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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코스]
한개마을~(12km)~태실문화관~(100m)~생명문화공원~(600m)~세종대왕자태실
~(15km)~(성밖숲)
1.한개마을(星州 大浦村 : 경북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8) : 국가민속문화재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민속마을로 뒤쪽에 있는 영취산이
마을을 감싸주고 앞으로는 2개의 하천이 합쳐 흘러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길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한개'라는 마을이름은 순수 우리말로 '큰 개울'을 뜻하는데 '한'은 크고 넓다는 의미이고 '개'는 큰물이
드나드는 곳인 포(浦)를 나타낸 말로 마을앞으로 흐르는 하천에 제방을 쌓기 이전, 큰물이 들어왔다가
빠져 나간뒤 큰 개울이 생기면서 '한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한개마을은 조선 세종때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가 1450년경 마을에 들어온 이후 성산이씨들이 모여살기
시작했고 17세기 이정현이 문과에 급제한 후 33명이 과거에 합격했으며 18세기중반에서 19세기에 걸쳐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마을로 널리 알려졌고 이원조,이진상 등 이름난 유학자와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승희
등이 있으며 마을이 번성했을때는 100여채가 넘는 집이 있었으나 현재는 60여채가 남아 있는데 대부분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걸쳐 세워졌고 그 중 교리댁,응와종택,한주종택,월곡댁,진사댁,도동댁
하회댁,극와고택,첨경재가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마을의 집들은 지붕,대청마루,부엌,툇마루 등 거의 다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어서 성주지역의 특성을 잘
보여줄뿐 아니라 옛날에 사용하던 살림도구,의복,생활용품 등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1)한개마을 안내도
2)한개마을 전경
3)대산리 진사댁(大山里 進士宅) :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안채에는 상량문이 있어 조선 정조22년(1798) 이주진 또는 조선 철종9년(1858) 이문상이 처음 지은 것
으로 추정하며 이후 이국희가 살림을 내면서 집을 샀고 그가 1894년 조선왕조에서 마지막으로 있었던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면서 진사댁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처음엔 예안댁으로 불리었는데 이는
이문상의 부인이 안동 예안에서 시집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안채,사랑채,새사랑채,화장실 등 4동인데 'ㅡ'자모양의 안채와 사랑채, 'ㄱ'자모양의 새사랑채가 '튼ㄷ'자
모양을 하고 있고 새사랑채는 앞쪽에 난간을 세우고 누마루처럼 꾸민 마루1칸과 온돌방1칸,창고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누마루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卍자 장식으로 멋을 내었습니다.
4)광대바위
다른 지역에 비해 전통문화유산이 잘 보존된 한개마을의 지명중 그 유래가 민속과 깊이 관련된 것으로
'광대걸'과 '광대바위'를 들수 있는데, 삼일유가의 광대들이 놀았던 마당을 광대걸이라 했고 광대걸에서
광대들이 놀던 중줄놀이를 할때 한쪽은 나무에 다른 한쪽은 바위에 줄을 매고 줄놀이를 하다가 줄이 끊어져
떨어져 죽은 바위를 광대바위라 하며 마을어르신들이 어릴적 저녁에 광대바위옆을 지나가게 되면 광대귀신
이 나온다고 하여 무서워 했다고 합니다.
5)돈재이공 신도비(神道碑)
조선 영조때 천륜이 무너진 왕실에 비분과 통한을 안고 낙향했으나 사도세자에 대한 사모의 정과 사직의
안녕을 기원하여 북녘으로 문을 내어 북비공(北扉公)으로 더 잘 알려진 돈재 이석문의 신도비입니다.
이석문의 자는 사실, 호는 돈재로 재목으로 추천받아 조정에 나간뒤 선전관, 훈련원주부 등의 벼슬을
지냈고 1762년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의 반목으로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할 때 왕명을 무릅쓰고 세손
(후일의 정조)을 등에 업고 들어가 영조에게 부당함을 간하다 곤장을 맞고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무괴지심(無愧之心 : 떳떳하고 부끄러움 없는 마음)이란 편액을 벽면에 써 붙이고 대좌하며 두문불출
하였으며 후일 영조가 다시 훈련원주부를 제수하고 조정대신들이 승진을 기약하며 출사를 권유했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아 사후에 병조참판에 증직되었는데, 그의 손자 이규진이 장원급제했을 때 정조가 불러
"너의 조부가 세운 공이 가상하다. 아직까지 너의 집에 북쪽으로 낸 문이 있느냐?"고 하였다고 합니다.
6)응와종택(凝窩宗宅) :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한개마을 성산이씨의 발상지로 성산이씨가 한개로 입향할 당시의 종택이었던 대초당을 경종1년(1721)
이이신이 매입하여 응와종택의 터전을 마련했으며 이이신의 아들 이석문이 북쪽으로 문을 내어 북비고택
으로도 불리는데 돈재 이석문의 아들 사미당 이민겸이 규모를 확장했고 이민겸의 아들 농서 이규진이
순조21년(1821) 정침을 신축했으며 이규진의 아들 응와 이원조가 헌종11년(1845) 사랑채인 사미당을
낙성하여 현재의 규모를 이루었습니다. 고종36년(1899) 솟을대문을 증축하여 대감댁의 면모를 갖췄고
순종4년(1910) 사당을 증축하였습니다. 돈재는 무신으로 사도세자에게 충의를 다하였고 농서는 알성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은율현감을 지냈으며 응와는 한성판윤, 공조판서, 판의금부사를 지낸 문신이며 조선
주리학의 학통선상에 있는 학자입니다. 충절과 학문을 면면히 이어온 이 가옥은 안채,사랑채,안사랑채
사당,북비채,대문채 등 6채로 구성되어 있고 북비채에 있던 장판각과 안대문채,아랫채 등은 남아있지 않고
소실된 안대문채는 중문간채,방앗간,고방 등으로 이루어진 6칸으로 안채 맞은편 남쪽에 있었으며 아랫채는
안채의 동쪽에 지금의 안사랑채와 마주 보면서 있었습니다.
*정헌공(定憲公) 응와 이원조선생 영정각(影幀閣)
7)대산동 월곡댁(大山洞 月谷宅) :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1911년 이전희가 처음 지었고 한개마을에서 지정된 문화재중 가장 늦은 시기에 이루어졌으며 안채,사랑채
대문채,중문채,곳간채 등으로 구성되었고 1930년 사당을, 1940년경 별채를 증축했으며 월곡댁이라 부르게
된 것은 그 집에 살던 이전희의 부인이 성주군 월항면 유월리 월곡마을에서 시집왔기 때문입니다.
안채는 여성공간, 사랑채는 남성공간이며 대문채는 방을 대문에 붙여 지었으며 주로 아랫사람들이 생활했고
사당은 민가에서 조상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던 공간이고 별채는 사랑채의 연장으로 여러가지 용도
로 사용되었으며 자녀나 노모의 거처로도 이용되었고 곳간채는 곡물 등 각종 물건을 보관하던 창고입니다.
월곡댁은 20세기에 들어와 지었지만 각 건물이 독립적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화장실은 따로 짓지않고 곳간채
와 대문채에 함께 설치했는데 이 점은 화장실을 따로 만들던 지역의 전통적인 주택구조를 따르면서도 개화기
의 흐름을 잘 반영한 것이라고 볼수 있습니다(대문이 잠겨있어서 내부건물은 찍지 못함)
8)이승희 생가 : 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
구한말 구국운동과 1910년대 국외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헌신했던 독립운동가 이승희가 태어나 살던 곳
으로 이승희(李承熙 : 1847~1916)는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되자 경상도 유림의 뜻을 모아 을사5적의
참형과 조약파기를 상소했고 이 일로 5개월여의 옥고를 치렀으며 1907년 성주군의 국채보상운동을 이끌
었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와 세계각국 정부에 서한을 보내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1908년5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하여 이상설 등과 함께 독립운동방안을 모색하고 1909년부터
북간도 밀산부에서 독립운동기지 한흥동 건설을 이끌었으며 1913년 서간도로 옮겨 독립운동기지 덕흥보
를 건설하는 한편 동삼성 한인공교회를 창립하여 한인의 정신적 결속을 다졌습니다.
9)대산동 한주종택(大山洞 寒洲宗宅) :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조선 영조43년(1767) 이민검이 처음 지었고 고종3년(1866) 이진상이 고쳐 지었으며 1910년 이승희가
아버지인 한주 이진상의 호를 딴 한주정사를 지으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그의 호를 따서
한주종택이라 불렀고 지금 소유자의 할머니가 상주 동곽에서 시집왔다하여 '동곽댁'이라고도 합니다.
이진상의 아들이면서 제자인 이승희와 손자 이기원,이기인은 일본이 우리국권을 빼았는데 저항하여
독립운동을 하였고 삼부자 모두 그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을 받았습니다.
안채,사랑채,아랫채,곳간채,중문채,대문채,사당,한주정사,관리사 등 모두 11동으로 이루어졌는데 가옥은
한주정사가 있는 구역과 안채,사랑채가 있는 구역으로 나누어졌으며 한개마을의 다른 가옥들에 비해서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안채가 '튼ㅁ'자 모양으로 배치된 점 등은 한개마을 집들의 공통특징입니다.
(대문이 잠겨 있어서 내부건물은 찍지 못함)
10)대산리 도동댁(大山里 道東宅) :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이원조의 둘째아들인 이기상이 응와종택에서 분가하여 1850년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며 도동댁이란 이름
은 현재 소유자의 어머니가 도동서원이 있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마을에서 시집와서 붙여진 이름
으로, 도동댁을 처음 지은 이기상은 사촌형 이진상을 따라 학문을 익혔고 조선 철종6년(1855) 과거에 합격
하여 통례원인의를 지냈습니다. 이 집은 안채,사랑채,중문채,곳간채 등 모두 4동으로 이루어졌고 오른쪽
으로 난 입구에 들어서면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사랑채가 남쪽을 향해 자리잡고 있으며 사랑채의 왼쪽엔
안채가 있고 안채앞쪽으로 중문채가 있으며 안채앞에 있는 안마당 왼쪽에는 곳간채를 두어 전체적으로 '튼ㅁ'
자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11)극와고택(極窩古宅) :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사랑채에 적힌 상량문을 보면 조선 철종3년(1852)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며 극와고택이란 이름은 이 집의
주인이었던 이주희의 호 '극와'에서 따 왔는데 이주희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동안 흰옷과 흰갓을 쓰고
생활했고 또한 나라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이를 한탄하며 방에 거적을 깔고 생활했습니다.
안채,사랑채,곳간채,화장실 등 4동으로 이루어졌으나 곳간채가 없어지고 3동만 남아 있습니다.
극와고택의 안채는 기와집이고 사랑채는 초가집임에도 평면구성이 기와집과 같은 형태를 하고있어 양반가옥
으로 손색이 없으며 처음 집을 지었을 때는 안마당의 동쪽에 곳간채가 있어 사랑채와 더불어 전체적으로 'ㄷ'
자 모양을 이루고 있었으나 현재는 곳간채가 철거되고 'ㅡ'자 모양의 안채와 사랑채만 남아 '二'모양입니다.
12)대산리 하회댁(大山里 河回宅) :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지금 소유자의 어머니가 안동 하회마을에서 시집을 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집을 언제 지었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수 없으나 대략 17세기 건물로 추정하고 있고 또한 한개마을의 다른 집들처럼 남부지역
양반가의 특성을 잘 유지하고 있어 비록 부분적으로 고친 곳도 있으나 본래 모습과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안채,사랑채,대문채,중문채,곳간채,부속채 등 모두 6동으로 이루어졌고 집의 배치는 'ㄷ'자 모양 안채를
중심으로 앞쪽에 'ㅡ'자 모양 중문채가 있어 전체적으로 '튼ㅁ' 모양이며 안채 오른쪽에는 독립된 사랑채가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사랑채와 안채가 돌과 흙으로 된 담장으로 구분되며 그 사이에 좁은 문을 내어 출입
하게 되어 있어 현재 이 집에 들어가려면 대문채를 통과후 사랑채앞을 지나 안채로 들어가야 하는데 원래
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하며 처음 지었을 때의 출입문은 중문채앞쪽에 있어 사랑채앞을 통과하지않고
직접 중문을 통하여 안채로 출입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2.태실문화관(胎室文化館) : 경북 성주군 월항면 세종대왕자태실로 616-12(2016.5.3개관)
생명문화공원내에 위치하며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태실관련 전시관으로 성주를 생명문화의 성지로 널리
알릴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고 있는 가운데, 생명존중정신이 깃들어있는 태실의
고장 성주를 소개하고 장태의 역사, 조선왕실의 출산의례, 태실의 조성과 구조 등 태실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조선왕조 태실은 생명존중사상을 반영한 조선왕실의 독특한 문화유산입니다)
-운영시간 : 10:00~17:00(휴관일 : 매주 월요일, 구정과 추석당일)
-관람료 및 주차료 : 무료
1)태실문화관 전경
2)태(胎)는 무엇일까?
3)민간의 태처리 절차 및 조형물
4)왕실의 출산 및 조형물
5)태봉안행렬 조형물
세종대왕 왕자의 태를 안태사 일행이 서울을 출발해 장태지인 성주까지 봉안하는 의식을 재현한 것으로,
경복궁 교태전에서 세태의식(태를 씻는 의식), 강녕전에서 태봉지 낙점 및 교지선포, 태를 누자에 안치하는
의식순으로 진행했으며 이 행사를 통해 성주군은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를 전국최고 길지로 불리는 성주로
묻으러 가는 행렬을 광화문에서 세종대로 사거리까지 재현했습니다.
6)태실의 구조 및 조형물
7)조선시대 국왕의 태실분포도
3.생명문화공원(生命文化公園) : 경북 성주군 월항면 세종대왕자태실로 616-12
국가사적인 세종대왕자태실의 체계적 보존과 관리 및 관광자원으로의 활용확대를 위해 조성한 공원으로
대지면적 4만여m2에 태실문화관, 생명문화광장, 야외화장실, 주차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태실문화관 뒤쪽에 있는 생명문화광장은 태조에서 순종에 이르는 27기의 조선시대 왕들의 태실 미니어처
가 전시되어 있어 생명문화의 가치계승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1)생명문화공원 종합안내도
2)태실문화관쪽에서 바라본 생명문화공원 전경
3)태조대왕 태실
4)정조대왕 태실
5)중종대왕 태실
6)성종대왕 태실
4.세종대왕자 태실 : 경북 성주군 월항면 셎종대왕자태실로 639-18
*조성연대 : 세종20년(1438)~세종24년(1442)
*지정종별 : 사적(재질 : 화강암)
*태실수 : 19기
-세종대왕의 적서 19왕자중 장자 문종을 제외한 18왕자의 태실 18기
-단종이 원손이었을때 조성한 태실 1기(단종 태실은 세자책봉후 성주 가천 법림산으로 옮겨 새로 조성)
*문화유산적 가치
-태실이 군집을 이룬 전국최대 태실문화유산
-태실조성방식의 시대적 변천을 확인활수 있는 최고의 문화유산
1)안내문
2)
3)세종대왕자 태실 전경
[세종대왕자 태실배치도] 총 19기
진양대군(세조)/안평대군/임영대군/광평대군/금성대군/평원대군/영흥대군/화의군/계양군/의창군/한남군
밀성군/수춘군/익현군/영풍군/왕자 장(영해군)/왕자 거(담양군)/왕자 당/원손(단종)
4)세조대왕 태실 표지석
5.성주 참외&생명문화축제 구경갔다가 참외판매부스에서 참외구입 : 1.5kg(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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