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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20(주) 주일예배 / 제목 : 우월감에 빠지지 말라(마23:29~36)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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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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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 오늘도 이렇게 주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능력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듣기 전에 우리 앞뒤좌우로 인사하실 때에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라고 인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23장 29절로 36절까지의 말씀을 가지고 ‘우월감에 빠지지 말라’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론 / 마태복음 23장은 고난주간의 셋째날인 화요일에 있었던 교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화요일에는 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권위 문제, 세금 문제, 부활 문제, 계명 문제, 그리스도의 신분 문제 등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예수님께서는 지혜롭게 잘 처리하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지적하시면서, 그들을 본받지 말도록 경계하셨습니다. 13절부터 36절까지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일곱 가지 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일곱 가지 화에는 예수님의 아주 과격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치명적인 잘못들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일곱 번에 걸쳐서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은 결과적으로 외식하는 자들을 자복하고 회개시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인내와 노력을 하셨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7번째 화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론 /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왜 예수님께 책망 받았는가?
마태복음 23장은 누구보다도 설교자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말씀으로, 무거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토록 책망하셨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행위를 살펴볼 때에 마태복음 23장의 말씀은 오늘날 저를 포함한 이 시대의 모든 목사님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질타하신 음성처럼 들려지기 때문입니다. 23장에서 주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날카롭고 단호하게 책망하신 말씀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화'(마23:13~14)를 받는 이유는 그들이 오히려 천국 문을 닫는 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스스로 잘못 해석함으로서 자신들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무서운 화를 선언하심으로 복음을 잘못 전하는 자들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화'(마23:15)는 이교도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이 그들의 선생인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을 보고 배워서 이제는 이교도의 악에다 유대인의 악덕까지 더해진 것에 대한 화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을 지옥자식에 비유했는데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가르친 잘못된 신앙 때문에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화를 선언받게 된 것입니다.
세 번째 '화'(마23:16~22)에서 바리새인들은 성전으로 맹세하면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으나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잘못된 해석을 내린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잘못된 해석은 물질을 탐내는 세속적인 가치 기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들의 이 같은 배경에는 맹세라는 형식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신앙을 과시하려는 허영심이 나타나 있으며 현세적이며 물질주의적인 사고가 그들의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네 번째 '화'(마23:23~24)는 바리새인들이 율법의 외형적인 면은 지나치게 강조하면서도 율법의 근본인 의(공평)와 인(자비)과 신(믿음)은 완전히 무시해 버린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율법의 근본정신을 버리고 율법의 형식만을 추구하다가 무서운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다섯 번째 '화'(마23:25~26)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적인 삶이 겉은 깨끗하나 안에는 온갖 더러움이 가득한 그릇으로 비유되었습니다. 즉, 그들의 외모나 품성은 거룩하고 아름답게 나타나지만 그들의 내면적 삶은 탐욕과 방탕과 온갖 더러움이 가득한 불의의 삶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이중 인격자들은 주님의 경고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여섯 번째 '화'(마23:27~28)는 유대인들의 외식적인 종교상태를 말하고 있으며 그들의 이중적인 삶의 습관적인 태도를 죄악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일컬어 '회칠한 무덤'(27)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겉과 속을 아름다움과 죽은 자의 뼈와 추잡함(27)으로 비유함으로서 이러한 양극단의 신앙인들에게 강력한 경고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 '화'(마23:29~36)는 오늘 본문의 내용으로서 잘못된 역사의 전철을 되풀이하여 밟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당대의 의인이자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 요한과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까지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을 정도로 잔인무도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구약시대에 순교한 선지자들의 무덤을 보고 의인들의 비석을 세우면서 자신들이 조상 때에 있었다면 선지자들의 피를 흘리는 조상의 일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니 강퍅하기 그지없는 것입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29~30절)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학자들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꾸미는 데 열심히 남달라 성전의 헌금 일부를 선지자의 무덤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데 사용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선지자들의 무덤을 화려하게 꾸민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의 경건함을 과시하는 동시에 의인과 선지자들을 죽인 조상들과 자기들은 다르다는 은근한 자기 우월감에 젖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인과 선지자들을 죽인 조상들을 탓하며 자기들만큼은 다르다고 말한 그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의인 중의 의인이요, 선지자 중의 선지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데 가장 앞장섰던 사악하기 그지없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이 조상 때에 살았더라면 선지자들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의롭고 경건한 척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31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증명함이로다”고 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조상들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의로운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어 주며 조상들과 자신들을 구분하려 하였지만 실제로는 마지막 이스라엘의 선지자라 할 수 있는 ‘세례 요한’을 죽이고 메시아이자 최대의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죽이려함으로써 그들 조상의 행위를 답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과 다르다고 말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그들 조상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자임을 그리고 그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주님께서는 (32절)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량을 채우라’는 표현은 원래 ‘말이나 저울의 부족한 양을 채우라’는 뜻으로 여기에서는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일을 마무리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는 좋은 의미에서 주신 말씀이 아니라 “너희 조상들이 죄의 잔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사악한 일을 너희가 충만히 채우기까지 계속하라”는 냉소적인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는 말씀은 조상들이 다 행하지 못하고 남겨둔 악행을 가득 채워 완성하라는 뜻이지만 사실은 그러지 말라는 말씀이고 그리하면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33절)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뱀과 독사는 사탄의 상징으로서 하나님께 저주받은 동물이었습니다. 따라서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는 말은 유대인들에게 있어 가장 모욕적이고도 심한 욕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표현은 장차 마귀가 지옥 형벌을 당하게 될 운명인 것처럼 그들도 지옥 심판을 당할 운명적 존재라는 사실을 경고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34절을 보면 주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34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그의 제자들이 당할 세상의 핍박을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제자들에 대해 세상은 무자비한 핍박을 가해 왔습니다.
그들은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였고, 야고보의 목을 베었으며, 베드로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외에도 사도 요한을 제외한 모든 사도들이 순교를 당했으며, 사도 요한도 오랫동안 유배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2천 년 역사 가운데 얼마나 많은 핍박이 성도들에게 가해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도들은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서 신앙으로 인해 고난을 당할 때에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오늘 34절 말씀처럼 예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평안과 칭찬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도리어 성도들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고, 그 말씀대로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신앙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이상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피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핍박이 올 때 그것을 성도가 통과해야 할 관문으로 생각하며 인내로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고난은 당시에는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이겨낸 성도에게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영광의 면류관을 얻도록 해 주는 방편이 될 것입니다.
35절과 36절에 (35~36절)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세상에서는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빼앗고 죽이는 천인공노할 살인사건이 얼마나 빈번하게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권보호라는 명분으로 그 알량한 휴머니스트들은 흉악범들과 살인범들의 사형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사람을 죽인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그의 인권은 존엄하기 때문에 사형을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사형이 인간 존엄성을 침해한다며 2008년도에 위헌소송을 낸 사람이 있는데 그는 전남 보성에서 젊은이 4명을 연쇄 살해한 어부 오종근(74세)입니다. 오종근은 2007년 8월 바닷가에 놀러온 19세 대학생 커플을 자신의 배에 태워 바다로 나간 뒤 남자를 물에 빠뜨려 숨지게 했습니다. 여대생을 성추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손길을 거부하는 여대생마저 바다로 내던졌습니다.
그는 3주 뒤 같은 방법으로 20대 여성 2명을 또 살해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소중한 목숨을 빼앗고도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자 그는 2심에서 사형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요청하였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사형이 확정돼 수감 중인 사형수는 현재 60명입니다. 이들이 살해한 피해자는 모두 207명으로 사형수 한 명에게 평균 3.5명이 희생됐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여러 명의 생명을 빼앗아놓고 자신의 인권은 존중해 달라고 요구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형의 합헌성이 두 차례 확인됐지만 실제로 사형은 1997년 이후 18년째 집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사형수 60명을 살려두기 위해 한 해에 무려 13억 2000만원 가량의 예산을 쓰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뭔가 우리 사회가 대단히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9장 6절을 보십시오. (창9: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보다 더 자비하고 사랑이 많은 척하는 위선자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운운하면서 사형을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의 피는 강한 호소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이 가인에게 죽임을 당한 후 즉시 가인을 찾아오셔서 (창4:10)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가인을 향하여 (창4:12)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되리라”고 저주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 9절에 보면 순교자들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계6:9~10) “...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그때에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계6:11) “...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의인들의 흘린 피는 반드시 보상을 받고 갚음을 받게 될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이 땅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리게 한 자들도 반드시 심판의 형벌을 받을진대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흘리게 한 자들과 보혈의 공로를 거부하고 주님의 피를 욕되게 한 자들이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크겠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 자들에게는 또 다른 놀라운 대가가 주어지게 됩니다. (요일1:7) “...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는 사죄의 축복입니다.
결론 /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경건함을 과시하거나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자기 우월감에 빠져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이런 의식 때문에 예수님이 일곱 가지 화 중에서 마지막 일곱 번째를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책망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혹이라도 우리도 경건함을 과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묵묵히 주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영광을 돌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월감에 빠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 앞에 서면 죄인이요 긍휼을 입어야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의롭다고 칭해 주시고 긍휼을 입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경건함을 과시하거나 우월감에 빠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내 자신을 먼저 돌아봅시다. 나는 지금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에 놓여 있는지를 점검해봅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도록 노력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결론핵심 - 어떠한 경우에도 경건함을 과시하거나 우월감에 빠지지 맙시다.
요약정리 /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왜 예수님께 책망 받았는가?
잘못된 역사의 전철을 되풀이하여 밟는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