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84년 대구에서 서을로 올라왔다
대구에 살때, 공장근처에 있는 어느 작은 수도공동체인 예수님의 작은자매들의 우애회 수녀님의 도움으로 주교좌성당에서 1980년 부활직전에 세례를 받았다 자신의 관할본당이 뭔지도 모르고 혼배라는 것도 있는지 모르는채
1981년 경상도풍습으로 결혼전 함을 처가에 전달할때 그때 참석한 교우인 처고모덕분으로 관면혼배를 들이나 양가에는 신자가 없기에 방황끝에 장기간 냉담기간이 시작된다
1983년 아기가 태어나자 방황끝에
홀로 서울로 올라가고 전전한끝에 간난애기와 마누라와 서울서 상봉하고 정착한후 처음일이 아들의 백일잔치이고 두번째가 냉담을 풀고 견진세례를 받았다 그곳은 안양의 어느성당의공소였다 냉담을 풀기위해 6개월간 하루세번 기도를 드렸고 매일미사를 드린후에 출근을 했다
동네가 지금의 의왕시내손동지구였고 그당시직장은 서울역앞에 있어서 아침7시 회사버스를 타야했다 그때만난것이 예수회 마리아회 바오로수도회 신부 수사.수녀님과 젊은이들의 친목모임인 '하늘나라'를 만났다 그곳에서 홍신부님이 지도하시는 청년성서모임을 만나게되었고 그 모임을 신촌어느식당의 모임에서 어린아이와 참석한 젊은 부부와의 만남이었다 굉장히 호기심도 가졌고
그들이 있는 곳이 제가 사는 시흥동과 가까운 난곡이다 서울신림동에서 산길로 안양 관악역으로 지나는길이 있다 지금은 도로로 포장되어있다 파리외방선교사가 묻힌 삼성산도 그통로에 가까이에 있다 저는 시흥동에서 난곡을 갈때 그길을 걸어서 가곤했다 그곳시의원을만났다 사라아줌마라 불리우던 김혜경이셨다 한때 민노당 당대표를 하셨다고한다 그곳에서 빈민사목을 하신 이기우신부님도 만나고 몇안되는분과 그곳회관에서 미사를 겸해서 1박2일의 나눔을 가졌다 제가 난곡의 가난한동네를 알게된 계기가 되었다
하고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차츰정리하는대로 올려볼까한다
그곳을 알게해준 젊은부부중 남편은
빈민운동으로 오래전 신림동본당신부로 오신 우리에게는 정의구현사제단소속으로 알려진 김승훈마티아신부님이셨고 그의인연으로 신부님이 돌아가시고 서울교구장으로 할때 첫머리에 신부님의 영정사진을 들었다고 한다
그때에서야 서울주변에 가난한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많이 있음을 알았고 도시가 발달할수록 그곳 마저 빼앗기고 그들은 어느틈인가 소리소문없이 서울밖으로 내치게 되었다 서울북부의 상.중.하계동이며 영등포신길동 난곡 시흥2동 마포지역 마포에서 용산성당으로 넘어가는길 서울 토백이도 아닌 내가 서울전차가 사라진뒤에 상경한 나도 영등포기차길주위의 가난한동네들이 사라지고
있음을 알게된다
재력과 권력을 가진자들에게는 새로운투자로여기지만 가지지못한이에게 자신의 거처마저ㆍ 송두리째 빼앗기는 아픔의 장소이기도 한곳이다 지금현장이 제법보존된곳 중의 하나가 아마도 청파동골목길이다 서울역서부역앞길과 마포로 넘어가는 만리동길 사이의 언덕지대에 아주좁은 골목길사이에 여러 연립등이 조밀하게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