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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1948년 제헌의회에서 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에 근거해 구성된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관으로 활동하신 정철용 선생님과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 위원회의 본격적인 활동에 앞서 57년 전에 반민족행위에 대한 철저한 진상과 처벌을 위해 활동하신 정철용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조사관으로 활동 경험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자료는 지난 9월 13일 인터뷰에 이어 2번째로 진행한 것을 정리한 것입니다. |
○최재성 지난번에 비해 건강해 지셔서 다행입니다. 먼저 가벼운 것부터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선생님 성함을 보면 한자표기가 두 가지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것이 맞는지? 하나는 ‘뚫을 철(徹)’자, 관철한다 할 때 두인변에 쓰는 ‘뚫을 철(徹)’자가 있고요, 하나는 ‘물 맑을 철(澈)’자 삼수변을 쓰는.
○정철용 ‘뚫을 철(徹)’자가 맞아요.
○최재성 ‘뚫을 철(徹)’자가 맞으시지요, 이것을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고향이 충북 영동이시잖아요, ‘대성촌’이라고 회고록에 쓰셨더라고요.
○정철용 무슨 촌?
○최재성 ‘대성촌’이요, 그러니까 집성촌 정씨들.
○정철용 무슨 우리 정가들이 많이 살고 있는 데?
○최재성 본관이 어디세요?
○정철용 연일.
○최재성 연일 정씨이구나. 그럼 마을 전체 호수가 얼마나?
○정철용 지금은 많이 줄었어요, 옛날에는 100호가 넘었는데 한 80호가 있어요. 지금은 반도 더 줄었을 것 같아요.
○최재성 전체 100호 정도 되는 중에 정씨 되는 분들이 한 80%나 되면 굉장히.
○정철용 그렇지요.
○최재성 오랫동안 거기에 터를 잡고 사신 거네요, 선조 대대로.
○정철용 그럼요, 선조대대로.
○최재성 영동에 곶감이 유명하지요?
○정철용 전체가 유명해요. 더군다나 상촌이라는 데 곶감, 호두 다 유명하고, 그런데 요새는 옛날과 달라서 농촌도 발전이 많이 됐어요.
옛날에는 인삼하면 무슨 개성인삼이다, 혹은 금산이다, 몇 군데 밖에 안돼요, 그런데 지금은 전국 다 돼요. 또 지금 가보면 전부가 과수원이에요, 포도나무나 뭐. 그런데 살려고 지금 별 연구를 다 하고 있어요. 그 대신 가보면 인구는 많이 줄었고 호수도 많이 줄었고, 도시로, 맨 노인들만 있어요.
○최재성 그렇지요, 어느 지방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정철용 빨리 해서 젊은 분들이 농촌으로 돌아가야 살 텐데.
○최재성 참, 문제입니다. 선생님 회고록을 쭉 보니까요, 선생님이 영동에서 태어나시고, 상업학교 진학하실 때는 청주로 이주를 하셨던 것 같고.
○정철용 예, 그래요. 그 당시는 이상하게 된 게 제일 좋아했던 것이 사범학교였어요. 나는 대구사범 시험 봐서 합격했어요. 그 다음에 선린상업도 시험 봤다고, 거기는 일본 놈 학교지요. 그런데 그만한 차이가 있었어요, 시험 볼 시간적 여유가 줄었어요. 나는 대구사범 떨어졌는줄 알고 시험 보는데 합격 했다고 연락이 왔어요. 선린상업 시험보고 나서도 된 줄 모르고 또 청주상업 시험보고, 또 됐다고 그래요, 두 군데 다 합격했다.
그때 사범학교 가면 좋지요, 하지만 안 되겠다 해서 여러 가지 경제적으로 봐서, 내 성격상 학교선생보다도 이런 데로 나가보고 싶다고 해서, 청주는 친척 되는 분이 계셨어요. 그래서 잘됐다, 내가 합격했으니까. 그 아들도 나랑 한 학년 되는 동생뻘 되는 사람도 그때 같은 해에 합격했어요. 그럼 상관없으니까 청주 집에서 자기가 “하숙비도 필요 없고 하니까 같이 와서 살아라.” 그래서 청주로 간 거예요.
○최재성 예, 신한공사 근무하실 때는 대전에서 생활하셨잖아요.
○정철용 대전에서 생활했어요.
○최재성 군 제대 후에 재건국민운동 군위원장 시절에는 보은에서 사시고.
○정철용 예, 그렇지요.
○최재성 영동, 보은, 대전, 청주, 이쪽 충청도 지역에서 많이 활동을 하셨네요.
○정철용 재건국민운동 때도 내가 몰랐는데, 유달영 박사.
○최재성 예, 유달영 박사.
○정철용 전에 그 양반한테 많은 강의도 듣고 공부했는데, 그 양반이 본부장이 되셨다 말이에요. 그러고 나서 같이 하자 해서 나온 거지요. 그래서 결국 나중에 좋았지요, 열심히 했어요. 청년운동하고, 부녀회 회원하고, 문맹교육, 도시와의 자매결연, 열심히 했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이게 아니에요, 군부가 돌아간다고 했는데 돌아가지도 않고 결국은 정치화되더라고요, 그래서 난 그만두어야겠다 말이지. 유달영 박사가 처음에 너무 인기가 좋아서 나중에 모략을 받았어요, 대통령하려고 한다고, 그러는 바람에 모가지 잘라버리잖아요.
○최재성 나중에 아마 건국대학교 총장인가.
○정철용 조금만 자기들과 대립되는 사람이 인기 있으면 모가지 팍팍 잘랐으니까.
○최재성 ’44년 12월 달에 조기졸업을 하시고, 원래는 ’45년에 졸업하기로 되어 있는데.
○정철용 원칙은 ’45년 3월 달에 하는 것인데, 일제시대, 말하자면 자기들도 사람도 없고 그때는 추워서 걱정하는 사람 아무도 없었어요, 나가면 직장이 얼마든지 있었으니까요, 일본 놈들이 나가고 나서 빈자리가.
○최재성 그때 금융조합에 취직을 하셨다고.
○정철용 금융조합이라는 게 처음에 제일 못 가는 사람 다 가는 곳이에요. 그리고 단, 어렵다는 곳이 어디가 제일 어려우냐 하면 일제시대는 식산은행이지요, 지금의 산업은행. 또 동척회사, 신한공사 전, 동척. 일본 미쓰이, 미쓰비시 그런 재벌 같은 데는 전부 일본 놈 차지예요, 우리 한국 사람은 여간해 못 들어가는 데지요.
○최재성 금융조합은 어디 금융조합을?
○정철용 나는 금융조합 간일이 없는데 어디에 금융조합 얘기해 놓았어요?
○최재성 회고록에 조기졸업 후에 금융조합에 잠시 근무했다고.
○정철용 잠시 했어요, 내 생각에 청주 어디 있을 거예요, 임시적으로.
○최재성 청주 상당금융조합도 있었고.
○정철용 금융조합이라는 게 뭔고 하니 지금의 농협의 신용부문 같은 금융조합이 있고 그 다음에 농업 부문 같은 농회라고 했어요.
○최재성 농회.
○정철용 나중에 둘이 합쳐서 지금 말하자면 농협이 된 거예요.
○최재성 예, 제가 금융조합에 관심이 많아서요.
○정철용 관심보다도 졸업하기 전에 임시니까.
○최재성 한 몇 개월 잠깐.
○정철용 그렇지요, 아무데나 가자 말이야.
○최재성 그때 금융조합 조합장이라든지 이사라든지 이런 분들은 기억나시는 것은 없으세요?
○정철용 기억나는 것 없어요.
○최재성 전혀 없어요?
○정철용 내 직장이다 생각해서 들어간 것 아니고 졸업할 때까지 몇 개월 그냥 연습한다 이런 심정으로 들어갔지요.
○최재성 알겠습니다.
간단하게 선생님 신상과 관련된 것을 특위시절 질문을 드리기 전에 말씀을 드려봤습니다. 그러면 다음으로는 특위 근무하신 시절에 활동과 관련한 것들을 여쭈어 보고 싶은데요, 제가 기록을 보니까 반민특위에서 1월 5일에 임명장을 받으시고 1월 8일에 아마 박흥식이 첫 번째로 체포가 됐는데, 그 이전에 12월부터 한달정도는 반민 피의자 명단 한 7,000명의 명단을 작성해 놓았다는 기록이 있더라고요.
○정철용 저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고.
○최재성 잘 모르시는군요.
○정철용 제가 반민특위에 관련된 건 1월 5일부터이고 그 전에는 도대체 반민특위가 무엇하는 곳인지 사실 내용도 몰랐고, 처음에 거기로 오라고 박우경 의원이 얘기했을 때 사양했습니다.
제가 반민특위에 대해서, 친일행위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또 하나는 결국 따지고 보면 형사관계다 무슨 남을 조사하고 이런 것인데 내가 경험도 없고 또 내가 가봐야 아무리 좋은 자리라고 하지만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게 중요한 문제이지 지금 거기만 가면 뭐 합니까, 잘못하면 선생님한테도 누 끼치고, 사양하겠다고 몇 번 사양 했어요.
현재에 있는 그 자리가 신한공사라는 게 옛날에 암만 동척이라지만 미군정이 없애서 새로운 한국농민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데, 걔네들하고 그때 토지개혁을 했어요, 미군정에서. 열심히 토지개혁을 하는데,
○최재성 준비하시고.
○정철용 그런데 오라고 하니 내가 “안 된다.”, “와야 한다.” 이래서 올라갔지요.
그 전에 명단은 우리는 전혀 알지도 못합니다.
○최재성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1월 말에 반민특위 사무실을 이전을 하지 않습니까?
○정철용 예.
○최재성 이사하실 때 짐은 직접 들고 가시지 않았겠지요, 아마?
○정철용 안 들고 갔어요.
○최재성 정부에서 고용한 사람으로 해서?
○정철용 그렇지요.
○최재성 하루 만에 이사는 끝났습니까, 어떻습니까?
○정철용 그 당시는 처음 시작이라 무슨 살림살이 별로 없었어요, 간단하지요.
○최재성 간단하게 쉽게 이사를 하셨군요. 알겠습니다.
평소 반민특위 활동을 보면 조사하고, 체포하고, 조서작성하고, 이런 거라고 제가 알고 있는데요, 자료조사를 한다는 것은.
○정철용 자료조사는 그때만 해도 우리 조사관이고, 서기관이고, 의원이고 간에 실제적으로 반민특위에 대한, 친일파에 대한 사실 사전 조직이랄까 지식이라고 할까 무슨 준비해서 한 것은 참말로 희박했어요.
오는 사람들이 거기에 대한 경험 있는 사람도 아니고 대부분 사람들이 뭔고 하니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과의 인연이 있는 사람들, 또 나름대로 한국민으로서의 지조를 지키는 그런 민족주의 진영이랄까 이런 데서 자란 사람들이지 무슨 반민특위에서 조사업무를 했다든지 뭐 이런 경험 있는 사람 제가 알기로는 별로 없습니다.
○최재성 선생님 무슨 보신 자료나 이런 것은 기억이 안 나시나요, 예를 들어서 총독부 관보랄지, 무슨 문서랄지?
○정철용 솔직히 그야말로 백지상태로 들어갔습니다.
계급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첫째는 군정 3년간에 하지가 군정하면 거기에서도 입법위원회라는 게 만들어졌어요.
○최재성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요.
○정철용 거기에서 뭐라고 하냐면 친일관계, 정상배, 이놈들을 처벌할 수 있는 걸 만들어서 했습니다. 자료를 수집을 해서 3년 동안 해서 친일파 전 명단을 다 조사했었는데 이것을 하지가 전부 폐기하고 말았어요, 하지도 않고 그리고 떠났단 말이야. 그 자료, 그게 중요 원인이 되어서 위원회에서 인수한 것이지요, 거기에 나오고.
둘째는 그러다말고 우리는 처음에 생각할 때 임시정부가 정부상태로 들어오지 않느냐 이런 상태에 있었는데 나중에 결국 미군정에서 “개인적으로 들어와라” 그래서 그 분들이 전하는 얘기 그런 것의 자료, 그 다음은 투서예요.
주로 세 가지로 내서 우리가 시작한 겁니다.
○최재성 예, 선생님 조사를 직접 작성해 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있다면 누구?
○정철용 조서 작성이란 게 실제 내 자신이 직접 조서작성 한 것은 한 사람밖에 없어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중에 내가 이광수 그 양반을.
○최재성 체포를 하시고.
○정철용 그 당시는 체포 소리도 안 했어요, 최대한으로 그 사람들 인격을 존중해 줬어요, 반말도 한 일이 없어요, 선생님이라고 그랬지.
그 분 대략 조사를 해서 바로 그 당시는 오래할 것도 없어요, 부인하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그 분에 대한 행적이란 것을 세상이 다 아니까, 바로 해 가지고 검찰에 넘기고 그랬지.
○최재성 김명동 조사위원 있으시잖아요?
○정철용 공주.
○최재성 그 분은 노덕술을 직접 다뤘는데 과거에 본인이 당했던 대로 고문도 하고 했다는 그런 기록도 있더라고요.
○정철용 글쎄요, 나는 그것은 모르겠는데. 김명동 위원은 성질이 하여튼 어떻게 괄괄한지 몰라요. 그리고 그 양반 양복 입는 것을 못 봤고 한복두루마기 입고, 눈이 한쪽이 조금 이상해, 그래서 인상도 조금 이상하지요.
그 양반은 회의할 때나 뭐 할 때나 이유 없이 자기 의사만 따발총으로 말하고 나가버리는 그런 양반이었어요. 그런데 그 양반이 한 가지 재미난 게 공주 한 고향에 김갑순이.
○최재성 예, 김갑순.
○정철용 한 고향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김갑순에 대한 것을 이번에…….
○최재성 부자가 된 사연.
○정철용 참말로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어, 머리가 좋단 말이야. 뭘 이용하든 권력을 이용하든지 하여튼 용하게 부자가 됐어요. 그런데 김명동 위원이 뭔고 하니 자기 아버지가 독립운동 하다가 나중에 듣기에 돌에 맞아 죽었다.
○최재성 의병장이었습니다.
○정철용 그것에 대한 그 양반이 민족적 감정이란 것이 생긴지도 모르지.
○최재성 그래서 김명동 그분이 평소에 “영장은 무슨 영장이냐 잡아서…” 그런 식의 발언을.
○정철용 그 양반은 소위 말하자면 구식사람과 비슷해서.
○최재성 “친일파한테 재판이 무슨 필요가 있냐!” 이런 식의 발언도 했다고 나오더라고요.
다음에는 중앙사무국 산하에 조사부가 있었고, 지방에 도 조사부가 있었지 않습니까?
○정철용 도지부가 있었지요.
○최재성 그래서 그것을 각각 중앙에서 담당하는 것과 지부에서 담당하는 게 기준이 어떻게 됐는지, 예를 들자면 중추원 참의가 있지 않습니까? 중추원 참의가 있는데 이 사람들에 대해서 보면 중앙에서 담당했던 사람이 27명, 지방 도 조사부에서 담당했던 사람이 17명, 이렇게 기록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그걸 무슨 기준으로 구분을 했는지?
○정철용 제가 볼 때는 그렇게 자세히 몰라도 처음에는 도지부라는 게 별로 없었어요.
○최재성 늦게 생겼지요.
○정철용 중앙이 조직했다 이거예요.
중앙이 조직하면 중앙에서는 그런 걸 조사하고 법적으로 당연직 있는 것 아닙니까, 중추원 참의 이런 건.
○최재성 예.
○정철용 작위 받은 사람들, 이렇게 하다가 지방조직이 됐다 이겁니다.
그럼 지방 조직에도 나름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거기에 있는 사람들, 중앙에서는 당연직이기 때문에 구분이 별로 없을 거예요, 이 사람은 중앙에서 했다, 이 사람은 지방에서 했다, 그런 게 없을 거예요.
○최재성 그래도 뭔가 기준이 있어야 중앙에서 체포를 하러 가고 또 지방에서 체포를 하러 가고 조사를 담당을 하고 그럴 것 같은데.
○정철용 그런데 그 당시는 제가 알기로는 특별한 기준이 있는 것이고 다만 도지부가 늦게 생겼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 활동기간이 불과 5개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에 대해서 우리가 인사교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은 그대로 생겨서 지방대로 해 나가고 중앙은 중앙대로 해서 언제 지방에 누가 있는가 그거 생각하고 서로 얼굴 대할 시간조차 없었어요.
그리고 지금처럼 사전에 채용을 해서 무슨 교육을 한다든지 이런 것도 없었고 그냥 와서 미숙한 상태에서 바로 업무를 착수했기 때문에 상당히 행정적으로 봐서는 미숙했지요.
그러다보니까 그랬고, 또 하나 계획적으로 오늘은 이런 조사를 하고 내일은 누구를 체포한다 이런 계획적인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불러 오랜 조사하고 자료를 구분하고, 그건 아니다. 하다보면 박흥식이가 그거예요, “정보가 들어온다,”, “무슨 정보냐?”, “도피하려고 한다.”
○최재성 해외도피.
○정철용 다른 거 하다 말고 우선 급하니까 가야한다 말이에요.
제2호가 이종형이라고 대동신보 사장이란 말이에요. 하도 자기가 공산주의 잡는데 애국자라고 하면서, 이북서, 만주서 밀정하던 자식이 그 얘기나 하면서 다니고, 그 사람한테 정부에서, 고위직에서 다 놀아났어요.
그러다보니까 그놈 잡아야 하고, 또 하다 보면 제1과는 정치다, 제2부는 경제다, 제3부는 문화부다 이렇게 했지만 우선 조사부에 떨어져서 “누가 도망가려 하는데 어떻게 하냐.” 그러면 하다말고 쫓아가야 하고, 그렇게 질서가 없었다 이겁니다.
○최재성 업무분장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얘기네요.
○정철용 그럼요, 부서는 그렇게 해놓았지만 하는 대로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고 하다보니까 사실 어려웠어요.
○최재성 박중양이라는 사람 있지 않습니까?
○정철용 예.
○최재성 박중양이를 체포한 조사관은 누구입니까?
○정철용 그건 경상북도에서 했어요.
○최재성 도지부에서요.
○정철용 도지부에서 해서 올라왔는데, 그 양반은 키가 6척이고 이등박문의 양아들이라고까지 한 사람인데, 중추원 참의에 중추원 부의장까지 하던 사람인데, 그 분이 왔다고 해서 나갔어요.
박작대기라고 해요, 백작이니까.
와보니까 내리는데 쳐다보고 사무실에 와도 일본말이에요, 한국말 안 했어요.
“아, 고꼬가무까시노 다이이치긴꼬다네. 소!소!(아, 이곳이 옛날의 제일은행이구나. 그래!그래!)
“지금 감회가 어떠냐?”, 대답도 않고 들어가고 그러는데, 내가 그 사람에게 한 가지 느낀 게 있어요. 그 사람한테는 압류해 온 증거품이 있는데 그 속에 보니까 지금은 가방이나 많지만 옛날에는 대나무로 만든 상자가 있어요, 거기에 옷도 넣고 이불도 넣고 일제시대 그게 한 가지.
○최재성 궤짝같이 생긴 것.
○정철용 그 열 몇 개를 펼쳐보니까 그게 일기장이에요. 자기가 안목도 없던 일자무식에 일본으로 밀항에서 건너가면서부터 체포당하던 그날까지 일기장에 쭉 정결하게 써있는데.
○최재성 일본어로 써있었겠네요.
○정철용 뭐니 뭐니 친일파니, 옛날에는 아무 것도 아닌 일자무식이라 하지만 역시 노력했구나.
검찰부에 가져가는 것을 언뜻 보니까 자기가 어떻게 해서 일본에 갔고 자기가 뭐를 했고 일본 사람들에 대해 간단히 이렇게, 저만큼 노력하는 사람 같으면 저렇게 유명해졌으리라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그 순간에.
○최재성 경북지부에서 체포를 해서 서울로 압송을 해 와서 그럼 중앙에서는 누가 박중양 취조를 담당했어요?
○정철용 검찰부에서 했으니까 모르지요.
○최재성 검찰로 바로.
○정철용 잡아와서 바로. 조서는 대구에서 작성하고 검찰부가 송치한 것이지요.
○최재성 그렇게 된 것이군요.
조서를 작성하거나 이럴 때 선생님이 직접 하신 분은 별로 없으신 것 같은데, 면장을 했던 사람 가운데 좀 악질적인 사람은 공출이랄지 징용이랄지 이런 악질적인 사람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은 “자기는 면장으로서 그것을 담당을 했지만 소극적으로 했었다.”, 이렇게 주장을 했고 또 주위 마을사람들도 그렇게 이야기를 해 주고 그럴 때 조서작성에서 그 사람에 대해서 세평이라든지 이런 평가를 넣는 난이 있는데요, 거기에 그런 게 아무래도 참작이 됐겠지요.
○정철용 되지만 솔직한 얘기가 일제시대 얘기를 한다면 면장 정도 가지고 해 봐야 친일행위 크게 할 일이 없어요, 실제.
단, 공출이라는 것은 실제가 뭐냐 하면 정당한 소작료를 그 당시 3.7제, 농사지어도 7할은 지주가 가지고 가고 3%를 지가 먹는다 이거예요. 그것은 소작료도 지주랑 하지만 나머지 3할 이것만 먹는 것을 가지고 소위 공출이라는 것을 해서 “너희 집에 쌀이 있느냐, 없느냐?” 조사해서 일본 놈들이 군인이랑 저희들 먹으려고 강제로 공출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럴 때 각 면으로 할당해 올 것 아닙니까, 그러면 와서 부득이한 놈도 있고, 일본 놈들이 따라다니고 하니까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물론 개중에는 순간적으로 악질이 있는 놈이 있겠지요, 그러나 제 생각에는 그래요, 면 이하에서 그렇게 크게 친일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그런 일도 없었을 것 같아요, 제가 볼 때는.
○최재성 그럼 국방헌금한 사람 같은 경우는 어떨까요?
○정철용 국방헌금한 사람은 일정한 금액을 많이 했으니까 그것은 전쟁협력자지요, 돈 가지고 한 것이잖아요.
○최재성 금액의 다과를 떠나서.
○정철용 그렇지요, 그게 주로 비행기에요.
○최재성 예, 비행기하고 기관총도 있더라고요.
○정철용 그 사람들이야 다른 사람들 죽도록 군대가거나 하더라도, 돈 있으니까 일본 놈 때문에 돈벌었으니까 당연히 절대 친일행위 한 것이지.
○최재성 학교를 세운다거나 인수한다거나 도로를 포장해주고 이런 사람들도 있잖아요.
○정철용 글쎄, 그런 것은 제가 잘 모르지만.
○최재성 그런 것 때문에 아마 마을 그러니까 민간에 민심을 얻은 것 같던데 그런 것들은.
○정철용 그런 것도 있지요. 그런데 그 당시만 해도 지방 마냥 자치체가 있다든지 혹은 선거를 했다든지 이런 것은 지방행정 그야말로 어디까지나 위에서 내려오던 관치행정이지요, 전부 명령.
○최재성 스스로 자발적이라기보다 명령에 따라서.
○정철용 그럼요, 전부 명령이에요.
○최재성 ’49년 2월 달에 박중양이가 보석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4월이 되면 박흥식도 보석이 되고.
○정철용 다 됐어요.
○최재성 그래서 보석이 이루어진 배경이랄지 이런 사정을 좀 아시나요.
○정철용 그 과정이란 게 훤하지요.
왜냐면 우리가 ’49년 6월 6일날 경찰에 의해서 습격 당해서 와해됐잖아요, 전부 다.
○최재성 예.
○정철용 그리고 나니까 우리와 똑같은 헌법기관을 야당에 둘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국회에서 정부랑 야당이라고 내각 총사퇴 결의까지 하고 심지어 대통령 불신임까지 제출했다 말이야, 그러니까 도저히 안 되겠다 이래서 도저히 이런 상태에서 할 수 없다 해서 위원장 이하 의원들이 사퇴를 내버렸잖아요, 못 하겠다 이런 상태에서.
문제는 뭐냐 하면 그러고 나서 바로 그만두니까 초대 법무장관을 하던 이인 씨가 와서 제2대 위원장으로 들어오자마자 공소시효를 단축해버린 거예요. 공소시효 1년을 단축해 버리니 “너 하지 마라!” 이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일이 뭐 됩니까? 결국은 재판부가 검찰부에 재판했으니까 해야 소용없다, 그러니까 결국 보석이다, 다 내보내고.
○최재성 그런데 박중양이나 박흥식은 6.6사건 이전에 보석이 되거든요.
○정철용 아니지요.
○최재성 박중양이가 2월 달에 보석이 되고요, 박흥식이는 4월 달에 보석이 됩니다.
○정철용 아닐걸요.
○최재성 해서 박흥식이 보석을 둘러싸고 특별검찰관들이 전원 사표도 제출하고 이런 게 있습니다.
○정철용 글쎄요.
○최재성 (명단을 보여주며) 그러면 이건 당시 충북에서 체포됐던 피의자들인데요, 누가 있냐 하면 금예주.
○정철용 예, 경찰이었어요.
○최재성 경찰, 이 사람 평은 어땠습니까?
○정철용 글쎄요, 그 당시만 해도 그 분 경찰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하여튼 후손들도 전부 경찰들이 많았어요.
○최재성 그 다음에 김갑복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철용 누구요?
○최재성 김갑복.
○정철용 김갑복이는 내가 잘 모르겠네요.
○최재성 잘 모르시겠습니까?
○정철용 예.
○최재성 (명단을 보여주며) 그러면 국민총력조선연맹 청주 지부장이었던 사람이 있고요, 그렇습니다.
○정철용 금예주.
○최재성 금예주, 김갑복.
○정철용 김원근, 중추원 참의나 이거 했을 거예요, 학교에서 도회의원하고.
○최재성 예, 그 다음 김창영.
○정철용 경찰일 거예요.
○최재성 경시하고 금산군수 하고 그랬네요.
○정철용 금산군수 했다면 전라북도 사람이에요.
○최재성 그 다음에 박두영은 군인출신이지요, 육군대좌 했고.
그 다음에 손재하.
○정철용 손재하도 도의원의 한 사람.
○최재성 중추원 참의도 했네요.
○정철용 예, 이명구도 마찬가지고.
○최재성 예, 그렇습니다.
안재욱이란 사람도 있고.
○정철용 안재욱은 누군지 잘 모르겠네요.
○최재성 그 다음 이민호, 고등계형사네요.
이산연, 청주신사(청주신궁)에 근무했네요.
○정철용 모르겠네요.
홍순복이는 신문사인가 뭐 했을 거예요.
○최재성 매일신보 충북 지부장이었습니다.
그 다음 한정석.
○정철용 경사예요, 경시, 요즘 말로 경찰.
○최재성 경찰했고 이 사람이 금융조합장도 합니다. ’36년에.
이 사람들 가운데 세평, 그 당시에 선생님 해방 전에 어렸을 때이겠지만 주위에 어른들이 이 사람들에 대해서 뭐라고 이야기 하거나 이런 걸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정철용 못 들었어요.
사실 이 사람들은요, 제가 볼 때는 그냥 유명해져서 충추원 참의 같은 것 했길래 그러지 이명구란 분도 순 의사예요.
○최재성 의사예요?
○정철용 순전히 의사이고, 김원근이 같은 사람 학교 세운 것밖에 없고 특별히 나쁜 짓 했다거나 이런 것도 없어요.
○최재성 손재하.
○정철용 손재하도 영동사람이지요.
○최재성 이 사람에 대해서는 박우경 조사위원이 혼자 석방 요청을 했더라고요, 특검에 요청을 한 것 같은데, 그런 소문 그 당시에 못 들어보셨나요?
○정철용 글쎄, 손재하 씨도 돈이 좀 있고 땅 부자라고 됐지 무슨 특별히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니겠지, 박우경 씨야 그 당시 같이 컸기 때문에 잘 알겠지.
그 당시 박우경 씨가 군청에 서기로 근무했어요.
○최재성 예, 그러면 6.6사건 이후에 특위활동이 급격히 위축이 되지 않습니까.
○정철용 예.
○최재성 그때 선생님이 몸으로 느끼기기에 바로 그런 게 느껴지던가요?
○정철용 느껴지고말고요. 6.6사건 나기 전까지는 국민들도 상당히 성원도 많았고 격려해 주는 사람도 많았어요. 6.6사건 나고 나니까 우리는 오히려 고립된 것 같아요. 우리를 도와주던 격려도 별로 없고, 오히려 친일파들이 이종형 같은 선동하던 놈들이 우리를 공산당으로 몰아붙이더라고.
그러다가 뭔고 하니 국회에서 쭉 하다가 프락치사건이 터져서 김약수, 노일환, 임옥주, 서용길 이런 사람들이 구속당하고 예단하잖아요, “저 사람들이 전부 들고 온 놈들이다, 말하자면 빨갱이 프락치 걸린 놈들 하수밖에 안되는 놈들이니까 저 놈들도 결국은 공산당 비슷한 놈들이다.” 이렇게 몰아붙이고 말이야.
그리고 심지어는 낮에 내가 문 열어 놓고 있으면 “빨갱이 새끼들! 너희 놈들”, 나도 당했어요, “너희 뒤에 우리가 항상 따라다녀 임마!”. 공갈을 하고 해서 나도 집에도 못 들어갔어요. 그해 완전히 해산되고 ’49년 말까지는 이리 다니고 저리 다니고 피해 다녔습니다. 말도 안 되는 신변상해 왜 느끼느냐, 멀쩡히 직장 잘 있던 사람 거기 와서 실업자가 되어 거꾸로 죄인이 되다시피 공갈당해, 집에도 못 들어가.
그러면 처음에 정부에서 얘기할 때 어떻게 했느냐 하면 ‘똑같은 직급으로 해서 전부가 끝나고 나면 정부에서 받아주마’ 이런 약속 하에 했다는 것을 분명히 우리한테도 얘기 했다 말이야, 위원장이나 모두 당시에는 안심하고 일을 하고, 그만한 신분보장이 된다 하고.
그 당시 누가 우리를 받아줍니까? 그러니까 멀쩡한 놈들 괜히 가서 실업자 되고, 죄인 되고, 신세가 따지고 보면 억울하지.
○최재성 6.6사건 이후에 조서를 작성할 때 소행조서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반민 피의자의 성질, 그 사람의 소행, 세평, 재산 정도 이런 것을 적는 칸이 있더라고요. 이게 6.6사건 이전과 이후가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 이전에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이 있었는데 6.6사건 이후에는 그런 게 반민 피의자에 대해서 좀 호의적이고 이런 평가로 많이 바뀌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정철용 부정적이라기보다도 그러다 보니까 조사하는 사람이나 결국 과거에 했던 의욕도 실제로 상실된 것은 사실이지요, ‘적극성이 결여됐다’ 이렇게 평해도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최재성 혹시 위에서 시켜서 좋게 써라, 이런 것은.
○정철용 그런 것은 없어요.
○최재성 그런 것은 없고.
○정철용 아마 모두 억울하지요.
○최재성 예, 알겠습니다. 그럼 혹시 서기관 했던 신현수라는 분을.
○정철용 누구요?
○최재성 신현수라는 분 잘 기억이 안 나십니까? 보니까 이 사람이 이광수를 담당을 했는데요.
○정철용 안 했어요.
○최재성 기록에 보면 공소시효 마감일이 8월 말일이 되지 않습니까, 반민법이 개정되고 난 이후에요. 그래서 8월 31일까지 기소를 해야 되는데 서기관 신현수라는 사람이 준비를 태만히 해서 결국 이광수가 불기소가 되거든요.
○정철용 글쎄, 내가 그 내용을 모르겠는데요.
○최재성 아, 그렇습니까?
○정철용 그게 불기소가 된다는 게 서기관이 할 수가 있나요? 그럼 검찰부의 서기관이면 몰라도 조사위원회 서기관이 할 능력이 없지요, 기소는 검찰부에서 하는데.
우리 조사위원회에서는 경찰마냥 조서를 검찰부로 넘기고 기소여부는 검찰부에서 한단 말이야.
○최재성 특별검찰부에.
○정철용 예.
○최재성 특별검찰부의 서기관이겠지요, 아마 신현수가.
○정철용 그거인지 모르지요.
○최재성 잘 모르시나요?
○정철용 사실 우리는 검찰부랑도 짧은 시일 내라 누가 누구다, 인적교류가 없어 실제 모릅니다. 누구 아느냐 할 때 사실 서로 몰라요. 인사교류가 있나요? 뭐가 있나요?
○최재성 그때 검찰관이었던 이의식이라는 분이.
○정철용 그 양반은 국회의원이었어요.
○최재성 그 분이 9월 1일날 이광수가 불기소되고 난 뒤에 사표를 제출했다고 하거든요.
○정철용 그 양반뿐 아니고 6.6사건 난 뒤에 말이 아니지요, 검찰부나 어디나. 왜냐 하면 특별검찰부는 어떻게 된고 하니, 현직검찰관도 있었고 국회의원들이 일부 들어갔고 특별재판부도 그랬어요. 당연직이 누군고 하니 김병로 대법원장, 그 다음에 검찰총장에 권승렬, 그 양반 당연직이고, 그 뒤로 검사 몇 분, 현직검사도 몇 분 왔고, 국회의원도 몇 분 오고, 그리고 거기에 노일환 씨도 검찰차장이 있잖아요?
○최재성 예.
○정철용 그렇게 대개 국회의원들 중에 변호사 했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들어가 있지 이 위원회랑 인적교류가 없었어요, 전혀. 할 새도 없었고.
○최재성 그럼 특별재판부 위치는 대법원에 있었고요, 서소문 쪽에 있었다고 나오더라고요.
○정철용 옛날 거기지요.
○최재성 그럼 특검은 반민특위랑 같은 건물을 쓰셨고.
○정철용 2층에 있었어요.
○최재성 그러면 제1조사부장 이병홍이란 분.
○정철용 알지요.
○최재성 그 분이 공소시효가 만료되고 난 뒤 9월 2일에 신문에 ‘반민특위활동이 용두사미가 됐다’ 이런 글을 썼더라고요. 그래서 아마 그 당시 특위조사관이랄지 구성원들, 이 분들의 일반적인 평가였던 것 같거든요. 혹시 주위에 그때 같이 근무하시던 분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정철용 다 마찬가지이지요, 용두사미가 문제가 아니라 따지고 보면 이건 ‘배신행위다’ 우리는 이렇게 보고 있었어요. “세상에 그럴 수가 있나!” 이 말이에요.
○최재성 곽상훈 의원이 주장해서 반민법 개정안이 제출이 되고 공소시효가 단축이 되고.
○정철용 그런데 곽상훈 씨가 그렇게 하리라고 생각도 못했고, 그 당시는 어떻게 된고 하니 국회라는 자체가 지금처럼 정당정치라는 게 없었고 대부분이 개인으로 출마해서 된 사람들이고 그 당시 웬만한 사람은 과거에 독립운동 했다거나 관련된 사람은 다 됐어요. 그리고 그 당시 정당도 없었고, 솔직한 얘기로.
다만 곽상훈 씨나 이런 사람들을 우리가 볼 때 안 그럴 분이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6.6사태 나고 나서는 과거 임정계통에 있던 사람들, 국회 프락치사건에 걸려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다 민족주의들이니 그 사람들이 주로해서 반민특위법을 만들어 놓은 것 아닙니까?
○최재성 예.
○정철용 그런데 그 사람들 다 나가고 나니까 결국 누구하나 정부에서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국회에서도. 그래서 자연스럽게 정부 마음대로 한 건 사실 아닙니까?
○최재성 예, 그렇지요.
김준연 의원도 아시지요?
○정철용 예.
○최재성 김준연이란 분은 보니까 반민특위와 관련해서는 반민특위가 조기에 해체되는데 상당히 그분의 역할이 있었던 것으로.
○정철용 참, 그걸 노골적으로 얘기는 못하지만 오히려 그 양반은 반민 우리 활동하는 것에 대해서 좋지 않게 생각했지 않느냐 나는 그렇게 보고 있어요.
○최재성 그런데 그런 분이 어떻게 특위위원이 될 수가 있었을까요?
○정철용 글쎄요, 그 양반 특위위원들 중에서도 제가 알기로는 별로 달갑지 않은 존재였지 않았느냐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혹시 그분을 통해서 친일파 쪽으로 무슨 정보가 새나가는 거 아닌가 그런 의심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최재성 어느 기록에 보니까 전남지역에 중추원 참의 했던 현준호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체포정보를 미리 알려줘서 도피하게 했다 이런 얘기도.
○정철용 그런 얘기가 많이 들려요. 위원회에서도 같이 회의는 참석하고 발표되기도 전에 미리 다 새고 그런 예가 있었다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
어제도 와서 그 얘기가 나왔어요, 김정육이라고 김상덕 위원장 아들이 자주와요, 내가 아프고 그러니까 이 얘기 저 얘기도 하고 가고. 어제도 그 얘기가 나왔어요, 자기 아버지한테 얘기 들으니까 김준연이 하면 배신자라고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최재성 (반민피의자 명단을 제시하며) 이것은 지난번에도 가져왔는데요, 반민특위에 체포됐던 피의자 명단입니다. 지난번에는 글씨가 조그만 거 가져왔는데 오늘은 글씨를 크게 해서 갖고 왔는데요, 가나다순으로.
○정철용 모르는 것도 많은데요.
○최재성 아마 그러실 것 같습니다.
강낙원, 강낙중, 강보형, 강석조, 강성순, 강세항, 강용달, 강우형, 강정방, 강제호, 강진하, 강태규, 강태석, 고흥.
○정철용 (표의 전거를 가리키며) 이것은 뭐예요?
○최재성 이것은 당시 신문에 보도된 겁니다. 이 사람이 언제 체포됐고 뭐 이런 것들을 적은 것이거든요. 이것은 해방이후고요.
○정철용 고흥, 이 사람은 유명한 사람이고.
○최재성 고흥은 유명하지요.
고한승은 어떻습니까?
○정철용 중추원 참의.
○최재성 이 사람도 비행기 헌납한 사람입니다.
○정철용 예, 구자경, 지사.
○최재성 지사요?
○정철용 경찰서 간부.
권승렬이가 다 나와? 그 당시 검찰총장인데.
○최재성 아마 동명이인지도 모르겠어요.
○정철용 금영주, 금예주.
○최재성 아까 경찰했던 사람이지요, 김갑복 아까 말씀하셨고요.
○정철용 김대우 박천군수.
○최재성 황국신민서사를 만든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거든요.
○정철용 예. 이걸 어디서 뽑았어요?
○최재성 이게 반민특위에 대한 연구 저서가 두 권 나왔다고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정철용 용하게 세밀하게 뽑았네요.
그런데 나도 봤는데 들어갈 사람이 안 들어간 사람이 더러 있더라고요.
김연수야.
○최재성 김연수, 삼양사.
○정철용 이 사람 김연수.
○최재성 김성수 동생, 김연수.
○정철용 굉장히 세밀하게 뽑았네요.
○최재성 김원근, 이 사람에 대해서는 반민특위 조사기록 세평에 보면 활불로, 살아있는 부처로 그런 세평이 있다고 기록이 돼있더라고요.
○정철용 이 양반 교육자라고 세운 것뿐이지 나쁘게 평한 적 없어요.
김원근이 충남 참의 변호사.
아이고, 많이도 뽑았네요!
김태석.
○최재성 김태석.
○정철용 경시, 아주 유명한 고등계형사예요.
○최재성 강우규 의사를 체포한 사람으로.
○정철용 노덕술 있네요.
○최재성 예.
○정철용 박중양 이등박문 양자라고 제대로 나왔네요.
박춘금 이놈 특히 한국 사람보다는 중추원 참의를 했어요.
○최재성 제국의회 의원을 했지요.
○정철용 제국의회 의원을 말이에요.
○최재성 일본으로 도망가서 못 잡았지요.
○정철용 부민관에서 조문기 씨가 폭탄 떨어뜨리고.
○최재성 예.
○정철용 박흥식 하면 화신사장으로 더 유명하지요.
○최재성 예, 화신사장.
○정철용 지금 종각 맞은 편 종로타워 있잖아요?
○최재성 예, 그 자리였지요.
○정철용 그 자리예요, 그게 제일.
○최재성 화신백화점.
이쪽 한국은행 맞은편에 미쓰꼬시 백화점이 있었고, 종로에는 화신백화점이 있었고.
○정철용 방의석 조선일보 설립자 아니에요?
○최재성 아닙니다, 그건 방응모로.
○정철용 방응모도지만.
○최재성 방의석이도 같이 했습니까?
○정철용 이게 위에지요, 그 밑에가 박응모고 그 다음이 방일영이, 방우영이.
○최재성 그렇지요.
○정철용 (배정자를 가리키며) 이등박문의 수양딸이라고 했는데 난 얼굴도 못 봤어요.
○최재성 70대더라고요, 체포됐을 때가.
백낙승은 아시나요?
○정철용 백낙승이도.
○최재성 아까, 송재하.
○정철용 중추원 참의.
○최재성 송종헌이요.
○정철용 맞아요, 송병준이 아들이에요.
○최재성 양주삼 목사.
중추원 참의를 했거나 작위를 받았거나 이런 사람들은 그 당시에 여기서는 당연범으로, 그 당시에도 그렇게 불렀습니까?
○정철용 예.
○최재성 당연범이고 그 이하는 뭐라고 불렀습니까, 선택범 그런 말은 안 썼습니까?
○정철용 안 썼어요.
○최재성 당연범, 또는 당연대상자?
○정철용 그렇지요.
이구범이 아주 악질이야!
○최재성 이구범.
○정철용 이광수는 정말 아까운 사람이야!
○최재성 이기용.
○정철용 이대우 아주 이것도 악질이고.
이명구 충북에서 도회 의원한 자야.
이범익.
○최재성 그 사람은 어떻습니까?
○정철용 이 사람도 간도성장까지 한 사람이야.
○최재성 간도성장이요?
○정철용 원래 간도성장은 조선 사람만 주었다고 도지사가, 일본 놈 대신에 딱 한 사람만.
○최재성 예.
이원보는 잘 모르시나요?
○정철용 잘 모르겠네요, 어디 뭐 하는 사람이에요?
○최재성 이 사람은 지사.
○정철용 평북, 이북에 산 사람은 난 더군다나 모르지요.
○최재성 (이종찬에 대해) ‘참군인 이종찬’ 할 때 이종찬입니다
○정철용 (장직상을 가리키며) 장택상이 형 아니야?
○최재성 예.
○정철용 장헌식이 충북 중추원 참의한 사람.
○최재성 정국은?
○정철용 경찰부장이야.
○최재성 정춘수 목사, 청주에 있지요.
○정철용 진헌식 충남사람이라고, 충남지사인가 뭐 했지요, 아마.
○최재성 해방 이후에요?
○정철용 최남선.
○최재성 육당 최남선이고요.
○정철용 참, 이런 사람들 아까운 양반이에요, 최린도 마찬가지고. 조금만 참았어도!
○최재성 협화회 현영섭, 이 사람도 악질이었다고 이렇게. 그 사람도 아시겠습니까, 홍사묵, 고등계형사?
○정철용 세밀하게 많이도 뽑았네요.
○최재성 당시 반민특위에서 취급했던 피의자들 명단이었는데요, 제가 두고 가겠습니다. 선생님 드리고 갈 테니까 한번 보시고 나중에 또 보시면서도 기억나시는 게 있으면 나중에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건강도 완전히 완쾌되시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정철용 할 수 있으면 제가 협조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