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SUNDAY 오피니언 스무고개수많은이야기
제주에 ‘고개’ 없는데…그 속섬 추자엔 바다 밑에도 있다
김홍준 기자 중앙선데이 입력 2023.02.11 01:08
-전략- ‘제주로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이 섬을 지난다. 바람이 좋으면 하루 만에 바다를 지날 수 있다.’ 『팔도지도(1790)』는 이렇게 설명한다. 추자도를 후풍도(候風島)라고도 했다. 제주로 향하는 선박들이 거센 풍랑을 피해 순풍을 기다리는 중간기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제주 ‘목호의 난’을 진압하려는 최영 장군도 그랬고, 제주로 삼별초 잡으러 가는 여몽연합군도 그랬다. 운항 조건 ‘바람’은 현재도 유효한데, 결항이 잦은 편이다. 김상헌(1570~1652)은 『남사록』에 ‘만약 이 섬이 없으면 제주로 가는 배가 더욱 표몰(漂沒, 물위에 떠돌다가 가라앉음)하는 재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 이라고 남기기도 했다. 추자도는 유배지이자, 제주로 향하는 유배자들의 중간 기점이었다. 이진유(1669~1730)가 귀양살이를 하며 『속사미인곡』을 지었고, 김정희(1786~1856)가 제주로 유배 가면서 들렀다. 이들은 조선 9대 대로 중 하나인 해남로를 통해 전남의 육지 끝단까지 온 뒤 해남로와 바닷길로 이어진 제주로를 이용했다. 정난주(1773~1838)도 마찬가지였다. 신유박해(1801)로 남편 황사영(1775~1801)을 잃고 제주로 귀양 갔다. 정난주는 추자도에 들러 “죄인으로 살지 말아라”는 말을 남기고 아들 황경한(1800~?)을 하추자 동쪽 끝 갯바위에 놓고 갔다. 어부 오씨가 황경한을 키웠다. 추자도에서 황씨와 오씨가 결혼하지 않는 풍습은 이 때문이다. ‘황경한의묘’는 모진이몽돌해수욕장에서부터 가파른 고개를 올라야 만난다.
김훈종 신양1리 이장은 “그 고개를 신대고개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일찍이 왜구가 추자도에 들락거렸는데, 그 후손들의 거친 흔적이 남았다. 신대고개 밑 해안절벽에는 일제가 태평양전쟁 때 만든 동굴진지가 바다를 향해 뻥뻥 뚫려 있다. 일제가 만든 진지는 추자도에 12곳이나 있다. 왜구도 육지와 제주도 중간에 위치한 추자도를 후풍도로 이용했다. 물과 식량, 그리고 사람까지 쓸어갔다. ‘왜선이 자주 추자·사서 등의 섬에 이르러 왕래하는 행선을 표략하기 때문에 해상을 지나는 것이 더욱 무섭다고 한다’고 김상헌은 『남사록』에 적고 있다. 『고려사』에는 왜구들이 자주 침범하자 도민들을 제주로 옮겨 살게 했던 기록도 있다. 이전 사생아로 태어나고 쿠데타로 집권…피난길 고개 넘은 왕의 반전 : 추자의 지독한 바람은 다른 고개 이름을 만들었다. 신양1리와 예초리를 잇고, 추석산(156m)과 돈대산을 가로지르는 바람재다. 김훈종 이장은 “돈대산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추자중학교로 이어지는 ‘학교 가는 샛길’도 추자도의 고개 중 하나”라고 밝혔다.
하추자도에는 이렇게 고개가 이어지지만, 상추자도에는 딱히 고개라고 부르는 곳이 없다. 추자도 대표메뉴인 굴비정식을 내놓은 식당 주인장도, 추자도에서 관광객을 상대하는 사장님도 “그런 곳은 없다”고 했다. 한 주민은 “암만해도 상추자가 하추자에 비하여 쩍고(작고) 스멀스러워(지형이 순해서) 그런 것 가트다”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하추자에 ‘비하여’지, 상추자는 ‘스멀스럽지’ 않다. 상추자에는 추자도 답사 1번지로 일컫는 ‘나바론 절벽’이 있다. 영화 ‘나바론의 요새(1961)’처럼 깎아지르는 위용을 자랑하니, 그 이름을 빌려왔다. 나바론 절벽은 상추자 대서리와 영흥리를 북쪽으로 감싸 안고 그 반대쪽은 바다로 급하게 떨어지면서, 이곳을 가로질러 다닐만한 고개가 생길 틈을 주지 않았다. “내일은 바람이 심해 제주로 가는 배가 안뜰 것 같은데요.”
추자도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바람 이야기만 할 수도 있다. 추자도탐방객안내소 직원의 말에 식은땀이 흘렀다. 제주에 갈 일이 걱정이었다. 가만, 여기 추자도는 제주가 아닌가. 제주 올레길 구간이 이 섬에 뻗어있고, 주소도 제주시인데. 강영봉 소장은 “제주도의 ‘도’를 섬(島)으로 보면 추자도는 제주가 아니다. 하지만 제주도의 도를 행정구역(道)으로 보면 추자도는 제주의 일부가 된다”며 “그만큼 추자도는 언어와 생활 문화권이 호남에 가깝다”고 말했다. 실제로 어르신들은 전남 사투리를 쓰는 경우가 많다. 젊은 사람들은 전라도와 제주도 말을 뒤섞어 쓴다. 강 소장은 “언어 사용의 스위칭(변화) 측면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공간”이라고 밝혔다. 주민의 ‘쩍다’ ‘스멀스럽다’는 방언처럼 추자도는 제주의 바람보다 호남의 바람이 강하다. 역사는 이미 추자를 호남에 넣었다.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간 호남의 섬이었다. 영암과 완도 소속이었다가 제주군으로 옮긴 게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이었으니, ‘제주시 추자면’은 기껏 100년 조금 넘은 주소다. 강 소장은 “제주이지만, 추자도에서는 ‘고개’를 쓰는 이유가 호남권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묵리고개 밑 갯바위에서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휘감아 던진다. 릴을 감는다.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추자도 갯바위들은 낚시 잔칫상이 된다. 그런 갯바위 하나에 두 살배기 황경한이 놓였다. 그 갯바위에 세운 ‘눈물의십자가’ 뒤로 해가 뜬다. 분명 제주의 일부이지만, ‘제주스럽지’ 않고 ‘호남스러운’ 섬. 여기는 ‘고개가 있는’ 제주, 추자도다.
* 오늘의 묵상 삼위일체축일(220612)
제1독서는 심연이 생기기 전, 하느님께서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기도 전에 ‘지혜’가 있었음을 전합니다. 영원에서부터 계시는 그 지혜는 바로 ‘말씀’(로고스)이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요한 1,1-2 참조). 창세기는 한 처음에 ‘하느님의 영’이 함께 계셨음을 전합니다(1,2 참조). 이런 까닭에 한낱 미천한 인간 피조물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논한다는 것은 매우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복음 말씀은 이러한 성부, 성자, 성령의 친밀한 관계를 잘 보여 줍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과 언제나 일치를 이루십니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이는 다음 장에서 이어지는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것은 제 것입니다.”(요한 17,10)라는 말씀과도 같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을 온전히 드러내 보이십니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 하느님 계시의 충만함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시어 하느님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을 보여 주시고 이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시어 제자들을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시며 성자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으로 하느님과 평화를 누리며 은총 속에 머물게 됩니다. 세상의 환난 가운데에서도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으로 살아갑니다. 그 희망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부어지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믿음, 희망, 사랑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에게서 먼저 우리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향하는 우리의 모든 발걸음은 믿음, 희망, 사랑으로 지극히 충만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바랍니다.
오늘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섭리에 감사드리며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저희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크시옵니까!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시나이까?”(시편 8,2.5)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대구가톨릭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