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그랑프리」다.
처음으로 서울과 부산경남의 1군마들이 서울 경주로에서 우열을 가린다.
이번 대회에는 양쪽에서 각 5마리씩 모두 10마리가 출전한다. 생각보다 적은 경주마가 등록했다.
서울에서 나올 만한 1군마가 적지 않았을 텐데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대부분 일반경주로 발길을 돌렸다.
부산경남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매번 최대 출전두수를 꼬박 채웠던 부경이지만 이번엔 아니다.
기대했던 국산 능력마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한 주 전 열렸던 특별경주를 선택했다.
「오너스컵」 우승마 ‘연승대로’와 준우승마 ‘아름다운질주’를 서울에서 직접 보지 못한다는 것은 낭패다.
그럼에도 사실 구색만 맞는다면 올해만큼은 편성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게 개인적인 견해다.
오로지 ‘동반의강자’ 한 마리에게만 온 신경이 집중돼 있을 것이기에 그렇다.
시작 전부터, 게이트가 열리고 난 뒤, 그리고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동반의강자’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될 것 같다.
그가 어느 자리에서 출발해 언제쯤 치고 올라와 2위마들을 얼마만큼의 격차로 따돌릴 것인지...
우승보다 누가 2위를 할 것인가에 더 관심을 갖는, 그런 이례적인 「그랑프리」다.
훈련 관찰자들은 ‘불패기상’의 상태가 좋았다고 한다.
지난 「부산광역시장배」 정도의 걸음이라면 낙관하기 어려우나
아직 성장중인 3세마라 당시 전력에 플러스 알파를 해주어야 하겠다.
부산경남에서 충분히 몸을 만들고 느지막하게 올라온 ‘개선장군’과 ‘크래프티루이스’의 전력도 궁금하다.
이제는 정점을 찍은 듯한 ‘개선장군’이 경주마로서의 피날레를 어떻게 장식할지 기대된다.
‘크래프티루이스’는 올 상반기 부경 경주마 능력평가에서 ‘아름다운질주’와 함께 최고 평가를 받았던 주인공이다.
부경 외산마의 능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경주마는 ‘밸리브리’다.
지닌 능력보다 늘 한 움큼씩 더 얹어졌던 부담중량 탓에 전성기가 짧았다는 아쉬움이 내게는 남아있다.
작년처럼 뛸 만큼 뛰어 그간의 속앓이를 털어 냈으면 한다.
「그랑프리」는 1년 경마를 마감하며 최고의 경주마를 가린다는 의미를 갖는다.
마필 관계자에게는 가장 영광스러워야 할 무대이고, 팬들에게는 흥겨운 축제의 장이다.
이변을 꿈꾸면서도 한편으론 각자의 능력에 비례하는 합당한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상반된 심리도 있다.
변수를 극대화 해 이변을 일으킨 이가 있는가 하면 악조건을 뚫고 드라마틱하게 우승컵을 거머쥔 이들도 있었다.
‘신세대’‘새강자’‘다함께’‘밸류플레이’‘섭서디’ 등 역대 우승마들이 그랬으며 이들은 한 시기를 대표하던 챔피언이 됐다.
그리고 올해의 주인공은 ‘동반의강자’다. 실수만 없다면 그의 우승은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김양선 조교사와 ‘동반의강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실 이 대회에 있지 않다.
그들은 ‘새강자’의 최다연승과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그랑프리」 3연패를 바라본다.
김양선 조교사는 지난 6월 「마주협회장배」에서 넉넉한 우승을 차지한 후 일찌감치 이 목표를 세워뒀다.
그러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고 어느덧 10연승과 2연패의 문턱에 이르렀다.
지금 같은 페이스면 내년 하반기 무렵에는 11년 만에
‘새강자’의 최다승 기록이 ‘동반의강자’에 의해 다시 쓰여지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경마가 생산과 건설, 서비스, 정보제공 등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종합산업이라 하더라도
결국 산업의 수준을 대변하는 척도는 경주마다.
열등한 경주마를 갖고 경마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길 바랄 수 없다.
국산마 생산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던 ‘새강자’나
우수 경주마 도입에 불을 지폈던 ‘섭서디’ 등 미국산마는 한국 경주마와 경주를 일정 수준 끌어올린 단초였다.
지금 등장한 ‘동반의강자’도 그들과 비슷한 역할을 해내고 있으며,
앞으로 ‘동반의강자’를 목표로 나설 또 다른 신예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임무가 주어질 것이다.
‘동반의강자’에게 새로운 기록에 도전하는 것 이상의 기대와 주문을 하는 이유다.
경주마 한 마리로 당장 큰 변화가 오지는 않겠지만
자극은 될 것이며 언젠가 생각지도 못한 성과로 돌아올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한국 경마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주마라는 평가가 괜한 호들갑이 아님을
‘동반의강자’는 오늘, 다시 한 번 입증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