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기숙학교 사태를 넘어서
2021.7.20.
캠뤂스의 인디언 기숙학교가 있었던 부지에서 유해가 발굴되면서 캐나다 사회는 충격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곳곳에서 더 많은 묘비도 표지도 없이 매장된 유해의 발견은 빅토리아 등 많은 도시 정부가 154주년 캐나다 건국 행사를 취소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제국주의에 이 수치스러운 과거의 근원을 찾는다. 또, 인디언 기숙학교를 관리했던 가톨릭교회와 캐나다 정부를 비난하며 책임을 지라고 요구한다.
선진국인 캐나다에서 1990년대까지 이런 시대착오적인 학교가 운영되었다는 것은 경악스러운 일임이 틀림없다. 우리 민족도 일제에 의해 우리말 사용을 금지당하고, 문화 정체성을 억압받은 아픈 과거가 있다. 그러기에 힘없이 시련을 겪으며 죽어간 인디언들에게 누구보다 더 연민을 품게 된다. 이들 기숙학교 어린이들의 사망 원인은 좁고 열악한 환경 속에 퍼진 결핵, 독감 등 전염성 질병 때문이었다. 물론 근본 원인이야 강제로 인디언을 동화(assimilation)시키려는 정책에 있다. CBC 보도에 따르면 캐나다 아동복지국은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인디언 아이들을 모아 미국의 주로 백인 가정에 입양시키기도 했다. 이들은 무임 일꾼 같은 홀대를 받았다. 이것이 눈엣가시인 그들과 그들의 문화를 말살하고 동화시키려는 의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1만 5천 년 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에 자리 잡고 살아온 진정한 이 대륙의 주인공인 인디언들은 스페인, 포르투갈을 선두로 한 유럽인들의 탐욕과 무력, 질병 앞에 대부분 죽임을 당해 사라지고 말았다. 이를 생각하면 현재 남북 아메리카에 사는 정복자와 이민자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콜럼버스 데이를 기념할 게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한다. 살인자, 약탈자의 후손이란 점을 말이다. 그런, 폭력을 앞세운 살육과 박해를 통해 남북 아메리카는 유럽계 후손들의 나라가 되었다. 이제는 누구도 인디언이 이 땅의 주인이라 하지 않고, 인디언도 이를 요구할 힘이 없다.
하지만, 이게 어디 캐나다와 아메리카에서만 일어난 사건인가? 중국도, 유럽도, 그리고 평화를 사랑해 한 번도 타국을 침략한 적이 없다고 가르치는 우리 나라도 사실은 여러 차례 기존 정착민들을 쓸어내고 침략자들이 차지한 땅이다. 이는 힘으로 생존의 터전을 마련하는 인류의 역사에서 끝없이 되풀이된 과정이었다. 그래도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를 주창해온 평화로운 캐나다에서 동화와 말살이라는 행위가 불과 몇십 년 전까지 자행됐다니! 한편 종교는 역사에서 늘 정복자의 조력자였다. 선교를 앞세우고 피정복민의 종교만이 아니라 문화 전반과 전통의 경시와 말살의 선봉장으로서 말이다. 일부 성직자들은 진정으로 이단이 은혜를 받아 행복한 내세를 누릴 수 있게 해 준다고 믿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현재 캐나다인이 수치스러워하는 인디언 기숙학교 사태는 기본적으로 힘으로 인디언을 복속시키고, 동화되지 않으면 말살시키려는 과정이었다. 거기 어디에도 동등한 인격을 지닌 다른 인종에 대한 배려나 그들의 문화와 가치를 존중하며 공존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지금도 중국, 미국, 터기 등 세계 다수 국가에서 자국 내 소수 인종에 대한 박해를 지속한다고 캐나다의 부끄러운 과거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히틀러의 독일이 저지른 만행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종전 후 독일이 사과와 반성, 그리고, 보상하듯이 캐나다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제 원주민의 살아남은 후손에게 그들의 조상이 자유롭게 누리던 산하를 되돌려 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이런 수난을 겪지 않도록 캐나다인에게 지난 과오와 수치를 사실대로 냉정히 가르쳐야 한다. 그들이 고유한 문화와 언어, 전통을 지킬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행복하게 잘 사는 정복자의 후손과 다른 캐나다 시민처럼 살 수 있게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줘야 한다. Mary Simon이 원주민 출신 첫 캐나다 총독이 되고 Innuit 말로 취임 연설을 한 것은 긍정적 변화이다. 그녀가 말한 대로 “서로를 아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넘어 피정복자의 후손으로 좌절하고 정체성을 상실한 원주민이 겪는 각종 중독과 실의를 딛고, 경찰과 의료 서비스 등 모든 분야에서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캐나다 시민으로 대우받고 살 수 있도록 함께 방법을 강구하고 도와야 한다. 진정한 화해(reconciliation)란 서로를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기꺼이 공존의 길을 모색할 때만 가능하다. 또, 그것이 캐나다가 인디언 기숙학교의 불명예를 씻고, 수치를 극복하고 참다운 다문화주의 국가로 발전하는 길이다.
첫댓글 송선생님,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보다 밝은 앞날을 기대해 봅니다. 협회 일로 늘 노고가 많으신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늘 청안하시길 기원 합니다.
김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시 '예수님, 오늘 당신께서 죄인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반성과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