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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로 풀어낸 수묵담채화의 세계 이정환(시인) 1 시와 그림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최화수 시인의 첫 시집『풀빛 엽서』에서 여실히 느낀다. 좋은 그림은 한 편의 시가 되고 좋은 시는 한 폭의 그림으로 뇌리에 각인된다는 사실이 이번 시집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특히 그의 시편들은 색채 감각이 돋보인다. 그림과 더불어 살아온 시인의 풍모가 자연스럽게 육화된 양상들이 전편에서 읽힌다. 색채 감각은 곧 언어감각으로 전이되는 만큼 언어의 연금술사가 되어야 하는 시인으로서 남다른 색채 감각을 지녔다는 것은 훌륭한 덕목이다. 그의 작품들은 군더더기가 없다. 간결하고도 알차다. 참신하고도 깊이가 있고 때로 미묘한 사연들이 깃들어 있다. 사물과 세계와 삶에 대한 진중한 탐색과 관찰이 예사롭지가 않다. 감각의 촉수가 잘 발달되어 흡사 순간 포착과 같은 능력으로 이미지를 잡아채어 형상화한다. 예술 활동에는 나이가 따로 없다. 늦고 빠름보다 얼마나 치열한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물론 빠를수록 좋은 일이지만 충분한 경험의 축적을 이룬 연조에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만큼 깊이 있고 폭넓은 세계를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최화수 시인의 시집에서도 그것을 잘 살필 수 있다. 그의 또 다른 강점은 지금까지 감성의 샘물을 잘 가꾸어 오고 있다는 점이다. 기실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시인은 용케도 그러한 순수성과 넉넉한 정서를 품고 있다. 그것은 그가 미적 삶 즉 예술 지향적 삶을 견지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세상 때가 그만큼 덜 묻어 있다는 것은 소중하다. 자칫 세상일에 오랫동안 부대끼다가 자신의 영혼을 훼손당하여 불안정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 적잖다는 것을 생각할 때 외유내강을 떠올리게 된다. 부드러운 외모와는 달리 그가 담력과 용기를 지닌 내강의 생활인이요, 시인임을『풀빛 엽서』가 잘 말해주고 있다. 진솔한 그의 시편들에는 이따금 이채로움이 보인다. 시인으로서 언어에 대한 미학적 직조에 남다른 공력을 기울이고 있는 점 때문이다. 부단한 천착과 탐색은 시인으로서 모름지기 해야 할 일이지만, 소홀히 하여 밀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적잖다. 시인은 그것을 경계하며 자신의 생각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완결을 향한 담금질에 열중한다. 2 시인은 감성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삶의 한복판을 직시한다. 현대인들의 애환에 대해 따사로운 눈길을 보낸다. 삶이 단순하지 않음을, 지난한 도정임을 새로운 시조로 환기하고 있다. 꼭두아침 8차선도로 빈 트럭이 달린다 동여맬 짐이 없는 기다란 검은 밧줄 살가운 리본이 되어 바람 따라 춤춘다 분홍빛 아침노을 마뜩한 조명에다 선이 선을 물고 그려내는 퍼포먼스 연재도 꿈꾸지 못한 저 현란한 리본체조! -「리본체조」전문 눈에 번쩍 뜨이는 작품이다. 시인의 안목이 놀랍다. 그냥 스쳐가기 쉬운 장면을 이렇듯 두 수의 시조로 되살려 놓다니! 이것은 단순한 서경이 아니다. 첫수가 그 점을 잘 증명한다. 트럭은 긴박한 삶의 한 수단이다. 그 트럭이 지금 비어 있는 채로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다. 동여맬 짐이 없다는 것은 하역 작업을 끝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고, 적재할 물품을 실으러 가는 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꼭두아침 8차선도로’를 달리는 중이다. 그런데 ‘기다란 검은 밧줄’이 풀려서 ‘살가운 리본이 되어 바람 따라 춤’추고 있다. 이러한 정황은 밧줄에 투영된 한 사람의 삶이 흔들리고 있는 의미로 곧장 환치된다. 밧줄이 리본이 된 것은 삶을 예술화한 것이다. 밧줄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춤추고 있는 것은 춤일 수도 있고 삶의 나부낌, 지난한 흔들림일 수도 있다. 시인은 그것을 예리하게 포착한 것이다. 또한 ‘분홍빛 아침노을 마뜩한 조명’의 제시와 더불어 ‘선이 선을 물고 그려내는 퍼포먼스’를 표현한다. 그러면서 저 리듬체조의 귀재 손연재 선수마저도 따를 수 없는 현란하기 이를 데 없는 리본체조임을 만천하에 공표한다. ‘기다란 검은 밧줄’이 바람에 혹은 세파에 따라 이렇듯 본의 아니게 춤추면서 삶이 얼마나 지고지난하면서도 지순한 것인지를 명징하게 떠올리고 있다는 점에서「리본체조」는 아주 특별한 시조다. 봄은 입을 다물고 겨울은 미련 털지 못해 온 누리 숨쉬는 목숨 때를 알지 못한다 눈과 비 어리둥절하여 진눈깨비 뿌린다 -「간절기」전문 계절이 바뀔 무렵의 정취를 노래하고 있다. 봄인데 봄은 입을 다물고 있고, 미련이 남은 겨울은 버틴다. 물러갈 것이 물러가지 않고 정작 와야 할 것이 오지 못하고 있는 엉거주춤한 정황이다. 그렇기에 ‘온 누리 숨쉬는 목숨’이 때를 알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이다. 눈과 비도 분간을 못한다. 어리둥절하여 진눈깨비를 뿌리고 있다.「간절기」는 겨울과 봄의 교차 지점에서 느끼게 된 정감을 표출하면서 사람살이를 은근히 떠올리게 한다. 분별에 대한 자각 같은 것을. 보름달 먹어치운 폭식가 네온사인 식곤증 못 이겨서 울컥울컥 뒤척이다, 한밤중 게워낸 저 달 담채 풍경 그리는 밤 -「도시의 달빛」전문 ‘도시의 달빛’은 달빛의 구실을 하지 못한 지 오래 되었다. 휘황찬란한 불빛이 잠식해 버렸기 때문이다. 시의 화자는 그 중에서도 네온사인에 시선을 집중한다. ‘보름달 먹어치운 폭식가’로 규정하고 폭식 끝에 식곤증을 이기지 못하여 울컥거리며 뒤척이다가 마침내 한밤중에 게워내고 말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달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그 순간 담채 풍경이 그려지게 된 것을 화자는 목격한다. 자연과 인공의 충돌 사태 끝에 이루어낸 ‘담채 풍경’이다. 1 여우비 놀다간 꽃밭 꽃 새댁 다 모였다 봉숭아, 나팔꽃, 해바라기, 무궁화 남미 댁 채송화까지 어우렁더우렁 정겹다 2 사람들은 왜 그럴까? 별의별것 분별한다 배고프고 배우고 싶어 코리안 드림 좇아 온 별들 괜스레 금 긋지 말고 어울어울 꽃처럼 살아요 -「금 긋지 말아요」전문 요즈음 사회적으로 크게 대두되고 있는 다문화 문제를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 넓게 보면 지구촌에 사는 모든 이들은 하늘 아래 한 가족이다. 빈부귀천과 인종으로 따져 구분 짓거나 차별을 받아야 할 아무런 까닭이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 일원에서는 그와 같은 시대 변화에 역행하는 일들이 벌어질 때가 적잖다.「금 긋지 말아요」에서 첫 수에서는 여러 가지 꽃 이야기를 하다가 둘째 수에서 별의별 것을 다 분별하는 사람들의 비뚤어진 심성을 질타한다. 그리고 ‘코리안 드림 좇아 온 별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드러낸다. 꽃들이 서로 ‘어우렁더우렁’ 지내듯이 사람들도 공연히 금 긋지 말고 ‘어울어울 꽃’처럼 살 것을 희망한다. 1 꽃소식 피는 날 생각 하나 피어난다 빈 집 사라진 빈 터 지키던 어린 감나무 그래도 지난 가을엔 까치밥도 챙기던 2 하마 젖니 같은 속잎 솔솔 잣고 있을까? 그 모습 삼삼하여 날개 단 내 발걸음 어쩌나! 반기던 자리 불도저 이빨질 한창이다 3 와락 안겨오는 아지랑이 잔상 같은 옹알옹알 일던 감꽃내 새물새물 웃던 풋감 허공에 일다 스러져 무채색 아픈 봄날 -「감나무를 그리다」전문 사라진 감나무를 좇고 있다. 한 그루의 감나무는 좁혀서 볼 때 자연이다. 자연이 자연 그대로 있지 못하고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은 토포필리아1)와 더불어 바이오필리아2)가 흔적조차 없어지는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던 곳과 그곳에서 함께 어울려 지내던 이들에 대한 추억을 아주 소중하게 여긴다. 어떤 면에서 그러한 추억의 힘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의 화자가 늘 보던 어린 감나무가 ‘불도저 이빨질’ 끝에 뽑혀져 버린다. ‘하마 젖니 같은 속잎/솔솔 잣고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그 모습 삼삼하여/날개 단 내 발걸음’이었는데 그 기대는 송두리째 뭉개져 버리고 만 것이다. 하여 시의 화자에게는 눈부신 봄날이 아니라 무채색으로 아프게 뒤덮인 봄날로 변해 버렸다. 1 갈매기 한 무리가 한 방향만 보고 있다 누가 구령 붙였나 그림 같은 부동자세 두 갈퀴 바위섬 움킨 채 용오름도 버틸 듯이 2 스잔한 그 눈매에 얼비친 별을 본다 만찬을 떠올릴까 먼 비행을 꿈꿀까 나 또한 저처럼 서서 날개 한 쌍 그린다 -「부동자세」전문 「부동자세」는 시 쓰기에서 관찰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환기하게 한다. 한 무리의 갈매기가 바위섬에 앉아서 한 곳을 응시하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비근한 일이다. 그냥 스쳐 버릴 수도 있는데 그 장면에서 부동자세를 읽는다. 그 모습은 용오름마저도 넉넉히 견딜 수 있는 집중력을 보인다. 갈매기들은 그 순간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일까. 마침내 시의 화자도 한 곳에 요지부동으로 서서 ‘날 개 한 쌍’을 그리고 있다. 새로운 도약이요, 비상을 꿈꾸는 일이다. 풀이든 벌레든 몸에 좋다면 씨 말린다 곱디곱게 살고 있는 뭇 생명들 두루 차용한 인간은 현재 진행형 빚쟁이 대열에 선 -「빚쟁이」전문 문명 비판적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보신을 위해서라면 가리는 것이 없을 정도니, 이 방면에서는 가히 세계적이다. 지구 곳곳을 찾아다니며 몸에 좋다는 것은 죄다 찾아내어 먹고 마시기를 즐긴다. 풀이든 벌레든 뱀이든 짐승이든 좋다는 것은 씨를 말릴 듯이 섭생한다. 그렇기에 ‘뭇 생명들 두루 차용한 인간’은 그 죄가 크고 무겁다. 자연에 무한한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육화한 세계와 그 시정신은 그의 시편들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일이어서 특히 주목된다. 1 아침노을 뒷걸음치다 살짝이 되오더니 꽃가지 툭! 쳐서 내 앞에 부려 놓는다 게으른 내 눈가풀에 보랏빛 별 스치고 2 삿갈 댁 내 어머니 반색하시던 벽오동 꽃 꽃보다 색이 더 고와 ‘오동보라’ 이름 주고 손끝에 그 고운 색깔 무수히 지니셨던 3 어릴 적 내 예쁜 별명 오동보라 원피스 하이얀 원피스에 오동보라 꽃물 들여 골목길 까르르 날리던 어머니빛 아슴한 -「오동보라 원피스」전문
「오동보라 원피스」는 시의 화자가 어릴 적 입었던 옷이다. 자주 입곤 하던 그 옷 때문에 별명도 ‘오동보라 원피스’였다. 어머니가 ‘하이얀 원피스에 오동보라 꽃물’을 들여 손수 지어주신 옷이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어른거린다. ‘보랏빛 별, 삿갈 댁 내 어머니 반색하시던 벽오동 꽃’에 대한 추억은 시인의 삶을 지금까지 추동해온 힘이 되었을 법도 하다. 또한 어머니는 ‘손끝에/그 고운 색깔/무수히 지니셨던’ 분이었다. 그렇기에 ‘골목길/까르르 날리던/어머니 빛 아슴한’ 기억이 반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까지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각 수의 종장 끝마디를 미완의 문장으로 처리하면서 긴 여운을 남기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 점이다. 알밤이며 도토리 사람들이 싹쓸이한 겨울산은 배고프다 바람은 더 삼엄하고 오지게 다 털린 나목 속속들이 허기다 연 사흘 주린 배로 꽁지 쳐진 장끼부부 해종일 쌓인 눈 속 낙엽을 헤집다가 떨어진 산열매 몇 알 생일상 받듯 느껍다 -「겨울산은 가난하다」전문 기실 겨울산은 가난하여도 가난하지 않다. 첫 수에서 사람들의 지나친 욕심을 지적한다. 앞서 살핀「빚쟁이」에서 보인 시각과 다르지 않다. ‘알밤이며 도토리’는 들짐승들의 것이어야 마땅한데 그것을 마구 쓸어 가버린다. 삼엄한 바람과 함께 ‘오지게/다 털린 나목/속속들이 허기’로 겨우 견딘다. 마침 ‘주린 배로 꽁지 쳐진 장끼부부’가 나타나서 눈 속을 헤집은 끝에 산열매 몇 알을 찾아 모자란 대로 허기를 채운다. 힘겨운 겨울을 나는 장끼와 겨울산이 함께 오버랩 된다. 가난한 겨울산은 풍족하지는 않지만 장끼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니 가난하지 않다. 물질적으로는 풍족할지는 모르나 사람들은 마음으로는 더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겨울산은 가난하다」는 그런 일련의 생각들을 은연중 하게 한다. 1 허기진 바람이 넌출거리는 밤하늘 푸른빛 소용돌이치는 고흐의 별이 뜬다 에움길 삼나무 홀로 그 별들 세고 있다 2 아스란 미리내강 수만 번 굽이치다 그 푸른 소용돌이 동해에 일렁인다 봄 바다 흐드러진 도화 붉은 꽃내 맡는 밤 -「고흐의 별」전문 「고흐의 별」은 ‘허기진 바람이/넌출거리는 밤하늘//푸른빛/소용돌이치는/고흐의 별’에서 감지한 이채로운 이미지를 육화하고 있다. 고흐의 그림은 그 자체로서 한 편의 시가 되고도 남는다. 유달리 독특한 색채로부터 비롯된 조형미학은 독보적이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내면의 굴절과 광란과 열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둘째 수에서는 이미지가 공간 이동을 하여 배경이 동해가 된다. ‘에움길/삼나무 홀로/그 별들 세고 있’던 정경이, ‘그 푸른 소용돌이’가 ‘봄 바다/흐드러진 도화/붉은 꽃내 맡는 밤’으로 전이된 것이다. 고흐의 그림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이렇듯 자신의 이야기로 전환시킨 것이 이 시편의 특징이다. 목련꽃 떠나버려 설레다 만 산책길 꽃잎 이운 자리 얄미운 잎새들만 불현듯 눈에 들어온 이제 갓 핀 한 그루 목련! 나도 한 송이 빛 고운 목련으로 휘어진 꽃가지 더 휘게 앉고 싶다 늦어서 오히려 눈부신 길섶의 저 목련처럼 -「늦깎이」전문 뒤늦게 핀 목련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있다. 나도 저 목련처럼 늦게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앞으로 소담한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소망을 노래한다. ‘나도 한 송이 빛 고운 목련으로/휘어진 꽃가지 더 휘게 앉고 싶다’에서 보듯 그의 바람은 아름답다. 이미 휘어진 꽃가지를 더 휘게 앉고 싶다는 대목에서 정신적인 세계를 부단히 추구하는 화자의 진솔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 곡진함은 시인에게는 소중한 덕목이다. ‘늦어서 오히려 눈부신’ 시인의 길이 멀리 환히 내다보인다. 속잎 잣던 실버들 졸고 있는 오월 한나절 마믈마믈 수면위로 입질하는 저 밀어들 일순간 속살 가르며 흰 포물선 솟는다. 휘우듬 낚싯대에 번뜩이는 은비늘 미각이 곤두선 찰나 삼켜버린 미끼 탓에 숨 가쁜 생명줄 잡기 유등지도 숨 고른다.
바늘을 뽑아내고 돌려보내는 그 순간 첨버덩! 환한 물속 물기둥 하나 새긴 그 자리 다울찬 연꽃 연등처럼 피겠다. -「유등지 오월」전문 섬세한 눈길을 십분 활용하여 장면들을 세세히 붙잡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유등지 오월」은 생명에의 찬가다. ‘속잎 잣던 실버들/졸고 있는 오월 한나절’에 ‘마믈마믈 수면위로/입질하는 저 밀어들’이 ‘일순간 속살 가르며/흰 포물선’으로 솟는 정경에서 생명력을 온몸으로 느낀다. 둘째 수에서 한 마리의 물고기를 낚아채고 있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는데 셋째 수에서 다시 바늘을 뽑고 잡은 물고기를 돌려보낸다. 그렇지 않다면 오월의 유등지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끝 수 종장에서 환한 물속에 물기둥 하나 새기고 떠난 자리에 ‘다울찬 연꽃/연등처럼 피겠다’고 노래한다. 이 마무리에서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와 상생을 읽는다. 1 두어 골 이랑타서 봄씨 솔솔 뿌린다 잠 든 흙 간질이며 곰실곰실 일어난 떡잎 쪼 옥 쪽 기지개 켜며 키 한 뼘 자란다 2 아침 햇발 웃어 주니 옹알이 하는 거 봐 한낮엔 도담도담 푸른 속잎 웃자라고 밤이면 총총한 별보고 별 닮은 꽃도 맺는다 3 오랜만 참 오랜만에 나도 풀빛 들었나 봐 풀각시 비녀 꽂아 시집 장가보내던 어릴 적 소꿉친구에게 풀빛 엽서 띄운다 -「풀빛 엽서」전문 「풀빛 엽서」는 표제시다. 단아한 서정성이 돋보인다. 첫 수에서 생명의 봄씨를 뿌리는 장면을 ‘두어 골 이랑타서’라고 표현한다. ‘잠 든 흙 간질이며/곰실곰실 일어난 떡잎//쪼 옥 쪽/기지개 켜며/키 한 뼘 자란다’라는 대목도 자연스럽고 실감실정 그대로다. 둘째 수에서 ‘아침 햇발 웃어 주니 옹알이 하는 것’을 본다. ‘한낮엔 도담도담/푸른 속잎 웃자라고//밤이면/총총한 별보고/별 닮은 꽃도 맺는다’라는 구절도 인상적이다. 셋째 수에서 마침내 시의 화자도 ‘참 오랜만’에 ‘풀빛’이 들어버린다. 그래서 ‘풀각시 비녀 꽂아/시집 장가보내던/어릴 적/소꿉친구에게/풀빛 엽서’를 띄우게 된다. 이렇듯「풀빛 엽서」는 정으로 넘친다. 한국인의 정서 중에 가장 으뜸이 되고 상징이 될 수 있는 말로 한 외국작가는 ‘정’을 말한 바 있다. 이 작품에는 그러한 정이 듬뿍 담겨 있다. 이 점은 최화수 시인의 시집 전편에서 읽을 수 있는 특징이다. 남다른 정이 그의 삶과 문학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본다. 3 최화수 시인은 늦깎이다. 늦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늦지 않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이미 학창시절에 시조를 접한 바 있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다시 시작한 것이 늦었을 뿐이다. 내면에 창작에의 열정이 들끓고 있었고, 충분한 인생 경험도 축적되어 있었기에 어느 날 그 불씨를 되살리게 된 것이다. 진정으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어 그 길을 걷게 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편의 시조를 빚어놓고 스스로가 대견하여 때로 감탄하고 때로 아쉬워하기도 한다. 쓰고 싶은 텍스트들은 수북한데 시간에 쫓기기도 한다. 시조를 쓰면서 우리말의 묘미와 다함없는 울림에 늘 탄복해마지 않는다. 더불어 시조가 가진 정형미학의 우수성 앞에 늘 겸허한 자세를 보인다. 이제 첫 출산이니 산고도 큰 만큼 기쁨도 갑절이리라. 첫 시집『풀빛 엽서』의 상재를 축하하며, 앞으로의 시조 인생에 눈부신 빛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1) 장소에 대한 사랑 즉 장소애. 2) 사람에 대한 사랑 즉 생명애. |
첫댓글 최화수님 축하축하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