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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마음뿐! 마음만을 그렸던 여류화가
아그네스 마틴
글/홍성미
올 겨울 들어 가장 눈다운 눈이 내렸다. 아침부터 내리던 함박눈은 오후에도 그 기세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고, 잉그마르 베르그만의 영화 속 알렉산더가 보았던 창밖의 풍경처럼 밖에는 눈 덮인 하얀 설국이 펼쳐지고 있었다. 야호~ 입가의 미소로 환호를 외치며 필자는 눈맞이 준비를 단단히 하고 집을 나섰다. 매일 보던 가게들도, 버스 정류장도, 아파트 건물들도 오늘은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새롭고 달라 보였다. 마치 여행객이 된 듯 눈 덮인 북유럽의 어느 작은 마을을 걷고 있다는 상상을 하며 필자는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눈도 많이 내리고 바람도 제법 세차게 불었던 날이었지만, 미술관안은 이미 많은 관람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난 사실 그녀를 잘 몰랐다. 몇 달 전 한국에서 여행을 왔던 친구가 꼭 한 번 가보라고 추천했던 작가. 미술관 웹사이트에서 그녀의 작품들을 검색해 보고, 관련 기사들을 읽던 중 필자는 그녀가 불교와 동양사상에 심취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와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의 작품세계를 특히 좋아했다는 아그네스 마틴. 하지만 미술관 웹사이트를 통해 만난 그녀의 작품들은 마크 로스코의 생명력 넘치는 색마저 사라진 모노톤의 더 심한(?) 추상표현주의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사물로서 인식할 수 있는 모든 형태가 사라진 마치 텅 비어 있는 듯한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들은 그녀를 종종 미니멀리즘 작가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아그네스 마틴은 언제나 “late, late Abstract expressionist” 라고 자신을 불렀다고 한다. 사실 그녀의 캔버스에선 여전히 작가의 붓자국이나 화면의 깊이를 엿볼 수 있는데, 극도로 평면적인 미니멀리즘 작품으로 분류하기보단 그녀의 주장처럼 추상표현주의 작품으로 보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불교와의 만남
아그네스 마틴은 일본 선불교 학자였던D.T. 스즈끼 (D. T. Suzuki)의 강의를 듣고 불교와 동양사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무라이 정신과 선의 결합을 주창하며 군국주의를 칭송했던 D.T. 스즈끼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그는 1949년 컬럼비아 대학의 객원교수를 역임하며 처음으로 서양 지식인들에게 동양 선불교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불교학자 D.T. 스즈키(D.T. Suzuki)와 선불교 승려 순류 스즈키(Shunryu Suzuki) 선사를 혼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아그네스 마틴은 불교를 종교로서 인식하지 않았고, 인생을 이해하는 통찰력과 실질적 조언을 제시하는 삶의 지침서, 윤리철학으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그녀는 명상을 통해 많은 예술적 영감을 얻었는데, 마음의 때와 소음을 줄이기 위한 도구로서 명상을 이용했다고 한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다른 소리들로 물들지 않았고, 일상과 명상의 경계가 사라진 후에는 따로 명상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상과 명상의 경계가 사라진 삶. 그녀는 작품을 시작하기 전 많은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몇 시간이고 의자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고, 자신이 그리고자 했던 주제가 그녀의 마음안에 자명하게 떠오른 후에야 비로소 붓을 잡았다고 한다. 아그네스 마틴은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선별하는 그녀만의 정확한 기준과 안목이 있었다. 그녀는 한 작품을 수정하거나 두 번 붓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만약 작품이 그녀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그녀는 그 작품을 수정하는 대신 똑같은 그림을 다른 캔버스에 몇 번이고 처음부터 다시 그렸고, 그 중 최고의 한 작품만을 선정한 후 나머지는 그녀 스스로 모두 폐기시켰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매일매일 그림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약 5%의 작품만이 남아있다.
아름다움과 숭고함, Beauty and Sublime
구겐하임의 주 전시공간인 로탄다 초입에는 그녀의 초기 작품으로 보이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텅 비어있는 듯 보이는 그녀의 후기 작품들에 비해, 아직은 단순하지만 어떤 형태들을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부드러운 곡선의 유기체 모양을 한 사물들은 마치 하늘 위 구름조각들처럼 자유롭게 캔버스 위를 떠다니고 있었고, 실제로 본 그녀의 캔버스는 무척 따뜻했고 깊이가 느껴졌다. 두 번째로 전시된 작품은 “아일랜드 1-12”라는 연작이었다. 72” x 72” 정사각형의 커다란 12개의 캔버스로 구성된 하나의 작품이었다. 12개의 캔버스는 흰색 아크릴물감으로 칠해져 있었고, 조금씩 다른 패턴의 연필선들이 그 위에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본 그녀의 캔버스는 단순한 흰색이 아니었다. 약간 파란빛이 도는 것 같기도 하고, 녹색 빛이 보이기도 하고, 또 노란빛이 배어 나오는 것 같기도 한 태어나서 처음 본, 그래서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그런 색이었다. 또한 언뜻 평면적으로 보이는 작품의 표면 역시 보는 각도에 따라 깊이와 굴곡이 느껴지며 마치 입체작품을 보고 있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키기도 했다. 커다란 캔버스 위에 그려진 가늘고 여린 연필 선들은 알 수 없는 암호나 비밀코드처럼 조금씩 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는 듯 했지만, 그 비밀 부호들을 해독할 수 없었던 필자는 그저 눈 만 깜박일 뿐 이었다. 왜 그녀는 조금씩 다른 패턴의 선들을 그렸을까? 그리고 그 선들이 만들어 내는 각기 다른 리듬을 통해 아그네스 마틴, 그녀가 들려주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필자는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12개의 비슷한 캔버스 앞을 마치 징검다리 건너듯 하나씩 하나씩 옮겨가며 천천히 살펴보았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네 번째…. 다섯… 여섯… 일곱… 이건 뭐지? 마치 멀리서 달려오는 적들의 말발굽소리에 지축이 흔들리듯 필자의 심장이 가볍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뭉클하고 뜨거운 기운은 어느새 필자의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고 있었고, 당황스러웠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랄까? 그냥 흰색 캔버스 몇 개를 지나쳐 온 것 뿐 인데… 정말 미스테리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고, 커다란 기쁨, 벅찬 행복감 같은 것이 필자의 가슴속으로 밀려들었다.
사람들은 극도의 아름다움이나 극도의 처참한 상황을 보았을 때 “숭고함” 이란 것을 느낀다고 한다. 18세기말에 시작해 1800-1850년 사이에 정점을 찍었던 낭만주의. 이러한 낭만주의를 대표했던 독일 화가 케스퍼 데니비드 프레드릭(Caspar David Friedrich)은 높은 산 정상에서 구름으로 가득 찬 대자연을 바라보는 그림,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라는 작품을 통해 자연 속에 담겨있는 숭고의 미학을 표현하려고 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한 퇴역 군인 역시 당시 참혹했던 전장의 모습을 회상하며, 전쟁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된 광경을 바라보며 자신이 느꼈던 것은 바로 “숭고함”이었다고 한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을 통해 필자가 느꼈던 건 무엇이었을까? 다시 고개를 들어 갤러리에 걸린 수 많은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들을 바라보았다. 필자가 바라보고 있는 것들은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이 아닌, 아그네스 마틴 그녀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너무도 아름답고 따뜻했다.
늦게 핀 예술가
1912년 캐나다 사스카추완(Saskatchewan)의 스코틀랜드계 농가에서 태어난 아그네스 마틴은 200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92년이라는 인생을 살았다. 태어난지 2년 만에 아버지를 잃은 그녀는 쉽지 않은 유년기를 보냈고, 학업 때문에 미국에 정착한 후에도 생계유지를 위해 많은 직업을 가져야만 했다. 서른살이 넘어서 화가의 길을 선택했던 그녀는 1957년 뉴욕의 아트 딜러였던 베티 팔슨스(Betty Parsons)로부터 뉴욕 전시를 제의 받는데, 그녀의 나이 45세였다. 그녀의 잠재력을 알아 보았던 베티 팔슨스의 제안으로 아그네스 마틴은 뉴욕 로어 맨해튼, 코엔티스 슬립(Coenties Slip)지역에 둥지를 틀었다. 그 당시 코엔티스 슬립은 미국의 가난한 젊은 화가들이 모여 사는 예술가촌이었고,제스퍼 존스(Jasper Johns),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엘스월스 켈리(Ellsworth Kelly), 제임스 로젠퀴스트(James Rosenquist), 마크 로스코(Mark Rothko), 버넷 뉴먼(Barnett Newman)등 1950대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이끌었던 예술가들이 모두 이 코엔티스 슬립의 이웃들이었다. 아그네스 마틴은 특히 로버트 인디아나(Robert Indiana), 잭 영거먼(Jack Youngerman), 앤 윌슨(Ann Wilson)등과 친분이 두터웠다. 그녀는 독서 클럽을 만들어 다른 예술가들과 서로의 사상과 철학을 교류했는데, 윌리엄 블레케(William Blake), 걸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동양 선불교 선승들의 글, 그리고 노자(Lao Tze)의 문학과 사상에 관심이 많았다.
1967년 뉴욕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아그네스 마틴은 돌연 뉴욕생활을 완전히 정리한다. 뉴욕생활뿐만 아니라 그림까지도 정리한 그녀는 캠핑카를 이용해 캐나다와 미국을 여행하며, 약 18개월 동안의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녀가 정착한 곳은 미국 남서부에 위치한 뉴멕시코(New Mexico)였다. 뉴멕시코는 미국의 또 다른 여류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가 작품활동을 하며 일생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뉴멕시코에 정착한 아그네스 마틴은 혼자 힘으로 자신이 지낼 벽돌집과 스튜디오를 지었고, 7년간의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1974년 “On a Clear Day”라는 연작을 시작으로 그녀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2004년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그네스 마틴은 뉴멕시코를 떠나지 않았다. 오랜 명상과 기다림을 통해 예술적 영감을 얻었던 그녀에게 뉴멕시코의 초현실주의적 자연환경은 세상과의 단절을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탐구할 수 있었던 가장 완벽한 공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철저히 자기만의 세계에 몰두했던 그녀가 세상과 소통했던 창구는 오랜 친분이 있었던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의 오너 아니 글림셔(Arne Glimcher)였다. 아니는 그녀의 작품을 자신의 뉴욕갤러리에 전시하며 아그네스 마틴과 세상을 잇는 소통창구 역할을 했다.
Joy, Innocence, love and freedom
남성이 주류를 이루었던 미국 미술계에서 아그네스 마틴은 몇 안되는 여류화가였다. 불교와 동양사상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표현했던 아그네스 마틴은 전쟁 후 뉴욕 미술계의 주류를 형성했던 추상표현주의를 지향했던 화가였다. 하지만 잭슨 폴락이나 윌렘 드쿠닝의 남성적이고 시끄러운(?)작품들과 달리, 아그네스 마틴은 초월적인 마음의 눈을 통해 보는 세상의 본질을 캔버스에 담으려 했던 정제된 형태의 작품세계를 펼쳤다. 노자 사상에 심취하기도 했던 그녀는 균형과 조화를 예술이 지향해야 하는 궁극의 가치로 여겼고, 사물의 겉모습이 아닌 명상이나 사색을 통해 인식되는 사물의 정수, 본질을 캔버스에 담고자 했다.
아그네스 마틴은 자신의 작품에 기쁨, 순수, 사랑, 자유와 같은 제목을 붙이기도 했는데, 이는 그녀 작품의 중심 주제들일뿐만 아니라 그녀가 인식했던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본질적 요소들이었다. 그녀가 만났던 세상의 가장 안에는 기쁨, 순수, 사랑, 자유가 있었던 것이다. 스코틀랜드에서 이주해 온 칼빈주의 집안에서 자랐던 아그네스 마틴은 종교가 추구했던 가치나 규율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같다. 마크 로스코나 바넷 뉴먼의 정제된 작품들을 높이 평가했던 반면 윌렘 드쿠닝의 작품을 그녀는 포르노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고통스러워 할만큼 지독히 내성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아스네스 마틴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논리적 분석이나 설명, 평가를 극도로 자제했다고 한다. 그녀는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전달되는 순수한 감정들을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왜 미술작품에 대해선 장황한 설명을 요구하는지 알 수 없다”라고 말하며 이성적 판단을 통한 2차적 경험이 아닌 감성이라는 직접적인 경험, 깨어있음이라는 창구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포기하는게 가장 힘들었다고 농담처럼 말했던 그녀는 순수함을 보존하기 위해 이성적 아그네스 마틴을 포기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마치 수도자가 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비워가듯, 예술적 영감을 위한 자리를 항상 비워두어야만 했던 그녀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비우는 작업은 어쩌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족적을 세상에 남기고 싶은 욕망이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향해 큰소리로 한 번 외쳐보고 싶은 그런 마음, 어쩌면 이런 마음은 비단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수줍은 바램일지도 모른다. 아그네스 마틴은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공개할 때마다 무척 수줍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그녀에게 더욱 소중했던 건 바깥세상을 향한 외침이 아닌 내면적 성찰이라는 끝없는 안으로의 탐구였고,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자기 자신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녀에게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은, 마치 알몸으로 혼자 거리에 서 있는 것과 같이 무척 힘들고 수줍은 일이었을 것이다.
정신분열증과 예술
아그네스 마틴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다. 그녀의 정신분열증이 유전적 원인이었는지 후천적 이유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녀는 목소리를 들었고, 그 목소리는 그녀에게 ‘미술작업을 하는 동안은 아무것도 먹지마” 라든지, ‘정신분열증 약을 먹지마’ 라든지의 명령을 내렸고, 그녀는 그 목소리를 거역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그녀는 수 차례 병원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그녀의 정신적 불안정 상태와 그녀의 예술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금씩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한 쪽에서 그녀의 작품을 단순히 정신분열증이라는 정신상태가 만들어 낸 하나의 독특한 예술적 산물로 보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또 다른 한 쪽에선 정신분열증과 그녀의 작품세계를 분리해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미술가들과 개인적 친분이 두터웠던 페이스 갤러리의 아니 글림셔(Arne Glimcher)는, “마크 로스코 역시 알코올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작업을 했고, 아그네스 마틴 역시 정신이 가장 선명할 때 작업을 했다.”고 말하며 그녀의 작품세계와 정신적 불안정 상태를 분리해서 보는 것이 맞다는 견해를 밝혔다. 물론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세계를 어떤 정신분열증 환자의 독특한 행위쯤으로 치부한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분명 그녀의 캔버스에는 그녀의 치열한 정신적 갈등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녀의 캔버스는 대부분 정사각형이다. 작은 정사각형 작품들로부터, 많은 작품들은 72”x72”라는 똑같은 크기를 고수하기도 했다. 마치 악보의 오선지 같기도 하고, 때론 공책에 그어진 줄들을 연상시키는 촘촘한 평행선들이나 그물망 모양으로 교차하고 있는 선들, 또 같은 패턴 안에서 반복적으로 찍혀 있는 수 많은 작은 점들. 균형과 조화를 중시한 작가의 미학적 표현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분열감을 느끼는 한 개인이 자신의 균형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적이고 필사적인 행위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림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반복적인 패턴이나 양쪽이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는 그림을 선호하고, 그런 그림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그만큼 그들의 내면이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역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그녀의 아름다움
아그네스 마틴은 치열한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녀가 불교라는 동양사상에 심취했던 것도 어쩌면 치열하게 요동치고 있었던 그녀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한 단서였는지도 모른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듯 유유히 흐르고 있는 강물처럼 겉으로 보여지는 그녀의 작품은 조용하고 평온하다. 그렇다면 그 평온함을 창조한 작가의 치열한 인생은 어디로 갔을까? 그녀가 그렸을 수없이 많은 선들, 때론 촘촘하게, 때론 여유있게, 때론 자로 잰 듯 진하고 정확하게, 때론 가늘고 여리게 마치 그녀의 가는 숨결이 손 끝을 타고 그대로 캔버스 위로 전해진 듯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는 선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연약해 보이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이어가고 있는 선들, 캔버스 끝까지 뻗어 있는 선들,일정간격으로 멈춰서 있는 선들, 공간을 열어주고 있는 선들, 공간을 가두고 있는 선들, 그녀의 수 많은 선들을 따라가고 있던 필자의 눈앞에 캔버스 마주하고 조용히 움직이며 작업을 하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도, 또 그 옆에도, 또 그 옆에도 구겐하임 미술관을 가득 채운 수 많은 아그네스 마틴은 자신의 캔버스를 조용히 응시하며 그림 작업을 하고 있었다. 진실, 진짜, 참이 만들어 내는 살아있는 기운은 흉내를 낼 수도 없고, 또 억만금을 주고 사올 수도 없는 순수의 영역일 것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가슴을 통해 전달되는 그 생생한 경험들. 그건 진짜만이 줄 수 있는 살아있는 것들이 뿜어내는 강력한 생명력 일 것이다.
어둠이 내린 미술관 밖에는 아직도 눈이 내리고 있었고, 온통 아그네스 마틴으로 물들어 버린 필자의 몸은 마치 요술처럼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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