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학번이 07학번 되다
[행동치료학과 황문지]
6~7년 전까지만 해도 시내 모 대학에 출강을 했었다.
석사ㆍ박사과정 후 강의를 시작하여 15여년을 늘 해왔던 대로 변함없이 강단에 섰던 것이다.
결혼을 한 후 대구지역을 떠나 산 것도 원인이기도 하지만 육아문제로 인해 남편과의 전쟁 아닌 투쟁을 벌이며 결국 두 손을 들고 아이를 직접 키우면서 나의 일은 몇 년간 쉴 때도 있었다. 둘째 녀석이 3살이 되던 해 다시 출강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이것이 더 이상 나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시에는 달리 할 것이 없어 질질 끌며 발전없는 강의만 계속하며 지낼 수 밖에 없었다. 많은 고민과 갈등 속에서 방황한 적도 있었지만 현실은 육아문제, 여성이라는 한계를 점점 느끼게 만들었고, 마침내는 첫째 딸아이의 힘겨운 대입 입시 전쟁에 접어들면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30년 전 대학 전공을 시작하며 관심을 가졌던 패션 디자인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그런 일을 모두 포기하고 나니 대리만족이라도 해야겠다는 어설픈 자녀 교육관 때문에 욕심이 앞서 쓸데없는 짓을 많이 하였다. 그 중 한 가지는 고1 아들 녀석이 장난으로 만우절 날 친구에게 보낸 ‘죽고 싶다’는 문자를 보고 그것을 진짜 인줄 알고 난리 법석을 떨며 오해하여 아이를 추궁하였던 것이 가장 큰 실수였고 그것 때문에 아이에게도 잠시나마 좌절이라는 아픔도 주었다. 그래서 둘째 아이의 늦은 사춘기에 현명하게 대처를 하지 못하고 그 아이를 오히려 문제아로 만들어 버린 나는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하였다. 아이를 믿지 못하고 남의 말을 먼저 들어버린 실수로 아이는 늘 나에게 책임이 없는 골칫거리로 취급당하였고 불량배로도 생각하였다.
아이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고 있을 즈음에 주위의 권유로 대구광역시 교육청 학생상담봉사자 교육을 받게 되었다. 이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멀쩡한 아이를 문제아로 만들어 버린 나는 둘째 녀석에게 한없이 미안해하며 다른 아이에게도 이런 불행이 찾지 않도록 학생 상담 봉사를 하기로 맘먹었다.
자식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며 짬짬이 시간을 내어 여러 방면의 상담 강의를 들어 왔고 이렇게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검증되지 않은 강사의 강의를 듣는 것이 여러 가지로 낭비라는 생각이 되었다.
고3 엄마의 고통을 생각해서 남들이 어지간한 것은 면제(?)해 주던 것을 틈 타, 시간이 오히려 많은 이 기회에 정식으로 배우기를 작정하였다. 아이에게 피해주지 않고 함께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 듯해서 집에서 공부할 수 있는 대구사이버대학교 행동치료학과의 공부를 시작하였다.
오십 다된 나이 때문인지 기억력도 좋지 않고 또 남의 말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시간이 불과 몇 분도 채 되지 않아서 첫 학기에는 강의 시간에 받아쓰는 일과 컴퓨터 모니터를 계속 보며 강의를 들어야 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오전 시간에는 학교 가는 셈치고 모든 약속 없애고, 입시 때문에 온 정성을 쏟고 있는 둘째 아이와 함께 한다는 뜻에서, 집에서 거의 강의만 듣고 서툴지만 필기도 하고 강의에 대한 질의도 하며 보냈었다. 갑자기 외출도 하지 않고 친구들 모임도 차일피일 미루는 나에게 친구들은 ‘코빼기도 안보인다’며 온갖 상상을 다하기도 했다.
요즘 오전 시간에 젊은 여자가 집에 있으면 병들었거나 돈이 없거나 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 나이에 시작한 공부를 나보다 젊은 사람들을 따라 가려면 훨씬 더 노력해야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20년 전에 박사학위 논문을 포기하고 주저앉아 끝을 못 보았던 전력 때문에 혹시 이마저 힘들다고 주저앉을까봐 더 두려웠던 것이다. 나 스스로의 싸움이었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이제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악착같이 중간ㆍ기말시험을 치루고 두 학기를 마치고 나니, 때마침 우리 행동치료학과 학과장님께서 임상연구소(초록꽃 행동치료연구소)를 내신다기에 그 곳에서 실습을 하기로 허락을 받았다.
지난 학기에 행동치료 실습(90시간)을 화니 장애어린이집에서 한 바가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겁 없이 실습을 하며 그 곳에서 봉사하기로 하였다.
힘이 들지만 나이를 잊고 낮에는 초록꽃 행동치료연구소에서 강의를 통해 배운 것을 바탕으로 임상 실습을 하고 밤에는 온라인 강의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올 해로 둘째 아이가 대학을 갔기에 더 편하게 지낼 나이에 무엇 때문에 그런 고생을 하느 냐며 핀잔을 많이 받기도 하지만 어느새 친구들은 도대체 대구사이버대학에서 무엇을 하기에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가? 하고 궁금해 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이번 학기에는 제2의 대학 생활에 투신을 하고 있는 나를 부러워하였지만, 늘‘나이 때문에 나이 때문에’라고 노래 부르던 석사과정을 함께 한 친구가 내가 다니는 행동치료학과에 등록을 하였다.
그 친구 역시 나이를 잊고 너무 열심히 하려다가 병원에 입원까지 해가며 이번 학기를 잘 넘기기 위해 안간 힘을 다하고 있다.
며칠 전, 거의 30여년을 보유했던 78학번 때의 전공서적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07학번의 전공 서적을 채워 넣었다. 아쉬운 맘이 더 앞섰지만 이제 새로운 대학생활에 기운을 확실히 불어 넣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용기를 내었다. 대구사이버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78학번의 미련을 버릴 수가 없어 찝찝하게 지금껏 버텨왔으나 입학 후 1년이 지나고 새로운 학문 행동치료학을 공부하면서 앞으로의 할 일에 대한 확신이 섰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것이 대구사이버대학교의 좋은 점이다. 누구나 도전하여 제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이겨내야 하는데에는 어려움도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늦게 귀가해도 강의 듣느라 바가지를 긁지 않는다고 좋아하는 남편과 자기가 배운 전공과목으로 나에게 더 상세히 어드바이스를 하는 딸아이, 막 입학하여 기숙사 생활을 거뜬히 해가며 가끔씩 나에게 하는 일 열심히 하라고 문자 보내는 아들 녀석을 생각하며 늘 배우면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인재로 살아가려고 조용한 외침을 하여 본다.
첫댓글 오늘 메일로 웹진이 도착했습니다. 지난 사이버 페스티발에서 대학생활수기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탄 황문지 대구경북 지역장님의 글을 복사해서 올립니다. 올린 이유는 내년에 여러분들도 꼭 참여하셔서 많은 상을 타시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감동이 밀려오네요 대구지역장님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사연이 있었는줄 몰랐습니다. 여러번 뵈었는데도 어쩌면 깊이잇는 대화를 못나눳다는 생각도 듭니다. 역시 연륜이 느껴지는 글이라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시간욕심이 많은 제가 부과를 하면서 후회할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면 이 글도 그리 실감나게 다가오질 못했을것 같스빈다. 좋은 교류를 통해 정말 본받고 싶네요
부끄럽네요.누구나 각자의 자리를 정리하다보면 남에게 전해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을거예요. 바로 그런 이야기랍니다. 고맙습니다.
멋지십니다...도전하는 자만이 성공의 여부를 떠나 보람을 맛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들 딸과 같이 공부하고 자신의 일에 열정을 보이는 엄마의 모습은 산교육 그 자체일 거라 여깁니다. 항상 온화한 미소뒤에 이런 강인함이 자리하고 있었군요 수상하신 점 축하드리구요...항상 건강 챙기시면서 끝까지 홧팅하시면 좋겠습니다~~~
늘 열심히 사시는 선이 학우님의 열성에 제가 항상 놀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