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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학년도 2학기 문화 ․ 예술 철학 과제물
예술의 종말 이후 1~3장 요약
200417872
철학과 고광춘
1장 모던, 포스트모던, 그리고 컨템퍼러리
- 독일의 미술사학자 한스 벨팅와 아서는 미술의 종말에 관한 글들을 출간하였다. 각자 시각 예술의 생산조건에 중대한 역사적 변화가 발생하였다고 보았다. 벨팅은 후기 로마제국시대부터 1400년 경까지 이르는 서양 기독교의 경건한 이미지의 역사를 추적한 예술의 시대 이전의 이미지라는 부제의 책을 출간했는데 여기서 생산에서 그것들이 예술이라고 하는 점이 중요한 구실을 맡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당시 사람들의 삶에서 예술작품과는 전여 다른 역할을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 1980년대에 급진적인 이론가들이 회화의 죽음을 주제로 삼았을 때 진보한 회화는 내적 고갈의 온갖 징후를 보여주거나 최소한 더 밀고 나갈 수 없는 한계를 남기고 있다는 주장에 근거해서 그런 판단을 제기하였다. 벨팅과 단토가 이해하였던 예술의 시대의 종말과 같은 맥락이다. 벨팅의 논지는 내러티브에 관한 것이었는데 동시대 미술은 어떤 미술사에 대한 인식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지만 그것을 더 이상 진전시키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 최근에 들어와서 구속력 있는 위대한 내러티브에 대한 신뢰, 사물이 보여져야만 하는 방식에 대한 신회가 상실되었다고도 한다.
- 단토는 컨템퍼러리의 미술이 어떻게 의식 속에 출현하게 되었는지 고찰한다. 단토는 모던 철학은 르네 데카르트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생각하며, 모던 철학을 구별짓는 것은 그가 취한 내적 전회인 나는 생각한다로의 유명한 전환이다. 이는 사물이 실제로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라기보다 특정한 방식으로 구조지어진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 사물들을 어떻게 사유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것이었다. 데카르트와 모던 철학 일반은 내면으로부터 밖으로 나아가면서 우주에 대한 하나의 철학적 지도를 그리는데 인간 사유의 구조가 우주의 모체이다.
- 그린버그는 모더니즘의 내러티브를 한 걸음 한 걸음씩 구성해 내어서는 결국에 바자리가 정의내린 전통적인 재현적 회화의 내러티브를 대체하게 되었다. 평면성, 물감과 붓질에 대한 의식, 직사각 형태 등의 회화의 발전 연쇄에서 한때 진보적 지점을 점하였던 원근법, 단축법, 명암법을 대체하였다. 그의 논지는 모더니즘 이전의 미술로부터 모더니즘 미술로의 이행은 회화의 모방적 특질로부터 미모방적 특질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단토는 모더니즘이 낭만주의를 이런 방식으로 따르지 않았다고 본다. 모너니즘은 의식의 새로운 층위로의 상승이 이루어졌다는 특징을 갖는데 이것은 모방적 재현이 재현의 수단과 방법에 대한 성찰보다 덜 중요해졌음을 강조하는 일종의 불연속성으로서의 회화 속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던은 예술에서뿐만 아니라 철학에서도 전략, 양식, 의제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 초현실주의는 꿈, 무의식, 에로티시즘, 그리고 포스터가 보기에 기이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므로 거의 비순수성의 구현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린버그주의적 견해로 볼 때 컴템퍼러리 미술은 모두 다 순수하지 않을 것이다. 모던이 단지 가장 최근을 의미하는 시간적 개념이 아니듯이 컴템퍼러리도 지금 이 순간에 발생하고 있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 하나의 시간적 개념이 아니다. 오랫동안 컨템퍼러리 미술은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모던 미술로 간주되었을 뿐이다. 결국 모던은 지금과 지나간 그때 사이의 차이를 함축하는 표현에 불과한데, 사태가 한결같고 전반적으로 동일하게 남아있다면 그러한 표현은 무용지물일 것이다. 모던은 하나의 역사적 구조를 함축하며,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그것은 가장 최근과 같은 용어보다 더 강력하다. 컴템퍼러리의 분명한 의미는 단순히 지금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인데, 이 미술은 우리 동시대인들에 의해 생산된 미술을 가리키는 게 될 것이다. 단토는 컴템퍼러리를 하나의 시대를 가리킨다기보다 미술이 거대 내러티브 속에 위치해 있었던 시대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이후에 발생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예술제작의 한 양식을 가리킨다기보다 양식들을 사용하는 하나의 양식을 가리킨다고 본다.
-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 자체는 컨템퍼러리라는 용어가 하나의 양식을 전달해주는 용어로서는 상대적 취약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아서는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가 바로크나 로코코의 양식들을 식별하는 법을 배우는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식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어떤 하나의 양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본다. 이 결과 어느 특정한 방향을 지향하는 내러티브의 성립가능성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 사실상 모더니즘의 종말 이후의 시각예술의 징표이다. 아서는 이점을 모더니즘의 종말 이후의 시각예술을 단순하게 탈역사적 미술이라 부르는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
- 1960년대는 양식들의 발작기였으며, 이시기가 진행되던 중 예술작품이 한갓된 실재 사물이라 부르는 것과는 대조되게 특별나게 보여야 하는 특별한 방식은 없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신사실주의자들과 팝아트를 통해 점차적으로 분명해지게 되었다. 단토는 이점을 예술의 종말로 본다.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그 사례가 될 것이다. 단토는 1960년대의 국지적인 사실인 회화와 조각만으로 본질적인 미술리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예술철학이어야 했다고 평가한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가 예술에 관한 철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 모더니즘의 역사가 끝나게 된 것은 형태, 표면, 물감 등과 같이 회화를 그 순수성 속에서 정의내려 주는 것들에만 관심을 쏟은 모더니즘이 너무 국지적이고 물질주의적이었다고 본다. 그린버그는 모더니즘 회화가 나는 가지고 있는데 다른 종류의 미술은 가질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하였다. 단토는 모더니즘의 종류가 한 순간에 빨리 발생하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70년대의 미술계는 미술의 한계를 밀어낸다거나 미술사를 확장하는 것보다 이런저런 개인적이거나 정치적인 목표에 미술을 봉사시코자 하는 의제에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이 최대한 억압하고자 했지만 아방가르드가 힘들게 성취해낸 가능성은 그들은 이용할 수 있었다.
2장 예술의 종말 이후 30년
- 예술의 종말이라고 하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단 단토의 논문은 1984년이나 이후 몇 년 동안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었다. 단토가 주장하고자 한 바는 예술의 역사적 발전에서 모종의 종결이 발생하였다는 것, 서양에서 지속되었던 놀라운 창조성의 시대가 종말에 도달해다는 것, 그 이후로 만들어진 예술은 그 무엇이건간에 탈역사적이라 부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러한 테제는 무엇이 나의 테제를 확증하거나 반증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제기된다.
- 단토가 생각하는 예술의 종말은 1980년대의 미술시장이 그렇게 커지지라고 상상하기 전이다. 서곡과 종결부를 가지는 많은 사건들이 그렇듯 사람들의 눈에 띠게 진행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여러 물음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예술의 종말을 주창하고도 어떻게 미술비평가로서의 이력을 시작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이다. 그러나 단토는 어떤 점에서도 미술의 제작이 중단될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답한다. 헤겔의 역사관을 통해 세계의 어떤 지역들만이 그리고 특정 시기들에서 진정으로 세계사적이며 다른 지역이나 다른 시기의 같은 지역은 세계사적 사건의 일부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단토는 이점을 자기의 미술사관과는 대조적인 미술사관들이 어떤 유형의 예술만을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정의하고 나머지 예술들은 현 시점에서 세계사적이지 않으며 고찰의 대상이 될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본다. 이런 유형의 이론들이 모더니즘의 시대에 특히 지배적이었다.
- 예술이 종말에 도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유형의 비평이 이제 합법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이 종말에 도달했다고 하는 믿음이 아무나 쉽사리 될 수 없는 유형의 비평가를 필연적으로 불러내게 되는 것은 아닌데 그 밖의 모든 것을 경계 밖으로 몰아내면서 자신만이 역사적 위임을 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예술형식은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다. 이런 유형의 비평가가 된다는 것은 유형의 미술사적 내러티브들 모두가 이제 그릇된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런 내러티브는 선언문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20세기의 전반부가 생산해낸 주된 예술적 산물이다. 예술에는 언제나 동일한 초역사적 본질이 존재하나 이것을 오로지 역사를 통해서만 드러난다는 점이 중요하다. 단토가 받아들 수 없는 부분은 이 본질을 특정한 하나의 예술양식인 모노크롬이나 추상과 동일시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그 외의 모든 양식의 예술은 그릇된 것이라는 함의가 들어있다. 헤겔은 예술, 철학, 종교가 절대정신의 세 계기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은 본질적으로 서로의 변형물이거나 동일한 주제를 상이한 음조로 전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모던 시기에 미술비평가들이 취했던 행동은 이것을 승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들의 승인은 선언문의 대안적 의미라고 할 수 있는 일종의 교리문이고 교리문에 신봉하지 않는 자는 이단처럼 근절되어야 할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비평의 의미에서 본다면 이러한 것은 선언문을 대신 써주는 것이다.
- 선언문 시대의 요점은 자신이 철학으로 간주하는 것을 예술생산의 핵심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예술을 예술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예술에게 공민권을 부여하는 철학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 경우 철학 자체는 예술의 진리에 관한 모종의 규정적인 정의로 이루어지거나 아니면 경우에 따라 미술의 역사를 철학적 진리의 발견의 이야기로 다시 읽어내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점에서 단토는 자신의 비평적 실천과는 본질적으로 상이한 비평적 실천을 함축하고 있는 이론들과 상당한 공통점을 보여준다고 보고 이 이론들이 서로간에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점과는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 단토의 이론이 공통점을 보이는 것은 첫째, 예술의 본성과 관련해서 무엇이 올바른 철학적 물음인가에 대한 어떤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단토의 이론도 미술사에 대한 모종의 독서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독서는 예술의 철학적 본성이 미술사 자체의 내부로부터 하나의 물음으로 떠올랐을 때에만 제기될 수 있다. 다른 이론들 사이의 차이도 이점이다. 단토는 예술의 종말이 예술의 참된 철학적 본성을 깨닫게 된다는 데 있다고 본다.
-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단토는 철학적 신념에 호소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물음을 제기하는데 예술계의 구조가 정확하게 말해서 예술을 창조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명백히 예술이 무엇인지를 철학적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예술을 창조하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예외적인데 예술작품의 기원에서 1950년 이후 헤겔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를 말하기에는 이르다고 보았다.
- 인상주의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철학도 필요하지 않은데 최초의 인생주의 관객들은 인상주의 회화가 어떠한 것인지를 제대로 볼 수 없는 방해했던 어떤 오도적인 철학의 제거가 오히려 필요하다. 인상주의 작품은 우리를 미적으로 즐겁게 하는데, 이 사실이 왜 인상주의가 아방가르드 미술의 열렬한 지지자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그토록 광범위하게 찬미되는지를, 그것이 왜 그렇게 비싼지를 부분적으로 설명해준다. 인상주의 작품은 비평가들을 격분시켰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수집하는 사람들에게 지적이고 비평적인 우월감을 부여할 정도이다.
- 예술의 종말 이후에도 마치 모더니즘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 모더니즘적인 철학적 실험을 미술에서 하는 사람이 있다. 모더니즘을 계속 믿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실천 속에는 예술의 종말 같은 것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토는 역사적 현재의 심원한 진리는 선언문에 의해 추동되는 미술의 기본 전제가 이제는 철학적으로 옹호될 수가 없기 때문에 선언문의 시대가 끝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에서 철학적 문제들에 관해 씌어진 대부분의 명제들과 물음들을 그른된 것이 아닐지라도 무의미한 것이며 이런 유형의 물음들에 대답할 수 없고, 단지 그것들의 무의미성을 진술할 수 있을 뿐이다고 보았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그 무의미를 증명함으로써 모든 형이상학을 근절할 것을 주창했다. 실증주의자들은 형이상학이 무의미한 것은 검증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유사한 입장이 미술계에도 있었는데 이 입장은 유일하게 유의미한 미술로서, 본질적으로 미술인 유일한 미술로서 애드 라인하르트의 영웅적인 비전에서 나타나는 검정색 혹은 하얀색의 모노크롬 캔버스, 사각형, 평면, 물감 덩어리 등을 뒤에 남겨 놓았다.
- 미술계에서 이에 상응하는 인물이 용인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진정으로 미술이 아닌 어떤 것을 삽화이거나 장식이거나 아니면 보다 못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단토는 예술이 표면적으로나 비본질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물음과는 대립되는 물음으로서 예술이 진정으로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철학이 취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잘못된 형식의 물음이며, 예술의 종말에 관련한 견해들은 이 물음의 진정한 형식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시사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양자 사이에 흥미로운 지각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을 때 예술작품과 예술작품이 아닌 어떤 것 사이의 차이를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제기를 한다.
- 데카르트는 성찰에서 꿈과 깨어있는 경험을 구별되는 것으로 말해 줄 수 있는 내적 징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칸트는 도덕적인 행위와 아주 닮았지만 도덕성의 원리에 단지 일치하는 것처럼 보일 뿐인 행위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고자 했다. 단토가 보기에는 하이데거는 진정성과 비진정성 간의 차이가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진정한 삶과 진정하지 않은 삶 사이에는 외적인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성찰은 철학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런 발견들은 예술사의 특정 순간에 출현하였다. 단토는 예술의 본선에 관한 참된 형식의 철학적 물음이 제기될 수 없었던 점에서 예술철학은 예술사의 볼모가 아니었나고 생각한다.
3장 거대서사 그리고 비평의 원리들
- 어떤 이야기도 표준적인 에피소드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해도 하나의 내적으로 정해진 내러티브의 시간만을 경과하면서 단순명료하게 전개되지는 않는데, 전기를 쓸 만하고 읽을 만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우연한 사건들인 인과적 역사들의 교차이다. 피카소는 1905년에 광대 가족을 그렸지만, 그를 포함하여 그 누가 1년 후에 아비뇽의 아가씨들과 같이 상상할 수 없었던 어떤 것을 그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추상표현주의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55년에 1962년 되면서 팝아트와 같은 것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물음은 그 사례가 될 것이다. 이것은 어떤 것도 역사적 위임을 받지 못한다. 모든 것이 동등하게 좋은 것이 될 것이다라는 믿음은 탈역사적 예술이 처해 있는 객관적인 조건이다. 워홀은 추상표현주의자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팝아티스트나 사실주의자. 그 밖에 다른 어떤 것도 될 수 있는 것이다.
- 하인리히 뵐플린의 미술사의 원리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역사의 종말과 예술의 종말인 두 가지 의미와 자유상태는 하나의 장르라고 하는 한계에 구속되기를 거부하고 순수성이 이상을 배격하는 다른 수많은 예술가들의 경우처럼 어떤 것이든 자유롭게 될 수 있고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예술가들은 학문적 순수성이라고 하는 것에 의해 제약받기를 거부하며 프로페셔널리즘이 그어놓은 경계선들을 가로지르며 작업하는 학자와 유사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이러한 개념은 차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모든 역사적 계기들을 하나도 뛰어넘지 않고 줄곧 거쳐왔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슬 이야기의 끝이다.
- 모방은 아리스토텔레스부터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주어졌던 표준적인 철학적 답변이었다. 단토는 모방이 하나의 양식이며, 예술이 무엇인지 모방이 정의내리고 있었던 시대에는 이런 의미를 갖는 다른 양식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본다. 모방은 모더니즘의 도래, 선언문 시대의 도래와 함께 하나의 양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모방은 모더니즘 시기 이전까지는 이데올로기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 계속에서 모방론에 찬동하였던 사람들은 모더니즘의 범례적인 작품들 모두 전혀 예술이 아닌 것으로 일축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견해에 비춰보면 모방의 시대가 있고, 이를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뒤따르며, 그 다음에는 어떤 것도 허용되는 우리의 탈역사적 시대가 뒤따른다고 하는 미술사의 거대서사가 그려지게 된다. 이 시대들 각각은 상이한 미술비평 구조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삼부작 시대구분은 처음에 한 사람만 자유롭고 다음에는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자유로우면 마침내 그의 시대에 와서는 만인이 자유롭다고 하는 헤겔의 거대한 정치적 내러티브와 일치한다. 이러한 내러티브에서는 처음에 모방만이 예술이었고, 다음에 몇가지가 예술이었으므로 경쟁자를 제압하기 위해서였다면 양식적인 그리고 철학적인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이것이 현재이며 거대서사의 마지막 순간이다.
- 바자리 이야기에 따르면 미술은 시각적 외관의 진보적 정복이자 숙달 전략들의 점진적 획득으로 이를 통해 세계의 시각적 표면들이 인간이 시각체계에 미치는 효과가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시각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그름의 표면을 수단으로 복제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바자리의 저서에서 서서시적인 논지로 볼 때 역사를 만드는 사람은 화가들이다. 이런 부류의 모방은 중국의 회화사를 특징짓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르네상스와는 달리 예술가들이 더 나은 그림을 그림으로써 고대인들을 능가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들을 모방하고자 하였다.
- 곰브리치의 설명에서 진보는 주로 두 가지 요인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데 수작업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각적인 것이다. 지각적인 것은 재현의 적합성에서 어떤 불일치를 드러내준다. 따라서 지각은 역사를 가진다고 하는 곰브리치에게 돌려지는 테제는 왜 재현미술은 역사를 가지는가라는 그의 주제와 구별될 필요가 있다.
- 단토는 시각체계가 미술에서 행하는 구실을 과학에서 행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과학에는 미술에사와 같은 진보가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에서는 말초적인 현상을 제외하고는 경험과 연관시킬 필요가 없는 표상들 속에 진보가 존재한다. 과학이 우리에게 말하는 세계는 우리의 감각기관들이 드러내는 세계와 부합할 것을 요구받지 않는다. 이것이 바자리적인 회화사의 요점이다.
- 하나의 예술로서의 회화는 적어도 바자리적 내러티브 하에 있는 회화는 더 적합한 재현을 만들기 위한 학습된 전략 체계로서 이것을 불변의 지각 기준에 의해 판별된다. 모더니즘 회화는 예술이 아니다라고 즉각적으로 말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 이 회화모델이다. 예술이라는 용어가 여태까지 이해되어 왔던 바에 의하면 모더니즘 회화는 예술이 아니었다. 또한 모더니즘 화가들은 기술을 제대로 정복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리는 법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그리는 법을 몰랐다거나, 아니면 충격을 주고자 했다는 비평들은 이와는 다른 질서에 속한다.
- 바자리식 역사를 연장하고자 하지 않았던 미술을 위해 하나의 새로운 모델을 발견하고자 노력하였다는 점을 놓고 프라이를 칭찬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어떤 일반성의 수준으로 상승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는 점은 그의 공로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바자리로서는 이런 종류의 문제를 다뤄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을 어떤 심대한 것이 미술사에 발생했다는 것을 발해주는 분명한 징표가 되는 것이다. 모더니즘 출현 이전에는 그 누구도 그렇게 할 만한 기회를 가지지 못하였다. 프라이의 비평 모델은 모던 미술을 서툴거나 정도를 벗어난 것으로 깎아내리려는 노력에 대한 하나의 역반응이었으며, 새로운 내러티브 하에서 모더니즘과 전통적인 미술을 연결하고자 한 최초의 이론이다. 프라이는 이들이 형식을 창조하고자하며, 그들은 리얼리티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를 주의할 점이 있는데 첫째는 예술가들이 충분히 소묘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성실한 예술가라는 데 있다.
- 결국 프라이와 칸바일러는 둘 다 차이들을 완하하려는 공통된 노력을 보여주는데 칸바일러는 새로운 형식의 글이 요구되는지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않은 채 그것이 단지 새로운 형식의 글에 익숙해지는 문제에 불과하다고 설명하며 차이를 완화하고자 하였다. 단토는 초기 회화의 모방적 특징들이 참된 본성을 위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미술에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았겠는가라고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