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곶에서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봄바람이 부는 바다에서 돌미역을 채취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복, 소라, 성게, 멍게, 천초(우뭇가사리), 문어 등을 건져 올린다. 북쪽으로는 오호츠크해, 동쪽으로는 독도까지 간 제주 해녀들이 이곳에도 온 것이다.
2017년 기준으로 포항은 제주와 울산 다음으로 해녀가 많다. 2020년 5월 현재 포항시 어촌계에 등록된 해녀는 879명이고, 이 중 호미곶면은 249명이다. 수입은 쏠쏠하지만 육체적으로 고된 작업이 안정적으로 이어질 리 없다. 지금 해녀의 나이는 대부분 60대 이상이다. 해녀의 수도 줄어들어 해녀가 사라진 어촌계가 늘어나고 있다.
호미곶 앞바다에는 아득한 옛적부터 고래가 지나다녔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인간의 시간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 과거에 동해를 고래의 바다, 경해(鯨海)라 불렀고, 포항의 해안가 곳곳에 고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하고 있다. 2005년에는 포항에서 1300만 년 전 돌고래 화석이 국내 최초로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
1930년대까지 호미곶 주변은 밍크고래의 평화로운 집단 서식지였다. 한반도를 장악한 일본은 울산, 제주도, 대흑산도, 대청도 등을 근거지로 참고래, 대왕고래, 향고래, 귀신고래 같은 중대형 고래를 주로 포획했고 밍크고래 같은 작은 고래는 손대지 않았다. 하지만 중일전쟁 이후 상황은 급변해 호미곶 주변은 밍크고래의 무덤이 되었다.
전쟁 물자 동원을 위해 한반도의 자원을 철저하게 착취한 일본은 밍크고래도 포획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 후 고래는 명맥을 유지했지만 영일만에 제철공장이 들어서고 바다 생태계가 바뀌면서 그 수가 더욱 줄었다. 지금도 이따금 크고 작은 고래가 발견되고, 혼획된 고래가 경매에 부쳐진다. 불법으로 고래를 포획한 어선이 해경에 덜미를 잡히는 경우도 있다. 고래고기가 비싸게 거래되는 까닭이다.
고래를 둘러싼 현실은 살벌하지만 고래의 옛이야기는 평화롭다. 호미곶면 다무포 마을에는 출산한 어미 고래가 미역을 먹으러 얕은 바다까지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고래가 산후에 미역을 먹는 것을 알게 되자 여인들이 산후조리로 미역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는 내용이 나온다. 우리가 왠지 모르게 고래에게 친숙감을 느끼는 정서는 이런 이야기에 담겨 있다. 고래를 영혼의 조상으로 섬기는 호주 원주민들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처럼.
김도형, 김훈, 다시 읽는 포항, 경북매일 202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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