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A코스:10-신성리-대슬랩-사달산-문필봉-사봉재-북봉-중봉-연석산
-늦은목-서봉 칠성대-운장산-동봉-각우목재(칼크미재)-내처사동주차장
《완주 연석산 硯石山928m》
<연석산>은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와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의 경계에 있는 917m의 산이다.
산에서 벼룻돌[硯石]이 많이 생산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완주군 사봉리 연동 마을 쪽에는 여인이 베를 짜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베틀바위가 있고
시집을 온 각시가 폭포 아래에 있는 소(沼)에서 목욕을 하였다는 각시소가 있다.
연동골에 있는 마당바위 아래 산지당은 산제당[山祭堂]을 일컫는 사투리로. 산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기도처이다.
연석산 산행은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연동 마을을 출발해 연석사를 지나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 올라가는
노선으로 약 4㎞ 정도이다.
연석산 동쪽으로 약 2.5㎞ 지점에 운장산이 있으며, 북쪽에는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검태 계곡으로
하산하는 등산로가 있다.
<산행등로>연석산의 산행등로는 신성마을->대슬랩(250m)->사달산->문필봉->565봉->사봉재->
병풍바위->연석산 이다.
<사달산 士達山634m>강원도 정선의 사달산은 사방의 경치가 트여서 사달산으로 완주의 사달산은
바위로 되어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와 같다고 하여 사달산이라 불런다.
사달의 의미는 벼루(연석)에 먹을 가라 글(문필)을 쓰거나 글짖기 학문을 많이 한 선비로 사달士達이다,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선비라 부런다,
사달산은 문필봉,연석산)능선으로 55번 국도가 지나는 동면 거인리와 사봉리 동쪽에 남북으로 길게
우뚝 솟아 오른 산줄기다. 이곳에 250m 대암벽등산로가 위치 한다.
<사달산 대슬랩>사달산 초입계곡을 끼고 한동안 바위 너덜길과 우거진 숲길을 빠져나오면 대슬랩의
시작인듯 작은 슬랩을 만난다. 대슬랩구간은 별도 우회로가 있다.
200여m가 넘는 바위 벼랑에 로프가 걸려 있다지만 실제로 50m도다. 오래 전에 설치되어서 굵은
로프가 낡아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매달리면 위험하다.
최장 250미터의 대슬랩 구간을 만난다. 첫번째 구간이 끝나면 나무를 잡고 올라서 가야하고 두번째
구간은 아주 얇은 밧줄이 하나 있었는데 그냥 기어서 올라가는게 안전하다.
나무를 잡고 험한 구간을 올라서면 마지막 밧줄 구간이 나온다 마지막 밧줄 구간을 올라서면 암릉에서
떨어져 나온 바위 하나가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 바위가 있다.
<문필봉 文筆峯 625m>문필봉은 붓끝과 같이 뾰족하다고 문필봉이다. 문밀봉 아래에서는 인물과 인재
난다 하여 길지로 치는 곳이다.
<사봉재>사봉리는 묵계, 원사, 신사, 시평, 밤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사봉재는 사봉리로 통하는
고개다.
그 중 묵계는 이 마을 위에 옛날 먹을 만들었던 곳이 있어 마을 앞 시내가 먹물과 같았다는데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북봉 중봉 정상>사봉재에서 급경사를 지나 병풍바위→북봉→남봉→연석산 정상에 이런다.
연석산의 정상에서 백미는 단연 바라보는 화려한 조망과 서능의 암봉들이다
특히 북능쪽으로 사봉재를 거쳐 뻗어 내린 산줄기에 기이한 이름의 산 사달산이 있다
사방이 돌산이라 마치 사다리를 연상케 한다고 불리며
지형도상에 이름이 없고 높이만 기재되어 있는 사달산이다. 우리나라 최장의 250m 대슬랩을 자랑하며
아직까지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곳이며 암벽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산이다.
<만항재 늦은목 晩項 765m) 전북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 정수암마을에서 완주군 동상면신월리 검태골
마을을 잇는 고개 길이다.
만항재를 넘어 연석산으로 가는 금남정맥길 이다. 늦은목재는 낮은 산등으로 사람들이 넘어다니는
고개라 해서 늦은목이라 부른다.
《진안 운장산 雲長山 1,126m》 전북 진안군
<산이름>조선조 중종때 성리학자 구봉(龜峰) 송익필이 서봉 아래 오성대에서 은거한 뒤로 그의 자(字)인
'운장'을 따서 운장산 이다. 운장산(雲長山)의 옛 이름은 구절산(九折山) 주줄산(珠崒山)으로 불리어 젔다.
<운장산 산세>은 금남정맥 최고의 전망대이고, 진안고원을 대표하는 진산(鎭山)이다.
진안고원(鎭安高原)은 무주․ 진안․ 장수 3개 군에 걸쳐 있는 해발 500m의 고원이다.
북류하는 금강과 남류하는 섬진강의 분수계가 된다. 호남의 산꾼들은 연석산-운장산-구봉산을 묶어
‘전북 알프스’로 불러왔다.
정상에서의 조망이 무척 뛰어나 북쪽으로 대둔산과 계룡산이, 동으로는 덕유산국립공원, 남쪽으로는
마이산과 그 뒤로 지리산 전경이 웅장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금남정맥의 주산(主山)이며 최고봉을 이루는 운장산은 그 정상의 중봉을 비롯해 좌.우에 동봉과 서봉이 있다.
운장산의 서쪽은 완주, 익산, 김제, 정읍일대는 넓디 넓은 평야지대다.
<동봉 삼장봉1133m> 암봉 두 개가 마주하고 있다. 정상에는 ‘삼장봉’라고 표시되어 있다. 지도상에는
1,124m로 기재되어 있다.
<중봉 운장대 1,125m>은 암봉이 아니고 흙봉우리에 ‘운장대’라 쓴 표지석과 ‘대삼각점’이라고 한자로
쓰인 측량석이 있다.
정상에 서쪽으로 군산 앞바다, 북쪽으로 대둔산, 동쪽으로 덕유산 줄기, 남쪽으로 마이산과 그 뒤에
버티고 솟아있는 성수산, 덕태산, 팔공산을 볼 수 있다.
<상여바위>서봉과 운장대 중간지점에 우뚝 솟은 바위가있는데 이 바위가 상여바위 이다. 산 아래
대불리에서 보면 바위군이 흡사 상여나가는 행렬을 닮았다고 한다.
두 개의 문 모양으로 갈라진 바위를 지나 약간의 내리막을 돌면 상여바위를 지나면서 확 트인 암릉
길이 이어진다.
<서봉 칠성대1,120m)> 일명 ‘독제봉’이라고도 하며 큰 암봉으로 되어 있고, 서봉 아래에 오성대가 있으며,
부근에는 북두칠성의 전설이 담겨 있는 칠성대가 있다.
<독제봉의 전설>평소 나라의 혼란스러움과 장차 닥칠 국가의 큰 위기를 짐작한 이이는 항상 선조에게
시국을 개혁할 대책을 내놓곤 하였다.
그리고 선조에게 재야에서 그 엄청난 재능을 썩히고 있는 송익필을 추천 하였다고 한다. 송익필과 대면하게
된 선조는 그의 학식과 경륜에 찬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런데 선조가 보니 송구봉은 눈을 감고서 말을 하므로 그 까닭을 물어보았다.
“경은 왜 눈을 뜨지 않소?” “제가 눈을 뜨면 주상께서 놀라실까 염려되어 이리하옵니다.”
“그럴 리 있겠소? 어서 눈을 뜨시오. 어명이오.” 이에 할 수 없이 눈을 뜨니 선조는 그만 그의 형형하고
강렬한 눈빛에 놀라 기절하고 말았다.
결국 눈도 제대로 쳐다볼 수 없는 신하를 조정에 둘 수가 없다 하여 송익필의 등용은 무산되었다고 한다.
후에 송익필이 오성대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매일아침 이곳에 홀로 올라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문안드린
뒤 오성대 낭떨어지 중간에 있는 굴에 넣어둔 책을 꺼내어 읽었다고 하다.
그 굴은 도저히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어서 송익필이 아니면 책을 꺼낼 수가 없었하여 그때 부터
그곳을 독제봉(獨帝峰)이라고 전한다.
<오성대>운장산 주릉에는 동봉, 중봉 서봉 세 봉우리 중 암봉으로 우뚝하게 남쪽 가까이에 깍아지른
낭떠러지의 벼랑을 이룬 오성대와 북두칠성의 전설이 있는 칠성대가 있다.
오성대는 정유재란때 용담향교의 오성위 위페를 이곳으로 피난시켜 모시 놓았다 하여
오성대라 한다.
<향교>우리나라 향교에서는 공자를 비롯한 27위 성현께 매년 제례를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
첫째 정일)에 석전대제를 지낸다.
유교에서 오성(五聖)으로 공자(孔子) 증자(曾子) 안자(顔子) 맹자(孟子) 자사자(子思子)를 오성으로
모시고 있다.
<칠성대의 전설>옛날 운장산 깊숙한 골짜기에 절이 있었는데 그 절에는 주지 스님만이 절 앞의 산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어가며
부처님을 모시고 지내던 어느날 이 깊은 산중에 손님이 찾아왔다. 그들은 불공을 드리러 온 사람도
아니고 불도를 배우러 온 사람도 아니었으며
모두가 미목이 수려하고 잘 생긴 일곱 청년은 망태를 둘러맨 채였으며 이들은 주지에게 배가 고프니 요기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였다.
이러한 이들에게 주지스님은 나 먹을 밥도 없다고 냉정히 거절하자 이들은 산위로 올라가 암자에 이르러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선비에게 이르러 밥을 주기를 간청하였다.
마침 저녁밥을 준비하던 선비는 불공을 드린 다음 식사를 드릴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며 불상 앞으로
가 불공을 드리려고 하자
일곱명의 청년들은 화를 내며 배고픈 사람의 사정도 모르면서 벼슬은 무슨 벼슬을 한다고 하느냐!
하면서
밥상을 지팡이로 내려쳤고 선비가 놀라 뒤돌아보니 그들은 온데간데없고 자기가 공부하던 책도 없어져
버렸다.
이들은 칠원성군으로 탐랑성군, 거문성군, 녹존성군, 문곡성군, 염정성군, 무곡성군, 파군성군으로
북두칠성의 일곱성군인데
이들이 운장산 암자에서 공부하는 선비가 큰 동량이 되어 벼슬에 나갈만한 재질이 엿보여 그를 한번
시험하기 위해 내려갔다가 실망하여
선비를 혼을 내주고 하늘에 올라갔다고 한다. 선비는 그 후 자기의 모자람을 깨닫고 벼슬의 꿈을 버린
채 수도승이 되었다 하며 그곳을 칠성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각우목재 角隅峙) 각우목재는 내처사동에서 정천면의 쇠점골로 통하는 재이다. 각우는 한모통의 모서리
부분을 각우라 하는데 소뿔모양새의 재를 이르는 이름일 것이다.
칼크미재라고도 한다. 동봉에서 각목우재까지는 30분이 소요되고 재에서 처사동까지는 60분 걸린다.
<내처사동 內處士洞>처사동은 평생 벼슬을 하지않고 산림에 사는 선비를 처사(處士)라 한다, 처사가 사는
동네를 이르는 말로 추정된다.
운일암(雲日岩), 반일암(半日岩)은 내처사동으로 가는 도중 주자천 중류의 계곡인 운일암 반일암은 경관이
아주 빼어나다.
예전에는 워낙 깊고 험해 구름에 가린 해밖에 볼 수 없어 운일암, 해를 반나절밖에 볼 수 없어 반일암이라
불렸다고 한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계곡의 경관은 장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