
Q : 깨달음이 있은 후에야 남을 돕는 보살행이 가능한가요.
A : “살아 있는 동안은 언제든지 도와야 하지요. 깨닫고 난 뒤에? 우린 늘 깨닫고 있어요. 그런데 딴 데 쳐다보고 있는 겁니다. 번뇌를 보물로 여기는 거죠. 자기의 고요한 마음, 평화로운 마음을 보배로 여기는 게 아니라 다른 데 어떤 평화가 있나 해서 무기 개발을 하죠. 직책·돈·학벌·가문 이런 걸로 무기를 삼잖아요. 코드만 바꾸면 됩니다. 욕심의 코드로 보면 다 욕망인 거고 지혜의 코드로 보면 서로서로 돕고 있는 거죠.”
Q : 최근 몇몇 명망 있는 스님들이 안 좋은 일에 연루되는 일이 있었는데요.
A : “지금은 완전히 열려 있는 사회잖아요. 현대사회에선 종교인들에게 매우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합니다. 종교가 그 역할을 하려면 도덕적인 부분에 철저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 종교는 도태되고 그동안 빛나던 것들도 다 허물어지게 돼 있습니다.”
집착함이 없는 것이 무소유라 생각
Q : 법정스님 입적 전날 말씀을 나눌 정도로 인연이 깊었다고 들었습니다.
A : “법정스님과 인연은 송광사 스님들이 더 깊겠죠. 미황사가 전남 해남에 있는데 스님 고향이 해남이에요. 송광사 계실 때는 남도가 늘 고향과 같은 곳이고 따뜻하고 꽃도 빨리 피고 해서 좋았지만 강원도 가신 뒤로는 꼭 봄 되면 남쪽으로 찾아오셨어요. 1년에 한 번은 미황사에 오셨죠. 스님은 글과 말과 삶이 일관성 있는 언행일치의 표본입니다.”
Q : 법정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의 의미는 뭐라고 보십니까.
A : “저는 집착함이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늘 떠나는 마음. 글도 쓰고 나면 내 것이 아니잖아요. SNS에 글 올려놓고 누가 얼마나 읽었는지, 좋아하는지 아닌지 관심을 가지면 떠나보낸 게 아니잖아요. 어제를 떠나야 오늘을 살 수 있어요. 어제를 소유하고 있으면 오늘 못 사는 거죠.”
Q : 오늘 부처님이 한반도에 오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 것 같습니까.
A : “이 시대에는 부처님이 한 모습으로 오지 않고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실 것 같아요. 그러니까 26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 같은 분이 다시 출현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좀 거두고, 각자가 다 부처님이 됐으면 좋겠어요. 부처님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마음을 쓰면 세상이 좀 더 밝아지겠죠. 부처님이 오신다면, 열반하시기 전 유언처럼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라’고 하시겠죠.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정영재 문화스포츠에디터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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