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瑞河 李素連 / 김승기(夕塘) -
李桃和風春春羅 素紅香實枝枝歌 連抱樹木幾何望 瑞河武陵結詩波
<번역문>
오얏나무 복사나무 따뜻한 바람에 여러 봄날을 잔치 벌이더니, 흰 꽃 붉은 꽃 향그런 열매 가지마다 주렁주렁. 아름드리 큰키나무를 어찌 바랄까? 瑞河의 무릉도원에 詩로 열려 출렁이는데...
=====================================================
독도에게 안부를 묻다
바다에 홀로 뜬 별자리인 듯 달 그림자 서럽게 밟아가는 바위섬아, 누구 이름 부르다 망부석이 되었는가!
먼동이 트면 난바다 벼랑톱에 메밀꽃일고 한반도 눈동자엔 불이 붙는다 슬몃 이웃집 담장 훔쳐보는 자 누구냐 잠든 바다 조심해라 숨은여가 일어난다
울분이 수평선을 넘는다 햇살이 너울을 타는 동쪽 끝에 가면 누구나 입술 마른 외염이 된다 꽂아놓은 깃발처럼 사무친 이름, 혼자일 때 독도 아닌 사람 어디 있겠느냐
멀리 있어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쓴다
누가 그대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가!
음악정원에 들다
다복솔이 저도 모르게 흔들리는 까닭은 꽃바람이 소릿줄을 퉁기고 간 까닭이라
갈매바다 잔물결 어룽어룽 일 악장씩 넘기며 콧노래를 부르는 대낮에 앵 앵~ 삐오삐오, 즐거운 소음 들려오는 까닭은 넝쿨장미가 울타리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라
아카시아 꽃보라 번지점프하는 둔덕너머 감성 악보 푸른 오선지에는 평생을 들어도 다 듣지 못할 곡들이 가지각색 꽃음표로 박혀 있어라
찔레, 수련, 장미, 개망초, 밤꽃... 세상 모든 꿈들은 이렇게 꽃길을 타고 왔다 간다고
내 갈비뼈에서 허파에서 이름모를 꽃들이 깨어나 발성연습을 한다
아, 이, 우, 에, 오, 우~우~우~우~ 소래산 뻐꾸기도 목청 가다듬는 시간이었다.
부드러운 발자국
해남 우항리에 가서 수천만 년 전 화석을 보았다
쿵,쾅! 쿵,쿵! 중생대 진흙더미에 공룡은 말줄임표만 찍어놓고 어디로 갔을꼬
바위에 새겨진 발자국 순간을 영원까지 복제해 놓고 바다 깊이 풍랑이 요동칠 때 물에 젖은 자국들은 돌꽃이 되는 고통을 얼마나 마셨을 것인지
걸어간 자국마다 들려오는 소리, 쿵,쾅!쿵,쿵!...... 물결마저 지층 속에 제 흔적을 남기려고 쿨렁쿨렁 잠들었던 시간들이 돌 속에 문양을 새기던 백악기 시대 이후,
마음 판에 새긴 생명 말씀 꽃잎 화석 되었는지 걸음마다 자국마다 꽃빛으로 차오른다
땅끝에 서다
땅끝 전망대에 올라 바다를 바라본다 누가 파도를 데려갔는지 바람새 날아간 수면 위에 고깃배 몇 척 떠있을 뿐 시작을 향하여 세상 모든 길들이 멈추어섰다. 혼자만의 시간을 견딘 후에 바다를 걸어간 섬들이 맨발로 돌아오고 있다 텀벙, 차르르르... 텀벙, 차르르르... 그대가 내게 올 때처럼 바다는 섬을 떠나지 못하고 모든 시작이 끝에 있으므로 땅끝으로 몰려드는 푸른 발자국들 사이로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 이마에 부딪혀 온다.
자연사 꽃수
봄날은 수예시간, 세상은 온통 수틀 속이다 겨우내 본뜬 산내들에 연두빛 웃음 색실 풀어 땀땀이 꽃수를 놓는다
하늘 치마폭에 구름 한 장 온음표로 흘러가게 하고 해바라기하는 나무마다 옷을 입는다
언덕에 쌓이는 돋을볕이 눈부시다 꽃샘 잎샘 바람에 여문 꽃망울들 팡팡 축포처럼 터질 때 열리는 하늘 광장
화들짝! 내 생애 수틀 속에서도 벌새 한 마리 날아오른다.
등푸른 나무
봄비에 젖은 아침이 일어선다
몸에도 나무가 자라고 있는가 나를 키워낸 뿌리가 전신에 퍼져있다 혈맥과 세포 사이 팔과 다리 사이 성장통을 견딘 꽃봉오리 시절부터 지천명으로 깊어가는 계절까지 파랑새 노랫소리 그칠 줄 모른다
걸었더니 길이 되어버린 생, 숲으로 걸어들어가 산이 되든지 더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산등성이 굽이치는 산맥으로 살든지
마음에 가랑비가 내리는 날엔 내 등에서도 새순이 우후죽순 돋는다.
봄을 클릭하다
아침을 켜고 검색창에 봄을 입력한다
꾸륵꾸르륵! 산비둘기 소리통이 열리고 하늘통신이 전해주는 소식을 듣는다 꽃전선은 제비가 고향가는 속도로 북상 중이란다 햇살 실은 관광열차가 남으로 꽃마중을 간다 딸깍, 클릭 한 번에 매화, 산수유, 진달래가 꽃봉을 틔운다 연두 바람따라 나들이 나온 나비 날개죽지에 댓글을 단다 " 하이~ 방가방가..."
정보의 바다를 건너온 봄, 몇 장 복사해둔다 마우스로 주워담은 봄이 파일에 가득하다
환하게 열리는 대지 모니터, 꽃망울 문화센터엔 아직도 봄강좌 접수 중이다.
지독한 사랑
아무도 모르는 사이 캄캄한 구석에 감자의 줄기가 자라고 있었네 한 뼘 두 뼘 손을 뻗어 부등켜안은 생명들끼리 더듬더듬 길을 찾아가고 있었네
못을 박듯 탯줄을 잇댄 태아의 끊임없는 들숨과 날숨 속으로 종유석처럼 커가는 몸통이 빛을 향해 기어가네
어미의 사랑도 시퍼런 독을 품을 때가 있는가 집이 쭈글쭈글 허물어져도 좋다네
배꼽이 세상을 보는 눈이라는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살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군
천칭자리
어떤 상처가 보석이 되는가 살 속 깊이 꽂힌 화살 빠지지 않아 응고된 슬픔을 껴안는다 얼마나 오랫동안 갈고 닦았으면 저렇게 반질반질 윤이날까
화석처럼 침묵으로 자신을 다스리며 어둠을 참고 길들인 자리에 별이 뜬다
별자리는 사랑의 상처에 꽃을 피운 흔적, 지상의 무대를 걸어간 발자국 통증이 분명하다
거친 바람과 파도 속에서도 영혼에 빛을 발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생애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상처를 남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도지는 불치의 병, 내 심장 한복판에 언제나 빛나는 별로 떠있는 당신이여
고요한 말
웅성웅성... 웅웅!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더니 그럼 그렇지, 여섯이 모이니 천둥이 치누만... 대낮, 식당 안은 온통 장마철이다 검은 구름 한떼가 몰려가는 자리마다 장대비가 퍼붓고 지나간다
저기, 여자 여섯이 모여 강물 흘러가는 마을을 본다 푸른 하늘에 흰구름 동동 떠가듯 얼굴 마주한 송이꽃 입술들 오물오물 오솔길이 열린다 손가락으로 문양을 찍어낼 때마다 둥글게 감아올리는 손바닥에서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말의 춤사위가 하나의 풍경으로 펼쳐지는 무대,
햐~ 고요한 경전이 여기 모였네
가을의 전설
문자가 도착했다 지난 가을 그 자리에서 온몸을 불사른 (사-랑-한-다-)는 말이 온통 숲을 물들였다고
가을이 되기 위해 가을로 걸어가는 사람에게 산은 비탈도 내주고 벼랑도 들이댔다고
전화가 왔다 불타던 가을산에 (보-고-싶-다-)는 말이 지고 있다고 시 한 잎, 노래 두 잎...
바스락! 청솔모 지나가자 숲은 이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고
두 번째 음악정원에 들다
나는 즐거운 포로, 사방이 바위 벽을 둘러도 빛나는 시간의 감옥에 갇혀 있는 자유인이야
풀잎 바다 같은 음계밭을 거닐 때면 음표달린 푸른 잎이 돋아나고 비로소 생이 꿈틀거리지 눈을 감으면 소리가 사라지는 길 끝에서 출렁출렁, 흔들흔들, 세상의 모든 꿈들이 리듬을 타고 와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때로 가라앉은 상처들은 악보마다 반올림 표시를 하곤 했지
나는 포로수용소에 사로잡힌 행복한 수로, 빛과 어둠이 나누는 돌림노래에 감전된 종신수야
천둥치는 날
우르릉 쾅, 쾅, 쾅! 어둠에 대못을 박는 이가 누구냐
번쩍! 창끝이 심장을 관통하는 순간 망치로 손바닥을 내려치는 순간 하늘이 돌아눕는다
이 밤 누가 내 대신 죄값을 치루고 있느냐?...
대가야의 달밤
지금은 하늘에 등을 켜는 시간, 누굴 태우고 왔는지 멀고 먼 시간의 경계를 넘어 보름달 여객선 한 척 도착했다 밤하늘 건너오는 일 어땠을까
청동거울에 비치는 가야산 줄기타고 천년을 탄주하는 산맥들 쟁쟁한 울림 속에 봉분마다 푸른 사원 하나씩 들여놓고 가야금 12현에 눈물을 실어 12가야 왕국, 잊혀진 왕들의 이름을 불러주리라
하늘 고요에 귀를 씻고 산조가락으로 휘도는 음률따라 정정골은 온통 등꽃 환한 하림궁이 된다
우륵이 달을 타고 밤을 건너간 후에도 내 하늘엔 새벽을 길어올릴 두레박 하나 둥실, 돛배처럼 떠 있다.
수련은 잠이 달다
속눈썹에 엉겨드는 잠은 깊을수록 좋아 물베개를 베고 꿈길에 든다
물 위에 궁전을 짓고 달빛과 햇살을 초대해서 음악회를 여는 꿈,
바람 악사 한걸음에 달려와 나팔을 분다 한낮이라고...
바퀴 위에서 꿈꾸기
돌아가는 바퀴 위에 보따리 같은 삶들이 실려간다
시계바늘처럼 돌고 구를 때마다 부채살 끝에서 갈라지는 빛살따라
삶은 달리는 것이라고 달려서 기쁨에 이르는 것이라고 가속도가 붙어 굴러가도 전진한다는 것은 과거의 족쇄로부터 벗어나는 일일 뿐
그대에게 다가서기 위해 어제를 밟아온 바퀴 위에서는 세상 모든 것이 빠르게 비켜가고 지상 가장 높은 곳에 올라 가장 낮은 곳을 달리는 희망은 내일을 여는 열쇠...
허공으로 내달리는 해, 달, 별, 지구는 멈추지 않는다.
어라연에 가다
산이 강을 품고 누웠는지 강이 산을 안고 도는지 여울마다 굽이굽이 하늘은 구름옷 벗어놓고
수천 년을 물속에 들어앉은 바위가 푸르디푸른 빛깔로 물든 강심을 바라본다
하늘 연못이 강물로 흐르는 날엔 자갈밭은 은하수, 꿈 꾼 조약돌들은 죄다 지상에 별이 되었다
강 언저리에 발자국을 찍어본 사람은 알거야 모든 강의 발원지가 하늘인 것을
물거울에 비치는 어라연 절벽 아래
하늘로 가는 머나먼 길이 열릴 때마다 내 가슴에서도 물길이 트이고
어라연에 가면 그대가 부처다.
바닷속 풍경에 잠수하다
세상 고요가 녹아내린 엄마 뱃속인가요 산과 계곡 사이로 춤추는 지느러미가 있어요 형형색색 무지개 꿈빛이 있어요 백년이고 천년이고 눈뜨지 않는 잠이 있어요 이리 들어와 보셔요 무등을 타는 바람이 화음을 만들고 있네요 십자수를 뜨는 장어를 보세요 인어공주의 푸른 궁전도 있구요 눈물이 모인 바다는 늘 속울음이어요 몸속 바다를 퍼나르는 푸른 망또를 걸친 고래가 왕자래요
가끔 사는 일에 지쳐 쉬고 싶을 때, 찾아오는 여긴 나 혼자만의 비밀 천국, 바다 속 무릉도원이라니까요
돌이 된 나무
어느 침묵이 굳어 딴딴한 몸이 되었는가 어둠 속에 갇혀 숨죽이고 잠든 지 수천만 년 오래 기다려 단단해진 것이 어디 너뿐이랴 맨살의 온기와 냉기 사이 지층에 묻어버린 이름을 기억하고 늑골의 은밀한 틈새를 만져보라 푸른 기억 생생한 나이테를 돌아보며 시간의 역류를 바라본다 화석으로 피어난 나무꽃 세포마다 감추어진 옹이의 비밀들을 떨치고 나온 햇살 아래 그대, 화려한 노출이 눈부시다
불나비
무엇을 보았기에 무작정 불빛 속으로 숨어드는가
거기 생명을 노래하다 재가 되어도 좋을 만큼 환해서 전율하는 곳,
무엇이 뜨거운 무덤을 관통하게 하는가 불이 꽃을 피우든 꽃이 불을 지르든 불꽃 속으로 뛰어드는 황홀한 순간,
지축이 흔들리는 붉디붉은 소용돌이 꽃잎 사이로 팔랑팔랑 춤을 추며 떨어지는 한생의 무게가 이렇게 가벼움을
지금 영원에게로 날아가고 있는 내 안의 불나비 날개가 뜨겁다
바 람 부는 날
바람 부는 날 바다에 가보아라 바람이 구겨놓은 물살 위에 하늘로 비상하는 수만의 새떼를보았는가
온통 꿈밭 투성이인 바다에 무슨 욕망들이 모여 그리 거대한 날개를 파닥이는가 누군가 곁에 있으면 더욱 가벼워지는 어깨, 시화호 방조제는 엎드린 채 꿈쩍도 하지 않고 떠나가는 배처럼 날이 저문다.
누구일까? 이 저녁 하늘 아궁이에 부채질을 해가며 군불을 지피는 이가
잿빛 구름 벗겨지는 하늘 비상구에서 빛기둥이 내려앉는다 바다 생살을 찢고아우성치는 불꽃 물결의 축제, 눈발 그친 내 저녁이 빛부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