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품 분실 주의
선의관악종합사회복지관 실습생
중앙대학교 이재진
버스를 타고 복지관으로 수료식을 앞두고, <꼴찌를 위하여> 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가는 길 포기하지 않는다면, 꼴찌도 괜찮은 거야.” 실습 중에 이 가사를 수백번은 되뇌인 것 같습니다. “꼴찌여도 상관 없을 정도로,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나의 길은 무엇일까?”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저는 그러한 고민에 휩싸입니다. 아직도 고민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번 실습을 통해 그 답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번 실습을 통해 갖게 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과연 희망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봤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저는 그것이 “미래에 대한 호기심” 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정의한다면, 선의관악복지관에서 실습을 하기 전, 저에게는 희망이랄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누가 물어보면 번지르르하게 지어낼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일에 대한, 1년 뒤의 나에 대한, 미래에 대한 호기심이나 설레임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었던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내일도 오늘처럼 똑같이 재미 없는 하루일 것이고, 외로운 하루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정말이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사는 것이 즐겁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제 자신에 대해서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가 여러분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하듯, 저 또한 제 자신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언젠가부터 제 마음 속에 회색 도장 하나가 놓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도장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래 봤자” 라고 말입니다.
저는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호기심도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도 그 회색 도장을 찍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래 봤자, 잘 안될거야.” “그래 봤자, 실패할 거야.” “그래 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거야.” 라면서 말이죠.
뿐만 아니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그런 도장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봤자, 개인주의 가득한 도시일 뿐이야.” “그래 봤자, 인간이란 이기적인 동물이야.” “그래 봤자, 동네가 살아나지는 않을 거야.” 라고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그 회색 도장을 실습 도중에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실습을 통해 새로운 도장을 하나 팠습니다. 그 도장에는 이런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것 참” 이라는 글씨가 그것입니다. 저는 이제 동네에서 버려진 공터를 보면, 그 도장을 찍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 공터에서 영화제나 바자회를 한다면, 그것 참 재밌겠다.” 라고 말입니다. 민지 선생님, 은아 선생님 그리고 주민들이 봉천동의 계단에서 영화제를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이런 도장을 절대 파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파트 단지에 배드민턴 코트가 있으면, “이야. 저 코트에서 동네 어르신들과 생활체육 모임을 하면, 그것 참 재밌겠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온 선생님, 병찬 선생님 그리고 주민들이 일구어낸 성과를 직접 두 눈으로 보지 못했다면, 이런 희망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관 수료식 때 지윤 선생님의 발표를 듣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마루에 걸터앉은 어르신들을 보면서, “저 어르신에게 동네 이야기를 듣고 함께 책을 쓴다면, 그것 참 의미 있겠다.” 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 봤자, 내가 물어보러 가봤자, 아무도 나에게 잘 이야기 해주지 않겠지.” 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제 글을 그 누구보다 꼼꼼하게 읽어주시고 의미를 물어봐주신 선의관악복지관의 실무자 선생님들이 없었다면 또 어땠을까요? "그래 봤자, 아무도 관심이 없겠지." 라며 제가 먼저 포기했을 겁니다.
이제 새로 판 도장을 들고 학교로 돌아가면, 무엇을 해볼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중앙대학교에서 민속학을 공부했습니다. 제가 정말 사랑하는 학문이었는데, 저희 학번을 끝으로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민속학과 과실도 4개월 뒤에 폐쇄됩니다. 주변 사람들을 모아서 어떻게 기억을 정리할지 묻고 의논하고 싶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그것 참” 해볼만 할 것 같습니다.
졸업하고 나면, 다 같이 잡생각 마음껏 하고 그것을 만화나 글로 표현하는 잡생각 모임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 전통 세시풍속을 함께 연구하고, 직접 동네에서 세시풍속에 따라 여러가지 활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꼭 이미 있는 세시풍속만 따라야 할까요? 같이 의논해서 새로운 세시풍속을 만드는 활동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민속이 꼭 전통적인 것만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주민들과 함께 도시민속지를 쓰고 싶습니다. 어르신들과 함께 노래교실을 열고 싶은데, 꼭 전문강사를 초빙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돌아가면서 하루씩 노래강사를 직접 맡고, 노래를 주제로 자서전도 쓰고, 뮤직비디오도 만들고 싶습니다. 주민들의 표정과 언어로 “우리 동네 이모티콘”을 함께 만들어 보면 그것도 참 재밌을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데, 언젠가는 모두 해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기관 수료식 때, 지윤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한 어르신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은 많이 웃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넉넉한 사람은 가진 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 사람이다.” 라고 말입니다. 한 번 그렇게 건강하고 넉넉하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것 참” 해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희망나눔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번에 선의관악복지관에서 실습하면서 회색 도장 하나 잃어버리고, 새 도장 하나 팠습니다. 봉천동에서 회색 도장 하나 주우시면, 줍지 말고 그냥 버리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회색 도장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생긴 '그것 참' 도장.
재진 글 읽으며 단기 사회사업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다시 생각합니다.
사회복지 대학생에게 꿈 꾸게 하고, 희망을 품게 하는 일이라 생각하니
선의관악 선생님들이 귀하고 고마워요.
사람 사이 애정과 인정을 살리는 일,
그것 참 해 볼 만한 일입니다. 그것 참 청춘을 보낼 만한 일이에요.
이어지는 일들도 응원합니다.
사회사업 현장 곳곳에서 자주 만나고 싶어요.
애정과 인정을 북돋는 일, 말씀대로
정말 해볼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는 직접 해봐야 알겠지만,
하나씩 꾸준히 해나가려고 합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