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속한 봄바람에 벚꽃은 꽃눈이 되어 떨어지고, 산은 온통 신록으로 물들었다. 떨어지는 꽃잎과 함께 봄날은 이렇게 무심히 가는 걸까? 멀어져 가는 봄의 끝자락을 붙잡고 싶은 분들에게, 그리고 삶에 치여 꽃구경의 타이밍을 놓친 이들에게 완산공원 꽃동산을 강력 추천한다. 화려한 겹벚꽃과 함께 예술의 꽃도 함께 핀 서학동의 봄은 이제 만개하기 시작했다.
클래스가 다른 탐스러움, 겹벚꽃
완산공원 꽃동산
완산공원 꽃동산은 전주시 남쪽 곤지산에 자리 잡고 있다. 옛 전주부의 남문이던 풍남문 밖 전주천 건너에 있는 곤지산 완산칠봉은 1894년 전봉준이 이끌던 동학농민군이 전주에 입성하기 전 진을 쳤던 곳이기도 하다. 공원 중턱에 있는 동학농민군전주입성비와 완산공원 곳곳에 서 있는 애국지사 추념비가 완산칠봉이 지고 있는 역사의 무게감을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산에 오른다.
완산공원 주차장과 연결된 삼나무 숲 완산공원 입구, '철쭉꽃 보러 가는 길' 표지판을 따라가면 꽃동산에 닿을 수 있다.
완산공원 꽃동산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화려한 꽃동산과 함께 덤으로 시원한 삼나무 숲을 걸을 수 있는 완산공원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전주 시내에서 전동성당을 지나 싸전다리를 건너 우회전을 하고, 400m 앞에서 비보호 좌회전 후 완산초교와 곤지중학교를 지나면 완산공원 안내판이 나온다. 안내판 우측 길로 막다른 곳까지 올라가면 삼나무 숲이 있는 완산공원 주차장이다.
4월의 봄볕이 화창하고 포근하기만 한데, 삼나무 울창한 숲은 어둑어둑 아직 서늘하다. 삼나무가 시원하게 뻗은 숲길을 천천히 걸어 좌측으로 길을 잡는다. 계단을 오르면 완산칠봉으로 가는 임도를 만나고, 임도에서 좌측으로 조금 내려가면 '철쭉꽃 보러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꽃동산으로 가는 길이다. 혹 길을 잘못 들었다면, '초록바위' 표지판을 보고 따라가면 꽃동산으로 갈 수 있다.
멀리 완산공원 꽃동산이 보인다. 조팝나무와 겹벚꽃이 최고의 꽃길을 만들었다.
'철쭉꽃 보러 가는 길' 표지판에서 좌측으로 산모퉁이를 하나 돌자 '우와~!' 나도 모르게 탄성이 절로 나온다. 멀리 울긋불긋 꽃나무 군락이 작은 산을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어 놓았다. 마치 꿈속에서 본 비밀화원을 발견한 듯하다. 작은 산모퉁이를 하나 더 돌자 키 작은 조팝나무와 키다리 겹벚꽃이 좌우로 도열한 아름다운 꽃길을 만난다. 진정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꽃길로 손꼽을 만하다.
진입로가 이러할진대 꽃동산은 과연 어떨까? 걸음을 옮길수록 기대는 커진다. 성급한 상춘객들은 진입로 초입부터 사진을 찍느라 꽃나무 곁을 떠날 줄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서 너무 시간을 지체하지는 말자. 훨씬 더 화려한 풍광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평일인데도 꽃동산엔 사람들이 꽤 있다. 어디서 이런 고급 정보를 입수했는지 중국인과 일본인 관광객들도 제법 보인다. 그래도 완산공원 꽃동산은 아직 닳고 닳은 꽃놀이 명소는 아니어서,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산책을 하거나 아이와 부모님을 동반한 지역 주민들이 더 많다. 이 아름다운 꽃동산이 막걸리와 파전, 쓰레기 더미에 몸살을 앓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영산홍과 겹벚꽃, 철쭉이 어울린 완산공원 꽃동산
꽃동산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도 최고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 꽃잎이 여러 겹 겹쳐 있는 겹벚꽃은 왕벚꽃에 비해 훨씬 풍성하다. 꽃동산 중간 중간에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조성되어 있다.
완산공원 꽃동산은 1970년대부터 40여 년 동안 가꾼 동산이다. 인근에 살던 땅 주인이 주변에 있는 선친의 묘를 가꾸면서 겹벚꽃과 철쭉, 백일홍 등을 심어 꽃동산을 조성한 것이다. 꽃동산은 탐스럽게 핀 겹벚꽃이 동산의 둘레를 두르고, 그 안에 빨간 영산홍과 진보라 철쭉이 담뿍 담긴 모습이다. 동산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봄꽃 가득한 작은 언덕을 한 바퀴 도는 데 20~30분이면 충분하다.
겹벚꽃이 늘어선 곳 어디에서나 셔터를 눌러도 흡족한 사진을 건질 수 있다. 혹 줌 기능이 있는 망원렌즈가 있다면 꽃 터널을 배경으로 인물을 쭉 당겨서 찍어보자. 겹벚꽃의 분홍빛이 아웃포커싱 되어 배경으로 깔리고, 4월의 햇살이 최고의 조명이 되어 훌륭한 인물 사진이 나올 것이다.
꽃동산의 끝자락이자 반환점에는 전망대가 있다. 나무계단 정상에서 동산을 내려다본다. 마치 커다란 꽃바구니를 가슴에 안은 것 같은 풍성함과 만족감에 "아~ 좋다. 예쁘다"는 말만 반복하게 된다.
아무래도 완산공원 꽃동산은 오후보다는 오전이 덜 붐빈다. 시간이 된다면 꽃동산을 보고 완산칠봉을 종주하는 것도 좋다. 능선을 타는 길이기에 그리 험난하지 않고 전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장관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