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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당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요일 2:3-11)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4)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5)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6)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7)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8)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9)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10)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11)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서론
1.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의(定義)
요한일서 2장 3-11절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 대해 말해 주고 있다. 길거리에 서서 지나는 사람을 잠깐 붙잡고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는다면, 몇 가지 서로 다른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들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정의를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이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요 주님으로 믿는 사람을 말한다. 믿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으로써 그리스도인을 아주 간단하게 정의하셨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2. 분별의 어려움
1) 구원받은 자의 외양
믿는 사람임을 자처하는 자의 경우를 생각하면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인가를 정하는 문제가 좀 어려워진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고 어느 정도까지는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지만, 그들 중에는 그리스도인임을 사칭하는 자나 구원의 본질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자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사실은 진리를 알고 있지 못하다는 점 또한 명백해진다. 예를 들면, 요한일서 2장 19절에서도 그리스도인임을 주장했으나 결국은 그 교제 관계를 떠난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거짓 그리스도인(마 13:38/ "가라지"라고 표현됨)을 분별해 낼 수있는 한 가지 방법은 그들이 결국에 가서 기독교 신앙을 버린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들이 참 신자들 속에 함께 있을 때에는 그들을 구별해 내기가 어렵다.
2) 구원의 확신
구원받았는지의 여부가 의심스러운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어려움이 더 크다. 그들 중에는 의심을 가진 사람, 증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 안타깝게도 그들 중에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나타나 보이는 믿음만으로 구원받기에 충분한 믿음을 지녔다고 그릇되이 인정받는 사람도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실 그리스도인이 아닌데도 짐짓 그리스도인인 체하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1장 9-10절에서 베드로는 신자가 어떻게 자기가 구원받은 사실을 확신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이런 것(영적 성숙함의 자질들)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베드로는 구원의 「상실」에 대해서가 아니라 구원의 「확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구원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는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5-7절)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구원받았음에 대한 앎도, 확신도 없다. 자신의 삶에 경건한 일들이 나타남으로써 우리는 무언가가 우리 자신을 변화시켰음을 확신할 수 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정말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의문을 갖게될 수도 있다. 그래서 베드로는 구원받은 사실을 알고 안심할 수 있기 위해서 자신의 삶에 그러한 특징들이 나타나고 있는지를 확인하라고 촉구한다.
자신이 정말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가? 이는 중대한 질문이다. 성경은 우리가 참으로 구원받았는지를 보여 줄 수 있는 몇가지 확신의 요소들을 제공한다. 그 요소들은 객관적 확신과 주관적 확신이라는 각각의 제목하에 분류될 수 있다.
(1) 객관적인 확신
객관적 확신은 우리의 외부로부터 오는 것으로서, 성령께서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만들어 내시는 경건한 것들에 기초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베드로가 베드로후서 1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이다. 당신의 생활에서 그러한 면들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당신은 진정으로 구원받았음을 마음 속에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2) 주관적인 확신
주관적 확신은 우리의 내부에 있는 어떤 것, 즉 성령의 증거에 근거하고 있다. 전자가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후자는 눈에 보이지않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우리의 내적 확신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몇몇 구절이 있는데, 그 예로 다음 세 구절을 들 수 있다.
- 고린도후서 1장 12절 : 바울은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 했다. 바울의 말을 다시 설명하자면 이렇다."나는 내 양심의 증거 때문에 나의 삶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안다. 내 양심 속에 있는 무엇인가가 내 행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다고 알려 준다."
- 요한일서 5장 10절 :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내주하시며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그 증인은 바로 성령이시다. 그분은 신자가 받은 구원의 유효성(validity)을 증언하신다.
- 로마서 8장 14-16절 :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14-15절).
「아바」(Abba)란 "아빠"와 같은 말로 사랑이 듬뿍 담긴 표현이다. 이 말은 어린아이가 자기의 자애로운 아버지에게 말하듯 우리가 하나님께 이야기할 수 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16절은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하심 안에 거할 수있다는 확신을 주심을 말하고 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우리의삶 가운데 있는 성령의 내적 증거는 다른 사람에게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종류의 확증이 우리 자신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요한일서 2장에서 사도 요한은 객관적인 확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에 대한 눈에 보이는 증거, 곧 각 개인, 교회, 그리고 세상에게 대한 그리스도인된 증거는 바로 성령께서 당신의 삶 속에 만들어 내시는 태도와 행동들이다.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자기가 정말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의심이 간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보통 이런 질문을 제일 먼저 하곤 한다.
"당신은 경건한 삶에 전념했습니까? 당신은 규칙적으로 말씀을 읽고 있습니까? 기도시간을 갖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성령을 충실히 좇아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이런 질문들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자기가 신자라는 것을 확실히 믿을 수 있다. 왜냐하면 구원의 열매가 당신 삶에서 나타나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요한일서 2장 3-11절의 주제이다. 사도 요한은 자기가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 그것의 진위(眞僞)를 평가해 볼 수 있는 시험 방법 두가지를 제공한다.
진실을 밝혀 주는 두 가지 테스트
교리 테스트
(1) 당신은 그리스도를 시인하는가 ?
그리스도에 대한 한 사람의 믿음은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사람의 주장이 정당함을 확인해 줄 것이다. 「시인하다」(confess)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똑같은 것을 말한다"(to say the same thing)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교리 테스트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에 관해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똑같이 말하는가의 여부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이요, 하지만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점은 믿지 않소"라고 말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에 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똑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 요한일서 2장 22-23절 :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 요한일서 4장 2절 :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 요한일서 5장 1절 :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진정으로 구원받았느냐 하는 것은 곧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느냐 혹은 그 사실에 동의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2) 당신의 죄를 시인하는가?
그리스도인은 자기 죄에 관해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똑같이 말한다.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자신은 그리스도인이지만 자기 죄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한 말을 믿지 않는다.
- 요한일서 1장 6, 8절 :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만일 우리가 죄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 요한일서 1장 9-10절 : 9절은 만일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곧 용서받는 자가 되는 것이라고, 즉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10절은 또 말한다.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리라."
도덕 테스트
(1)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
요한일서 2장 3절은 말한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2) 당신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가 ?
요한일서 2장 10절은 말한다.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요한일서 2장 3-11절의 논점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인가의 여부에 대한 객관적이고 도덕적인 테스트 즉 사랑과 복종에 대한 테스트이다. 요한일서 2장 18절 말씀으로 보건대 요한의 편지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교사, 혹은 "적그리스도"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요한은 수신인들에게 순진하게 그들의 주장을 믿지 말고 "영들을 시험하라"(4:1)고 권면한다. 그 교사들의 삶에서 순종과 사랑을 볼 수 있다면 그러한 자질들은 그들의 영적 삶을 증거하는 것이 될 것이다.
교훈
1. 복종의 전제(3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1) 주님을 안다는 확신
1장의 "빛 가운데 행하면"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7절)라는 구절은 2장 3절의 "저를 아는 줄"이라는 구절과 동의어이다. "알다"(know)라고 번역된 헬라어 동사는 「기노스코」(gin sk )이다. 이 동사의 현재 완료 시제를 강조하여 이 구절을 다시 해석하면, "이로써 우리는 우리가 이미 그분을 알아 왔음을 계속해서 알게 된다"라고 할 수 있다. 한 그리스도인이 이미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지식」이 「구원」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알 수 있다고 요한은 말한다. 순종은 당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알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없다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다"고 사도요한은 말한다.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알듯이 우리가 그분을 진정으로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있는가의 여부이다. 순종은 확신을 낳는다. 의심을 품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대개 죄악과 관계를 맺고 있다. 죄악은 의심을 키우기 때문이다.
2) 계명을 지킨다는 것
(1) 의미
「지키다」(keep)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주의깊게, 엄격하게 복종한다"는 개념을 담고 있다.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난 이걸 해야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망치로 얻어맞을지도 모르니까 !"라고 말하게 만드는 외부적인 압력에 의해 복종하는 것은 참된 순종이 아니다.「지킨다」는 말은 단순히 계명에 순종하는 행위 그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께 순종하고자 하는 거룩한 욕구이다. 순종이란 부정적인 두려움이라기보다 사랑으로 영감되어서 마음의 가장 큰 바램이 된 것을 말한다. 당신은 순종의 정신으로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헨리 알포드(Hen-ry Alford)의 「헬라어 성경」에는 "지키다"라는 말이 "무언가 귀중한 것을 보호하는 것"이라 정의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마음 속에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큰 바램이 있을 때 자기가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본문 말씀이 현재 시제로 된 것은 우리가 계속적으로 그분의 계명을 지켜야 함을 함축적으로 말해 준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는 안전 장치로 무장하는 습관은 곧 구원받았다는 표시이다.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히 무시하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주장을 훼손시키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계명"을 나타내는 말로 모세의 율법을 가리키는 헬라어 「노모스」(nomos)를 쓰지 않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의미하는 「엔톨레」(entole)를 썼다. 우리는 3절의 "그의"라는 대명사가 가리키는 분, 즉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모세 율법에 찬동하는가를 보아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지키는가를 보아서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밝혀 낼 수가 있다. 요한은 "우리가 모세 율법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만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존중하기를 바란다면 그것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의 지식을 갖게 된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한다. 그분의 권위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이 그분께 복종할 것은 기정 사실이다.
(2) 어느 정도까지 지켜야 하는가?
계명을 계속하여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그분의 계명을 계속 지키는 사람이다(3절).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그분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라 하겠다. 신약성경은 거듭나지 않은 자는 "불순종의 아들들"(엡 2:2)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불순종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 인간의 본성에 관한 강의를 들을 필요는 없다. 당신의 자녀들만을 보아도 인간의 그런 생활 방식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베드로전서 1장 14절은 거듭난 자를 "순종하는 자식"이라고 정의한다. 순종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3) 계명을 지킨 예
만일 순종적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면, 도대체 자기가 지금 충분히 순종하고 있는지 아닌지 궁금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절대 순종이라는 것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가? 당신은 법적인 복종과 자발적인 복종 사이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자발적인 복종이 바로 따뜻하고 진실한 복종의 정신을 보여 주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바램에 어울리는 것이다. 그러한 복종은 비록 결함이 있다 해도 여전히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며, 그 흠들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써 깨끗이 지워진다. 우리 주님을 좇는 복종은 율법의 제한을 받는 법적 복종이 아니라 사랑의 향기가 나는 자발적인 복종이다. 그것은 두려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우애에 근거한 것이다.
- 요한복음 14장 : 승천하시기 전, 예수께서는 "자, 이제 나는 떠난다. 내가 없을 때 한 가지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너희들은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었다. 만일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제자들은 그 이후의 삶을 영적인 중풍병을 앓으며 보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15절)고 말씀하셨다. 주님께 순종하는 것은 율법이나 두려움과는 상관이 없다. 그것은 오직 사랑과만 관련이 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21, 23절).
- 요한복음 15장 :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10, 13-14절).
- 시편 116편 :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12절)라고 말하여 복종의 정신을 표현했다. 하나님은 절대적 완전을 기대하지는 않으신다. 그리스도인인 당신은 무언가 잘못을 저질러서 심한 징벌을 받고 구원을 잃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 살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복종하는 정신을 찾으신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비록 그 바램을 늘 실현할 수는 없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께 순복하려는 바램을 갖고 있다. 하나님은 그 점을 이해하신다.
2. 믿음을 가장하는 자(4절)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1) 본문 설명
"진리"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계명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그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나 그분의 진리를 갖고 있지 않다. 여기서 요한이 하는 말의 요점은, 그리스도인은 순종하고 비그리스도인은 순종치 않는다는 것이다. 비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주되심(lordship)에 순복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욕구를 자기 나름대로 채운다. 요한은 말하기를, 그들도 그분을 안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들은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2) 믿음을 가장하는 자들의 예
(1) 디도서 1장 16절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거짓 신자들은 도덕 테스트에서 낙제한다. 그들도 신앙고백은 하지만 실제 생활이 그것을 뒷받침해 주지 못한다. 불순종하는 태도가 그들의 그 같은 주장이 무효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2) 누가복음 6장 46절
예수께서는 무리들에게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고 말씀하셨다.
(3) 마태복음 7장 22-23절
심판 날, 크고 흰 보좌 앞에는(계 20:11-15)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3) 발각되는 위선
그리스도를 안다고 주장하면서 자발적인 복종의 정신이 그에 수반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모두 거짓말하는 자들이다. 요한은 영지주의자들, 혹은 그 같은 주장을 하는 그 외의 사람들의 위선적 가면을 벗겨낸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모든 죄값을 다 치르셨기 때문에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좋다"고 하며 은혜를 극단적으로 오용하는 도덕률 폐기론자들에게도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고 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순종하기를 바란다고 요한은 말한다. 하나님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만 나는 그들이 정말 그분을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하늘에 계신 그 큰 양반(the Big Man)만 아니었다면 오늘날 내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요"라고 하던 한 나이트클럽 주인의 말이 생각난다.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안다고 주장한다 - 하지만 그것을 시험해 보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일 경우가 많다.
3. 사랑 안에서의 온전함(5절)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누구든지"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이 말이 하나님과의영적 연합은 특정한 선발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영지주의라는 이단을 논박하기 때문이다. 말씀을 지키는 능력은 선택된 소수에게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다. "지킨다"는 동사에는 말씀을 계속적으로 지켜 보호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자발적인 복종의 정신을 가진 사람의 삶에는 그 사람 속에서 온전해진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헬라어 원전에서처럼 목적의 소유격으로 본다면 이 말은 복종함으로써 온전해진, 하나님을 위한 사랑을 언급하는 말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그분을 위한 사랑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
1) 본문 설명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복종을 통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분명한 사랑으로 드러난다.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감상(感傷)도 아니고 신비로운 체험도 아니다. 그것은 도덕적인 복종이다. 요한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2, 16).
사랑은 복종 가운데서 드러나며, 또한 사랑은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증거이다.
2) 예증
경건한 신앙고백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 공회의 일원이었고 이름은 사울이었으며 우리에게는 바울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이단 종파가 횡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분개했다. 그 종파의 중심 교리는, 몇 년 전 십자가에 달려 죽은 죄인임이 분명한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바울은 최초의 그리스도인 순교자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것에 찬동했었다. 그때부터 그는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행 9:1) 그리스도인들을 옥에 가두고 죽이는 것을 일삼았다.
어느 날 그리스도인들을 투옥하고 박해할 권리를 그에게 부여한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받은 특별 서류를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하나님께서는 그를 땅에 엎드러뜨리셨다. 다소(Tarsus)사람 사울은 "주여 뉘시오니까"(행 9:5)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에게 말하는 사람이 누구이든지 그 사람이 분명 자기보다 우월한 사람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사울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신 후, 겸손해진 그 박해자는 자신에게 어떤 일을 시키실 것인지를 물었다. 복종이 따르지 않는 기독교란 있을 수 없다. 주님의 주되심에 굴복하였을 때 바울이 맨 처음 생각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후에(롬 7장) 그는 술회하기를, 마음 속으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했다고 한다(22절).
좇아야 할 양식(6절)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라"(7절)
성경은 자주 우리가 따라야 할 원리와 모범이 되는 어떤 이를 제시한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를 좇고 있으므로 너희는 나를 좇으라고 고린도인들에게 말했었다(고전 11:1).
1. 본문에 대한 정의(定義)
요한이 "저 안에 거한다"고 했건 혹은 "저를 안다", "빛 가운데 행한다", "사귐이 있다"고 했건, 이는 모두 구원을 언급하는 말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본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 6절은 우리가 정확히 그분을 닮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닮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그분께 많은 의무를 지고 있다. "거한다"는 말은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 15장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한 그 특유의 용어로서, 사도는 참 가지는 포도나무 안에 거한다고 말한다. 바꿔 말해, 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의 생명력있고 생생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이 사신 것처럼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을 함께 나눈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그분처럼 살 수 있다. 그분께 능력을 부어 주신 바로 그 성령께서 우리 안에도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2. 예증
1) 그리스도의 겸손함에서
(1) 겸손에의 교훈
빌립보서 2장에서 바울은 "마음을 같이하여 나의 기쁨을 충만케하라"고 말한다. 바울은 빌립보인들이 다툼을 버리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2절) 품기를 원했다. 3-4절에서 그는 겸손해짐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그들에게 말한다."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하라"
겸손은 사랑을 키운다. 그는 그렇게 원칙을 가르치는 단계에서 그칠 수도 있었으나, 한걸음 더 나아가 편지의 수신인들에게 하나의 모본을 제시한다.
(2) 겸손의 모본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5-8절). 예수께서 보여주신 본을 보라. 그렇게 높은 곳에서 그렇게 낮은 곳으로 몸을 굽힌 사람은 없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겸손의 예 가운데서 가장 큰 본을 보여 주셨다.
2) 그리스도의 순복에
누구든 그리스도인임을 주장한다면 예수께서 사신 것처럼 살아야 한다고 요한은 말한다. "행한다"(walk)는 말은 한 사람의 생활 태도를 말한다. 당신의 생활 방식은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 그 같은 생활 방식은 하나님의 기준에 순종할 것을 요구한다.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순종적인 분이셨다는 것을 아는가? 그분은 모세 율법을 문자 하나하나까지 따르셨다. 그분은 메시야된 분으로서 지켜야 할 하나님의 규정에 순종하셨다. 요한의 복음서는 아버지의 뜻에 대한 그리스도의 순종을 강조한다.
- 요한복음 6장 38절 : 예수께서는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셨다.
- 요한복음 8장 29절 :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 요한복음 10장 18절 :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 요한복음 14장 31절 :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예수님의 온유한 순종은 우리가 각각의 삶에서 따라야 할 모본이다. 그리스도를 특징짓는 그러한 순종의 양태는 우리가 행해야 할 순종이기도 하다. 당신은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셨으리라고 생각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가르침(7-11절)
요한은 복종에 대한 일반 원리를 제시한 후, 7절에서 11절에 이르기까지 서로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구체적인 가르침을 준다. 도덕 테스트의 주요한 논점은 사랑하라는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당신은 사랑함에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할지도 모르겠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2장 37-40절에서 사랑함에 있어 가장 우선되는 일을 말씀해 주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킨다면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그리스도인 생활의 정수이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한다면 자동적으로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기에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 모두를 할 수 있다. 로마서 13장 8-10절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말한다. 이웃을 당신 자신처럼 사랑하고 있다면 이웃을 죽이지 말라거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이 필요하지 않다. 사랑은 그러한 것들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1. 계명(7-8절)
1) 옛 계명(7절)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여기서 "새롭다"(new)고 번역된 헬라 원어는 "때에 있어서의 새로움"을 의미하는 「네오스」(neos)가 아니라 "질에 있어서의 새로움"을 의미하는 「카이노스」(kainos)이다. 이 말은 닳아서 헤어진 것을 대체해 주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요한의 말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나는 전에 들어 보지 못한 새로운 어떤 것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나는 너희가 처음부터 - 너희가 복음을 들었던 최초의 때부터 - 들어 왔던 옛 계명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2) 새로운 의미(8절)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8절 말씀을 보면 7절과 대조되는 것처럼 생각된다. 옛 계명을 주고 있는 것이라 밝히고 난 후 요한은 이제 자신이 새 계명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그 계명들은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하나를 알면 나머지 하나를 확실히 아는 데 도움이 된다.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 예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다. 구약성경에서도 그렇게 하라고 신자들에게 교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34절) 사랑하라는 조건을 붙이셔서 그 계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그분께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심으로써 그 사랑을 직접 보여 주셨을 때 그 말씀은 새롭고 신선한 계명이 되었다. 서로 사랑하라는 구약 시대의 계명은 예수님으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은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인지의 여부를 알아 보는 데는 두 가지의 테스트가 있다고 했다. 그 하나는 교리 테스트(그는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자기 죄를 고백하는가?)이고, 나머지 하나는 도덕 테스트(그는 자발적으로 복종하려는 정신을 갖고 있으며 또한 형제를 사랑하는가?)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새 계명은 도덕 테스트의 일부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은 그리스도에게서 찾아 볼 수 있으며 또 우리에게서도 분명히 나타나야 한다고 요한은 말한다.
로마서 5장 5절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말한다.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교회 내의 새로운 기준으로 승격시키셨다는 의미에서만 새 계명이 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 또 우리도 그분이 하신 것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내주하시는 그분의 성령으로써 우리 안에 그 사랑을 심어 주셨다. 만일 당신이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말한다면 두 가지 질문을 하겠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복종의 정신을 갖고 있는가? 당신은 형제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는가? 이는 단순한 제안 사항이 아니라 참 신자의 삶에 꼭 있어야 할 자질들이다.
2. 대조(9-11절)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이 구절은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도 형제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지 않는 영지주의자들의 위선을 공박한다. 그들의 그런 행동은 그들이 아직 어두움 가운데 있음을 나타냈다. 그리스도인임을 주장하는 당신의 말은 사랑이 있는 삶으로 실증될 때에만 효력을 갖는다. 영지주의자들은 뽑힌 소수의 사람들만이 구원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고 믿었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들의 가상적인 우월성을 뽐내었다.
10절은 당신이 만나는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애정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그것은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향해 사랑의 정신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거짓 그리스도인("가라지")들은 그러한 종류의 사랑을 나타내지 않는다. 사실, 가라지들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오래 견디어 내지를 못한다. 결국 그들은 참 신자들에게 화를 내며 이들이 찬성하는 것이라면 모두 멸시한다. 그러나 참 그리스도인은 형제애를 귀히 여긴다.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어떤 곳을 가고 있는지 안다. 그는 빛 가운데 행하며,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복종과 사랑에 의해 증거된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어둠 속에 있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사랑이 없는 어두움의 영역 속에서 행하고 있다면 당신은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교리적인 면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서는, 그가 그리스도를 시인하고 자기 죄를 고백하는가를 보라. 그리고 도덕적인 면을 테스트해 보려면 그의 삶이 복종과 사랑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가를 보라. 자기가 정말 참 그리스도인인지, 아니면 구원받았다고 믿음으로써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의 마음을 검토해 보라. 예수님의 이 통찰력 있는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라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확인 질문
1. 그리스도인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를 내려 보라.
2.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인지 분별하기가 왜 어려운가?
요한일서 2장 19절 말씀으로 볼 때 거짓 그리스도인을 밝혀 내는 한 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3. 자기가 구원받은 사실을 확신하기 위해 베드로는 어떻게 하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하고 있는가?(벧전1:5-10)
4. 객관적 형태의 구원의 확신과 주관적 형태의 구원의 확신을 비교해 보라.
요한일서 2장에서 요한은 어떠한 형태의 확신을 다루고 있는가?
5.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데 대한 눈에 보이는 증거는 무엇인가?
6. 구원받았는지의 여부에 대한 교리적 측면의 테스트의 두 내용이 무엇인지 밝히고,
각 내용은 성경의 어느 말씀으로 뒷받침되는지 그 구절을 찾아 보라.
7. 마찬가지로 도덕적 측면의 테스트로는 어떤 질문들이 있는지 밝히고, 그것을 뒷받침해 줄 성경 구절을 찾아 보라.
8. 범죄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왜 자기가 구원받은 사실을 의심하는가?
9. "지킨다"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에서의 복종은 어떤 형태의복종인지 설명하라.
10. 법적인 복종과 자발적인 복종의 차이를 설명하라.
11.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요일 2:4)
12.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과의 영적 연합에 관해 뭐라고 주장하는가?
요한일서 2장 5절에서는 어떤 말로 그들의 주장을 논박하는가?
13. 하나님에 대한 우리 사랑의 본질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표현되어서는 안 되는가?
14. 그리스도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을 나타내셨을 때 바울은 어떻게 반응했는가?(행 9:6)
15. 성경은 먼저 원칙을 제시한 후, 그 다음으로 무엇을 주는가?
16. "저 안에 거한다" "저를 안다" "빛 가운데 행한다" "사귐이 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7.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처럼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18. 빌립보인들에게 주어진 가르침과 행동 양식은 어떤 것이었는지 밝히라.
19. 그리스도는 성부께 어떻게 순복하셨는가? 성경에 근거하여 대답해 보라.
20. 예수께서는 옛 계명에 어떻게 새 의미를 부여하셨는가?(요 13:34)
21. 요한일서 2장 9-11절에 기록된 위선은 어떤 것이었는지 밝혀보라.
원리에 대한 재확인
1. 어떤 사람이 구원받았는지의 여부를 검토해 보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누군가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 믿음으로써 자기를 기만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아는 참 지식을 갖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각종 회의(會議)를 통해 봉사할 사람을 택할 때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참 신자를 골라야 한다. 교회에서 초청 강사의 강론을 듣는다거나 라디오에서 어떤 설교자의 설교를 듣는다고 할 때, 그 사람의 주장과 그 사람의 생활이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종임을 실증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가 하는 말의 정당성 여부를 분별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교회가 거짓 교사들에게 내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계시켰다(행 20:28-30).
요한은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 4:1)고 편지의 수신인들에게 권했다. 진정한 신자인지의 여부를 알아 보기 위한 교리적, 도덕적 테스트로 어떤 질문들이 있는지 암기해 두라. 실상은 진리를 알지 못하면서도, 안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그대로 믿음으로써 잘못 인도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2.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철저한 자기 분석적 검토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냥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요한일서 3장 14-18절, 4장 7-11절, 19-21절 그리고 5장 1-3절 말씀을 묵상하라.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한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성경을 읽을 때나 목사의 가르침을 받을 때 당신은 그러한 진리하에서 행동하는가?
충족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어떤 일에 부딪칠 때 당신은 그것을 충족시키려고 노력하는가?
매일매일의 삶에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 전념하라. 그렇게 하면, 구원의 확신이 없어지는 경우는 결코 없을 것이다(요일 3:14/ 5:2).
존 맥아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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