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절도죄로 감방에 갔다 온 수보리의 모습
형법 제114조
예전에 조폭두목들의 신년회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아! 이런 맛 때문에 조폭을 하는구나!’ 하고 감탄 아닌 감탄을 했다.
깍두기 머리에 검은 정장을 한 사내들이 양쪽으로 도열해 90°로 허리를
숙이고 있는 그 사이를 지나가면서 희열을 느꼈다. 나도 능력이 되면 조
폭두목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만큼 그들이 멋져보였다.
그때 그 느낌을 잊지 못한 탓일까? 결국엔 나도 조폭두목이 되고 말았다.
세속에서 말하는 형법 제114조에 해당하는 범죄단체를 구성한 것이다. 조
직원을 모집하여 단체를 만들고 합숙을 통하여 조직원들에게 단체강령과
단체싸움에 대비한 전술을 전했다. 또한 자신의 격에 맞는 무기를 다루는
법과 상대가 입을 피해를 조절할 수 있는 타격 법을 가르쳤다.
조폭의 세계에도 서열에 의한 엄연한 질서가 있다. 특별한 게 없는 그저
그런 조폭들은 반열에 들기 위해 어렵고 힘든 일을 자처하고 나선다. 조
직의 임무를 수행한 뒤에 감방에 한 번 갔다 오면 한 계단 올라설 수 있
는 발판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그 반면에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조폭은 제 손에 절대 피를 묻히지 않는
다. 눈짓이나 지나가는 말 한 마디면 밑에서 다 알아서 처리하기 때문에
그럴 일이 없다. 그 대신에 절대적인 힘과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어야 한
다.
우리 조직에도 얼마 전 한 단계 올라서기 위해 일을 치르고 감방에 갔다
온 초짜 녀석이 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감방 한 번 갔다 오더니 온 세
상이 자기 것 인양 기고만장하여 눈뜨고 봐줄 수가 없다. 그래서 조직의
위계질서를 정립하기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범무주암파 두목인 내 신을 수차례 물어다 숨긴 수보리를 상습절도죄로
감방에 보냈다. 모양 빠지게 조폭이 절도죄로 구속되다니 우리 조직을 완
전히 망신시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변호사도 선임해주지 않았다.
감방에 수감 된 첫날 수보리는 온갖 패악을 떨며 소란을 피웠다. 그 다음
날부터는 가석방을 의식한 탓인지 조용하게 수형생활에 임했다. 확정된
수보리의 형량은 7일이었으나 모범수로 뽑혀 5일 만에 가석방으로 영어의
몸에서 풀려났다.
감방에서 나왔으면 당분간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자중해야 마땅하다. 그런
데 이 녀석은 이 두목의 신을 또 물어다 감추고 똥오줌도 함부로 마구 싸
는 등 한술 더 떠 말썽을 부리고 있다. 부아가 치밀지만 그렇다고 두목이
직접 아랫것한테 손을 댈 수는 없지 않은가.
할 수 없이 범무주암파 행동대장 보리를 풀었다. 보리에게 일을 맡기는
대가로 햄을 구워주었다. 그리고는 ‘보리야! 아무래도 수보리가 아직 정
신을 못 차린 것 같아!’ 하고 지나가는 말로 슬쩍 흘렸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며 보리가 대답대신 귀를 쫑긋거렸다.
그러고 돌아서는데 햄 냄새를 맡은 수보리가 보리 곁으로 달려왔다. 이내
수보리의 단말마가 들렸다. 이 두목의 의중을 읽은 보리가 수보리에게 테
러를 가한 것이다. 보리에게 물린 수보리의 귀에서 빨간 물감이 번지고
있었다.
수보리야 짜샤! 조폭은 피도 눈물도 없는 법이니까 얼른 정신 차려 임마!
암자의 90%가 화장실인데 하필이면 왜 이 두목의 방 앞에다 똥오줌을 누
고 신을 물어 가느냐 이 말이여! 그러다가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라면
끓일 때 넣어버리는 수가 있어! 그 뒤로 수보리는 신문에 낀 전단지처럼
어느 구석에 끼어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