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anuary 24, 2011
Justin
제목: 애린 (둘째권)
저자: 김지하
출판사: 실천문학사
내용:
단 한 번 울고 가
자취없는 새
그리도 가슴 설렐 줄이야
단 한순간 빛났다
사라져가는 아침빛이며
눈부신 그 이슬
그리도 가슴 벅찰 줄이야
한때
내 너를 단 하루뿐
단 한 시간뿐
진실되이 사랑하지 않았건만
이리도 긴 세월
내 마음 길 양식으로 남을 줄이야
애린
두 눈도 두 손 다 잘리고
이젠 두 발 모두 잘려 없는 쓰레기
이 쓰레기에서 돋는 것
분홍빛 새 살로 무심결 돋아오는
애린
애린
애린아.
느낌/생각:
나는 김지하라는 시인이, 따분한 시인이라고 생각했다. 그 몸집이며 생김이며 눈빛이며 모두가 시인답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우연히 이 책을 읽고는 이제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니었다. 시인이 괜히 시인이 아니었다. 하늘 보고 땅을 보고 지나가는 길에 본 가게며 소줏잔을 봐도 시가 나와서 시인이었다. 더구나 섬세하고 오히려 여성적이기까지 하다. 시구 하나하나가 외롭다, 하고 소리치고 보고싶다고 중얼거리는 것 같다.
맘에 드는 시가 이 뿐만이 아니다.
노을은
흰 벽 이에서 더는 붉게 타지 않고
하늘은
흰 손수건에 이젠 푸르게 물들지 않는다.
정이월 뜨락에
하우스에서 옮겨 온
활짝 핀 튤립꽃을 보다
소름끼쳐 너무 무서워
문 닫아버리고
문고리 걸어 몇 번이나 다시 잠그고
솜이불 속에 숨어 식은땀 흘리며
몇날 며칠을 앓았던가
거리로부터는 지축 울리는 쇳소리 경음악소리
플라스틱이 플라스틱 스치는 서쪽 바람소리
싸우고 헤어진 그 젊은애 그 번들대던 눈
입 속에서 콧 속에서 퍼지는 사리돈 약내
시퍼런 동백잎 위에 파열하는 은빛 강철의 햇살
아아
여린 살갗으로는 이제
공기 속에마저 더는 설 수 없구나
애린
애린아
너는 지금 어디 있느냐
하는 글도 맘에 쏙 들기는 매한가지다. 튤립 보고 소름끼쳐 문 닫아걸고, 문을 잠그고, 식은 땀 흘리며 몇 날 며칠을 앓는 그 감정이 여실히 전해오기 때문이다. 내게 애린, 애린아, 너는 지금 어디 있느냐 하는 말은 앓는 사람이 내는 흰소리같이 들린다. 자기 감정을 말 안하고도 말 하는 셈이다. 보고 싶다 만나고 싶다 말하는 대신에 내가 이리 약하다고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나는 처음 네 편의 시가 맘에 든다. 시집의 시가 다 시인의 맘을 보여주고 있지만서두 앞의 네 편은 개중 가장 드러내놓고 외롭다 보고싶다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뒤의 시에서는 대부분 자조의 맛이 너무 난다. 물론 내 생각이겠지만 자조와 불안정의 맛이 너무 난다.
그에 비해 앞의 네 편은 슬프면서 아련하고 또 드러낼 만큼 드러내고 가릴 만큼 가렸으니 괜히 트집 잡을 거리도 없고 또 사실로 내 맘에 징하게 울린다. 끝의 네 편이 또 그렇게 맘에 드는 건 그냥 우연일까. 맘에 드는 시 몇 편을 더 옮겨 적고 끝마친다.
외롭다
이 말 한 마디
하기도 퍽은 어렵더라만
이제는 하마
크게
허공에 하마
외롭다
가슴을 쓸고 가는 빗살
빗살 사이로 언듯언듯 났다 저무는
가느란 햇살들이 얕게 얕게
지난날들 스쳐 지날수록
얕을수록
쓰리다
입 있어도
말 건넬 이 이 세상엔 이미 없고
주먹 쥐어보나
아무것도 이젠 쥐어질 것 없는
그리움마저 끊어진 자리
밤비는 내리는데
소경 피리소리 한 자락
이리 외롭다.
이제 나에게 오세요
문 열어 놨읍니다
한 스무 평쯤 될까요
한 서른 평쯤 될까요
라이타 여기 있고
술잔 저기 있읍니다
저기 있고 여기 있는 그이
이 세상에 사는, 아직도 살아 있는
전화로 가끔은 서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그래요
전화하시면 돼요
아니 하지 마세요
하지 않는 동안 생각하세요
그 긴 시간
고통받았던 그 긴 시간
그리고 내 시간.
첫댓글 어느덧 김지하의 시를 읽고 느끼는 청년이 되어가는구나......자신을 잘 돌아보고....많이 성숙한 어른이 되거라....삶이 실수 투성이이기도 하지만, 보다 가치로운건.....그 실수투성이 속에서도 피어오르는 사랑,그리고 꾸준함이 아닐런지,,,,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