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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환. 『과학사상』 4, 242-251. 2004년 12월30일 게재.
인간의 본성이란?
스티븐 핑커 (2002, The Blank Slate (빈 서판 (書板)))의 설명
조숙환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언어학 전공)
1. ‘빈 서판’(Pinker, 2002)의 주제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작용할까? 인간의 본성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마음에 대한 문제는 특히, 지난 3세기에 걸쳐 철학자, 심리학자를 비롯하여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된 난제이다. 이 질문에 대한 반응으로서 가장 빈번히 부상된 논란의 대상은 대략 다음 세 입장으로 나눌 수 있다. 환경의 영향을 중요하게 여기는 ‘빈 서판 (the blank slate)’ 학설과 인간의 죄악은 사회 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전제하는 ‘고상한 야만인’ (‘noble savage’), 그리고 인간의 마음은 생리적인 설명이나 진화론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믿는 ’기계 속의 유령’ (’the ghost in the machine’) 등 세 주장이다. 핑커 (Steven Pinker, 2002)는 저서 ‘빈 서판 (The Blank Slate)’에서 세 주장의 문제점을 유전과 환경의 논전으로 집약하고, 최근 발견된 두뇌, 마음, 유전자, 진화 등 다각적인 연구 내용을 근거로 반박한다.
‘빈 서판’은 중세 라틴어 ‘tabula rasa,’ 즉 아무 글자도 씌어 있지 않은 서판을 지칭하며, 존 로크 (John Locke, 1632-1704)의 경험론에서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흰 종이’ (white paper)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p. 5). 서문에 있듯이, 빈 서판 (The Blank Slate)에서 핑커 (Steven Pinker)는 인간 본성 (human nature)의 개념이 도덕적, 정서적, 정치적인 현대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역사적 사실, 과학 이론 및 다양한 실증 자료를 토대로 하여 검토하였다. 또한, 진리란 극단적인 본성주의 (nature)나 극단적인 양육주의 (nurture)에서 발견될 수 없으며, 유전 (heredity)과 환경 (environment)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거하여 발견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 한다 (p. viii). 따라서, 핑커는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발견 사례를 이용하여 유전 또는 환경 중 하나에 편향된 설명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에서 핑커는 현대인들이 어떤 두려움을 갖고 있으며,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빈 서판’ 학설이 최근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어떤 논박을 받았는지 실증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2. 네 가지 ‘두려움’의 불합리성
핑커에 의하면, 현대의 지식인들은 유전학을 근거로 하는 마음 이론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데, 이 두려움은 불평등 (inequality), 불완전함 (imperfectability), 결정론 (determinism), 허무주의 (nihilism)에 대한 두려움 등 네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고 한다. 빈 서판 학설에 따르면, 우리는 아무 것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두 ‘평등’한 존재이지만, 만약 우리가 풍부한 심성 능력 (mental faculty)을 천부적으로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우리들은 능력과 자질 면에서 불평등해지며, 급기야 인종차별, 탄압, 우생학, 또는 심지어 노예제도, 대량학살 등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이런 두려움에 대해 핑커는 불합리한 추론이라고 일축한다. 우리들 어느 누구도 굴욕, 탄압, 노예, 가난 등의 경험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치적 평등이란 헌법에 쓰여 있듯이, 우리들 모두에게 삶,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 등, 절대적 권리가 보장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핑커의 견해에 따르면, 이런 권리를 보장 받기 위해 우리 모두가 모든 면에서 무차별적으로 동일해야 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들은 서로 조금씩 다르면서 동시에 서로 유사한 인간 본성의 모습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해 진다.
둘째, 불완전함에 대한 두려움이 지식층에 만연해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만약 선천적으로 죄, 또는 이기심, 편견, 근시안, 자기기만 등과 같은 단점을 갖고 태어난다면, 정치적 개혁이 시간 낭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불완전함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의 세상이 속속들이 타락하여 향상될 기미가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는 논지에서 비롯된다. 한편, 핑커는 이런 논지는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핑커는 과거에 실제로 사회적 개혁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각한다. 가령, 우리는 노예제도, 고문, 종종간의 혈투, 독재, 서구 민주주의에 있었던 여성 착취 등이 종지부를 찍은 지 오래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핑커에게 사회적 변화는 늘 발생할 수 있는데, 설사 인간의 본성을 불변의 고정된 형태로 전제한다고 해도, 인간의 마음은 여러 부분으로 조성된 복잡다단한 체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끔찍하게 나쁜 일을 할 유혹을 받을 때에 우리는 그런 일을 저항할 수 있는 다른 동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어떤 욕구가 생기면 다른 욕구와 경합을 벌이게 하는 방법을 알아내어 우리의 조건을 향상시키고, 또한 같은 방법으로 신체적, 생물학적 규칙을 조종하여 우리의 신체적 상태를 향상시킬 수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질병에 도전하고, 더 많은 농작물을 수확하고, 또한 사회적 제도를 이용하여 조심스럽게 접근 할 수 있다.
핑커는 인간의 본성에서 사회적 발전을 배제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로서, 인간 본성의 많은 특징이 자유롭게 매개변항화 (parameterize) 되어 있다는 점을 꼽는다. 이런 특징은 언어에서 발견되는데, 가령 모든 언어에는 주어 (S(ubject)), 목적어 (O(bject)), 동사 (V(erb))가 있는 반면, 언어들의 어순은 다양한데, 수식절이 어느 방향으로 분기 (branch)되는지에 따라 어순 구조가 일정한 분포를 보이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일례로서, 관계절과 같은 수식구가 왼쪽에 나타나는 한국어나 일본어는 SOV 어순을 갖고 (예: 나는 [메리가 산] 모자를 좋아한다), 오른쪽에 나타나면 영어의 경우와 같이 SVO 어순을 기본 구조로 한다 (예: I like the hat [that Mary bought]). 핑커는 도덕성의 매개변항화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어떤 문화권에서 살던지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동정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서 문제는 다른 사람들 중, 어떤 집단과 개인을 존경하고 동정해야 하느냐로 매개변항화 된다는 것이다. 핑커에 따르면, 우리의 도덕성이 자동적으로 발휘되는 대상은 우리 가족이나 우리 마을 주민일 가능성이 큰데, 역사적 발전을 돌이켜 보면, 도덕성을 발휘할 대상은 이제는 부족, 인종, 나라, 그리고 최근에는 전 세계의 사람으로 자꾸만 확대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또한, 핑커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결정론에 대한 두려움이 지식층에 만연해 있다고 한다. 즉, 인간의 행위가 두뇌, 유전자, 또는 진화에 의해 결정된다고 전제하게 되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핑커는 이와 같은 두려움은 부적절한 반응이라고 반박한다. 범죄와 같은 나쁜 행동에 대해 설명하려고 할 때 우리는 종종 환경의 영향을 이유로 손꼽곤 하지만, 아동기의 가정환경, 포르노 비디오나 TV 등 미디어 매체, 사회제도 등의 영향은 두뇌신경학적 설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두뇌의 기능은 정교하게 체계화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핑커에 의하면, 범죄를 유발 (temptation)하는 두뇌의 기능과 “행위에 대한 책임감”을 수반하는 두뇌의 법률적, 사회적 ‘억제’ (inhibition) 반응은 서로 차별화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에 대한 원인을 ‘환경’으로 일반화하는 사고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네 번째 두려움의 동기에 대해 핑커는 허무주의를 지적한다. 허무주의가 조장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위에서 언급한 두뇌기능과 직결되는 것으로서, 사람들은 종종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다고 한다. 만약, 인간의 행동이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된 두뇌의 생리 현상이라면, 우리의 동기나 가치관은 어떤 의미에서 객관적 실체가 없는 허상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어떤 빛이 우리의 망막을 자극하여 두뇌가 우리에게 일종의 감성을 불러일으키고, 이러한 작용이 유전자를 증식시키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의 일종이라면, 가령 자식에 대한 사랑도, 꽃이나 나비, 미술 작품의 아름다움도 진정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허무주의에 빠질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핑커는 이와 같은 허무주의에 대해 경종을 잊지 않는다. 즉, 허무주의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 행동을 설명하는 진화론적 설명을 혼동한 결과일 것이라는 의견이다. 마음을 궁극적으로 설명하게 될 진화과정은 유전자가 자신의 모습을 거듭 모방하여 증식하는 근시안적인 이기적 과정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우리의 모습이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자연 선택 진화의 이기적, 부도덕한 과정을 통해 복잡한 도덕관을 갖춘 사회적 유기체가 진화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이기적 유전자가 반드시 이기적 조직체를 구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허무주의에 대한 두려움은 근거가 없다고 한다.
3. ‘빈 서판’ 경험주의의 쇠퇴 배경
핑커는 지식층에 만연해 있다는 네 가지 두려움이 잘못된 추론이나 빈약한 근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빈 서판 학설은 이미 수많은 과학적 실증자료에 의해 손상되었음을 천명한다. 첫째, 경험 자료의 중요성이 아무리 막대해도 학습, 문화, 사회화 등이 선천적 체계가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는 지극히 간단하면서 논리적 측면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학습 체계가 무엇인지 지정하고 나면 상당히 많은 선천적 구조를 설정하게 된다고 한다.
빈 서판 학설은 또한, 행동 유전학에 의해 반박을 받았다. 행동 유전학은 성격과 지적 능력의 변이 중 최소한 반 정도는 유전자의 차이에 기원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 사실은 최근 일란성 쌍둥이 연구에 의해 지지를 받게 되었는데, 가령, 출생 시에 헤어진 일란성 쌍둥이를 관찰한 결과 재능과 기호 면에서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점이 발견되었다.
핑커는 행동유전학 뿐만 아니라 진화심리학과 인류학의 최근 연구 결과를 토대로 빈 서판의 입장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지적하고 있다. 일례로, 약 6,000여 문화들을 비교한 결과 여러 차이점과 유사점이 발견되는데, 부인할 수 없을 정도의 변이가 보이지만, 한편 상당히 많은 보편성이 문화들 간에 체계적으로 관찰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핑커는 인간의 성향이나 동기는 우리가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보다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상생활의 측면에서 볼 때는 큰 의미가 없지만 우리의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자연 선택의 체계에서 보면, 설명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핑커는 자신의 주장을 위해 여러 사례를 열거하는데, 그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설탕과 비계가 공급이 부족한 환경에서는 적응력이 있지만, 요즘처럼 값이 저렴하고 흔히 눈에 띄는 환경에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 위급한 상황에서 이해타산으로 경찰의 도움을 청하지 못할 때 유일한 방어기제로 나타나는 복수심은 특정 문화와 무관한 인간 보편적 성향이라는 점. 이밖에, 매력적인 결혼 상대의 조건으로 누구나 손꼽는 외모는 그 자체가 특정한 문화권의 어떤 개인의 행복을 결정도, 예측도 못하지만, 진화심리학의 측면에서 볼 때, 아름다운 신체 조건은 건강과 생식력의 단서가 된다는 점 등이다.
핑커에 의하면, 최근 급속도로 발달되고 있는 두뇌 신경과학과 인지과학과 더불어 ‘빈 서판’, ‘고상한 야만인’, ‘기계 속의 유령’ 등의 믿음이 많이 약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빈 서판’의 경우, 신경과학에서 일컫는, 소위 두뇌 가소성 (plasticity)은 우리에게 학습의 기회를 주지만, 가장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두뇌의 자질은 여러 면에서 유전적으로 구축되었으며 감각기관을 통해 얻은 정보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지식인들 사이에 일종의 신화적인 믿음으로 받아들여진 ‘고상한 야만인’ (noble savage) 가설도 여러 자료에 의해 그 부당성이 입증되었다. 즉, 이 믿음에 의하면, 수렵시대의 폭력과 전쟁은 희귀하고 종교적 의식에 불과했으며 전쟁은 단 한 사람만 사망을 해도 중지되었다고 하는데, 실제 조사에 의하면 선사시대의 살인율은 현대 사회의 1차, 2차 세계대전의 살인율 보다 수십 배 더 높았으며, 정신병, 폭력성, 적대적 성격 등은 대체로 유전적인 성향이 짙다고 한다. 핑커에 따르면, ‘기계 속의 유령’은 인지과학과 신경과학의 발견에 의해 쫓겨 난 상태이다. 즉, 지능은 일종의 정보 처리에 의해 설명되고 있으며, 또한 과거에 심성 체계라고 믿었던 믿음, 욕망, 지능, 목적 통제 행위 등은 이제는 물리적으로 설명되며, 사고, 감정, 의식 등도 두뇌의 생리적 활동에 완전히 의존한다고 한다.
4. 핑커의 비평가들
핑커의 여러 비평가들 중 핑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학자들 중에는 아동심리학자, 연결주의자, 60-70년대에 사회생물학에 반기를 들었던 학자들이 있을 것 같다. 아동심리학자들 중에 아동의 성격과 지능의 형성을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믿는 학자들은 핑커의 주장에 반기를 들 가능성이 크다. 핑커는 부모가 자식에게 환경뿐만 아니라 유전적인 요소를 제공하기 때문에 아동의 성장기에 환경과 유전의 역할이 모두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부모가 제공한 환경과 아동의 발달 양상 사이에 일종의 상호의존성이 관찰된다고 하더라도 상관관계는 인과관계를 표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환경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1990년대 초 이래 연상 개념을 정보처리모델에 이용하여 언어와 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연결주의자들도 핑커의 입장에 도전을 할 것이다. 실제로, 특히 2000년 초 이래 핑커의 상징주의 (symbolism) (Pinker & Ullman, 2002, 2003)는 연결주의 (connectionism) (Elman, 1990; McClelland & Patterson, 2002)와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인간의 언어 습득을 언어규칙과 기억장치의 이중 체계에 의해 설명하려는 핑커의 상징주의에 반해 언어 규칙을 인정하지 않는 연결주의 학파는 소리와 소리간의 연상 작용으로 언어 습득을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에, 두 학파의 입장은 판이하게 다르다. 또 다른 핑커의 비평가들 중에는 두뇌의 가소성이 무한대로 가능하다고 잘못 믿고 있는 극단론자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입장을 고수하는 학파는 아동의 교육과 학습의 역할을 굳게 신봉하므로 선천적 능력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핑커의 입장과 대립된다.
5. 결언
위에서 보았듯이, 핑커는 ‘빈 서판’ 책을 통해 지식층 사이에 만연한 빈 서판 학설 저변에 숨어 있는 네 가지 두려움에 대해 두뇌, 마음, 유전자, 진화 등 다양한 실증자료를 근거로 반박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이 유전과 환경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는 핑커의 주장은 굴드 (Stephen J. Gould), 촘스키 (Noam Chomsky), 리들리 (Matt Ridley) 등의 견해에서도 약간 엿볼 수 있다.
굴드에 의하면, 어떤 형질의 표현은 유전과 환경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이므로, 우리는 오로지 모든 사람들이 잠재력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도록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핑커 (122쪽)가 지적하듯이, 굴드는 유전적 요소를 부인하지 않지만 동시에 “미리 결정되지 않은 두뇌”를 인정함으로써 빈 서판 학설에 대한 입장이 묘연한 점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촘스키도 언어 유전자와 환경 언어 (primary linguistic data)와의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다루지만, 촘스키의 ‘환경’은 지식을 발현하는 방아쇠 당김 (‘trigger’)의 역할을 의미할 뿐이며 또한, 보편문법은 다윈의 자연선택에 의해 결정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촘스키가 의미하는 ‘복잡한 상호작용’은 이론적으로 핑커의 견해와 큰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이, 빈 서판 학설에 반대하면서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호소하는 학자들 사이에도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식층에 널리 퍼져 있는 네 가지 ‘두려움’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핑커는 두뇌 신경과학에서 최근 발견한 실증 자료를 거듭 이용한다. 그러나, 핑커 (424쪽)도 인식하고 있듯이, 최근까지 발견된 두뇌 연구는 대부분 인지 기능에 대한 두뇌 부위를 기술하는 수준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각 인지 능력에 대한 두뇌 영역을 확립하는 일은 물론 매우 중요한 과업이며, 실제로 지난 10년은 특히 fMRI와 같은 기술의 발달로 신경과학 연구는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한편, 인지 기능들 간의 관계는 두뇌가 영역 별로 어떤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지에 대한 묘사만을 토대로 하여 규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능과 영역 간의 상관 관계는 인과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핑커를 포함하여 인지과학자라면 누구나 잘 인지하고 있듯이, 신경과학은 인간의 두뇌에 대해 아직도 빙산의 일각 정도도 밝혀 내지 못한 매우 초보적 단계에 불과하다. 만약, 핑커의 견해가 타당하다면, 인간의 마음은 환경과 유전의 상호작용의 정체가 드러남으로써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경험에 의한 자극이 두뇌를 어떻게 변화시키며, 실시간적으로 변화하는 두뇌는 인지 기능 간의 관계를 어떻게 촉진하는지에 대한 신경과학 자료가 가능할 때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에 박차가 가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핑커는 책의 끝 부분에서 예술가와 인문학자들이 과학적 사고방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쓰고 있다. 핑커 (418-420쪽)는 머독 (Iris Murdoch), 바이어트 (A. S. Byatt), 업다이크 (John Updike) 등 세 명의 소설가를 인용하면서 소설 속에 살아 있는 인간 본성의 목소리를 주목한다. 최근에 있었던 한 인터뷰에서 핑커는 인문학과 예술가는 서로 활발한 교류가 가능할 것이라고 피력한 바 있다. 즉, 언어학과 시학 및 수사학과의 교류, 감성 과학과 음악 및 미술과의 만남, 인지과학과 문학 및 영화와의 상호작용, 진화심리학과 미학의 교류 등이 이루어지면, 마음의 과학은 불후의 인간 본성이 진정으로 있다는 영감을 불어 넣을 수 있게 되고, 궁극적으로 예술가들은 이러한 인간 본성에 매료될 것이라는 희망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날이 오면, 드디어, 인간의 마음과 인간의 본성이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다 잘 관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 본다.
참고문헌
McClelland, James and Patterson, Karalyn. 2002. Rules or connections in past-tense inflections: What does the evidence rule out?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6, 11, 465-472.
Pinker, Steven and Ullman, Michael T. 2003. Beyond one model per phenomenon.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7, 3, 108-109.
Pinker, Steven and Ullman, Michael T. 2002. The past and future of the past tense.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6, 11, 456-4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