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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조선은 다민족 국가였다고 봅니다. 그러나 조선의 기득권 상류층들의 대다수가 백인(白人) 민족이었다는 사실에는 전적으로 동의 할수가 없습니다. 과거 구한말 서구의 선교사들의 기록과 자료에 의하면,
조선인들의 다수층이 백인들 이었다는 기록! 있을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 전제 조건은 United Kingdom(연합왕국) 일때 가능하다고 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조선의 지명(地名)+군(君)은 중국(中國=中朝 중앙정부)의 천자의 제후인 왕(王)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즉 조선의 지명(地名)+군(君)은 지방의 제후 신분으로 이들중에 백인 계열의 제후가 있을수 있다고 봅니다. 아마도 백인 선교사가 본 조선 상류층=백인은 조선의 일부분 지방 제후와 제후의 신하와 그 지방의 귀족층을 보고 이것이 조선의 전부로 착각하여
기록하였다고 판단 됩니다. 왜냐하면 백인 선교사가 본 조선 =백인 민족 기록과 서로 상충 되는 조선의 기록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서구 백인 선교사가 본 조선 =백인 민족은 선교사가 조선의 제후국 일부분을 전부로 착각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을 보면,
청장관전서 정조(正祖) 2년 3월 입연기 상(入燕記上)
19일(기묘) 바람이 불었다. 아침에는 추웠다. 30리를 가 장단(長湍)에서 점심을 먹고 45리를 더 가 개성부(開城府)에서 유숙했다.
○ 동자(童子) 정경삼(鄭慶三)의 집을 방문했더니 벽에 묵화(墨畫)가 있었다. 그러나 그림이 너무 흐려서 분별할 수가 없었다. 재선이,
하기에, 내가,
했더니, 만좌가 한바탕 웃었다.
경삼의 숙부 문연(文淵)이, 판서(判書) 윤순(尹淳)이 쓴 행초(行草)로 된 큰 축(軸)을 하나 내주며 중국에 전해 달라고 했다.
○ 재선과 함께 서장관(書狀官)이 묵는 여관에 갔더니 진사(進士) 정식(鄭湜)도 자리에 있었다. 서장관이 갑자기 한 연구(聯句)를 읊기를,
하고서, 이어 나에게 묻기를,
했다. 내 뜻에는 재선의 눈동자가 녹색(綠色)인 것을 조롱하는 것이라 여겨 대답하기를,
하니, 재선이,
했다. 서장관이,
했다. 그래서 눈여겨보니 정 진사도 녹안(綠眼)이었다. 아마도 정 진사가 먼저 녹동선자(綠瞳仙子)라고 칭했던 것 같다. 호(胡)는 조롱한 말이다.
[十九日]
十九日己卯。風。朝凄寒。長湍三十里午餐。開城府四十五里宿。○訪鄭童子慶三。壁間墨畫。濛濛不可辨。在先曰。此瞽畫。余曰。臨津發船。銃藥火發。而無 聲。此啞銃。滿座胡盧。慶三之叔文淵。贈尹判書淳所書行草一大軸。要傳中原。○與在先。到書狀所館。鄭進士湜。在座。書狀忽吟一聯曰。誰自稱綠瞳之仙子。孰不曰碧眼之。因問余曰。之字下。著得何字。堪與仙子爲對。余意謂嘲在先之眼綠色也。對曰。胡兒二字甚妙。在先曰。請改以胡僧。書狀曰。在先則許稱胡僧。鄭進士則改稱胡雛。諦視則鄭亦綠眼也。盖鄭先自稱綠瞳仙子。胡嘲之也。
위의 기록 청장관전서는 조선의 실학자인 이덕무의 기록 입니다. 기록에서 서장관이 갑자기 한 연구(聯句)의 그 의미가 아마도 재선의 눈동자가 녹색(綠色)인 것을 조롱하는 것이라 여기어 눈동자 녹색(綠色)=호아(胡兒) 라며 조롱의 의미인 호(胡)를 왜 붙였을까요?
즉 녹안,벽안=오랑캐 라는 인식이 그 당대의 인식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선의 중조 중앙정부의 상류층이 백인 중심의 상류층 이었다면 백인중에 녹안=벽안 이라는 유전자는 아주 흔한 것인데 어느 누가 녹안,벽안의 유전자를 타고 날지 모르는데 녹안,벽안=오랑캐 라는 등식은 자기비하가 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임금마저도 이러한 유전 법칙에 자유로울수 없는데 함부로 녹안,벽안=오랑캐 를 말할수 없는 것 입니다.
고문헌을 보면 푸른 눈과 관련하여 벽안의 호승,벽안의 호아 라는 말이 무수히 등장 합니다. 그런데 고문헌에서는 거의 항상 푸른 눈과 호(胡=오랑캐)라는 용어와 함께 등장 합니다.
적어도 조선인의 주류 계층이 벽안의 백인들 이라면 자신들을 비웃고 조롱하는 말인 호(胡=오랑캐)를 붙일 이유가 없습니다. 즉 조선인 주류 지배 계층은 벽안의 백인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의 기록은 조선이 다민족 국가임을 말하는 기록으로 재선과 정진사는 녹안(綠眼)의 눈동자를 가진 조선의 백인계의 조선인으로 판단되며 참고적으로 재선이라는 사람은
청장관전서에서 실학자 박제가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이와 과련된 기록을 보면,
연행기사 문견잡기(聞見雜記) [잡기(雜記)]
몽고인은 청인과는 아주 다르게 생겼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푸르며 수염이 붉다. 그리고 모두 사납고 거칠며 집에서 살지 않는다. 아주 추운 때라도 단지 수레 위에 장막을 치고 길에서 자며 아침에는 눈을 털고 일어난다. 배가 고프면 다만 낙타의 고기를 먹을 뿐이고 또 개와 한그릇에 먹는다. 강한(强悍)하고 추악(醜惡)하기가 이와 같기 때문에 청인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천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꾸짖고 욕할 때, 그를 몽고 사람에게 비교하면 반드시 불끈 성을 내고 큰 욕이라고 하니, 몽고인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중략)
대비달자(大鼻韃子)는 곧 아라사[鄂羅斯]인데, 몽고(蒙古)의 별종(別種)으로 나라가 사막(沙漠) 바깥 지극히 먼 땅에 있다. 그들은 키가 크고 몸이 건장(健壯)하여 상모가 극히 흉한(凶悍) 영악(獰惡)하다. 눈은 푸르고 광대뼈가 튀어나왔으며 코가 주먹같이 높고 붉은 수염이 텁수룩하게 났다.
烏 孫 於 西 域 諸 戎 其 形 最 異 。今 之 胡 人 ,靑 眼 赤 髭 鬢 ,狀 類 彌 猴 者 ,本 其 種 也 。其 國 謂 王 曰 昆 彌 ,亦 曰 昆 莫 。
오손은 서역의 여러 융(戎 : 오랑캐) 중에서 그 형상이 가장 기이(奇異)하다. 지금의 호인(오랑캐 사람)이다. 청안(靑眼 : 푸른 눈동자)과 콧수염(髭)과 구 렛 나루(鬢)가 붉은 색이며, 형상(용모)이 원숭이(獼猴 : 미후) 종류와 같은데, 본시 그런 종족이다. 그 나라의 왕을 이르기를, “昆 彌(곤 미)”라 하는데, 또 “곤 막”이라 한다.-통전(通典)
유양잡조(酉陽雜俎) /卷四
堅昆部落非狼種,其先所生之窟在曲漫山北。自謂上代有神與牸牛交於此窟。其人發黃、目綠、赤髭髯。其髭髯俱黑者,漢將李陵及其兵眾之胤也。
(견곤 부락은 랑종이 아니다. 그들의 조상은 곡만산의 북쪽에 있는 굴속에서 태어났다. 그들 스스로 일컸기를 상고시대에 신이 있어 그 신과 암소가 이 굴에서 살았다 한다.
그 사람들은 몸이 누런 색깔이며 눈이 푸르고,콧수염과 머리털은 붉은 색이다. 그 머리털과 콧수염이 모두 검은 자들은 한조의 장군인 이릉과 그 병졸의 자손이다. )
위의 연행기사의 기록을 보면, 몽고인이 청인과는 아주 다르게 생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다른가?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푸르며 수염이 붉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적어도 청인은 눈이 푸르지 않으며 붉은 수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조선인이 백인 특유의 눈이 푸르며 붉은 수염을 가진 이들이 절대 다수라면, 오히려 청인이 몽고와 다르게 생겼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즉 청인과 조선은 같은 인종이라는 것이며 백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의 기록에서 대비달자(大鼻韃子)의 대비(大鼻)는 코가 크다는 것이며 다른 표현으로 고비(高鼻)라 합니다.
이는 백인 특유의 코가 크고 높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서양인에 대한 표현으로 서양인에 대해 대비(大鼻)=고비(高鼻)의 깊은 눈을 가진 사람이라 기록한 고문헌들이 많습니다.
조선인의 대다수가 백인계라면 이런 표현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몽고인과 다른 청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이치적으로 타당 합니다.
과거 조선시대에 서양 백인들에게 대비달자(大鼻韃子)의 대비(大鼻)=고비(高鼻)라 칭한 사실과 오늘날 어르신들이 서양인에게 코큰놈 코쟁이 라 부른 사실은 서로 같은 관점이라는 것으로
조선의 대다수 주류 계층은 이러한 특징이 없는 백인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통전의 기록을 보면 흉노족의 후예인 오손족이 기이하게 생겼다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기이한가?
" 청안(靑眼 : 푸른 눈동자)과 콧수염(髭)과 구 렛 나루(鬢)가 붉은 색이며, 형상(용모)이 원숭이(獼猴 : 미후) 종류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당조때 통전의 저자인 두우(杜佑)가 푸른 눈과 붉은 수염을 가진 사람 즉 백인의 용모를 가진 사람 이라면 오손족이 가장 특이한 형상을 가진 민족이 아니라 가장 동일한 형상을 가진 민족이라 해야 옳습니다.
예컨데 현재 한국 사람이 같은 황인종인 현재의 몽고 사람을 기록할때 자신과 같은 인종적 특징인 검은눈과 검은 머리털을 가진게 기이하다고 기록한다면 이는 한편의 코메디 입니다.
즉 통전의 저자 두우(杜佑)는 적어도 백인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유양잡조의 기록을 보면 흉노족의 후예이며 러시아 민족의 조상인 견곤민족은 눈이 푸르고,콧수염과 머리털은 붉은 색의 백인 민족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조의 장군 이릉과 그 병졸의 자손은 그 머리털과 콧수염이 모두 검은 자들 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 한조의 장군 이릉과 그 병졸들은 적어도 백인민족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역사에서 말하는 조선의 그 주류 지배 계층은 백인이 될수 없으나 조선의 국경은 유럽지역과 접경인 관계로 조선의 서북방 국경에는 백인과 혼혈관계로 인한 인종들이 살았으며 이들 또한
조선에 속한 조선인들 이었다고 판단 됩니다. 이러한 녹안,벽안=오랑캐 라는 인식이 조선 시대만이 국한된게 아니라 고려시대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을 보면,
동문선 비답(批答) 김구 양 중대부 국자좨주 좌간의대부 한림시강학사 의전지제고 불윤 비답(金坵讓中大夫國子祭酒左諫議大夫翰林侍講學士依前知制誥不允批答)
큰 집에 단청(丹靑)을 칠하지 않으면 어찌 궁궐의 체모를 지니겠는가. 임금의 수레에 난새방울을 달지 않으면 어가(御駕)의 위의를 이룰 수가 없는 법이다. 한 나라에 문장이 있음은 그 형세가 이와 같은 것이다. 한(漢) 나라는 반고(班固)와 사마천(司馬遷)의 문채로 인해 해와 달 같은 덕에 빛을 더하였고, 당(唐) 나라는 연공(燕公)과 허공(許公)의 훌륭한 솜씨를 기다려 천지간에 빛나는 문장을 전하였다.
그대와 같은 이는 동벽(東壁)의 정기를 타고나 서경(西京)의 글솜씨를 가졌다. 육경(六經)과 백가(百家)를 두루 벌여 놓음은 마치 백만 대군의 장수가 처음 임명되매 호령이 엄숙한 것 같고, 온갖 천태만상을 그려 냄은 마치 3월에 궁궐의 꽃이 활짝 피었는데 날씨가 화창한 듯하여, 뜻밖의 묘사하기 어려운 것을 잘 형용하고 뱃속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드러내었다. 일찍이 금방(金榜)에 2등으로 올라서는 제주(濟州)의 수령(守令)으로 나가 훌륭한 치적(治積)을 남기었고, 바로 옥당(玉堂)에 들어와서는 한림원(翰林院)에서 시문(詩文)을 드날렸는데, 맨손으로 일찍이 범의 아가리를 더듬고 푸른 눈으로 하여금 봉(鳳)의 털에 놀라게 하였으니, 역임한 벼슬에는 모조리 성망(聲望)이 따랐었다.
大廈無丹雘之施。皇居曷副。路車去鈴鸞之飾。法駕不成。國之有文。勢甚類此。漢得班馬之斧藻黼黻而增輝於日月。唐待燕許之粉澤鉛脂而垂煥乎乾坤。如爾者稟東壁之精。擅西京之手。六經百家之布置兮。如九軍國鉞始授而號令嚴肅。千態萬貌之作爲兮。若三月宮花盛開而風日淸酣。形容意表之難名。呈露腹中之所欲。亞登金牓。遺愛深橘柚之鄕。直步玉堂。高吟到絲綸之閣。赤手曾探於虎吻。碧眼解驚於鳳毛。凡閱經由。動隨聲望。
위의 동문선의 기록을 보면, 푸른눈으로 하여금 봉의 털에 놀라게 했다는것은 푸른눈(이 당대의 몽고족)이 봉의털(김구의 문장력)에 놀랐다는 기록 입니다. 이 당대에도 녹안,벽안=오랑캐 라는 인식이 있어 몽고족을 푸른눈이라 기록한 것이며
고려의 학자 임춘,이승휴의 기록에서도 푸른눈의 오랑캐(碧眼胡)라는 기록이 보이며, 또 고려의 대학자인 목은 이색의 기록에도 벽안로호승(碧眼老胡僧)이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또한 고려시대에도 몽고족을 벽안=푸른눈이라 기록한 것은 대단히 정확한 기록 입니다. 조선의 기록에서도 몽고족은 벽안=푸른눈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녹안,벽안=백인(白人)=오랑캐=야만족 라는 인식이 고려 조선에만 국한된게 아니라 상고대에도 이러한 인식이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을 보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리 나라 북방 미개민족의 시조에 관한 설화. 본래 개와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서 그 후손을 오랑캐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신이담(神異譚) 중 변신담(變身譚)에 속하며, 구전자료는 드문 편이다.
한 재상이 얇은 껍질로 된 북을 만들어 이 북을 찢지 않고 소리를 내는 사람을 사위로 삼겠다 했으나, 아무도 북이 찢어질까봐 치지를 못하였다. 하루는 북소리가 들려 가보니 개가 꼬리로 북을 치고 있었다. 재상은 할 수 없이 그 개를 딸과 혼인시켰다.
개는 밤마다 딸을 핥고 물고 할켜서 괴로움을 참다 못한 딸은 개의 네 발목과 입에 각기 주머니를 씌웠다. 그래서 이 개는 ‘오낭(五囊)을 낀 개〔狗〕’가 되고 말았다. 그 개와 딸은 자식을 낳자 북쪽으로 쫓겨나 후손을 퍼뜨렸다. 그 뒤 오랑구가 오랑캐로 변하여 북쪽에 사는 사람들을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설화이다.
개가 중국 황제의 사위가 되었다고 설정한 간도지방 만주인들의 시조설화는 남자가 낮에는 개가 되고, 밤에는 사람으로 변하는데, 남자가 사람으로 변하는 장면을 아내가 엿보게 되었다.
그 뒤부터는 영원히 개의 탈을 벗지 못하고, 머리부분이 개로 남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지금의 만주인은 머리 위에 긴머리를 남기어 선조의 형적(形迹)을 간직한다고 하여 장발(長髮)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반호전설 盤瓠傳說〉로도 알려진 〈견융국(犬戎國)시조설화〉는 중국 고신씨(高辛氏)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올량합(兀良合)시조설화〉는 불알이 다섯 개 달렸다는 오랑견(五閔犬)이 두만강가에 빨래하러 나온 처녀를 범하고 머리털이 누런 자식을 낳았다. 그가 북쪽으로 가서 시조가 되고, 그 후손을 오랑견에서 오랑캐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물교혼(異物交婚)을 담고 있는 〈단군신화 檀君神話〉·〈견훤전설 甄萱傳說〉과 같이, 이 설화도 원래는 북쪽 사람들이 자기 집단의 신성성(神聖性)과 우월성을 이러한 이물교혼에 의한 시조의 출생으로 나타내기 위해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나라 사람들이 올량합을 오랑캐로 읽음에 따라 그 유음(類音)인 오랑구를 유추하여 이 설화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여러 대에 걸쳐 침입을 일삼던 북방 여진족에 대한 혐오감·적대감·멸시감 등과 더불어 자국민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다분히 가미되어 있다.
≪참고문헌≫ 山海經, 海外北經, 韓國口碑傳承의 硏究(成耆說, 一潮閣, 1976), 韓國口碑文學大系(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8), 神話と文化境域(三品彰英, 京城 大八洲出版社, 194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글을 보면 올량합(兀良合)시조설화는 오랑견(五閔犬)이 두만강가에 빨래하러 나온 처녀를 범하고 머리털이 누런 자식을 낳았다.는 전설로 올량합(兀良合)은 조선의 북방에 있었던 민족으로 몽고계의 민족이며 몽고계는 벽안의 백인 민족이므로
이 올량합(兀良合)시조설화는 백인(白人) 관련 전설 이며 한국어에서 오랑캐라는 단어의 그 시원 근원이 되는 전설 입니다. 또 반호전설(盤瓠傳說) 또한 사람과 반호라는 개 사이에서 사람이 태어났는데 이 전설은 견융국(犬戎國)시조설화로서 조선의 기록에서 몽고가 견융국의
후손이라 하므로 반호전설 역시 백인(白人) 관련 전설 입니다. 백인(白人) 관련 전설은 공통 분모가 있습니다. 올량합(兀良合)시조설화와 반호전설(盤瓠傳說)은 개와 사람사이에 태어난 민족들 이란 것이며,흉노족 계열의 백인종인 오손족의 설화에서는 늑대와 관련이 깊습니다.
이처럼 백인 계열의 민족들은 개와 관련이 깊습니다. 한국에서 야만 민족의 대명사가 오랑캐 입니다. 고대 근세의 설화를 보면 개와 사람 사이에 태어난 민족이 오랑캐 입니다. 한국인에게 있어 가장 모멸적인 욕 중에 하나가 견자(犬子=개xx) 입니다.
또한 옛날 조선인들은 개를 보약으로 상식하였지만 서구의 서양인들은 개를 가족처럼 아낍니다. 옛날 조선인들의 대다수가 벽안의 백인 민족들 이라면 올량합(兀良合)시조설화와 반호전설(盤瓠傳說)은 가장 수치스런 전설인데 조선인들은 기록으로 이런 전설을 전하면서
또한 전설로 보면 개가 백인 민족들의 조상인데 과연 조선인들은 개를 보약으로 상식할수 있었을까요? 과거 조선인들은 백인 민족들을 사람과 개 사이에서 태어난 민족으로 보았고,이들은 견자(犬子=개xx) 였습니다.
1881년 이 당대의 기록만을 보아도 서구 백인 선교사가 본 조선 = 백인 민족설은 이해 불가 입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을 보면,
일사집략(日槎集略) 散錄 중전무웅(中田武雄)의 글 1881년(고종 18)
나는 이제 나의 불초함을 돌아보지 않고, 장차 한국을 위하여 말할까 합니다. 나는 문장에 있어서 가장 졸(拙)한 사람이니, 청컨대 그 문장은 간략히 하고 그 뜻만 취하려 합니다. 한국과 왜(倭)는 동포(同胞)요, 동인(同人)입니다. 옛날부터 서로 친했고, 또 왕인(王仁)이 경서(經書)를 전하여 왜의 문화를 도와 그 업적이 컸었습니다. 그런데 호시탐탐하는 눈 푸른 놈들이 동양에서 발호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처럼 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僕今不顧不肖。將有爲韓所講。僕於文章也最拙。請畧其詞而取其意。韓與倭同胞同人也。自古相親善。有王仁傳經。輔倭之文化。其績大矣。今也虎視耽耽碧眼奴。跋扈於東洋也。未有今日之甚矣。
위의 일사집략의 글은 1881년 이헌영의 저작인데 일본인 중전무웅의 글을 보면, 한국과 왜(倭)는 동포(同胞)요, 동인(同人)이라 합니다. 즉 같은 인종 이기도 하다 라는 뜻 입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서구 백인 선교사가 본 조선 상류층=백인 민족설을 기준으로 보면 일본 또한 백인(白人)이 되고 맙니다. 더 나아가 조선인의 주류가 백인인데 한국과 왜(倭)는 동포(同胞)요, 동인(同人)이면 일본 또한 백인들 인데,
백인들 중에 언제 어느대에 벽안 이라는 유전자가 발생할줄 모르는데 푸른 눈의 오랑캐를 경계해야 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일본과 조선은 같은 인종 이라는 것이며 적어도 백인과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서구 백인 선교사가 본 조선 =백인 민족설은 조선의 제후국 일부를 전부로 착각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개인적 사정으로 자주 방문하지 못한점 죄송스럽게 생각 합니다. 시간이 허용되면 자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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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왜(倭)가 조선[韓]과 동포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백인이 아니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군요. '왜'라는 말은 조선의 정치지배 구조 속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키니까요. 임진왜란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듯이 말입니다. 백인이라고 해서 모두 지배층에 있었다고 본다면 문장에 해석에 오류가 생기지 않나 생각합니다. 백인[코카시안]도 평민이 있었다고 <A Forbidden Land>에 나와 있습니다. 백인이 상류층에도 있었다는 것이지요. 황인도 상류층에 없으란 법은 없을 겁니다. 다민족 다문화의 련합국 조선, 즉 United Corea라는 것에서 다양한 생각이 미칠 것입니다.
비록 서자 출신 이지만 왕족의 전주 이씨 출신인 이덕무는 푸른눈=벽안=녹안을 호(胡)라 했습니다. 이 말은 조롱하는 말이라 했습니다. 이 호(胡)의 의미는 오랑캐 입니다. 조선의 상류층의 대다수가 백인이라면 유전법칙상 언제 어느때 녹안=벽안이 나올지 모르는데 국가의 천자와 천자의 근친 왕족도 이 유전법칙에서 자유로울수 없는데 어찌 함부로 푸른눈=벽안=녹안을 호(胡)=오랑캐라 인식하는 겁니까? 즉 조선의 상류층의 절대 다수가 백인이 아니라는 증거 입니다.
금단의 땅에서는 코카시안=백인들이 상류층이라 이지만 역사의 기록에서는 백인의 유전적 특징인 벽안=녹안을 들어 오랑캐 라는 호(胡)를 붙입니다. 조선인들의 상류층이 백인들인데 기록에서 조선의 상류층들은 정신적으로 이상현상을 보여 자기비하적인 푸른눈=벽안=녹안을 호(胡)라 말하며 자신들을 경멸하는 설화인 반호설화 올량합 설화를 전승시켜 스스로 犬子=개xx가 되는 겁니까? 몽고는 달단이며 이들은 벽안의 백인 입니다. 조선에 유입된 코카시안 달단족은 조선에서 천시하는 수유치(酥油赤)와 백정이 되어 도축을 업으로 살았다고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미국이 연방국가인데 당시의 조선이 이런 형태라고는 꼭 집어 말할 수는 없겠지만 천자를 중심으로 각 제후들의
연합국의 형태는 맞겠지요 피가 섞인 직할 제후와 세습, 임명 등 여러 형태를 띄었을 겁니다.
그러므로 동서남북으로 가지각색의 인종과 민족(?), 부족 등이 조선의 테두리에 있었고 물론 세금을 안내는(이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과도 관련이 있고 오늘날도 미국은 이 세금의 납부 여부를
굉장히 따집니다. 여담인데 영화 김두한에도 김두한이
서울 각 지역을 접수할 때 세금 받으러 왔다고 합니다)부류들도 틀 밖에서 존재했겠지요. 그렇다면 단순한 신체구조의 비교는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아랍인들이 대조회 때 오는 것도 다 그런 이유겠지요(반도 사학에서는 고려 시대 때 이런
사실을 두고 고려를 대단히 세계화된 나라였다고 합니다. 글쎄요 뭐 먹을게 많다고 이 좁고 산물도 안나는 한반도에
왔을까요?)
각종 기록들에 산재해있는 단편의 기록들이 드문드문 있다면 실록 등 정사서에도 꼭 나와야 합니다. 물론 편집이
됬겠지요
천자의 정부에서 권력을 쥘려는 세력들간의 암투는 그 당시에 치열했을 겁니다. 물론 제후들의 나라도 마찬가지겠지요
서인의 정부, 동인의 정부, 남인의 정부....노론, 소론, 시파, 벽파.....귀착은 노론....안동 김문.....조선의 종말 이게 보편적인 역사의 싸이클로 보여집니다. 그것이 19세기 말과 1차세계대전의 줄긋기, 2차세계대전을 거쳐 오늘날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그림입니다. 미국이 쇠퇴하고 난 뒤의 그림은 또 달라지겠지요. 어쨌거나 계속 국력을
길러 자꾸만 중심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오늘 모 신문에 미국의 대통령후부인 힐러리 클린턴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났는데 자세히보니 저도 몰랐는데
눈동자가 추른색이었습니다. 굉장히 신기해 보입디다. 아이노크 우리 어릴 적 구슬치기 할 때 값을 많이 쳐준
구슬이 이 아이노크입니다. 색깔이 여러가지 색으로 울긋불긋하죠. 또 혼혈아를 튀기라고하고 아이노크라고
했습니다.
곧 이말은 잡종을 의미합니다. 이것 저것 섞이다보니 별의별 색깔이 다나옵니다. 이들 눈동자가 유색인 인종들도
인종끼리 섞이다보니 나왔을 겁니다.
조선에는 유색인종과 유색눈동자의 사람들이 뒤섞여 살았지 않았을까요. 그러다보면 이들이 권력의 중심부로 다가갔을
수도 있을 겁니다. 조선은 전세계인을 다 받아들인 열린 나라였다. 지금의 미국이 조선을 닮은 것처럼
조선이 열린 나라 라는것은 어디까지나 유교주의적 질서 아래 입니다. 청장관전서의 저자 이덕무는 전주이씨 왕족출신 입니다. 조선의 왕족 중에 백인과 혼혈자가 많았더라면,또는 백인들이 절대 다수 였다면,청장관전서의 저자이자 전주이씨 왕족출신인 이덕무가 제왕중에 벽안=녹안=푸른눈이 언제 어느 대에 나올지 모르는데 전제군주시대에 감히 함부로 벽안=녹안=푸른눈=胡=오랑캐 라 말한다는것은 한마디로 제왕에 대한 반역이자 심각한 모욕 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가문이 멸족할수도 있는 언사인데 함부로 벽안=녹안=푸른눈=胡=오랑캐 라 말할수 있을까요?
연행기사 문견잡지를 보면 몽고족은 옛날의 달단이라 기록하고 있으며 이들은 벽안=녹안=푸른눈의 백인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 코카시안 백인인 달단족이 조선에 들어와서 주로 광대,백정이 되었다고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조선의 문제아들 이라서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고 자신들 끼리만의 결혼을 하였다고 합니다. 코카시안 백인인 달단족이 조선에 들어와 이들은 조선의 주요 하층민 천민을 이루었음을 실록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