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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영상제작실. 한 20대 남성이 진한 갈색 뚝배기에 든 커피를 주걱으로 휘젓고 있었다. "딱, 딱" 소리가 나면서 초록색이던 커피 콩(생두·green bean)이 진한 갈색으로 변했다. 사무실 안에 커피 향이 진동하자 여직원들이 뚝배기 주위로 모였다. "어머, 커피 볶았구나."
커피 생두를 볶는 작업인 '로스팅(roasting)'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블로그나 미니홈피 등에서도 '나만의 로스팅' 체험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아내와 함께 집에서 생두를 볶아 커피를 즐긴다는 김성한(41)씨는 "좋은 생두는 아무리 못 볶아도 그 신선함 때문에 인스턴트 커피보다는 맛있다"고 말했다.
◆뚝배기에서 커피를 볶는다?
로스팅은 커피 생두를 최소 180℃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속부터 겉까지 잘 구워내는 것이 포인트다. 그래야만 커피의 깊은 맛과 향이 우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열로 생두를 볶아야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로스터(roaster) 없이는 생두를 태우기가 십상이다. 커피 생두를 볶는 데 쓰는 전용기기인 로스터는 가정용 제품도 가격이 최소 30만원대에서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고가(高價)다.
그래서 로스터를 구입하지 않고 주변에 흔한 프라이팬, 수망, 뚝배기 등을 이용해 생두를 볶는 ‘홈 로스팅’ 기법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박윤규(27·영상 제작자)씨는 "처음에 프라이팬으로 볶다가 생두를 많이 태웠다"며 "뚝배기를 사용했더니 속이 우묵해서 열이 잘 보존되기 때문에 생두를 속까지 익히는 데 으뜸"이라고 말했다.
뚝배기 로스팅을 사용하는 커피 애호가들은 잘 타지 않고 속까지 잘 볶아진다는 점과 저렴한 비용을 장점으로 꼽는다. 커피전문가인 이동진(39) 커피MBA 대표는 "홈 로스팅은 여러 방법이 있다“면서 "사람들이 로스팅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데 밥 짓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심지어는 깡통으로도 누구나 쉽게 신선한 커피를 만들 수 있다"면서 ”그 중에서도 잘 달궈진 뚝배기는 원적외선이 나와 생두에 열이 깊이 침투되기 때문에 다른 기구보다 좋다"고 말했다.
“탁, 탁” 소리와 함께 팝콘처럼 콩껍질이 터지는 팝핑이 시작되면 자기 스타일대로 생두를 그만 볶을지, 더 볶을지를 결정하면 된다. 다 볶은 원두를 베란다에서 바람에 5분 정도 말리고 나면 ‘나만의 원두’가 탄생한다. 이 원두를 갈아서 뜨거운 물에 거르면 나만의 커피가 완성된다.
'뚝배기족'들은 '물 대신 커피를 마신다'고 할 정도의 커피 마니아들이다. 이들은 “저렴한 뚝배기와 생두를 이용해 홈 로스팅을 하면 커피값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뚝배기는 시중에서 1만원이면 구할 수 있다. 커피 100잔 분량이 나오는 생두 1kg도 인터넷에서는 1만원대의 가격으로 살 수 있다. 1주일에 한 번씩 뚝배기 로스팅을 한다는 김철규(42·영상 제작자)씨는 "생두 1kg을 사면 2주일 동안 사무실 직원 8명 정도가 마음껏 커피를 마셔도 될 정도로 값이 저렴한 편"이라고 말했다.
◆커피 볶는 남자들 “깨소금 같은 고소한 냄새에 끌려”
갓 볶은 원두는 몸에도 좋다. 커피에 함유된 폴리페놀은 암 예방과 탈모예방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원두를 오래 보관하거나 각종 첨가물이 들어가면 건강에 나쁜 음료로 변할 수도 있다. 정동철(39·한국기독학생회 간사)씨는 “4년 전부터 건강 문제로 커피를 끊으려다가 로스팅을 직접 해서 마시니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뚝배기족'들의 애로사항도 있다. 김철규씨는 "커피를 볶으면 연기때문에 집이 ‘너구리굴’이 되는 통에 화재경보기가 울린 적도 있다"며 "생두를 볶을때 벗겨진 생두 껍질(체프)이 이리저리 날아다녀 처음엔 아내가 싫어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인들 중에는 얇은 뚝배기를 썼다가 뚝배기를 깬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일의 스트레스를 로스팅으로 풀기 때문일까. '뚝배기족'은 주로 남자들이 많다. 이동진씨는 "커피를 즐기는 층은 여성이 절대적이지만, 직접 로스팅을 하는 등 마니아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남자가 많다"고 말했다.
사무실 분위기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는 박윤규씨는 "일을 하다가 생두를 볶으면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사무실 여직원들도 갓 로스팅한 커피 맛에 빠져 '뚝배기족'인 박씨의 열렬한 팬이 됐다.
김철규씨는 생두 볶는 냄새를 로스팅의 최대 매력으로 꼽았다. 김씨는 "생두를 볶으면 깨 볶는 냄새부터 시작해 커피향까지 다 맡을 수 있다"고 홈로스팅을 예찬했다.
커피 업계에서는 3년 전 커피를 소재로 한 '커피프린스'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끈 이후 홈 로스팅에 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커피 전문 로스터 주세영(32)씨는 홈 로스팅 열풍에 대해 "자신만의 커피 마시는 법을 찾기 위해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씨는 "직업적으로 커피를 볶는 사람들과 달리 홈 로스팅은 결과물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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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당장 뚝배기를 하나 사야겠네요 그런데 콩은 인터넷에서 어떻게 사야하는것인지
샘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