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들을 기다려야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 덮은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줄일 줄 모르고 약한 얼굴 한번 짖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한다는 마지막말씀으로 받아들어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 것 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땜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삶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 접시꽃당신/도종환
1) <접시꽃 당신>은 1988년 박철수 감독에 의해 이보희, 이덕화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영화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어렵사리 고학하던 늦깎이 대학생 도종환은 가게를 운영하던 여자와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아내는 시부모를 모시고 가게를 운영하며 도종환이 대학을 졸업할 수 있게 지원하지만, 도종환이 교사 임용을 받아 살림이 펴질 때쯤, 불치병에 걸려 사별한다는 내용이다. 러브 스토리류의 최루성영화의 클리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실화였기 때문에 큰 감동을 주었으며 흥행도 꽤 되었다.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LP판)에는 이덕화의 접시꽃 당신의 시낭송이 담겨 있다.
도종환은 이 시집을 출판한 지 5년 뒤인 1991년 다른 여성인 여흥 민씨 민동기(閔東基)의 딸 민경자(閔庚子)[11]와 재혼을 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도종환의 재혼은 "시집에서 사별한 아내에 대한 눈물 어린 순정을 그린 것과 정반대되는 행동으로 여겨져 배신당한 순정"이라며 많은 팬들로부터 큰 실망과 비난을 받았다. 죽은 아내를 소재로 시 써서 유명해졌다고 평생 수절하고 살아야 된다는 법은 없지만(...), 어쨌든 환멸을 느낀 팬들이 많았던지라 '접시꽃 당신'을 불태운 독자도 있었으며, 헌책방에 '접시꽃 당신'이 쏟아져 나왔다. 어쨌든 그 후에도 1994년에 시집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등을 출판, 수록된 흔들리며 피는 꽃이 유명하다. 시련과 고난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사랑과 삶을 담담하고 솔직한 어조로 표현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인용되는 시이기도 하다. (출처:나무위키 )
2) 도종환(1954~)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시인이다. 충북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22세던 1977년 청주시에서 교직을 시작했다.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다 사망하여 사별하게 된 부인 능성 구씨 구은태(具恩泰)의 딸 구수경(具壽卿)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을 애절하게 그린 1986년 시집 <접시꽃 당신>으로 일약 국민적인 스타 시인이 되었다. 죽음을 앞둔 아내에 대한 순애보를 그린 이 시집은 당시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을 울렸다. 이 시집은 약 300만부(추산) 가까이 팔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성공한 시집으로 꼽힌다.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참여하였다가 해직되었다. 1998년에 복직해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2004년 지병으로 사직했다. 2006년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07년에는 문인 단체 '한국작가회의'의 사무총장에 취임했다. 이후 정계에 입문하여 2012년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냈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북 청주시 흥덕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7년 들어선 문재인 정부 초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지내기도 했다.(출처: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