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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알바, 커피숍, 일식집 서빙은 스무살때부터 하기 시작했고, 홍삼도 팔아보고 네비게이션도 팔아보고, 발렌타인데이 초콜렛도 팔아보고요- 결국 이래저래 안해본 일이없네요. 카드회사 쪽에서 영업도 해보고 그 업는 실력 짜내서 과외도 해보고요 . 생활력만 엄청나게 늘어갔습니다. ㅎㅎ
다행히 오랫동안 하던 알바 중에 페이가 정말 센 곳에 정착하게 되고, 거기서 경력을 점점 인정받아서 꽤 괜찮은 페이를 받게 되니까, 돈 맛을 알아버린 저는 점점 일하고 돈벌어서 부모님께 손 안벌리고,
나 스스로 생활하고 저금하고 그러는 삶이 나쁘지 않다고 느끼게 됐습니다.
그렇게 1년 2년 계속 대학 중퇴 학력으로 , 학력과 전혀 무관한 그런 단순 직종에서 계속 일을하고 구르면서
악착같이 살기위해서 열심히 뛰어다니며 바쁜 나날은 보냈는데요
경제적으로 여유생기고 돈이생기는건 좋지만, 자꾸 공허해졌어요.
공부가 그립고, 공부하던 시절이 그립고 , 다시 펜이 잡고 싶어졌어요.
지나가다가 과 잠바 입은 학생들, 심지어 교복입고 다니는 중고등학생들만 봐도 너무 부러웠어요.
사회에 나와보니까, 저 잘난 줄 알고 살던 고등학교 시절과 달리 인정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제가 잘 할수 있는것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러게 고등학교 때 공부좀 하지 그랬으면 고생안하고 살았지 하는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사실 난 그게 아니었는데 !!!! 하면서 부인해봤자 구차한 변명에 불과했습니다. 열심히 했던 시절이 있었어도, 거기에 대해 증명할 방법이 전혀 없으니 억울한 마음도 들었고, 후회스럽고 답답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로만 다시 돌려준다면, 이렇게 내 인생이 엇나가지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으로 늘 멍하니 쳐다보게되고,
과거의 성적에 대한 집착을 붙들고 살았어요.
명문대 앞에서 자취를 하다보니 그 학교 학생들만 보면 너무 부러워서견딜수가 없었습니다. 쟤네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면서 부러웠고, 고등학교 동창들과는 연락 닿기조차 자존심 상하고 싫어서 페이스북도 끊어버렸어요.
만나봤자, 너 지금 뭐하니? 어디다니니? 어디나왔니? 로 이어질 질문 받는것 자체가 저에게 고문이었거든요.
그래서 결국 편입을 26살나이에 결심하게 됩니다.
현역 때 외국어영역이 점수가 높았다고는 하나, 그 당시에는 외국어가 쉬워서 사실 제 기본기는 거의 바닥이나 다름없었어요.
문법도 몰랐고 단어도 잘 몰랐고, 독해도 너무 어려웠고,
그 전에 편입학원 세 달 다닌 것도 기본기 막 쌓으려던 시점에 그만둔거라서 사실 비루한 실력이었습니다.
일하면서 학사를 따려고 틈틈히 준비해서 독학사 4과목 합격하고, 워드 자격증 따고,
이제 마지막으로 2학기 때 사이버대학만 마무리 하면 학사가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영어 공부는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사실 10월부터 시작한거 말도 안되는 늦은 시기였지만
그래도 그 전에 편입학원 세달정도 다녔으니까 따라갈수 있을거라고 자기 위안을 했고, 학사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냥 70점대 정도만 나오면 학사로 못해도 인서울 국숭세단은 가겠지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다가 12월 중순쯤, 갑자기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어요.
돈을 아끼려고 학습플래너와 상담하지 않고 그냥 제가 알아서 학사를 듣고 하다보니
한 과목을 전필이 아닌 전선으로 이수를 했다는군요. 그래서 학사가 나오지 않는대요.................
더이상 방법이 없고 계절학기접수도 이미 끝났다고,
딱 3학점, 아니 2학점이 모자랐어요. 그놈의 전필 전선 때문에
학사 준비하시는 분들만 이 때 제 심정을 이해하실거에요. 그동안 스트레스 받아가며 사이버 대학 과제 내고 컴터 두대로 시험 치고, 독학사 붙었다며 좋아하고 힘들게 번 돈 사이버대학에 투자하고, 영어랑 병행하면서 받는 스트레스 학사가 나오니까..하는 희망으로 모두 감수했었는데, 그 모든게 물거품이 된다니 정말 하늘이 무너진다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습니다.
도서관에서 그 얘기를 전화로 처음 듣고 그 채로 복도에 주저앉아 소리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성인이 되서 그렇게 엉엉 울었던 기억은 그게 처음이 되었던거 같네요. 지나가는 사람이 있건 말건 계속 눈물이 났어요
그 상태로 홀린 것처럼 나와서
근처 아무 교회에 가서 예배당에 쓰려저서 눈이 소세지가 되도록 세시간동안 그냥 엉엉 울기만 했어요.
울다 지치고 다시 울고 또 울다 지치고
그냥 내 인생 다시 원점으로 돌려보고 다시 시작해보겠다는데, 왜이렇게 바로잡는것이 힘든가 싶었어요
이 나이에 일 그만두고, 힘들게 그 대학에 대한 한을 풀어보려고 선택한건데, 학사만 따면 좋은 대학은 아니어도 ,
인서울은 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정말 큰 욕심 안부리고 인서울 중위권 대학이면 만족할 수 있었는데
그 소박한 꿈마저도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었습니다.
학사가 없이 일반으로는 제 실력이 인서울은 택도 없다는 걸 알았거든요.
모든게 물거품이 됐다는 생각에 멘탈이 산산조각나서 시체처럼 며칠을 지냈어요.
그러나 그냥 하는데까지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결국 남은 힘을 쥐어짜내어 일반으로 시험을 치긴 쳤지만,
저 스스로 목표 레벨을 학사로 낮춘 상태로 해왔었고,
일반으로 뚫을 실력이 아니었다는건 스스로 알고 있었어요. 준비 기간도 부족했구요.
설상가상으로
그 해 고려대, 서강대, 한양대 등등이 줄줄이 기존보다 절반으로 줄여서 뽑는바람에
헬오브 헬로 불리던, 엄청난 편입 재수생을 양성했던 해였습니다.
제가 썼던 경희대 사과부인가? 경쟁률이 140:1이었던거 같네요. 경쟁률은 둘째치고 추가가 정말 돌지 않았습니다.
국민대, 세종대에서 결국 예비 4번? 그리고 2번을 받았지만, 과도 사학, 법학등으로 낮춰서 썼지만
무려 예비 2번도 전화가 오지 않았어요. 국민대만 됐어도 만족하고다니고 싶었는데.....
5명 뽑는 과에 4번이면 그리고 높지않은 공법학과면 합격 할 수 있을줄 알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기회가 오지 않더군요. 제 앞도 아니고 그 해 2명 빠졌던걸로 기억합니다. 세종대는 아예 한명도 안빠졌고요 .
그리고 맞은 새해- 제 인생에서 가장 절망스러운 모습으로 맞이했습니다.
학창시절엔 참 꿈도 많았고, 나쁘지 않은 성적만 믿고 의사 교사 변호사 등 허황된 꿈도 꿔보고,
주변에 선생님들도, 부모님 친구분들도 다 저를 인정해줬고 자존감이 높았었는데
제 현실은 수도권 대학 중퇴에 27살이라는 여자로서 정말 한참 꺾여가는 나이와
안정된 직업 없이 알바로 이래저래 살아가는,
정말 사회 밑바닥 층으로 추락해서 목표를 잃고 엎어진 비참한 제 모습 뿐이었습니다.
집안도 학벌도 직업도 외모도 그 어느것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저 스스로를 증오하는 단계까지 오고,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을 것 같았어요.
학업 능력쪽으로는 그나마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과신하고 있었는데 편입까지 실패하고 나자
큰 좌절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그냥 무작정 상경해서,
그동안 하던 일을 시간을 조절해서 하루에 2개씩 미친사람처럼 돈만 벌기 시작했어요.
내 장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저것 아무것도 내세울게 없으니까 취업도 자신없었고요.
하루에 일 두탕을 하니 페이가 2배가 되고 경력있다고 좀 더 쳐주고 하다보니 한달에 500~600 찍기 시작했습니다.
미친 스케줄이었어요. 하루에 잠 3시간 4시간만 자면서 집에와서 눈만 붙이고 머리만 대고 다시 눈뜨면 뛰어나가고
그러는 일상이었지만 힘든줄 몰랐어요. 눈에 보이는게 없었죠
펀드도 넣기 시작하고 저축금액도 올리구요. 남은 돈으로 피부과도 열심히 다니고 체형교정도 받고 정말 미친듯이 돈벌고
미친듯이 투자했어요. 전화영어도 신청해서 바쁜시간 쪼개밥먹으면서 회화 연습도 하고, 헬스도 다니고요
하루에 일 두개라는게, 정말 제대로 옷 고를시간도 없이 바빴지만. 잠시 남는 짜투리 시간엔 계속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정보도 얻고, 친구들도 열심히 만나구요. 나름 열심히 사람 사는것처럼 멘탈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예 편입이라는건 나한테 없는 복이구나 싶어서 포기한 상태로 깨끗이 접은 상태였습니다.
아니,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
그러나 작년 10월쯤부터, 또 다시 포기하지 않은, 아니 포기가 안되는 대학에 대한 미련으로 혼란이왔습니다.
대학이 뭐라고, 그냥 잊고 열심히 돈 벌어서 장사하려고 계획도 세워놓았는데,
그래서 하루하루 돈모으는 재미로 살고 있었는데
이제 정말 다시 입학하면 28인데, 27살을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도전했던거라서 더이상 편입은 내 길이 아니구나
대학은 내 팔자에 없구나 생각을 했었는데도, 다시한번 도전하고 싶어졌어요.
지금 나이에도 이런데, 30살 되어도, 35살 되어도 40살 되어도 계속 대학 때문에 자책하고 후회하고 살아갈 것 같았습니다.
"40살에 입학하느니 28살에 입학하는게 낫지 않은가 ?"
정말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빠른 때라고 믿고 싶어졌습니다.
아마 저는 5년 뒤 10년뒤에도 대학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고 스스로 후회하며 살아갈 게 분명할텐데
28살이면 마흔살보다 훨씬 어리고 좋은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낳은 자식이 공부안하면, 엄마는 그래도 너처럼 공부 안하지는 않았어! 하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어요 .
마지막으로 도전해보자!
당시에 정말 매일매일 아다리가 잘맞아서 일이 이어지고, 나쁘지 않은 수입 계속 유지해가면서 점점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지난날의 상처로부터 해방되어가고 있었기에 다시 편입 결심하는게 쉬운일은 아니었습니다.
나이도 나이였지만 사고싶은거를 맘대로 사고 쓴다는게 얼마나 정신적으로 행복한건지, 경제적 스트레스 없는 삶이 얼마나 축복받은건지 처음 깨달았으니까요.
그런데 다시 수험생활 하려면 그 모든걸 버려야 했습니다. 사실 남은 시간도 별로 없었고
그 전 해에 학사가 미끄러진걸 알고 사이버대학 로그인 창조차 쳐다보기 싫어져서 18학점이 그대로 빵꾸난 상태였어요..
상반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3과목 정도를 다시 들어놓긴 했는데 남은 10학점을 무얼로 채워야 할지 암담했습니다.
그러다 일단 유통관리사 시험을 쳐보기로 결심하고, 유통관리사가 붙으면 편입을 하라는 하늘의 뜻이고, 떨어지면 정말 깨끗하게 포기하자고 결심했습니다. 남은 시간도 일주일정도밖에 남지 않았었는데
그 일주일동안 미친듯이 유통관리사 시험 벼락치기를 했고, 결국 간당간당한 점수이긴 하지만 합격을 했습니다.
(혹시라도 유통관리사 시험, 어렵다는 얘기만 듣고 얼마 안남았다고 포기하시는 분 계시다면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어차피 60점만 넘으면 되는 자격증 시험이라서, 얕은 공부량으로 승부가 가능합니다. 그냥 문제만 계속 풀고 계속 풀다보면 겹치는 내용이 잡혀요, 그렇게 대충 개념 이해하고나서 시험장가시면- 유통관리사 시험이 어차피 유형이 많이 바껴서
말장난이더군요. 그 순간 시험지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는지가 중요하지 절대적인 공부량이 중요한 시험이 아니었어요. 보기만 잘 제거해도 힌트가 되는 그런 언어영역 비슷한? 시험이요. 그리고 + 운빨도 중요한듯합니다.
아무튼 독학사나 자격증 시험에 한달 두달 투자하는건 시간낭비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 시간에 영어 조금 더 열심히 하시고 자격증은 막판에 벼락치기로 하세요- 독학사도 벼락치기가 더 효율적입니다. )
유통관리사 합격 이후 제게 남은 시간은
11월부터 12월 그리고 1월 초까지 두달 정도가 남았어요.
작년 재작년에 찔끔찔끔 산발적으로 공부했던 걸 총체적으로 다시 정리하는게 중요했고,
일단 단어만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에 제가 승부를 볼 수 있는 것이 무얼까 생각을 해봤어요.
독해는 한 두 지문 더 읽는다고 실력이 바로 느는거 아니고,
문법은 고작 4문제 맞추기 위해 그 방대한 이론서 다시 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시험을 여러번 봤던 경험을 살려보니, 어휘문제 + 어휘의 감을 이용한 논리문제+ 독해를 가장한 어휘 문제가 많았고, 그 문제만 절대 안틀려도 10점은 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 마지막 남은 시간동안 단어만 봤습니다.
단어만이 제일 투자 대비 효율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공부였어요.
표제어만 외우는게 아니라, 단어의 두번째 뜻 세번째 뜻 그리고 품사 구분하고 문맥상 언제 많이 쓰이는지, 이런걸 완벽하게 보려했고, 잘 안외워지는 단어들은 제 마음대로 연상법 만들어서 밑에다가 쓰면서 했어요. 저만 알아볼 수 있는 저만의 연상법으로요. ㅎㅎ 창피할 정도로 말도 안되는 연상법을 붙여서 친구도 빌려주기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만드느라 시간도 걸리고 했지만 단어 뜯어보고 찢어보고 붙여보고 하면서 연상해야 하다보니 단어 외우는 속도와 기억 지속성은 최고였던 것 같아요. 거의 2달 좀 넘는 시간동안 보카바이블 완독 겨우1 회했지만 정말 자세히 완벽히 보았고 연상법으로 확실히 외워버렸습니다.. 여백이 없을정도로 계속 예문적고 포스트잇에 붙이고요. 안외워지는 것만 따로 포스트잇에 붙여 외웠을 뿐 시험 바로 전까지 겨우 정독 1회 ~2회정도 한 것 같네요. 빨간책도 봐서 완성했구요.
독해는 많이 풀어볼 시간은 안됐지만 위드유 성순희 강사가 도움이 됐던 것 같네요. 그리고 감을 높이려고노력했어요. 짧은시간안에 풀어야 하니까 마인드 컨트롤 하는 방법에도 신경을 썼고, 지문보다 보기를 먼저 읽어서 미리 어떤 내용이 나올지 유추해보면서 지문을 다 안읽고 필요한 내용 위주로만 읽었습니다. 미리 내용을 유추해볼 수도 있어서 흐름잡는데도 도움이 되었구요, 이 방법이 동국대에서는 굉장히 먹혔어요. 50분밖에 안주는 시험이었는데도
필요한 내용만 골라 읽었는데 답이 딱딱 나와서, 85점인가 87점 가채점 결과가 나와서 최초합을 확신하게 됐어요. 사실 전 속독에 무지 약하고 빨리빨리 못읽는데, 보기 먼저 읽는것이 도움이 되는것 같습니다.
사실 1월 초 성대 시험볼때까지도 완벽히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각 학교별 모의고사도 제대로 풀어보지 못했고요
12월 마지막 한 달 학원에 등록해서 정보를 얻으려 했지만 모의고사도 거의 치러나가지 못했어요
모의고사 80점 넘은 점수를 받아본 적도 없고, 그래서 해주고 싶은 말은 모의고사 점수와 다른사람 페이스에 휘말려서 일희일비 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시험을 보면서, 어떻게 보면 실전 시험 자체가 모의고사였던거 같네요
최대한 집중해서 한 번씩 풀어보는 실전시험은 그 자체가 훌륭한 모의고사였고 실력향상에 도움이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좀 늦게 시험을 본 이대, 동국대 숙대에서 포텐이 터졌을 수도 있구요.
혹시라도 가고싶지 않은 학교 접수만 했는데 안갈까 고민되시는 분들, 그래도 그냥 가세요
제대로 된 실전모의고사 한번 풀고 나면 상승된 감을 느낄 수가 있었어요.
저는 처음에 말씀드린대로 고려대나 서강대 한양대 외대 등등은 쓰지 않았어요.
목표치 자체가 높지 않았고, 국숭세단 라인에서부터 성신여대 세종대까지 건동홍숙은 다 썼고요- 중하위권 대학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로서 이화여대는 한번 쯤 꿈꾸어 볼 만한 대학이었고, 안될 줄 알면서도 썼는데 ,
결국엔 제가 쓴 대학 중 가장 좋은 학교가 합격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네요.
그래서 올해는
성대와 중앙대 빼고 제가 썼던 모든 대학이 합격해서 나름 다관왕이 되었습니다.
학사와 일반 차이도 좀 있는거 같고, 한번 더 정리하니까 좀 더 개념이 잡힌 덕도 본거 같고,
제가 20살때부터 좋은 대학갔으면 끝없이 자만할까봐, 나중에 이렇게 좀 더 소중하게 공부하는 기회를 감사하며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뒤늦은 축복을 내려주신것 같기도 했습니다. 크리스챤 분들이 계시다면, 잠시 좌절을 겪고있다고 하나님 원망하지 마세요. 저도 매일 도서관에서 울면서 기도인지 하소연인지 원망인지 하는 말을 하나님께 늘어놓으면서 엎드려 울었는데, 그 기도를 다 들어주시고 채플들을수 있는 기독교 학교로 보내주신 것 같아요.
이대 면접 끝나고, 밤새서 준비한 질문 하나도 못받고 멘붕상태로
이대 빠이!!!!! 넌 안녕 이러면서 캠퍼스에다 쿨하게 이별인사 하고 왔는데 ,
추가합격이 되었다는 걸 확인하고 정말 기뻤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대 나올여자! 아니 나와야만 하는여자 ! 어떻게든 나와야 하는 여자가되어서
너무 즐겁게 캠퍼스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기쁜건 엄마아빠때문이에요. 살면서 부모님이 이렇게 기뻐하시는 것도 못봤고
어떻게 보면 제 나이, 부모님들이 마냥 편입하라고 밀어주실 나이는 아니잖아요.
동갑인 제 친구는 편입하겠다고 얘기하니까 부모님이 너 미쳤냐고 했다네요 ㅋㅋ
그만큼 대학이란게 의미없는 나이일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부모님은 저만큼 대학에 한이 많으셨나봐요.
너 이대합격하고 나서 더이상 아빠엄마 싸우지도 않는다고, 매일 웃음이 넘친다고
그렇게 연락이옵니다.
몰랐던 사실인데 저희 엄마, 저 대학 그렇게 가고나서 한동안 우울증 오셨었대요- 내색만 안하셨을뿐
근데 우울증도 말끔히 고치시고, 지금은 딸 이대다닌다고 매번 자랑하고 계세요
사실 나이 생각하면 자랑할일도 아니고, 어떻게보면 창피한건데도
그런데도 너무 좋아하시니까, 태어나 처음 효도했다는 생각에 제가 합격한거보다부모님때문에 더 기쁘고 좋습니다.
그리고 이대라는 학교가, 생각보다 사회에서 인정해주는게 굉장히 크더라구요.
제가 이 나이에, 고려대나 연세대를 다닌다고 해도 , 별다른 특이사항으로 인정이 되지 않았을 수 있는데
이대는 말그대로, 제 특이사항으로 인정이 되는 기분이었어요.
아직도 학교 끝나면 그 학력과 관련없는 일을 계속 하면서 돈을 벌어 생활비를 대고있는데
이대 다닌다고 하면 더이상 저를 무시하는 듯한 느낌도 없이 한번씩 다시 봐주는거 같구요.
중고등학교 때 공부좀 하지 그랬냐는 식의 발언에, "저는 사실 열심히 했었는데 이래저래 해서 이렇게 된거구요" 하고 구차한 변명할 필요 없이 스스로 당당한게 가장 좋은거같네요
아무도 학교에대해 물어봐주지 않아도 스스로 당당하고 스스로 여유있어졌어요.
그냥 나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많이 상승했고, 더이상 열등감도 없구요.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이런 좋은 학교에 잠시 발을 담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루하루 행복합니다.
이화여대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은 학교더라구요.!! 다니면 다닐수록 애교심이 팍팍 생깁니다.
지금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
사실 편입공부하는데 도움이되기보다 신세한탄에 가까운 글이지만
이렇게 꼬인 인생으로 살아가던 나이많은 여자도 포기하지 않은 결과
합격할수 있었다는 희망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나이많아 고민하시는 여자 수험생분들!
학교 막상 다니면 나이 그렇게 신경쓰지 않게 돼요.
오히려 젊은 친구들이랑 같이 공부하다보니 옷차림도 말투도 점점 젊어져요!
저는 전혀 위화감 없이 잘 다니고 있구요. 어차피 졸업만 하면 내가 몇 년에 졸업했는지는 중요하지않잖아요.
새로 취업을 할 때는 나이가 걸림돌이 되겠지만, 최소한 그 채로 안주한 것보다는 더 기회가 많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런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으시다면, 서로 터치 별로 없는 여대쪽을 추천해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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