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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결정된 경북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은 조선시대 유교에 뿌리를 둔 전통 씨족마을 중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이다. 씨족마을이란 장자(長子) 상속을 기반으로 같은 성씨의 혈연집단이 대를 이어 모여 사는 마을을 뜻한다.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유씨(豊山柳氏), 경주 양동마을은 월성손씨(月城孫氏)와 여강이씨(驪江李氏)가 모여 산다.
두 마을은 조선전기에 씨족마을이 만들어지는 두 가지 전형을 각각 대표한다. 하회마을은 16세기에 새로운 정주지(定住地)를 찾아 이주해 정착한 '개척입향(開拓入鄕)'의 경우이고, 양동마을은 15세기에 혼인을 통해 처가에 들어와 살면서 자리를 잡은 '처가입향(妻家入鄕)'의 사례이다.
◆풍수 길지(吉地)에 자리 잡은 경관
하회·양동마을은 모두 풍수사상에 따른 길지에 자리를 잡았다. 하회마을은 물이 마을을 섬처럼 둘러싼 형태로, 연꽃이 물에 떠 있는 모습과 같다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명당이다. 하회(河回)마을이라는 이름도 '강[河]이 마을을 감싸고 돈다[回]'는 뜻을 담았다. 양동(良洞)마을은 여러 작은 골짜기들이 나란히 흐르는 '물(勿)'자형 터에 자리 잡았다.
두 마을은 모두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길지로 언급됐다. 마을 전체가 자연과 하나가 된 경관을 이루며, '농경지(생산공간)-거주지(생활공간)-유보지(의식공간)'로 나뉘어 유교적 성격이 강조되는 마을 구성을 이룬 것도 특징이다. 특히 풍광 좋은 곳에 세운 서원과 정자 등은 의식공간의 핵심지로 학문·교육·사교의 장이었다.
◆마을 전체가 문화유산 보고
하회·양동마을은 마을 곳곳이 문화유산으로 가득 찬 보고(寶庫)다. 격식이 높은 살림집, 사당, 정자, 서원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이 수두룩하다. 두 마을에서 보물로 지정된 가옥만 6건이다. 하회마을에는 풍산유씨 종가인 양진당과 서애 유성룡 생가인 충효당이 있고, 양동마을에는 이언적의 향단(香壇)과 독락당·관가정·무첨당 등이 있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건축물도 하회마을에 9건, 양동마을에 12건이 있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국보급 문헌자료도 풍부하다. 하회마을에 있는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국보 132호)은 임진왜란 전후의 상황을 기록한 귀중한 자료이며, 양동마을의 금속활자본 '통감속편(通鑑續編)'(국보 283호)은 인쇄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개인끼리 주고받은 간찰과 매매 계약, 관혼상제, 상속이나 분쟁 관련 문서 등은 한국 향촌사회 연구에 귀중한 자료들이다.
무형문화유산도 주목할 만하다. 두 마을 모두 전통 관혼상제가 지금도 이어지는 것은 물론, 하회마을의 '하회별신굿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는 전통연희의 원초적 형태를 보여주며, 여기서 사용되는 '하회탈 및 병산탈'(국보 121호)도 예술적 가치가 높다. 하회마을의 줄불놀이와 양동마을의 줄다리기 등 민속놀이도 전해진다.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은 마을 전체가 각각 중요민속자료 122호와 189호로 지정돼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 하회·양동마을
하회마을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부자(父子)가 방문하면서 세계적인 귀빈 방문 코스로 유명해졌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하회마을에서 생일상을 받았으며, 신발을 벗고 방 안에 들어가는 모습이 영국을 비롯한 세계 언론에 보도됐다. 양동마을도 중국과 캐나다 등 여러 나라 방송에서 영상취재를 올 만큼 국제적인 인기를 누린다.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의 이번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졌다. 지난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의 자문기구인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WHC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행정 구역이 다른 두 마을을 통합관리하는 체계가 없는 점 등을 우려해 '보류(refer)' 결정을 내렸지만, WHC는 이를 뒤집고 '등재'를 결정했다. 이는 문화재청과 경상북도·경주·안동시 등이 두 마을을 통합적으로 보존·관리하는 '역사마을보존협의회'를 마련하는 등 신속하게 대처한 것이 효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ICOMOS 한국위원장인 이상해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이번 등재는 의미가 더욱 크다"며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 국제적인 관광명소로 떠오르는 동시에 훼손의 위기에 처하기 때문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문화유산 전문가와 마을 주민이 모두 참여해 일관성 있고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은 세계문화유산 등재 확정 소식이 전해진 1일 아침부터 떠들썩한 잔칫집 분위기였다. 오전 6시 30분쯤 마을 입구를 비롯한 20여곳에 '경축, 안동하회마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확정' 플래카드가 내걸렸고, 대형 애드벌룬이 날았다.
오전 11시쯤 풍천면 주민 30여명으로 구성된 풍물패는 마을을 돌며 축하공연을 펼쳤고, 마을 바깥 야외공연장에선 하회별신굿탈놀이가 한바탕 신명나게 펼쳐졌다. 서애 유성룡 선생의 14대 종손인 유영하(85)씨는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을 후대에 남겨줘야 할 책무를 받은 것 같아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을 위한 기념행사도 열렸다. 안동시는 이날 하루 하회마을 입장료를 50% 할인했고, 하회마을보존회는 관광객 1000명에게 하회탈 목걸이를 무료로 나눠줬다. 관람객 이미영(34·대구 북구 산격동)씨는 "초가와 기와집이 한데 어우러진 마을 전경이 너무 인상적이다"며 "우리의 전통문화를 세계가 인정해 줬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날 하회마을을 찾은 권영세 안동시장은 "600년 전통을 지켜온 하회마을 주민분들께 감사드린다"며 "하회마을이 지닌 세계문화유산적 가치를 보존하고 후세에 남겨주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 역시 축제 분위기였다. 1일 오후 양동마을 마을회관은 100m 전부터 관광차량이 꽉 들어찼다. 마을회관 앞에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경축'이라고 적은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고, 마당에서는 고깔모자를 쓴 풍물패의 풍악이 마을 전체에 울려 퍼졌다.
뉴스를 보고 대전에서 양동마을을 찾은 김혜인(28)씨는 "우리가 유럽 옛 도시들을 찾듯 외국인들이 이곳을 보러 올 것을 생각하니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고, 대구에서 온 최준혁(31)씨는 "사람이 살고 있는데도 500년 역사의 전통 건축물과 문화가 이렇게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최양식 경주시장과 경주시 직원 10여명도 이날 양동마을을 찾았다. 최 시장은 "사생활 침해 등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노력해준 주민들께 감사한다"면서 "앞으로 주민들이 직접 발효 식품, 체험관광상품 등 양동마을의 전통을 세계에 알리고, 탄탄한 수익구조도 만들어야 마을이 오래 보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주(66) 양동마을보존위원장은 "사람들의 발길이 더 잦아져 마을이 훼손되지는 않을까 우려도 된다"면서 "주민들과 관광객이 함께 전통을 알리고 보존할 수 있는 체계적인 준비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자료원 ; 조선일보 2010년8월2일 A11면
첫댓글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