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막 떠나온 제주도는 5월 강수량이 관측이래 최고 많은 양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머물던 성산 쪽도 엄청난 양이 쏟아진 모양입니다. 뉴스를 보니 어제 항공편은 물론 배편까지 결항되었다니 귀가날짜가 정말 절묘했습니다. 3일 오후 8시넘어 도착한 해남 땅끝마을에도 굵은 비가 연실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루 묵어야 했던 리조트에서 새벽부터 해먹이고, 씻기고, 먹은 것 정리하고, 빗속에서 짐 다시 차에 싣고 혼자 열일하고 있는데 이럴 때 꼭 역부놓으며 사람속 뒤집어 놓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준이가 가끔 어깃장을 놓으며 요지부동 움직이지 않으려는 때가 있습니다. 양치질하자고 했더니 거부하길래 바쁜 마음에 소리를 꽥 질렀더니 감정이 상한 채로 침대에 걸쳐앉아서는 고집스럽게 일어나질 않습니다.
빨리 출발해도 거리가 워낙 멀어 오후 늦게나 도착할텐데 준이가 시간끌며 비협조적이니 애가 탑니다. 하는 수 없이 '넌 놔두고 갈테니 알아서 와라'라고 싸늘하게 말하고 (물론 알아듣지는 못해도 싸늘함은 충분히 느끼죠) 다 정리한 후 준이 제외하고 모두 데리고 와서 차에 태웠더니 태균이가 눈물까지 흘리며 슬퍼합니다. 준이 안 데려갈까봐...
부리나케 다시 돌아가 준이를 겨우 데리고 왔더니 리틀준이가 차 밖에 나와 비를 맞으며 물에 취해 있습니다. 물만 보면 그냥 심신이 저절로 끌려가는 상황은 리틀준이의 당면과제가 얼마나 시급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대체적으로 물은 거의 모든 아이들이 탐닉하지만 리틀준이의 홀릭상태는 상황불문합니다.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리틀준이의 진정 감각해소의 시작일 것이라 보입니다.
그렇게 장장 11시간을 오늘 차에서 보냈습니다. 절반은 해남 땅끝에서 경기도 진입하는데 소모했고 절반은 경기도 진입부터 아이들 집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걸린 시간입니다. 황금연휴 바로 전날 퇴근길 즈음이라 제가 거쳐야 했던 도로는 온통 자동차 뿐입니다. 서울상황은 최악 중에 최악입니다.
자동차 안에서 먹고 마시고 놀고 싸고... 운전하면서 두 녀석들 시중은 끝이 없죠. 중간중간 쉼터에 들려 태균이 소변도 봐야하고, 대략 그 긴 시간동안 6~10번 아이들이 소변을 비우는 동안 준이는 한 자리에서 한번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침 사건때문이 아니라 원래 준이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소변을 보지 않고도 괜찮은지 준이랑 긴 여행할 때는 늘 의아하면서도 걱정이 됩니다.
해남 땅끝마을에서부터 운전하는 내내 제주도 생각 뿐입니다. 이번에는 성산 숙소 위치가 마치 오름 주변 산길에서 헤맬 때 만났던 '오직 자연 밖에 없음!' 상황과 유사했고, 시내도 몇 번가지 않았고, 인적드물지만 제주도의 자연에 흠뻑 취할 수 있었던 이 시대의 상급 원시지대에 내내 헤매다 온 탓일겁니다. 당분간 도시패닉, 도시포비아 상태에 빠질 것 같습니다. 오자마자 맞부딪친 최악의 교통체증도 다 용서되지만 그 현장에 있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달비움... 집 앞에 건축 중이던 이층집은 뼈대만 올라간 상태였는데 그 외양이 다 드러나있고, 마늘도 실하게 자랐고, 아마 태균아빠가 심어놓았을 상추도 따먹을 정도로 잎을 내놓았네요. 그러고보니 철쭉과 연산홍들은 제 철을 맞아 화사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 변화 외에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우리집 내부는 그대로입니다. 태균이아빠조차 주말에만 살짝 들릴 수 밖에 없는 형편 속에 버려졌던 영흥도집은 우리가 어질러놓았거나 내팽겨친 그대로, 모두들 바로 그 자리에서 얌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제 영흥도에도 굵은 비가 시작되었습니다. 폭우처럼 내릴 것이라하니 빗소리를 들으며 휴식아닌 휴식을 간만에 취해야 할 것입니다. 너무 웃픈 모습, 집에 오자마자 자신의 보물단지 빨대통을 열고는 꼭 한달치 분량을 씹어놓습니다. 태균이 취미이자 감각해소이자 놀이인 빨대 씹어서 똑같은 모양 만들어놓기... 한달을 굶주린 것을 최우선으로 채우고 있네요.
첫댓글 제주도 일기를 통해서 아이들의 뇌신경, 감각 등 다양한 내용을 직접 보고 생각할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저도 제주도 다녀온 느낌입니다.
나름 올리신 내용을 집에서나 밖에서나 많이 응용해보려고 합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태균씨도 고생했고 대표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어느 순간 번아웃 상태가 와 큰일 나면 어쩌나 그런 걱정도 됩니다. 부디 잘 관찰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