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불안정했던 사회 1990년대에는 국가를 뒤흔들 만한 사건·사고가 연이어 일어났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끌어오던 군부독재가 막을 내렸다. 군부독재의 잔재를 청산하며 민주주의 실현의 단꿈에 빠져 들어갈 때 즈음, 이듬해인 1994년에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잠시 국가 전체에 긴장감이 감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일어난다. 오전 아침 7시 40분에 일어난 이 갑작스런 사고로 서른두 명이 사망하고 열일곱 명이 부상을 입었다. 안전점검과 관리소홀로 일어난 인재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사건이었다.
정윤철 감독은 단편 영화 <기념촬영>(1997)에서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다뤘다. 여고생인 주인공이 사고로 떠나보낸 친구들을 떠올리며 영혼을 달래주려 한다. 이 작품은 각종 영화제에 초청돼 정윤철 감독의 이름을 영화계에 알려주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이듬해 6월,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사망 501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이란 어마어마한 인재였다. 영화 <가을로>(2006)는 이 사건에 연관돼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남녀가 아픔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1995년엔 대구에서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사고가 일어난다. 연이은 대형사고가 거듭되던 시기,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비자금 비리 로 전격 구속돼 국민적 망신을 당한다.
그리고 1997년엔 IMF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사생결단>(2006)은 IMF 이후 혼란기에 빠져든 부산을 배경으로 마약판매에 열을 올리는 마약판매 중간상과 이를 쫓는 부패 경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굵직한 범죄 사고도 많았다. 1991년엔 아홉 살 이형호 군이 유괴·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44일간 피를 말리는 협박 전화에 시달려야 했던 부모들의 애타는 심정은 영화 <그놈 목소리>(2007)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1993년과 1994년 사이에는 지존파 살인사건이 터져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떳떳하게 사회 시스템 문제를 거론하고 나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유사한 사례로 1996년에 발생한 막가파 사건이 있다. 이들은 조폭 두목 조양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보스>(1996)를 보고 조직을 결성했다고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사건들은 자연스레 훗날 조폭 영화의 범람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1994년, 각종 불법 찬조금 징수 등 온갖 추잡한 일들로 불거진 상문고 사학 비리 사건은 <두사부일체>(2007)의 모티프가 되기도 한다. 이런 유의 사학 비리 사건은 <공공의 적 2>(2005)에서도 다뤄졌다. 정지원 기자
<두사부일체>. 깡패보다도 못한 비리 교사를 까발린다. 물질욕에 눈이 멀어 교사로서의 본분을 상실한 이들이 나온다. 영화 속에선 오히려 깡패가 이런 교사를 처단함으로써 통쾌감을 선사한다.
<가을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연인 민주(김지수)를 잃어버린 현우(유지태). 그리고 민주화 함께 진해 속에 묻혀 있다가 구조된 세진(엄지원).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진 채 살아가는 두 사람이 만나 치유의 길을 함께 걸어간다. 사고 당시의 처참한 모습과 그로 인해 인물들이 겪는 고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보스>(1996). 이 경우는 오히려 역작용이 일어난 케이스다. 사회적 현상이 영화에 반영된 것이 아니라 이 영화를 보고 나쁜 점을 따라해 범죄를 저지른 조직이 생겼으니까. 하긴, 조폭 두목의 일대기를 미화한 영화니 그럴 만도 하다.
<사생결단>(2006). IMF 이후의 시기가 배경이다. 힘들게 살았던 우리나라가 급성장을 이루자 갑자기 졸부처럼 행동했던 어리석은 이들이 있었다. 꼭 당해봐야 후회하는 어리석음이 드러났던 시기.
●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기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며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다. 여야 정권 교체와 함께 또 다른 새로운 국면이었던 것은 바로 햇볕정책. 2000년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을 가져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통일에 대한 기대감은 높아가고, 2005년 <간 큰 가족>에는 실향민 가계가 익살맞은 웃음을 주기도 한다.
또 하나 김대중 정권의 크나큰 이벤트는 2002 FIFA 한일 공동 월드컵 개최였다. 2006년에는 <열혈남아>가 월드컵 경기장의 붉은 인파를 재현했고, 2007년에는 월드컵 경기를 직접 보는 것이 소원인 시한부 아이와, 아빠의 모습을 담은 <눈부신 날에>, 그리고 올해 9월 개봉하는 <아내가 결혼했다>에서는 손예진이 남편이 둘인 축구광 인아로 출연한다.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참여정부의 시대가 시작된다. 취업난은 만성적인 청년 실업으로 자리 잡았고, 백수들의 빈둥빈둥한 일상을 코믹하게 그린 <위대한 유산>(2003)은 그런 세태를 반영했다. 사교육, 조기 유학으로 이어지는 과도한 교육열도 이 시기에 본격화됐다. 2007년 개봉된 <우아한 세계>에서는 아이의 교육을 위해 아내와 아이를 타지에 보낸 기러기 아빠의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은 2004년 28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감동의 경기를 이끈 여자 핸드볼 팀의 실화를 그렸고, 같은 해 8월 13일에는 연쇄살인마 유영철이 구속 기소된다. <추격자>(2008)는 유영철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2005년 2월 3일에는 남성 중심의 가족제도인 호주제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 모계가정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된 이 변화는 <뜨거운 것이 좋아>(2008)의 모녀관계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김영미(이미숙)의 딸이 김강애(안소희)로 설정되어 있는 것. 2007년 4월에는 한미 FTA 협정이 타결됐고 의료계와 농민을 주축으로 한 거센 반발이 일게 된다. 이해림 기자
<간 큰 가족>(2005). 실향민 아버지의 특이한 조건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통일 담화문을 담은 가짜 뉴스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실향민 가계의 코믹한 가상 통일 시추에이션.
누적된 청년 실업은 백수와 백조를 양산해 냈다. 평범한 동네의 노는 형, 누나들을 그린 <위대한 유산>(2003)은 백수 청년들의 모습을 코믹하게 그려낸다.
<우아한 세게>(2007)는 조직에 몸담은 한 가장의 기러기 아빠 생활을 보여준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과잉된 교육열로 조기유학을 택하는 엄마와 아기가 아빠를 혼자 내버려 둔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 전반전 동점, 후반전 동점, 연장전 동점 끝의 승부던지기에서 패해 은메달을 획득한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2008)이 제작돼 410만 이라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유영철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은 스릴러 <추격자>(2008)는 연쇄살인마와 그를 추격하는 전직 형사의 팽팽한 긴장감을 매섭게 묘사했다. 550만에 가까운 흥행성적을 내고 2008년 칸국제영화제에서도 좋은 평을 얻고 돌아왔다.
호주제가 폐지되자, 싱글맘과 딸의 성이 같은 경우도 등장하기 시작한다. <뜨거운 것이 좋아>(2008)의 모녀 또한 같은 김씨이다. 호주제 폐지를 의식한 설정은 아닐 수 있으나, 세태는 반영되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광우병이 발병하면서 수입이 중단됐던 미국산 쇠고기를 다시 수입할 계기를 명문화한 것이 FTA 협정이었고, 2008년 6월 10일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전국적인 촛불 문화제가 열리기도 했다. 6월 19일 개봉하는 <강철중: 공공의 적 1-1>에서는 한우 가격이 폭등하고 수입소가 한우로 둔갑하기도 하는 세태를 예견이라도 한 듯 극중에 쇠고기에 관한 이슈를 의식적으로 배치하기도 했다. 이해림 기자
<강철중>(2008). 우연의 일치인지, 예지력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강우석 감독은 기획 당시 FTA 협상 추이를 보며 <강철중>에 한우를 많이 먹자는 메시지를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로서도 영화 개봉 시기에 이런 분위기까지 형성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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