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미로 <4>
<22,1,23, 청하 김철기 作>
한참 시간이 흘렀다.
너무나 조용하게
경철이도 유미도
아무 말도 없이 시간이 흘렀다,
경철은 눈을 떠보니
옆에 유미가 있었다.
얼굴엔 행복한 듯 미소가 있는 듯이
잠을 자고 있었다,
창문 밖은
강가에 가로등 불빛이 물안개에 가려
가물거리며 흐릿해 보였다,
몇 시일까?
"똑딱똑딱" 벽에 걸린 벽시계를 보니
벌써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저녁에 마음 놓고
마신 술기운도 있었지만
유미와 함께
뜨거운 몸부림을 쳤던 것이
곤하게 푹 잠을 자고 난 몸이
한결 가벼웠다,
잠자는 유미를 바라보니
배시시 웃고 있으며 행복스러운 모습이
나를 만난 것이
왠지 안쓰럽기도 하다,
어깨가 원이 나온 유미에게
홑이불을 바로 덮어주고
베개를 베여 주었더니
갑자기 경철의 목을 끌어당기며
"경철 씨 사랑해"
"너무 좋아요
유미의 간절함이 배어 있는 촉촉한 눈
애교가 넘치는 목소리로 들렸다,
경철은 일찍
서울로 올라가려던 마음을 되돌리고
이불속으로 들어가니 다시 한번 여지없이
유미와 한 몸뚱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그런 행동들이
그동안 뜨겁기만 하였던 육체로
수많은 외로움을 간절하게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경철이는
그녀의 마음을 그렇게 읽었다,
*
*
*
*
* * * *
그 후 며칠이 흘렀다,
그리고 경철은 생각을 하였다.
쉽사리 유미를 정복하였다고는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쉽게 건드린 만큼이나
그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끈질기게 파고들고 있었다,
얼굴도 변변치 않았지만
한번 정을 통한 여자라고
왠지 경철은 유미가 보기 싫었다,
그녀는 추파를 계속 보내오고 있었다.
돈으로 노골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였지만
그럴수록 유미는
더욱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작심하고 달려들고 있는 꼴이 되었다.
경철은 미치고 팔딱 뛸 지경이었다.
날이 갈수록 회사에 출근하기도 싫었다,
정말 싫은 여자를
온종일 보는 것은 너무나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경철은 고민 끝에
회사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순기 패션 기획부에 사표를 내었다.
며칠 집에서 출근도 안 하고
빈둥빈둥 거리는 나를 아버지가 보고는
"왜 회사에 안 나가나,?"
"벌써 회사 다니기 싫어진 건가?
"네 아버지!"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였는데요,
"아무리 하여도 저에게는
적성에 맞지 않고 그렇습니다, 아버지!"
"그럼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냥 빈둥빈둥 놀면은 밥만 먹고 똥 싸는
똥 기계 되려고 그러나"
"아! 아닙니다
"아버지.
절대로 안 그럽 습니다,
"아버지 같이 열심히 일을 하여야지요,
"아버지!
"왜?
"돈 좀 조금 주십시오,
"무엇에 쓸려고. 얼마나?
"조그만 사업을 시작하려고요.
"뭐 생각해 본거 있는가?
"네 아버지!
"아버지 같이 꼭 성공해 보고 싶습니다,
"그래 자식 이제야
정신을 차리려고 그러는가,
"네 아버지
"그럼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서
보고 하거라
"실수 없는 것으로..
"네 아버지.
경철은
그동안 생각해 두었던
계획을 보고하고
사업자금을 얻어 냈다,
하지만 그 조차 친구들과 어울려
술집으로 들락거리며 모두를
탕진하고 말았다,
그런 아들의 정신 못 차리는 모습이
불쌍하게 하고
마지막의 기회로
자그마한 사업부터 하라는
아버지의 호통과 꾸람을 듣고
정말 잘하겠습니다, 했다,
그런 경철이에게
정말 마지막이라는 말을 달고
출판사를 차려 주셨다,
아버지가 지어주신 회사명
"동일 출판사"
이 사업을 성공하면
정상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거액의 자금을 주겠다고
약속까지 하셨다,
그리고
경철에게 각서를 쓰게 하셨다,
그렇게 시작한 동일 출판사이다,
그렇지만
이 사업이 쉽지 않은 일이다,
수주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문제는 마땅한
여직원을 두지 못한 탓이다.
그보다는 주어진
자금으로 운영하다 보니
처음부터 싸게 놀 수밖에 없었다,
경철은 언제나
직원을 채용할 때마다
돈이 없어
조그마하게 시작한 사업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렇게
궁색하게 운영하다 보니
여직원은 미련 없이 훌쩍 떠나지 않았는가,
그래서 묘안으로 생각한 것이
충분한 대우를 하여주는 것이다.
김유정이가
사무실로 출근하기 시작한 후로
그는 적중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그러나 유정이가
텅 빈 사무실을 지킬 때마다
경철이의 얼굴이 다가와
박히기 시작하자 그녀도 역시
차츰차츰 지쳐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우였지만,
그런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싶었다.
조금은 메마른 체구에 훌쩍한 키.
언제나 얼굴엔
미소를 떠 올리며 말하는 모습은
헤어진 남편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혼자 사랑하는 감정이라는
모두 이런 아픔이 따르는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모두 다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마음에는 다 말하지 못하는 침전물이
조금씩 가라앉아 쌓인 아픔 뒤꼍에서
그녀는 첨차 지쳐가고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 경철에게 진실을 말할까.
더구나 한번 결혼해서 과거의 약점들이 많은 여자들은
아무리 사랑하는 남자가 나타나도 그것이 흠이 될까 봐
다 털어 내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게 만들고 있다.
유정은 요즘 들어 마음을 제대로
잡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산란하기만 하다.
나이가 다섯이나 어린 스물여덟
미혼의 경철을 만난 다음부터
머릿속엔 항상 그의 그림자로 채워져 있다.
여백은 조금도 없다.
무언가로 가득 채워주는 경철의 그림자들.....
경철은 사무실에서 이야기할 때
육체적으로 처녀이냐 아니냐에 대해
경철은 사랑하는 여자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고
유정 앞에서 몇 번이나 말했다.
그러면서 유정을
너무나 사랑해주고 싶은 여자라고 말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몇 번을
입버릇처럼 말을 해왔다,
깊게 파헤쳐 보면 두렵고 불안하기만 한 것이
과거를 가진 여자로서의 입장에서
사랑은 금기가 아닌가,
더구나 딸 하나까지 두고 있는 처지라면
유정의 마음은 경철이가 내뱉은 사랑에
호락호락 점령당하고 싶지 않았다.
사회적 현실이나 상식적 안목에서는
도저히 허용되기 힘든 사랑의 관계가 고민스럽게
유정의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들은
유정에게 크나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같은 또래나,
연상의 남자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도
유정의 눈에서 비치는 도도함 때문이다.
하지만 육 제적 떨림은 그와는 달랐다.
겉과 속의 다름처럼
경철을 만나면 만날 수록
유정의 가슴은
통증을 느끼리 만치 부풀어 올랐다.
감취질 수없는 이 사실 앞에서
유정은 무서운 모순을 체험하면서 하루하루
아픔으로 물들이며 출근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퇴근시간 무렵 사무실엔 별로 들려가지 않던
이경철 사장이 나타났다.
대낮부터 어디서 술을 마셨는지
얼굴은 붉었고 입에서는 술냄새가 풀풀 풍겼다.
유정은 얼른 물을 끓여 피를 탔다.
경철에게 다가서서
"사장님 커피 드세요."
"유정 씨 고맙습니다.
오늘 친구를 만나 낮부터 한 잔 했습니다.
"유정 씨 죄송합니다.
"사장님 잘하셨어요,
"오늘 제가 유정 씨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려고 하였는데
이렇게 되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유정 씨!!
"아구 사장님 아닙니다 .
경철은 정말 취했다,
늘 착실하게 보였던 모습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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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