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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5일 토요일 <안식일과 십일조와 제자, 서구 기독교 분열의 역사>
[김용호] [오전 6:59] 굿모닝입니다~^^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토요일~^^
허전도사와 저는 김장을 하는 토요일인데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안식이 일이고 일이 안식입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에게 유대인들이 시비를 걸자 예수님께서 하신 어마어마한 말씀~
(요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유대인들이 있었을까요? 심지어 서구 기독교도 요일만 주일로 옮겨 주일은 안식일이라며 가게 문도 열지 못하게 하지요. 요즘은 교인들 눈치 보느라 강요는 못하지만 교리는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일이 안식이며 따라서 365일이 안식일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그에 대한 상징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따라서 오늘의 인사말은 다음과 같이 수정합니다.
주님 안에서 휴식을 누리는 토요일~^^
하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휴식도 일입니다. 사명 감당이지요. 일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휴식을 할 때는 최선을 다해 휴식해야 합니다. 주님의 교회 화이팅~!!!
안식일에 대한 새 언약의 치밀한 논리는 다음의 예수님 말씀입니다
(마 12:1-13)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구약의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을 하지 못하게 하신 날이었던 거지요.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생명을 살리는 일, 즉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는 안식일의 규정이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안에서의 구제와 양육, 밖에서의 전도와 활용을 위한 일, 즉 생명을 살리는 일,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므로 안식일이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안식일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동시에 365일이 안식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365일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은 자기의 일을 쉬는 날이니까요.
결론은 새 언약에는 안식일 규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누리는 365일의 안식이 구약에서 안식일로 상징되어 있었을 뿐이지요.
그런데 서구 기독교는 왜 주일을 안식일이라고 고집을 부리고 있을까요? 평일에는 자기 일을 하면서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ㅋㅋㅋ 그러니 자기들이 신약백성인지 구약백성인지 구별이 안 되는 거지요. 모세처럼 살고 싶다, 다윗처럼 살고 싶다, 솔로몬처럼 살고 싶다 등등 이 따위 소리가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 논리는 십일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논리입니다. 구약백성들에게는 10%라도 하나님께 드리라는 십일조 계명을 주신 것인데 이는 100%를 하나님께 드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삶에 대한 상징이었던 것이지요.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아예 그 몸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입니다.
그런데 십일조라니~
무려 90%를 자기 입에 집어넣겠다니~
거의 제 정신이 아닌 거지요.^^
자기들 입으로 신약백성이라고 하면서 살기는 구약백성으로 사는 것을 지독히도 사모하는 거지요. 실제 삶에서는 그게 더 자신들에게 유리하거든요. 딱 보니까 계산이 나오는 겁니다. 슈퍼컴퓨터가 괜히 슈퍼컴퓨터가 아닌 거지요. 그래서 내세에는 신약을, 현세에는 구약을 적용합니다. 영악한 것들 같으니라고~ ^^
노벨상이 어쩌고 하면서 유대인들을 부러워하는 인간들까지 있으니 더 할 말이 없습니다. 그 정도 되면 가히 잡신신학의 정수라 부를만하지요. 그리고는 청부론 청빈론 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가관입니다.^^
우리의 이런 논리를 저들이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보다 더 잘 알아요. 저들은 지식인답게(사실은 육에 속한 자답게^^) 재해석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우리처럼 성경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들을 급진주의자 또는 영웅주의자라고 부르며 비웃습니다. 우리를 향해 불가능한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고집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라는 거지요. 우리의 해석을 저들은 급진주의적 해석, 영웅주의적 해석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모르는 게 아니에요. 알면서도 외면하는 겁니다. 저들이 판단하기에 실현 불가능한 논리이기 때문이지요.
저들의 말대로 우리의 논리가 실현 불가능한 논리라는 것 맞습니다. 인간에게는 절대 불가능하지요. 그렇다면 가능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가를 찾는 것이 정상인데 저들은 거꾸로 재해석을 선택한 것입니다. 왜일까요?
1. 선악과를 먹은 결과 선악을 스스로 판단하는 자들로 태어났기 때문이고
2. 발등에 불이 떨어져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1은 타락의 결과이고 2는 형벌의 결과지요. 이처럼 서구 기독교가 성경의 논리와 맞지 않는 엉터리 신학과 교리를 세우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인간적 이유~ 타락과 형벌의 결과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 성경을 해석함
2. 역사적 이유~ 로마가 기독교를 접수하면서 로마 제국교회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성경을 해석함
이 오류는 1700년 동안 가톨릭과 개신교를 통해 유유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유구한 전통입니다. 소위 말하는 정통신학이지요. 이러한 틀에서 보면 지난 세기에 등장해 기독교를 두 토막 낸 진보기독교도 사실은 그 아류에 불과한 것입니다. 위의 두 가지 이유를 공유하고 있거든요.^^ 따라서 16세기 종교개혁도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하고 20세기 진보기독교의 출현 역시 찻잔 속의 태풍이기는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현재 서구 기독교는 내부적으로 넷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1. 보수 가톨릭
2. 진보 가톨릭
3. 보수 개신교
4. 진보 개신교
교리적으로는 가톨릭과 개신교로 갈라져 있고 삶의 현장에서는 보수기독교와 진보기독교로 갈라져 있습니다. 서로 수시로 싸웠다 뭉쳤다 소란을 떨지만 우리 시각으로는 서구 기독교라는 하나의 괴물이지요.^^ 괴물? 그건 좀 지나친 표현이 아닌가? 아닙니다. 새 언약은 두 가지 핵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개인적 차원~ 새로운 피조물
2. 집단적 차원~ 하나님의 나라 한 몸 공동체
서구 기독교는? 둘 다 제거했습니다. 저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위에서 말씀드린 두 가지입니다. 따라서 서구 기독교를 괴물로 규정하는 것이 결코 무리한 일이 아닌 것이지요.
이것은 저들의 현실적인 모습에서도 입증됩니다. 기독교라는 종교 때문에 당을 짓고 서로 물고 먹는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을 뿐입니다. 외부적으로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까지 그렇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들이 괴물이라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말하는 주님의 교회도 또 하나의 당 짓기가 아닌가? 주님의 교회가 또 하나의 당짓기가 아닌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주님의 교회는 속한 집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속한 집단이 없으니 당 짓기는 불가능합니다. 기독교에 속해 있었던 것 아니냐구요? 어느 기독교요? 현재 세계 기독교는 크게 나누어 로마 가톨릭, 개신교, 그리스 정교, 성공회의 네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그 넷 중 어디에도 속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온 곳이 없으니 돌아갈 곳도 없습니다. 당을 지은 적이 없는 거지요. 물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개신교 출신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교회는 개신교 출신이 아닙니다.
2. 우리는 푯대가 다른 네 개 기독교 집단과 전혀 다릅니다. 아예 비교 대상 자체가 아닌 것이지요. 따라서 당 짓기가 아닙니다. 당 짓기의 개념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충돌인데 우리는 충돌할 집단이 없습니다. 아예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결론 ~ 주님의 교회는 서구 기독교 4대 종단과는 출발점과 종착점이 다릅니다. 따라서 당 짓기가 아니고 별개입니다. 부딪힐 일도 없습니다. 물론 교류할 일도 없습니다. 성경의 계시의 많은 단어들이 정의가 다르므로 의사소통조차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물론 서구 기독교 4대 집단에 조직신학과 관련해 풍성한 참고 자료들을 우리에게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4개 집단 간의 끝없는 신학적 논쟁은 우리에게 귀한 타산지석이 되고 있습니다.
이 참에 서구 기독교의 당 짓기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초대 교회 5개 교구 중 로마 교구가 콘스탄티누스와 야합해 로마 제국 교회를 이루면서 최초의 당 짓기를 합니다. 나머지 4개 교구와 등을 진 것이지요. 그리고 동서 로마가 분열할 때 최종적으로 이 두 Catholic Church는 완전히 갈라서지요.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입니다. 로마 교구의 주교가 당 짓기의 원흉이었습니다.
이후 16세기에 로마 가톨릭 사제 중 일부가 당 짓기를 합니다. 많은 사제들이 로마 가톨릭의 개혁을 주장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있던 차에 독일 지방의 제후들의 지원을 등에 업은 루터라는 이름의 로마 가톨릭 사제가 드디어 당 짓기에 성공하지요. 그리고는 저항 교회, 즉 Protestant Church라고 이름 붙입니다.
네 번째 집단인 성공회, 즉 Anglican Church는 영국 국왕 헨리 8세에 의해 주도된 당 짓기였습니다. 국왕이 교회의 수장이 되기 위한 당 짓기였지요.
이 4개 집단 중 자의적으로 당 짓기를 하지 않은 집단은 그리스 정교회와 러시아 정교회가 속해 있는 동방 정교회뿐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향해 당 짓기를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외적 명분이나마 가지고 있는 집단은 동방 정교회 뿐입니다.ㅎㅎ 그러나 동방정교회는 여러 가지의 우상 숭배로 악명을 떨쳤지요. 동로마 제국의 하수인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구요
이상이 소위 서구 기독교의 역사적 실체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신학적 실체는 Protestant Church, 즉 개신교를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로마 가톨릭의 신학도 가끔 보아 왔는데 큰 틀에서 동방 정교회와 성공회의 신학도 오전에 말씀드린 두 가지 이유에 의한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신학적 오류와 당 짓기의 오류에 물들어있는 서구 기독교는 우리에게 어떤 시비를 걸 수 있는 기준도 없고 명분도 없는 집단일 뿐입니다. 정통의 명분은 억지로라도 굳이 인정한다면 동방정교회에만 외적 명분이 있을 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Orthodox Catholic Church입니다. 그 중 한 교구에 해당하는 그리스 정교회의 이름도 Greek Orthodox Church입니다. Orthodox를 고집스레 이름에 넣고 있는 데에는 그러한 역사적 정황이 있었던 거지요.
제가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다들 잘 아시겠지만 우리는 개신교가 되었든 가톨릭이 되었든 간에 그들과 당 짓기 놀음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는 바쁜 사람들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공동 집필 중인 책 제목 "새로운 피조물과 하나님의 나라~ 가톨릭과 개신교가 잃어버린 현세 구원을 찾아서"가 말해주듯이 우리는 그들과 이러쿵저러쿵할 이유도 시간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날이 성숙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어 가고 우리의 관계가 예수님처럼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변화되기 위해 간절한 회개와 간구에 오로지 집중해야 하는 사감들인 것입니다.
이미 그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근래에 들어와서 우리가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기에도 우리 각자가 참으로 험난한 고비들을 넘어왔습니다. 정 집사님 말씀대로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입니다.
서구 기독교 전체는 저들 중에서도 여러 신학자들이 규정하듯이 콘스탄틴 기독교입니다. 그 콘스탄틴 기독교에서 벗어나는 일이 우리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푯대만을 바라보고 열심히 달려갑시다. 예수님처럼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실제로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천하 만민으로 하여금 확인하게 해주는 일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모두가 깨어 함께 어깨동무하고 푯대를 향해 달려갈 때에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 화이팅~!!
서구 기독교의 분쟁과 당짓기의 역사는 조만간 오후 프로그램에서 상세히 학습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포지션을 역사의 지평에서 명확히 바라보기 위해 꼭 필요한 학습이라고 생각됩니다.
(끝)