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계천 문학 나들이
2007년 10월 27일 토요일 늦은 오후
청계천 줄기를 따라 걸으며 체험한 문학 나들이.우리부부
*청계천 광장
시청을 돌아가면 바로 그곳에 있다. 전철역 역시 1호선 시청역이다. 이곳은 수시로 바뀌며 공연이나 예술행사가 진행된다. 그야말로 시민을 위한 휴식과 낭만의 자리다.
오늘은 '제1회 서울 충무로 국제영화제'라는 무대의 타이틀 아래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모여 있다. 아마 저녁이면 근사한 영화 혹은 근사한 영화 관련 행사가 있는가보다. 나도 잠시 의자에 앉자 낭만의 선율을 듣다가 가을의 정취를 청계천 물가에서 맞이 하고자 일어서서 분수가 있는 시냇가로 갔다.
*청계천 분수
여러번 왔지만 올 때마다 다른 환상이다. 기을 햇살 저무는 곳에서 맞이하는 오늘의 분수는 가장 아름답다. 일요일이라서 가족, 연인, 친구끼리 많은 사람들이 나와 더욱 흥을 돋운다. 사람만큼 많은 양의 물줄기가 분무하여 솟구친다. 희망의 실타래처럼 하얗게 승화되는 벅찬 환희다.
흘러 내리는 곳에는 아치형 다리가 곱고, 가장자리의 길로 물과 함께 사람의 걸음이 줄지어 흐르고 있다. 어렵게 만들어진 청계천이지만 서울 시민들에게는 도심의 상쾌한 휴식처다. 먼 후일, 후세의 사람들에게는 더욱 뜻깊은 공간으로 크게 자리매김할 것이다.
*청계천 시냇물
참으로 맑다. 물고기가 산다. 물살이 빨라,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의 앞개울 같다. 어린 시절 싱싱하게 달리던 고향의 물은 말랐는데 이곳은 인공일지라도 활가차게 흐름에 마음이 유년의 길목으로 달린다.
그냥 갈 수 있겠는가. 나는 내려가 물을 만져보고, 던져보고, 그 촉촉한 생명의 숨결에 행복해 하고, 하늘로 솟는 용감한 물방울에 웃어보고, 그렇게 청계천 물을 사랑하고 있었다. 모두들 사랑하는 청게천 물이다.
*징검다리
어디 징검다리가 이곳에만 있는가. 청계천을 따라 걷다보면 수없이 많은 다리를 만난다. 모양도 다르고, 저녁이면 불빛도 다르고 환상적이다. 주변 건물은 선전 광고문구로 치장하여 대단한 한몫을 한다. 내 눈에 그것은 밉지 않은 일종의 예술이다.
건너려는 사람들이 마주치기도 하고, 양보하여 기다리기도 하고, 어찌보면 이곳 징검다리는 인내의 장이기도 하다. 빠질까 조심하는 것도, 맞은 편 길로 넘어가려는 호기심도, 모두 아름다운 자태로 드러나고 있다. 나도 생을 조율하듯 조심스런 걸음으로 건너 보았다.
*청계천의 석양
죽어가는 길이 저리 아름다울까. 청계천에서 건져올린 시간을 품고 넘어가는 해가 찬란하게 아파트 사이에 걸쳐 있다. 이리 오라고, 나는 손짓하며 해를 당겼다. 손바닥으로 햇살을 받으며 아직 못다한 이야기가 있거든 쏟고 가라 했다.
곱게 분사하는 빛이 작렬하다. 청계천 물구비는 처연히도 구비치는데 나의 시심은 크게 요동치고 있다.햇빛 폭포가 깊은 감성으로 나를 에워 싼다. 저 태양이 이동하면 청계천은 더욱 아름답게 변신한다. 어둠에서 일어서는 빛, 또한 대단하리라.
*광통교
이런 다리가 많이 있다. 그 동안 도심의 치장에 묻혀 있던 유적이다. 광통교에 얽힌 사연도 자세히 적어 놓았다. 어떻게 이런 다리가 남아 발굴될 수 있었는지 대견하다. 복원하지 않았다면 묻혀버리고 말았을 다리가 새러운 탄생을 한 셈이다. 아름다운 환생이다.
설명문도 읽어 보고, 단단하게 보수된 다리 아래의 문을 거닐어 보고, 오가는 사람들의 걸음은 행복하다. 이런 다리가 있는 곳의 물목은 좁아지고, 그것 또한 독특한 물 흐름의 정경이다. 튼튼한 기둥과 바닥닥의 돌이 오랜 세월을 버티고자, 이제는 단단히 마음 먹은 웅장한 자태다.
*시냇가의 숲
물결치는대로 그렇게 자라고 있다. 깊은 물목에서는 커다란 키로, 낮은 물목에서는 낮은 키로 시냇가의 숲은 그렇게 청계천을 장식하고 있다. 무어라 말하야. 네 그 영리한 뚝심을.
버들가지도 있고, 이름 모를 풀나무도 있고, 나무라 하기에는 작고, 풀이라 하기엔 너무 큰 가지들이 모여 숲을 이루었다. 초록의 생생한 생명이다. 가을인데, 아직 물들이지 않는다. 변하지 않겠다는 옛 선비의 지조인양, 청렴한 맹세인양, 유연히게 하늘거리면서도 꿋꿋한 자태다. 배워 가야할 삶의 지혜다.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
효심 그윽한 정조대왕의 능행 행렬이 대단하다. 수원 화성에도 있어 의미 깊게 보았는데 청계천에서 만나는 벽면의 옛 그림은 나의 발길을 꽉 잡는다. 끝없이 전개되는 말과 사람의 행차다. 왕의 행차가 창덕궁을 떠나 광통교를 건너 화성으로 가는 장면이다.
김홍도 등 당대의 일류 화가들의 손에 의해 완성된 그림이다. 단순한 그림이 아니고 옛 복장과 예절, 악대, 등의 풍속을 세세히 전개하고 있다. 낙천적인 모습이 흥겹고 정조대왕의 효심이 짙게 드리워 있어 모든 이에게 큰 교훈을 준다.
*맴돌 여울
물이 아스팔트 조각 사이로 구비쳐 내린다. 생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조절하는 맴돌 여울이라고 안내문이 서 있다. 큰 폭으로 흐르는 물구비가 비경이다.
큰 바윗돌이 물을 맞으며 검은 빛을 발한다. 싱싱한 물의 생명으로 진화한듯 늠름한 자태로 앉아 있다. 아름다운 것은 물만이 아니라고, 나를 보아 달라고 포효하듯, 그렇게 바위는 우람하게 물길을 지키며 성숙해 있다. 자유로이 낙차하는 물결이 곱다.
*지상의 목조 다리
잠시 청계천을 벗어나 지상으로 나와 보았다. 아직 떠나지 않은 옛 철물점들이 있고, 가난한 향수가 흐른다. 그곳 내가 밟고 지나는 길목만 그런 것 같다. 내가 이곳 길을 따라 성균관 대학교에 다닐 때 추억이 떠오른다. 어느 한곳 틈이 없이 가득 들어 차 있던 소형 점포들, 철물점, 전기상회, 등등 비루한 영혼의 생활터전이었다.
그런데 나의 눈길을 끈것이 있다. 아름답게 조성된 목조 다리다. 청게천이 들어서며 새로이 놓은 다리 같다. 물 위로 그윽히 놓인 풍경이 옛 정취로 아름답다. 보드라운 촉감의 목조 다리, 오래도록 사랑받길 빈다.
*풀섶의 꽃
곱게도 피었구나. 청계천 물에서 건져올린 목숨이 보랏빛 숨결로 환생하였구나. 들국화인가. 구절초인가. 풀섶에 섞이어 더욱 고운 빛으로 드러나는 너는 세월을 잊은 낭만이며 고운 향수다.
나를 황홀한 유년의 들녘으로 이끄는 고혹의 미소, 그래 네 곁에서 함께 짙은 그리움을 나누어 보자꾸나. 내가 너를 사랑하면 너는 나를 사랑하겠느냐. 이밤 네 곁에서 시심을 엮어 문학의 불꽃을 피워 볼까나. 보듬어 안은 나의 손이 행복하여서 한동안 머물다 왔다.
*어둠의 시작
이제 태양은 완전히 떠나 가고 어둠의 시작이다. 서서히 일어서는 빛이 고즈넉히 요조숙녀의 자태로 청계천 물을, 언덕을 비춘다. 물 위의 다리가 소슬한 푸른 빛이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빛들이 사방으로 번져 청계천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언제나 시작은 장엄하다. 새벽의빛이 장엄하듯, 이곳 청계천 밤의 시작은 그 어느 곳보다 장엄하다. 걸었다. 그러다가 빛에 끌리면 나는 안개처럼 빛에 싸여 함께 물들어 갔다.
*물 속의 빛
누가 풀어 놓은 언어인가. 누가 그려 내는 유희인가. 저 황홀한 물 속의 빛은 어디에서 발원하는가. 원시로부터인가. 현세로부터인가. 무엇을 노래하는가. 무엇을 갈구하는가.
물 속 돌 위에도, 분수의 물결에도, 흐르는 물목에도 여러가지 색상의 빛이 발하고 있다. 문학의 절창이며, 예술의 절창이다. 내 감성을 심히도 요동치게 하는 대목이다. 낮과 동일한 숫자의 인파다. 외국 여행객도 있다. 일본어를 쓰는 사람들이 사진 속에 청계천의 빛을 담는다. 고운 빛, 겨레의 빛, 대한의 빛이여 그 기상 영원하거라.
*지상의 조화로운 큰 빛
세계 어느 나라에 가 보아도 도심의 강가, 혹은 물가에는 고운 조명이 수를 놓고 있다. 그래서 유람선을 운항하며 자기 나라의 낭만을 선사하곤 한다. 헝가리의 도나우강, 프랑스의 세느강, 독일의 라인강, 이집트의 나일강, 러시아의 네바강 등등 내가 다녀온 그곳 나라들의 도심 강가 조명이 그랬다.
그런데 나는 지금 내 조국 서울 도심에서 작은 폭의 시내지만 청계천 지상의 조화로운 큰 불빛에 놀라고 있다. 저토록 아름다운 가로수 나무의 빛, 건물의 빛, 거리의 빛, 어느 나라 여행객에게 내놓아도 손색 없는 정경이다. 많이도 발전한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상징이다.
*문학의 장
내가 마지막으로 오늘의 문학 나들이를 장식하는 문학의 장이다. 큰 장막에 불빛이 내리고 시인의 시가 흘러 올라간다. 정지용의 '향수'가 흐르고, 이탄의 '약속'이 흐른다. 시에 취한 물결이 밤길을 곱게 잘도 흘러간다.
나는 그 속에 들어가 시와 완전한 하나가 되었다. 오늘 내가 이곳에 온 것은 가을을 보러 온다는 외형도 있지만 내면에서는 문학에 대한, 시에 대한 열망이다.완전히 젖어 보고픈 문학의 물결, 시의 숨결을 만나고픈 소녀적인 갈망이다. 다 얻고 돌아간다. 따스한 봄날에는 더 먼 거리의 청계천의 물길을 따라 가리라 다짐하며 아름다운 밤길을 거닐어 왔다.
첫댓글 매우 아름다운 한 폭의 기행문입니다. 사진과 함께 자세한 소개글까지... 정말 멋있습니다. 감동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